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2막

건물을 새로 짓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공간 업사이클링. 건물에 쌓인 시간의 흔적과 개성이 조화를 잘 이룬 공간의 비하인드 스토리.

문래 비닐하우스

문래동 철공소 골목, 낡고 오래된 공간에서 핫한 펍으로 변신.
카페 식물과 거북이슈퍼를 디자인해 재생건축이란 개념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온 데씨아키텍츠 황현진 건축가. 지난해 펍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직접 운영 중이다.

낙후된 도시를 살려내자는 거창한 뜻이나 멋진 새 건물을 짓겠다는 욕심보다는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의외의 지역에 의외의 공간이 있으면 재미있잖아요.

일반 건물부터 한옥, 철공소까지 작업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작업을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재미예요. ‘낙후된 도시를 살려내자’는 거창한 뜻이나 멋진 새 건물을 짓겠다는 욕심보다는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의외의 지역에 의외의 공간이 있으면 재미있잖아요. 동네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일 때는 더욱 그렇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럼 사람들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 같아요. 카페 식물도 파급효과가 커서 그랬지, 익선동 일대를 일으켜보자는 생각을 갖고 작업을 하진 않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작업한 공간 일대가 변했고 다시 비슷한 작업들의 의뢰가 들어온 거죠. 다만 거북이슈퍼를 작업하면서는 사람들이 그 골목을 지나가며 잠깐 쉬어가길 바랐어요. 그래서 대문을 없앴죠. 아직도 익선동은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약간 흘러가는 길이라 아쉬워요.

2014년 당시만 해도 카페 식물은 생소한 스타일의 공간이었다
도시형 한옥을 리노베이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기와가 숨을 쉬어야 하는데 비가 샌다고 비닐을 대서 서까래가 썩어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햇빛도 잘 안 들고요. 4채의 한옥을 하나로 엮어 카페를 짓겠다고 생각한 건 클라이언트였어요. 다만 다른 요구사항 없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건 다 걷어냈죠. 벽이랑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철제, 비닐 등으로 다 싸버렸어요. 그 결과 외국에도, 한국에도 없는 스타일이 되어버렸어요.

건축가로서 재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옛것을 고스란히 살리는 것만이 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재생의 개념은 즐겁다, 활기차다는 느낌이에요. 어떤 공간이든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야 해요. 카페 식물 이후에 그런 스타일의 공간이 엄청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조심스러워요. 각자 즐거운 걸 찾아야 하는데 헌 벽은 무조건 남기는 게 법칙처럼 굳어지는 것 같아 염려돼요. 다양한 방식의 재생을 모색해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균일한 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직접 운영 중인 펍 ‘비닐하우스’는 어떤 공간인가
지인이 작업실로 써보라고 소개해준 공간인데 주변이 모두 철공소라 소음 때문에 작업실로 쓰긴 어렵겠더라고요. 그런데 밤에는 다들 퇴근하셔서 한적해지니 장사를 하면 좋겠다 싶었죠. 이곳의 일과는 아침 8시에 시작해 저녁 6시에 마감돼요. 정말 규칙적이죠. 저는 이곳이 비는 시간에 공간을 사용하는 거예요. 비닐하우스라는 콘셉트를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에요. 그냥 이 동네에 있는 자재를 사용해서 꾸미고 싶었죠. 그래서 그날그날 옆집에서 철을 배달 받았어요. 철이 단열이 잘 안되니까 폴리카보네이트로 주위를 감쌌고요. 만들고보니 비닐하우스를 닮았더라고요. 정확하게는 ‘바이닐하우스’가 맞는 표현인데 한국적인 느낌을 주고 싶어서 비닐하우스라 이름 붙였어요. 편의점 노상처럼 느껴지도록 일부러 플라스틱 테이블도 두었고요. 주변 건물들이랑 잘 어우러져서 낮에는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데, 밤에는 불빛이 새어 나오니까 딱 이곳만 빛나요. 그것도 매력이죠.

익선동, 문래동에 이어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가
연남동에 새로 작업하고 있는 곳이 있어요. 지하공간이에요. 지하공간이 옛날보다 인식도 안 좋아졌고 낙후된 곳도 많죠. 그런 곳을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어요. ‘아, 이런 공간이 지하에 있으니까 더 좋구나!’ 하고 사람들이 무릎을 탁 칠 만한 곳을 만들려고 고심 중이에요.

 

왜 리노베이션 했어요?

성수 카페 오롯

각각 금속가구, 인테리어, 제품디자인과 브랜딩 작업을 하는 세 명의 디자이너가 30년 된 인쇄소를 리노베이션한 카페 겸 예술 플랫폼.

커피와 인쇄소 뭔가 그럴듯한 조합이다
지인이 로스팅 공장을 운영 중이라 좋은 스페셜티 원두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을 오픈할 생각을 하게 됐죠. 적당한 공간을 찾아 강남, 서울숲, 성수역 등을 훑고 다니다 이곳을 만났어요. 이 공간에 마음이 끌렸던 이유요? 의외성이에요. 인쇄소와 주택이 엮여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전면에 인쇄소가 있고 중정을 가운데에 두고 뒤로 주택이 연결되는 구조거든요. 또 앞에서 볼 때는 좁아서 아늑해 보이는데 뒤로 깊이감이 있는 것도 색다르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원래 카페를 하던 자리나 도심으로 들어가는 게 맞아요. 유동인구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올드한 것이 돼버리잖아요. 저희 세 사람 모두 디자이너인만큼 이런 작업도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세 사람 모두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오히려 공간을 꾸미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셋이 머리를 맞대기도 하고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어요. 업체분들과 같이 시공에도 참여했는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동선도 처음 계획과는 완전 달라졌고요. 벽이랑 바닥은 그대로 두는 대신 저희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녹색 띠를 벽에 그렸어요. 조명도 따뜻한 걸로 골랐고요. 공장의 강한 분위기를 좀 누그러트리려 했죠. 그럼에도 아직 60%만 완성된 상태라 볼 수 있어요. 요새 카페 ‘진정성’이 인기던데 저희는 카페 미완성이에요(웃음). 지하랑 2층 공간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꾸밀지 고민이에요. 살짝 두렵기도 하고요. 지금은 카페에서 회화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단계이지만 앞으로는 주목할 만한 신인작가들을 발굴해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이 되고 싶고요. 나중엔 셀렉트숍도 열 계획이에요.

 

성수 리도엘리펀트

버려진 여관 건물에서 전시, 대관 등이 이뤄지는 복합문화공간의 카페로 환골탈태.

메인 카페거리와는 거리가 있는데 굳이 이곳을 고른 이유는
저희는 웨딩 포토그래퍼로 한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알게 된 사이에요. 처음에는 웨딩 스튜디오를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2층 규모의 공간이 필요했어요. 성수동 일대의 여러 공간을 봤는데 이곳만 2층 규모인데다가 빈티지해서 좋았어요. 다만, 이전에 건물 계약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들어왔죠. 알고보니 여기가 진짜 오래된 여관 건물인데 불도 났었대요. 경매에 나온 적도 있고요. 그래서 지역 주민분들이 저희를 굉장히 안쓰럽게 보셨어요. ‘도대체 왜 들어왔을까’ 궁금하신지 지나가실 때마다 들러 ‘여기서 장사가 되겠냐’며 걱정해주셨죠.

불이 난 여관이라니 리노베이션하느라 꽤 고생했을 것 같다
객실별로 파티션이 있었는데 건물이 하도 임대가 안 되니까 건물주가 공간을 널찍해 보이게 하려고 이미 철거를 한 상황이었어요. 외관, 내부 구조는 그대로 살리고 먼지가 너무 많아서 벽과 바닥 전체에 코팅만 했죠. 그럼에도 보수할 것들 투성이었어요. 건물 하나 새로 올리는 것보다 시간이나 비용이 더 들었어요.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안 나오고 창도 유리 없이 다 뚫려 있었으니까요. 아, 화장실도 없었어요. 공사하는 내내 옆 경찰 지구대 화장실을 썼죠. 또 저희가 루프톱에 2.5톤짜리 캠핑카를 올렸는데 건물이 오래된데다가 불도 나고 시멘트가 부식돼서 무너질 것 같았어요. 공사하는 사장님들 권유로 건물 안전진단을 받았는데 그 비용만 몇백만원 들었어요. 철골 H빔도 다 새로 세웠고요. 생각보다 일이 훨씬 커졌지만 사진 작업을 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진에는 공간의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니깐 발품 들여 남양주 목재공장에서 꽤 괜찮은 바닥재도 사왔고요. 만들고 나니 스튜디오로만 사용하기엔 아까워 카페를 먼저 열었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손님들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저절로 가게 홍보가 돼요.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이거든요.

정말 사진을 대충 찍어도 그림이 된다. 이렇게 예쁜 공간을 앞으로 어떻게 쓸 계획인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이 엄청 많아요. 물론 카페도 그중 하나고요. 공들여 매만진 만큼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어요. 작게는 전시, 크게는 팝업스토어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겠죠. 저희가 주도하기보다 이곳을 채워나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문래 라크라센타

1950년대에 지은 일본식 철공소를 개조해 만든 미국 로프트스타일의 카페 겸 캐주얼 다이닝.

라크라센타는 원래 어떤 공간이었나
1950년대에 일본 사람이 지은 철공소 건물이에요. 나무 지붕이나 벽돌까지 모두 그때 그대로죠. 지금은 이렇게 좋은 벽돌을 못 구한데요. 굉장히 단단해서 잘 안 부서져요. 철골 H빔도 원래 있던 거예요. 2층은 신고되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었는데 처음 본 순간 미국의 로프트스타일이 떠오르면서 아래로 바를 설치한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결국 그간 누적된 벌금을 모두 내고 허가를 받았죠. 계단만 완만한 걸로 바꿨어요. 다만 천장에 비가 새서 비 오는 날마다 기술자 부르기 바빴죠. 비가 안 올 땐 어디서 새는지 모르니까요(웃음). 공간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내추럴한 빈티지예요. 이왕이면 있는 그대로를 살리자 생각했어요. 바 위에 세운 아시바 파이프도 사실은 천장 보수공사하면서 설치한 건데, 느낌이 좋아서 그냥 그대로 두었어요.


폐공간 리노베이션의 장점이 있다면
유모차를 가지고 갈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은데 여기는 공간이 넓어서 유모차 가지고 가기 좋다는 리뷰를 읽은 적이 있어요. 공장을 리노베이션했으니 유모차를 세워둘 만큼 공간이 여유가 있거든요. 또 아이 데리고 이동하기가 어려워서 뭐든 한자리에서 해결하려는 주부들의 경우, 이곳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맥주도 즐길 수 있으니 좋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초기비용을 아끼자는 게 제 솔직한 마음이었어요. 폐공장을 임차했으니 권리금이 들지 않아서 좋았거든요. 그럼에도 다들 좋은 취지로 봐주셔서 제 시각도 바뀌더라고요. 지금 홍대랑 대구에 직영 매장 두 곳을 준비하고 있어요. 두 곳 다 창고로 쓰이거나 비어 있던 공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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