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로컬 헤리티지

수백 년 동안 가업으로 이어온 브랜드나 가게가 유럽이나 일본에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대를 이어 스스로를 갈고 닦아온 코리안 헤리티지가 있다.

놋그릇 가지런히 

묵직한 무게감의 놋그릇은 사용할수록 매력이 배가되는 테이블웨어다. 쓸수록 영롱해지는 빛깔은 물론, 식사시간 내내 음식을 따뜻하게 유지해 한끼 식사에 담긴 엄마의 정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징 장인 이용구 선생과 아들이자 전수자인 이경동 내외가 운영하는 놋그릇 가지런히. 1986년 거창에 처음 문을 연 공방은 1200℃의 열과 수천 번의 망치질을 통해 전통방식인 방짜열조기법을 재현한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페스타 다이닝에서도 사용 중인 놋그릇 가지런히의 그릇은 현대인의 식습관에 맞춰 크기를 개량했으며, 치즈 플레이트나 커트러리 등 구성을 다양화했다. 은은하게 윤이 나는 놋그릇은 우드 소재 테이블에서 사용할 때 더 빛을 발하며, 무채색이나 진한 채도의 그릇과 함께 사용할 때 특히 매력 있다.

판타스틱 국수 

아침이면 수백 개의 국수대롱을 마당에 내걸고, 밤이면 햇볕에 바싹 마른 국수를 자르느라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내외와 딸 내외 그리고 손주들까지 온 가족이 여념이 없다. 1972년 전남 장성 황룡강 근처의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 지금까지도 태양에 건조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해온 판타스틱 국수는 오랜 세월 인근 상인과 주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대형 국수공장들이 생겨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 맛을 인정받아 결혼식, 돌잔치 답례품으로까지 인기가 좋다. 태양에 말리는 전통방식은 면을 더 도톰하게 하고 식감을 쫄깃하게 만들어주며 잘 퍼지지 않는 것이 특징. 쑥면은 3~4월에 나는 여린 쑥을 다듬고 빻아 만든 것으로 국수국물에 은은한 쑥향이 번진다. 전라남도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로 만든 다시팩과 태양초 고춧가루를 넣어 매운맛을 자랑하는 비빔 국수 양념장을 사용해 요리하면 한층 깊은 맛을 즐길 수 있다.

삼애다원 춘설차 

그윽하고도 맑은 맛의 춘설차는 이른 아침 무거운 몸과 머리를 깨우기에 좋다. 춘설차는 동양화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이 해방 직후 우리나라 고유의 차 문화를 보급, 계승하고자 광주 무등산 일대에서 기르던 차다. 선생은 농약은 물론 비료조차 쓰지 않고 시간과 마음을 들여 정성스레 차나무를 키웠다. 이후 조상과 자연, 이웃을 사랑하는 선생의 마음을 기려 이곳을 ‘삼애다원’이라 이름짓고 무등산 증심사 위로 펼쳐진 5만 평의 차밭에서 4대째 춘설차를 재배하고 있다. 다원은 아침이면 구름이 산자락에 내려앉아 차나무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하고 낮이면 마른 볕이 내리쫴 찻잎이 자라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4~5월 수확한 잎으로 만든 춘설녹차와 그 잎을 발효시켜 깊은 맛을 자아내는 춘설발효차까지 두 가지 차를 생산한다.

청송백자

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시대 생활도자기 청송백자. 청송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하얀 빛깔의 돌 ‘도석’을 빻아 빚은 청송백자는 희고 단단하며 높은 내화도를 자랑한다. 문양과 장식은 되도록 피하고 순수한 원 형태를 지향해 단아한 아름다움을 드러냄으로 어느 식탁에서나 제 몫을 다한다. 1920~30년대에는 일본으로 활발히 수출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공장식 대량생산 그릇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1958년 마지막 공방이 문을 닫으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뒤 2009년 청송백자 전수관이 법수골에 문을 열었고, 1945년부터 청송백자를 만들어온 고만경 옹을 사기장으로 추대해 다시금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굽고 있다. 올 5월에는 리빙 브랜드 TWL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는데, 트렌디한 테이블웨어나 커트러리와 매치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 놀랍다.

복순도가 손막걸리 

울산 울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시작된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전통방식의 가양주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성스레 술을 빚고 수학을 전공한 차남은 발효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건축을 공부한 장남은 볏짚과 누룩 찌꺼기로 양조장을 비롯한 복순도가의 모든 공간을 지었다.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국내산 햅쌀로 막걸리를 빚고 항아리에 담아 오랜 시간 숙성시켜야 하므로 생산량이 적다. 마시기 전 위아래로 흔들어야 하는 여느 막걸리와는 달리, 전통 누룩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성된 천연 탄산이 녹아 있어 개봉과 동시에 막걸리가 고루 섞인다. 맛은 부드러우면서도 샴페인처럼 청량감이 강해 막걸리 식초나 칵테일, 하우스 맥주 등으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

아리지안 나전칠기 

1978년부터 40년간 운영된 경기도 남양주의 청봉옻칠공방은 전통공예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면서 나전칠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왔다. 완성도 높은 공예품을 만들지만 사람들이 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사라질 게 분명하기 때문. 그렇게 지난 10년간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열리는 국제가구박람회를 다니며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디자인을 고민한 끝에 2013년 류지안 디자이너를 주축으로 아리지안이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아리지안은 아파트 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 부피감이 큰 자개장과 테이블 대신 다기, 트레이, 숟가락과 젓가락 등 리빙 소품을 생산한다. 그간 청봉옻칠공방이 쌓아온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와 흠 없는 디테일이 제품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호원당 다과 

1953년 종로에 문을 연 호원당.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이종사촌이자 고종 3년까지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의 4대손 조자호 선생이 일제강점기 이후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음식과 잔치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설립한 한식 다과원이다. 어릴 적부터 자유로이 궁을 드나들며 궁중요리, 명문가의 전통음식 조리법을 익힌 선생은 1939년 서울 양반가의 요리를 상세히 정리한 《조선요리법》을 저술, 출간하기도 했다. 3대째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 중인 호원당은 한결같은 맛의 다과로 손님을 맞이한다. 자극적인 요즘 디저트와는 달리 담백한 맛이 특징. 특히 길고 무더운 여름의 막바지에는 두텁떡과 오미자차, 웃기떡과 호박식혜가 최상의 궁합을 이뤄 잃었던 입맛을 돋운다.

 

이대명과 전병 

아버지와 아들이 2대에 걸쳐 만든 과자, 이대명과. 일본인 가게에서 센베를 구우며 레시피를 전수받은 김정기 옹은 1954년 인천 화평동에 처음 가게 문을 열었다(2002년 부산으로 이전). 처음엔 일본식 센베를 노란 갱지에 담아 팔았으나 15년의 노력 끝에 바삭하면서도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일품인 한국식 전병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새벽 2~3시부터 숯불을 피워가면서 과자를 굽던 김정기 옹은 맛에 대한 기준이 높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다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아버지의 성실함과 깐깐함을 빼닮은 아들은 과자 본연의 담백한 맛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지금도 구슬땀을 흘린다. 이대명과 전병은 고소한 전병 반죽을 베이스로 땅콩, 피스타치오, 피칸 등 견과류를 더해 개운한 단맛과 오도독 씹히는 식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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