저녁에 더 새로워지는 사람들

그저 하릴없이 쉬는 것으로 낮 동안의 피로를 스스로에게 보상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의 밤을 낮보다 아름답게 해줄 바람직한 심야 모임들.

저녁이면 바다로 떠나는 여행
송정 나이트 서핑 크루

수백 개의 빨간색 튜브가 송정해수욕장을 가득 메우고, 태양은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작열하고 있다. 여름을 달리는 모터보트의 물줄기까지 더해지면 온 바다가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일몰이 찾아들면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태양이 머물렀던 자리에 스멀스멀 구름이 덮이고 사람들로 넘쳐났던 바다 위를 붉은 노을이 물들이면,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하루 일과를 끝낸 그녀들은 슈트와 보드를 들고 바다로 향한다. 한 계절 느리게 흘러가는 바닷속은 아직 차갑지만, 손을 저어 파도가 시작되는 곳을 향하면 금세 몸이 뜨거워지고 숨도 가빠진다.
일하고 공부하는 낮의 일상에서 벗어나 서핑을 하는 저녁의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바다를 곁에 둔 부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파도를 탈 수 있어 서핑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시작한 저녁 서핑은 익사이팅한 스포츠 이상의 묘한 전율과 감동을 전해준다.
요가를 가르치는 류정, 왁싱 사업가 최성휘 그리고 학생 박보람. 세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이었지만 밤 서핑을 하면서 절친 이상의 친구가 되어 노을빛으로 가득 찬 바다 위에서 파도를 기다린다. 파도가 낮아 서핑을 할 수 없을 때는 그냥 보드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면 낮에는 들을 수 없던 작은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다양한 색감의 저녁 하늘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그 순간이 그녀들에게는 휴식이자 소풍이며 안식이다. 바다, 하늘과 하나가 되는 진중한 순간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운 좋게 파도가 있는 날에는 무동력 스포츠의 끝판왕다운 서핑을 즐긴다. 삶의 이면에 자리한 치열함을 아름답게 때론 열정적으로 풀어내는 저녁 서핑. 매일 저녁, 그녀들은 바다 위 우주로 향한다.

 

 

 

낮 동안 흐트러졌던 마음의 밸런스를 맞추다
탄츠 플레이 클래스

수십 켤레의 신발이 입구를 가득 채우고, 여기에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달려온 여러 켤레의 신발이 더해지는 저녁 6시 50분. 하루 종일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버린 40여 명의 탄츠 플레이어들은 클래스의 시작과 함께 몸의 긴장을 풀고 바닥에 앉아 깊은 숨을 들이쉰다. 음악이 흐르고 공간의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는 김윤아 원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선이 살아 있는 동작이 더해질 때 하나가 된 그녀들의 곧은 팔 위로 석양빛이 내려앉는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밖은 여전히 시끄럽고 삐걱거리지만 그 안은 왠지 모를 차분함과 소리 없는 우아함으로 가득하다.
결코 정적이지 않은 탄츠 플레이는 현대무용과 요가, 발레가 결합된 여러 동작으로 낮 동안 흐트러졌던 몸의 균형을 되찾아준다. 체격이 아니라 각자 타고난 체형에 맞춰 몸의 밸런스를 찾아주는 탄츠 플레이의 동작 하나하나가 ‘나의 몸’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존감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부산했던 하루 일과를 끝내고 이곳에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고 나면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탄츠 플레이어들. 서두르지 않고 시간에 몸을 맡기는 여유, 아름다움을 완성해가는 각자의 열정, 자신만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 남의 몸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이제는 자신의 몸을 마음껏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할 때라고 김윤아 원장은 말한다. 자신의 몸과 나누는 진실한 대화를 통해서.
“퇴근을 하면 곧바로 집에 가서 쉬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런데 탄츠 플레이를 만나면서 달라진 저녁이 저를 바로잡아주었죠. 잘못된 자세와 걸음걸이로 흐트러졌던 몸 전체가 어느 정도의 고통과 함께 평정심을 되찾은 거예요. 30~40명이 함께 운동을 하고 나면 새로운 에너지까지 충전되는 느낌이죠. 탄츠 플레이는 저에게 최고의 저녁 시간을 선물해주고 있어요.”

 

 

 

인생 그리고 세상을 논하며 밤을 읽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주말 모임

“어떻게 보면 200년 전에 했던 논쟁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한 토론 참석자의 말처럼 시간은 흐르고 세대도 변하고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인간의 삶은 어쩌면 비슷한 굴레 속에서 쳇바퀴 돌듯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변해버린 많은 것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과 그로 인한 소통방식 아닐까. 세상의 모든 이슈가 작은 휴대폰 안에서 터져 나오고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댓글과 문자, 이모티콘으로 의견과 감정을 표출한다. 이렇듯 일과 더불어 SNS의 블랙홀에 빠져 사느라 지쳐버린 직장인들을 겨냥해 피로회복제와 온갖 영양제 그리고 패키지 여행 광고가 넘쳐나지만, 오늘 모인 이들이 선택한 ‘쉼의 방식’은 이런 흐름에서 비껴나 있다.
5일간의 다사다난했던 일과가 끝나고 주말 저녁이 되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강남 읽기 모임’ 회원들은 신문을 들고 모여든다. 한 달에 한 번 발행돼 신문이라기보다는 시사매거진에 가까운 이 신문에 담긴 여러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타이핑이 아닌 말로 표현하는 대화의 창을 열기 위해서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유전자 변형, 성소수자의 인권 등 혼돈스러운 여러 사회문제들에 대해 뇌리에 엉켜 있던 생각을 한 줄씩 풀어간다. 그리고 논쟁보다는 소통에 가까운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기 위한 생각들이 접점을 이뤄낸다.
“집에서 쉬는 것만큼의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때로 합리적인 반대 의견에 부딪히면 상대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죠. 200년 전 사람들이 토론과 논쟁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발전시켰듯이 지금 우리도 ‘자신’을 만들기 위해 주말 저녁에 기꺼이 신문을 들고 모이는 것 같아요.”

 

 

 

해가 지면 달린다
미켈러 서울 러닝클럽

온갖 트렌드의 향연이 펼쳐지는 가로수길의 저녁은 현란한 불빛으로 더욱 눈부시다. 쇼핑과 먹거리로 꽉 찬 화려한 거리에 어울리는 남녀들이 하나둘 크래프트 비어 가게로 들어서는 흔한 풍경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린다. 미니스커트와 양복을 벗어던지고 최상의 러닝을 위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의 생경한 모습 때문이다.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그들을 향해 정체를 묻는 질문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미켈러바 서울에서 2015년부터 시작한 ‘미켈러 서울 러닝클럽’은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나 땀냄새가 느껴진다. 가만있어도 땀이 흐르는 여름의 정중앙에서는 제아무리 밤이라도 조금만 움직이면 금세 땀이 차올라 온몸에서 열기를 뿜어낸다. 하지만 이들은 에어컨 온도를 낮추는 대신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밖으로 향한다.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가로수길의 좁은 골목에서 시작해 한강으로 향하는 러너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건강한 음주를 위해 뛴다는 미켈러 러닝클럽의 수장을 선두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건강한 돼지가 되기 위해, 녹초가 되어 더 잘 자기 위해, 디톡스를 하기 위해…. 목적은 저마다 다르지만 ‘즐겁게 뛰자’는 목표 아래서는 한마음이다. 쉬울 것 같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코스를 함께 달리며 걸었다 뛰었다를 반복하지만 뒤처지는 사람은 없다. 반포대교 아래서 파이팅을 위해 잠시 멈췄을 때도 가뿐 숨을 몰아쉬며 서로 격려를 잊지 않는다. 여기에 다른 러닝 클럽까지 만나면 고성의 하이파이브로 한바탕 시끌벅적해진다. 이들은 각자 뛸 수 있는 거리만 뛴 뒤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10km를 완주하고 미켈러바에 모여 맥주 한 잔을 즐기기도 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저녁에 왜 뛰냐고 묻는데,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쾌감이 있어요. 정체돼 있던, 그래서 답답했던 이런저런 감정이 땀과 함께 씻겨 나가는 느낌!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러닝클럽인 만큼 뛰면서 모든 게 긍정적으로 바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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