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랑 똑같은 건 싫어요

철학과 비보이. 이 두 단어가 가진 간격과 이질감만큼 배우 박재민의 면면은 반전의 연속이다.
최근 덴마크 리얼 복지표류기 <행복난민>을 통해 뇌섹남의 이미지로 돌아온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그의 솔직한 이야기들. 

브라운 컬러 터틀넥 브로이어.

아직도 3G폰을 쓰네요
전화나 문자 등 필요한 건 대부분 이걸로 해결돼요. 스마트폰을 쓴 적도 있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더라고요. 굳이 안 봐도 되는데 계속 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뭘 급하게 찾아보거나 SNS를 하는 용도 정도로만 사용해요. 방송활동을 하니 아예 끊고 살 수는 없고요. 한 달에 스마트폰 데이터 사용량이 1기가가 채 안 될걸요. 덕분에 통신사 등급이 바닥까지 떨어졌죠.(웃음)

시간 낭비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군요
목적 없이 시간을 소모하는 게 아까워요. 그래서 술도 거의 안 마셔요. 물론 모든 술자리가 의미 없다는 건 아니지만, 술보다는 차라리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시자는 주의예요. 대학 다닐 때는 술을 많이 마셨어요. 대학 농구팀 선수였거든요. 보통 그쪽 친구들이 군기도 세고 술도 많이 마시잖아요. 오히려 그렇게 극단적으로 술을 마신 경험이 술을 멀리하게 된 것 같아요. 어차피 술자리에서 한 얘기는 기억도 못하는데 그 시간에 진지하게 대화하면 더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했거든요. 모든 일에 이런 식이에요. 조금이라도 더 유익한 쪽으로 시간이나 에너지를 쓰려 하는 일종의 강박이 있어요. 이런 성격이 가끔 피곤할 때도 있지만 저 스스로는 좀 적응한 것 같아요.(웃음)

연예계에도 모임이나 그룹이 많잖아요. 그런 관계들이 일할 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술자리도 생길 텐데 스트레스는 안 받나요
그래서 데뷔 초에는 좀 힘들었어요. 연예인 친구도 많이 사귀어야 할 것 같고, 선배들 계신 자리에 얼굴도 비쳐야 할 것 같았죠. 안 가면 불안하고요. 그런데 아무리 가도 적응이 안 됐어요. 성향도 안 맞고, 은근히 낯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편하게 어울리지도 못했어요. 평소 모습은 항상 에너지 넘치고, 쾌활하지만 그런 자리에서는 영…(웃음). 적응이 안 되니까 어느 순간 놓게 되더라고요. 대신 저만의 방법을 찾았죠. 술자리에서 못한 인사를 식사자리에서 하고, 평소 틈틈이 연락하고 특별한 날 잊지 않고 챙기는 식으로요. 그때 술자리를 열심히 쫓아 다녔다고 해도 지금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아요. 소위 말하는 대스타들에 비해 제가 이슈가 되지 않는 건 그 분야의 재능이 덜 여물었기 때문이지 관계나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레이 컬러 롱가디건 시리즈, 살구색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팬츠 에스티듀퐁, 흰색 운동화 프레드페리 by 플랫폼 슈즈, 안경 스틸러.

뭘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꼭 했어요. 당장은 못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성격이에요.
또 남들이 안 하는 걸 유독 좋아했어요.
비보이도 그렇게 시작했고, 대학교 때 스노보드 선수로도 활동했는데
그 이유도 ‘남들이 많이 안 타서’였어요.

최근 출연한 tvN의 <행복난민>은 여러모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소설가 장강명, 정치인 심상정 사이에서 적절히 이야기를 끌어가고 패널로서도 자연스럽게 융화돼 보이던데요. 대학원에서 정책학을 전공한 사실도 의외였어요. 통역을 할 정도의 수준급 영어 실력도 화제가 됐죠
아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웃음). 제가 비보이 방송 VJ로 데뷔해서 리포터로 본격적인 방송을 시작했거든요. 그때 목표가 ‘대중들에게 이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자’였어요. <행복난민>을 찍으면서 데뷔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방송인으로서의 목표가 생각나더라고요. 무엇보다 두 분과 함께 ‘진정한 행복’이란 주제를 가지고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덴마크 곳곳을 탐방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굉장히 큰 즐거움이었어요. 방송에 나가지 못한 얘기도 많은데 다 보여드리지 못해서 아쉽죠.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방송에서는 덴마크 기업의 복지정책,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에 대한 소개가 주를 이루었는데 사실 저는 그보다는 장강명 작가님과 심상정 의원님이 치열하게 토론하는 게 더 재밌었어요. 장강명 작가님이 덴마크 사람들보다 심상정 의원님한테 더 질문을 많이 했어요.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날카롭고 예측 불가능한 질문을 막 던지는데, 나중엔 심 의원님이 화내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더라고요. ‘저분이 의도적으로 심 의원님의 허점을 찾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니까요(웃음). 그런데 그분은 정말 순수한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계속 질문을 한 거예요. 진짜 재미있는 분이에요.

장강명 작가의 도발(?)에 심상정 의원의 반응은 어땠나요
의원님은 장강명 작가님의 공격을 끝까지 철통 방어하셨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신 분이잖아요. 그 중압감을 이겨낼 정도인데, 설명이 더 필요한가요(웃음)? 그 카리스마에 완전 압도당했어요. 어떤 질문도 회피하지 않고 결국 본인만의 답을 찾아내시더라고요. 어떤 주제가 툭 던져지면 그 사안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까지 머릿속에서 한번에 로드맵을 딱 그리는 것 같달까. 현장에서 나오는 돌발 질문에 논리적 일관성을 갖고 답하기란 정말 어렵잖아요. 수십 년간 다져온 철학과 소신이 그만큼 확고하다는 의미겠죠. 심지어 모든 대화의 목표가 한결같고 선해요. ‘국민의 행복’(웃음). 적어도 제가 본 의원님은 그랬어요.

정책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드물고 귀한 현장 학습을 했네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두 분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을 수준도 안 돼요. 엄청난 역량을 가진 두 분이 정치, 철학, 사회적 현안에 대해 수시로 열변을 토하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어요. 정책학도로서 갈 길이 멀다는 자각도 하게 됐고요. 인문학이나 사회학 같은 학문적 호기심 외에도 정치나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고 항상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인데도 책과 현실은 참 많이 다르더라고요. 이번 여행을 통해 그 두 분의 다음 세대로서 앞으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배우고 고민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스럽고 기뻐요.

어쩌다 정책학을 전공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때 진로를 정하면서 ‘스포츠 정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대학에 스포츠 정책학과는 없으니까 일단 체육교육학과를 선택했고요. 정책을 다루려면 기관에 들어가야 하니까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고, 대학원에 가면서 최종적으로 정책학을 선택하게 된 거예요.

고등학교 때 그렇게 구체적인 꿈을 세우다니, 흔치 않은 일인데요
그러게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해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타고난 성격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혼자 생각하고, 목표를 정한 다음 뭘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꼭 했어요. 당장은 못 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또 남들이 안 하는 걸 유독 좋아했어요. 비보이도 그렇게 시작했고, 대학교 때 스노보드 선수로도 활동했는데 그 이유도 ‘남들이 많이 안 타서’였어요. 남들과 다르게, 어릴 땐 좀 특별해 보이고 싶었나 봐요. ‘쟤는 저런 것도 해?’ 이런 말 들으면 괜히 우쭐하는 마음이 아마 조금은 작용했을 거예요(웃음). 그렇게 관심사를 넓히다보니 자연스럽게 저라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지만요.

부모님의 영향도 컸을 것 같아요(박재민의 아버지는 고려대학교 박영인 교수, 어머니는 명지전문대학 남승희 교수다)
물론 컸죠. 저에게 직접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서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한 번은 어머니가 “초등학교 입학한다고 유치원생인 네 손을 잡고 학교에 간 기억이 선명한데 집에 들어와보니 네가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자식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그렇게 표현하신 거죠. 부모님은 철저하게 당신들의 삶에 집중하셨지만, 자식으로서 서운함은 전혀 없어요. 오히려 그런 환경 덕분에 어릴 때부터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어요. 초등학교랑 집이 멀어서 동네 친구가 한 명도 없었거든요. 형님이랑은 5살 차이가 나서 이미 고등학생이었으니 저랑 같이 놀아줄 시간이 없었고요. 학원도 안 다녔으니까 집에 오면 혼자서 그냥 생각하는 것 외엔 할 일이 없는 거예요(웃음). 뉴스 보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책 읽고 생각하고, 뉴스 보면서 ‘저건 왜 저럴까?’ 생각하고….

평소에도 형을 ‘형님’이라고 부르나요? 형도 재주가 많을 것 같아요
아버지 형제분들이 그렇게 서로를 존대하세요. 형제간의 예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시거든요. 딱딱하고 예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불러서 익숙하고 오히려 편해요. 형님은 물론 사촌들끼리도 반말을 거의 안 써요. 둘이 있을 때는 그나마 좀 편하지만 어른들 계실 때는 무조건 존칭을 써요. 형님은 UN에서 8년 정도 일하다가 지금은 월드뱅크에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모두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성향인데 저만 이것저것 잡다하게 많이 했죠. 관심 분야는 넓은데 깊지가 않아요.(웃음)

프로필이 정말 다채로워요. 비보이 VJ로 시작해 공중파 연예프로그램 리포터로 데뷔하고 이후 예능, 교양, 드라마, 영화, 연극, 라디오 DJ까지 안 한 것이 없어요. 대학 때는 방송일과 겸해서 농구 선수와 스노보드 선수로도 활약했죠. 그 와중에 책(《사랑이 구한다》)도 번역하고 서울종합예술학교 무용예술학부 교수로도 재직 중이고요.
하하.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주중 이틀은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라디오 스케줄도 매일 있고요. 그 외 행사 스케줄도 많아요. 그 와중에 틈틈이 했던 다큐나 교양 프로그램도 반응이 좋아서 최근에는 계속 그쪽으로 섭외가 들어오고 있어요. 요즘은 예능과 교양을 합쳐서 ‘쇼양’이라고 하던데, 그런 콘셉트가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시청자들도 그런 방송을 할 때 더 많이 응원해주시더라고요.

그중에서 진짜 원하는 일을 고른다면요
(망설임 없이)배우요.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싶었던 적도 있고 모두가 열광하는 스타를 꿈꾼 적도 있지만, 그래도 늘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진정한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었어요. 대중들에게 배우 박재민으로 남고 싶은데, 아직은 한참 멀었죠. 당장 연기자로 인정받고 싶다, 이런 조바심은 없어요. 느리지만 결국 도달하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예능 프로그램 욕심은 이제 없는 건가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할 수는 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에요. 예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엄청난 스타들이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잖아요. 연예인으로서 그런 존재감을 갖고 싶었죠. 또 제가 엄청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제가 속했던 그룹에서는 꽤 웃겼거든요(웃음).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타고난 예능인들의 끼나 재치를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일주일에 고정 예능 프로그램을 4~5개 한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도는 그때가 제일 낮았어요. 진짜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죠.

네이비 컬러 수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깅엄체크셔츠 h&m, 니트 타이 에잇세컨즈, 구두 바나나 핏.

하루빨리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아내를 존중하는 남편, 아이가 요구하면
언제든지 응답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에요.
아이가 저한테 “아빠 이거 하자, 저기 가자” 하면
언제든 “그래, 하자” 하면서 함께해주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의도치 않게 구설에 오르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됐죠.(그는 2012년 SBS <짝>에 출연했지만 방송 직후 전 여자친구와 결혼설이 불거지며 진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 일로 관악산 인근의 절로 거처를 옮겼다.) 방송인 박재민에게는 꽤 큰 변환점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해명을 했지만 논란만 재생산됐어요.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고정으로 하던 프로그램 5개가 하루아침에 정리됐죠(웃음). 그때는 제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더라고요. 타고난 성품이 긍정적이라 조바심을 내는 편이 아닌데도 우울증이라는 걸 그때 처음 겪었어요. 당시에는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그런데 돌이켜보면, 오히려 저한테는 그 사건이 득이 됐어요. 잘 맞지도 않는 ‘예능인’이라는 옷을 입고 낑낑대던 때인데, 어찌 됐든 쉬면서 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거든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뭔지 고민하는 기회가 됐으니까요.

마음 정리는 충분히 됐을 것 같은데 왜 계속 절에서 지내나요
화려한 연예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찾다가 절에 들어가게 됐는데, 어느새 그곳이 굉장히 편안해졌어요. 이불 펴고 누우면 방이 꽉 차는, 그야말로 고시원 같은 곳이에요. 읽을 책 몇 권, 운동복 몇 벌만 있는데 지금은 세상 어느 곳보다 편해요. 그런 방이 다섯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큰스님과 보살님, 보살님 조카들, 프로골퍼 출신인 변호사 형님이랑 같이 지내고 있어요. 일종의 셰어하우스 개념이랄까(웃음). 다들 식구 같아서 잠옷 입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신경 안 써요. 딱 그 정도 되는 공간에서 쉬고, 책 읽고, 강의나 방송 준비하고, 운동하고…, 그게 요즘 일상이에요.

진짜 편안해 보이네요. 그래도 누구나 고민 한두 가지쯤은 있잖아요
한동안 종교에 심취해서 공부를 하다보니 내려놓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아요. 그렇다고 종교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운이 좋게도, 저는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원하는 일들을 조금씩 성취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인생의 가장 큰 숙원을 아직 못 풀었어요. 좋은 가정을 꾸리는 거요(웃음). 아주 오래전부터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어떤 가정을 꾸려야 할지 대충 그림도 그려 놓았는데, 아직 인연을 못 만났네요. 마지막 연애가 5년 전이거든요. 내가 존중할 수 있는 사람과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일은 혼자 열심히, 꾸준히 하면 되는데 결혼은 상대와 마음이 맞아야 하니까 쉽지가 않네요.(웃음)

결혼하면 어떤 남편, 어떤 아빠가 되고 싶나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도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뒀어요. 아내를 존중하는 남편, 아이가 요구하면 언제든지 응답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자고요. 어릴 때 아버지랑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못했지만, 제가 요청했을 때 아버지가 거절하신 적은 없어요.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이 운동은 꾸준히 시켰는데,
아버지랑 같이 농구도 많이 했어요.저도 아이가 저한테 “아빠 이거 하자, 저기 가자” 할 때 언제든 “그래, 하자” 하면서 함께해주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하다는 말, 들어본 적 있죠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웃음). 어릴 때부터 좀 과하게 진지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꼭 그런 면만 있는 건 아니에요. 리미티드 운동화도 수집하고, 액션 피규어도 좋아해요. 그냥 저한테 여러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스트리트 댄스 문화가 거의 전무할 때 비보잉을 하기 시작했다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요
<행복난민> 끝나고, 몇 군데 프로그램과 얘기가 오고가고 있어요. 그중 출연이 확정된 것도 있고요. 배낭여행과 인문학을 섞은 콘셉트인데, 조만간 또 해외 촬영을 가게 될 것 같아요. 내년쯤 유학도 갈 계획이에요. 정책학을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해보려고요. 미국 워싱턴DC에 학교도 정해놓았어요. 아마 방송 때문에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겠지만 더 미루면 못 할 것 같아서 일단 저지르려고요. 비행기표 값이랑 유학비 벌려면 당분간 돈을 열심히 모아야 돼요. 그러고 보니 오늘 인터뷰의 결론은 ‘돈 벌고 싶다’가 된 것 같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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