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밴에서 산다

용기 하나만으로 남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연애 12년, 결혼 3년차인 작가 김모아·영상감독 허남훈 커플은 동빙고동의 작은 신혼집을 정리하고 밴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랑을 나눈다.

평창 읍내쯤 왔을 때 김모아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괜찮으시면 올라오실 때 생수 두 통만 사다주실래요.” 컵라면 한 박스를 곁들여 집들이 선물을 준비한 뒤, 두 사람이 ‘현재’ 사는 곳을 찾았다. 굽이굽이 산길을 타고 올라가 청옥산 해발 1200m에 다다르자 한여름의 습하고 뜨거웠던 공기는 어디로 가고, 선선하고 청량한 바람이 차창 안으로 불어온다. 평지가 드문 강원도 산골에서 볍씨 육백 말을 뿌릴 수 있는 곳이라 해서 ‘육백마지기’라고도 불리는 곳, 거대한 풍력발전기 아래에 세워둔 밴에서 두 사람이 손을 흔든다. “저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커플의 소리’라는 프로젝트 그룹 안에서 글과 사진, 영상으로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김모아 작가와 허남훈 감독. 많은 사람들이 의심 없이 선택하는 일들에 두 사람은 물음표를 먼저 던지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집중해왔다. 결혼식 대신 혼인신고로 법적 부부가 됐고, ‘여행하듯 살고, 살듯이 여행하고 싶다’는 데 공감, 신혼집을 처분하고 1년간 밴에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이 부부가 떠도는 삶을 산 지는 이제 140일째다.
먼저 집 구경부터 했다. 밴 내부는 캠핑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신발 두세 켤레만으로 꽉 차는 계단, 아니 현관을 지나면 가장 먼저 주방이 나온다. 비싼 프라이팬이나 냄비는 사치품이라 생각하는 두 사람은 신혼 때부터 줄곧 코펠을 사용해왔다. 덕분에 그릇장은 더할 나위 없이 간소하다. 하지만 ‘밥맛’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 미니 압력밥솥을 마련했다. 가장 즐겨 먹는 메뉴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일본식 카레. 고형 카레에 물을 부어 그냥 끓이기만 하면 된다. 여유가 되면(!) 스팸을 썰어 넣어 특별식을 완성하기도. 반찬은 시댁과 친정에서 공수해온 김치와 마른반찬, 김 등이 전부. 화장실, 주방, 테이블 곳곳에 행잉 플랜트를 걸고, 소파 가죽에 베이지톤 천을 입혀 정돈된 실내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바질을 직접 키워 페스토를 만들어 먹고, 상추는 이미 잘 키워 입양을 보냈다. 작은 캠핑용 스피커에선 잠잘 때를 제외하곤 늘 음악이 흐른다. 이렇다 할 짐이 없긴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족답게 음악과 영상 작업에 꼭 필요한 노트북과 장비 등은 갖추고 있다. 테이블을 밟고 2층으로 오르면 ‘안방’이다. 다락방처럼 안락한 느낌이 드는 이 공간에는 침대, 옷가지와 침구류가 정돈돼 있다. 호스를 쓸 수 있는 곳에서 물을 받아 설거지와 샤워를 하고, 2주에 한 번쯤 빨래방에서 빨래를 한다.

밴을 집 삼아 살아보니 일상이 어떻게 달라지던가요
김모아) 허 감독이 오전 10시쯤 먼저 일어나 음악을 틀면 제가 일어나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사과 한 조각을 먹어요. 작은 밴이지만 허 감독이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리기도 한답니다. 저는 물걸레로 닦죠. 그러곤 각자 노트북을 꺼내 작업을 해요. 편집을 하거나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한 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죠. 그다음엔 좀 쉬고 또 일하고, 저녁엔 자전거를 타거나 좀 걷고, 저녁을 먹죠.

낭만적인 삶이네요
허남훈) 저희가 추구하는 삶은 일과 여행, 생활의 경계를 허무는 거예요. 일하듯 놀듯 하다가 밥 먹으며 이야기를 하죠. 넷플릭스도 즐겨 봐요. 빔 프로젝트를 설치해, 뒹굴뒹굴하며 밤 시간을 즐기죠. 요즘엔 해가 지면 꽤 서늘해져서 밴 라이프를 즐기기에 더욱 좋아요.

일상 자체는 집에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김모아) 맞아요. 달라진 게 있다면 좀더 많이 움직이는 것. 번거로운 일들이 많아지거든요. 물을 채우는 것부터요. 집에서 살 때는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을 이곳에선 내가 직접 움직여야만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동식 집이다보니, 창밖의 뷰와 집 앞마당이 늘 바뀌죠. 일을 하다가도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일상이 가능하고요.

공간, 그중에서도 삶의 공간에 대해 좀 다른 시각을 가졌기에 밴 라이프가 가능했겠죠
허남훈) 2013년 유럽에 배낭여행을 갔는데, 제가 그 나라의 휴지통, 횡단보도, 버스정류장 같은 걸 찍고 있더라고요. 우리 일상에도 다 있는 건데, 유럽이라 달라 보인 거죠. 돌아와서 결심했어요. 서울부터 경주, 안동, 부산 등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도 다르게 바라보면,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그래서 처음엔 8년간 8도를 즉, 한 해는 경상도, 한 해는 전라도 등 각 도를 옮기며 사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타인이 사는 곳에 갔을 땐 현지인처럼, 내가 사는 곳은 여행자처럼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럽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나라를 한 바퀴를 돌았어요. 반성의 심정이었죠. 다른 나라에선 관광명소란 이유로 미술관을 찾으면서, 우리나라에선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질 않고, 학창시절 이후로 불국사와 해인사는 찾지 않았으니까요. 그간 보지 못했던 것을 보려고 노력하고, 사람들을 사귀고 관찰하면서 우리나라를 깊게 보고 사랑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하지만 집을 과감히 처분하고, 그 안의 살림도 다 정리하고, 이렇게 떠도는 일상을 택한 건 큰 용기잖아요.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김모아) 저희는 서로 질문을 많이 주고받는 편인데, 어느 날 허 감독이 묻더라고요. ‘물질적인 것을 제외한다면, 무엇을 하며 살고 싶냐’고요. 멘탈 붕괴가 오면서 대답을 찾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당시 저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때 제 대답은 ‘여행하고, 글쓰고 노래하고 싶다’였죠. 그러자 허 감독이 한번 해보자고 용기를 주더라고요. 우린 왜 여행을 좋아할까, 여행을 하려면 해야 하는 일과의 경계를 어떻게 허물 수 있을까 등등 많은 질문을 던지며 방법을 찾아 헤맸죠.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났을 당시엔 ‘디지털 노마드’란 단어조차 없을 때였는데, 움직이면서 일하는 방법을 찾다 ‘워크 플로’를 구현하게 되었고 편집하면서 여행을 다닐 수 있었어요. 또 그즈음부터 집의 가구와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고 쓸모없는 것은 버리는 연습을 통해 지금의 삶을 차근차근 준비했어요.
허남훈)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밴 라이프는 저의 오랜 버킷리스트였고, 전국 여행도 차근차근 꿈꾸고 있을 때였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결합해보니, ‘1년 동안 집 없이 밴에서 살기’라는 결론에 다다른 거죠.

남들과 다르고 싶어 선택한 삶은 아니네요. 그렇다고 욜로족처럼 모든 걸 떠나 ‘즐기기’에만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요
김모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내 마음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는 거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어쩌면 바로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삶이잖아요. 오늘도 마지막이고, 내일도 마지막인 것처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욜로처럼 사는 건 아니에요. 삶의 균형을 잘 잡아가면서 여행과 일의 경계를 허물며 사는 것뿐이니까요.

밴 라이프의 가장 큰 장점은
허남훈) 많은 분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너네 어디 다녀와봤어?’ ‘어디가 가장 좋았어?’예요. 하지만 저희 삶의 주제는 그런 목적지가 아니에요. 잠깐을 묵어도 그 장소를 조금이나마 깊이 느끼고 싶은 거예요. 밴 라이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동식 모터 홈이라는 거죠. 강이 보고 싶으면 강으로 가서 실컷 구경하다가 마음에 들면 하루이틀 더 머물다가 이동하고, 어떤 날은 휴게소에서도 잘 때도 있죠.

두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달랐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었던 프로젝트네요
김모아) 2003년에 만나 12년 연애하고 결혼 3년차인데, 연애 때부터 잘 맞았어요.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가고 싶은 곳도 같았죠. 다만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은 좀 달랐지만요. 전 무드를 본다면, 허 감독은 디테일을 관찰하거든요.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지만, 그것까지 맞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 생각하니까 만족스러워요.
허남훈) 밴에서의 생활이 여자로서 힘들 수 있는데 아내는 즐겨요. 저희는 연애할 때부터 캠핑을 자주 다녔는데, 분명히 불편한 상황에서도 비 맞으면서 텐트를 함께 치고, 추운 날엔 덜덜 떨면서 함께 모닥불을 피우니까요. 이젠 그런 생활을 저보다 더 즐기니 참 감사해요.
김모아) 요즘엔 불편한 것들이 더 가치 있게 여겨지잖아요. LP, 필름카메라 등 사람들은 자꾸 아날로그로 회귀하려 하죠. 그러니 저희가 경험하는 이런 불편함은 호사죠.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 꼭 해보고 싶은 일로 캠핑카 타고 전국 일주하는 것을 꼽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누리는 불편함이 오히려 감사하죠. 누구든 저희 커플을 보고 용기를 얻어 도전하면 좋겠어요.
김모아) 남들과 다르고 싶어서 청개구리처럼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진짜 원하는 것을 스스로 물어보고 답하다보니 남들과 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에요. 내 삶을 나 스스로 선택하면 죽기 전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허남훈) 많은 사람들이 돈을 아끼잖아요. 기름값을 아끼고, 최저가 물건을 구매하는데, 물론 그것도 정말 값진 거죠. 하지만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해요. 우린 삶을 더 아껴야 한다 생각해요. 예전에 부모 세대까지는 먹고 살기 바쁘셨으니 효율적인 삶을 최우선 가치로 여겼잖아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 삶의 양상 또한 다양해지면 좋겠어요.


밴 라이프가 끝난 후 다음 프로젝트는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김모아) 요즘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다음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연장선이겠죠.
허남훈) 현재 집이 없으니까 밴 라이프 후에도 조금은 자유롭게 생각할 것 같아요. 일단 집이 없는 특권을 가졌으니 앞으로 또다른 삶을 살지 않을까 싶어요. 내일을 계획하면서 재미를 찾으려고요.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가슴 넓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아끼잖아요. 기름값을 아끼고, 최저가 물건을 구매하는데,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해요.
우린 삶을 더 아껴야 한다 생각해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 삶의 양상 또한
다양해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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