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모인 사람들 2편

강릉으로 모여든 사람들, 그 두번째 이야기. 그들은 왜 하필 강릉에 정착했을까.

색연필로 담은 강릉의 색과 선 윤의진 작가

부모님이 먼저 이주해 터를 잡으셨기에 주저 없이 짐 싸서 강릉으로 왔다는 윤의진 작가. 우연인 듯 필연처럼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그림 그리는 강릉댁’으로 살고 있다.
“저는 색연필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주로 나무나 꽃, 바다와 하늘같이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자연을 그리죠. 얼마 전, 독립출판으로 출간한 그림책 《고양이 수목원》은 강릉의 산, 바다, 숲이 배경이에요. 1년 넘게 작업을 하면서 제가 사랑하는 강릉의 풍경들을 원 없이 그릴 수 있어서 한풀이라도 한 것처럼 후련하고 행복했습니다.”

웃는 모습이 꼭 닮은 김동길 화가, 윤의진 작가의 남편이자 가장 친한 친구요 동료다.

간혹 매일 똑같은 나무에 바다가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이는 살아보지 않아 진정한 매력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계절, 날씨 그리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강릉의 풍경은 자유로운 유목민적 감성을 자극할 뿐 아니라 풍부한 색채를 선사해주는 영감의 원천 그 자체다. 그 속에서 마주한 우연을 작은 스케치북에 옮기면서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고. 소리 없는 탐험가답게 일이 없을 땐 화가인 남편과 함께 바닷가도 거닐고 나뭇잎도 밟으며 그림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촬영을 다닌다. 또 어떤 멋진 우연을 만날지, 설레는 매일이다.

 

독일인이 느낀 여백의 미 유디트의 정원

한눈에 시선을 끌어당길 정도로 화려하거나 장식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하고도 투박한 멋이 배어나는 이곳은 유디트 크빈테른의 공간이다. 이미 독일카페로 유명하지만 강릉 교동택지점을 오픈한 지 이제 갓 한 달이 되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유디트 대표는 독일로 유학온 한국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와 결혼해 한국에 정착했다. 하지만 서울은 너무 크고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너무 많은 ‘것’들에 시달리거나 들볶이며 살았던 서울에서의 7년을 뒤로 하고 남편과 함께 택한 곳이 바로 강릉. 우연인 듯 필연처럼 만나게 된 이곳에서 서울이 아닌 한국을 보고 느끼게 되었고 이내 그녀만의 고향이 되었다. 강릉 숲길과 바닷길을 걷고 있노라면 마치 한 폭의 산수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유디트 대표. 그녀가 정의하는 강릉의 매력은 사람과 건물 그리고 풍경 사이 ‘여백의 미’다.

 

밍스맹스 부부의 바다 사랑 다섯 개의 달

문을 열고 들어서면 까만 밤하늘에 다섯 개의 달이 떠 있다. 크리에이터 김민식, 디자이너 김혜원 부부에게 ‘다섯 개의 달’은 각자의 취향과 성격, 속사정이 담긴 일기와도 같은 공간이다.
“’다섯 개의 달’은 저희 브랜드 ‘밍스맹스’의 취향으로 만든 디자인 셀렉트숍이자 작은 책방이에요. 저희가 제작한 제품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 남편이 좋아하는 이것저것을 골라 소개하는, 한 마디로 저희를 말하는 곳입니다. 책 역시 저희의 관심사를 반영한 일러스트북이나 매거진이 대부분이고요.”

정말 ‘어쩌다 보니’ 강릉에 정착한 것 같지만 둘 다 바다를 깊이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반려견 별이와 함께 바다로 나가 아침 산책을 하고 후다닥 밥을 먹고 다섯 개의 달로 향해 작업을 한다. 매일의 일상과 강릉 바다가 전해주는 디자인적 영감은 스티커 메모지로 노트로 그리고 곧 출시될 배지로 형상화되어 판매대에 오른다. 강릉피플들에게 이곳이 감성 아지트로 불리는 이유다. 남편은 시를 쓰고 아내는 ‘1일 1바다 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요즘, 부부는 겨울의 문턱을 넘어선 추운 바닷가를 더 자주 찾는다. 남항진, 강문, 안목, 경포, 순긋 해변까지, 닮은 듯 다른 바다 그림이 인스타그램에 한 장씩 올라온다. 그래서 또 기다려진다.

 

각기 다른 이유로 강릉에 정착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함께 모이면 강릉인들만의 시너지가 생겨요.
재능과 열정을 나누다보면 행복이 배가 됨을 느끼죠.

쌍둥이 자매의 요리 작업실 두에시스

철도가 지나던 곳에 컨테이너 마켓이 들어섰고 그 옆 한옥이 있던 자리에 작은 건물 한 채가 세워졌다. 그 건물 2층, 쌍둥이 자매가 운영하는 쿠킹 클래스 공간인 ‘두에시스(DUE_ SIS)’가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 대사관 메인 세프로, 이탈리아에서 공수해온 식재료로 계절별 메뉴를 제안하고 각종 연회 음식을 준비하는 동생 박연희씨는 서울에서 15년을 살았고 여전히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주말이면 귀소 본능에 의해 태어나고 자란 강릉으로 부리나케 달려온다.

“강릉 톨게이트만 지나도 마음이 편해져요. 시대와 세대가 바뀌면서 자연스레 동네 풍경이 현대화된 것은 아쉬웠지만 한편으론 강릉에 더 자주 올 빌미를 만들어줄 저희들만의 공간을 열기에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죠. 서울에는 많지만 강릉에는 없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집처럼 편한 곳에서 즐겁게 요리하고 싶었어요.”
주말 두에시스에서는, 강릉 성남동 재래시장에서 구입한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내는 이탈리아 가정식은 물론 일본 집밥까지 다양한 주제 하에 유쾌한 만찬이 펼쳐진다. 주중 두에시스를 맡는 것은 3분 거리에 살고 있는 언니 박연정씨.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계절과일을 듬뿍 넣은 건강한 케이크를 선보인다. 요즘 자매는 두에시스의 또 다른 쿠킹 스타일을 한창 구상 중이다.

크리스마스 홈 파티를 주제로 한 클래스에 가장 먼저 달려온 참석자는 류정례 성악가와 김은경 대표. 두 사람 역시 ‘강릉 DNA’로 가득하다. 최근 앨범 <단종의 눈물>을 발매하며 소프라노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류정례씨는 강릉 아래 포항이 고향이지만 남편과 함께 강릉에 정착, 이곳의 매력에 푹 빠져 산다.
“강릉이 품고 있는 깨끗한 공기 때문인지 더욱 맑은 아티스트의 감성이 나오는 것 같아요. 자연과 어우러져 공연하다보면 잊고 지냈던 날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죠.”

뉴욕 FIT에서 의상을 공부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선 키즈 커스텀 액세서리를 제작했던 김은경 대표의 강릉 사랑은 좀 더 특별하다. 도시지만 여느 도시와는 다르게 산과 바다가 지척에 있기에 돗자리 하나 트렁크에 실어 놓으면 내리는 곳이 바로 휴양지가 되고 놀이동산이 되기 때문이다. 김은경 대표는 현재 오더메이드 디자인 앞치마를 제작하고 있는데, 두에시스의 심플한 감성과 따스함이 감도는 앞치마 역시 그녀의 작품이다. 강릉 경치 좋은 곳에 곧 작업실도 오픈할 예정이다.
“두에시스라는 작은 공간이, 함께 음식을 배우며 서로를 알아가는 소통과 배려 그리고 즐거움이 가득한 부엌이 되길 바라요. 그리고 저마다의 숨은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도 이용되었으면 좋겠어요” 박연희 셰프의 말처럼, 각기 다른 이유로 강릉에 정착했지만 각자만의 색으로 새로운 낭만 강릉을 만들어내는, 오라 충만한 이들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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