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식당, 작은 가게, 작은 책방

취향과 감각을 담기 위해 꼭 큰 대지와 공간을 차지할 필요는 없다. 대형몰과 프랜차이즈 위주였던 서울의 얼굴이 분명 달라지고 있다.

  • 루루디
    9평 남짓한 케이크가게

9평 남짓한 케이크가게
루루디

카운터와 주방을 포함, 9평 남짓한 작은 카페 루루디에서는 감각적인 플레이팅의 케이크부터 앤티크 테이블, 벽에 걸린 액자, 가게를 비추는 네온사인까지 어딜 찍어도 그림이 된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며 남다른 감각을 쌓아온 연인이 운영하는 루루디는 남자친구 이경화 대표가 그리스의 오래된 카페에서 영감을 받아 타일부터 그릇, 작은 문고리 액세서리까지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구입해 완성했다. “테이블 개수만큼 딱 5팀밖에 모실 수 없어서 죄송해요. 많을 때는 30팀까지도 밖에 줄을 서서 기다리시거든요. 둘이 운영하는 카페라 시작할 때부터 공간이 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작기 때문에 저희 둘만의 감성을 잘 구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도 좋고요.”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은 법. 허브와 제철과일, 시나몬파우더를 활용한 러프한 플레이팅의 케이크를 선보이는 루루디는 카페 마니아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디저트 카페다. 김숙진 대표는 크림치즈, 과일 퓌레 등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진하고 깊은 맛의 케이크를 만든다. 조각케이크만으론 성에 안 차는 손님들을 위해 홀케이크까지 주문 판매 중.
주소 용산구 이태원로42길 17
운영시간 오후 1시 오픈 (월요일 휴무)

  • 요리 없는 식탁
    빵과 샐러드가 있는 서양식 분식점

빵과 샐러드가 있는 서양식 분식점
요리 없는 식탁

북한산 등산로 입구, 간판도 없이 들어선 원 테이블 식당 ‘요리 없는 식탁’. 오전 11시 반과 오후 1시 반, 하루 딱 두 타임만 예약제로 운영하는 이 식당은 오랫동안 채식을 해온 그림작가 박현정이 빵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수제 잼과 샐러드로 비건 식탁을 차려내는 곳이다. 건강한 채소를 직접 고르고 루콜라, 바질 등은 직접 키워서 사용하며, 유기농 채소와 과일로 잼을 만든다. “씨앗부터 시작하는 요리를 하고 싶었어요. 한 끼 때우는 식의 음식이 아니라 식물의 성장 과정을 오롯이 느낌으로써 자연과 생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음식 말이에요.” 이 느릿한 요리를 통해 그녀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도시의 식탁에서 너무 멀어진 자연의 이야기를 되새겨본다. 요리 없는 식탁의 모든 메뉴는 그녀가 매일같이 먹던 음식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사먹는 요리는 특별하고 가정식은 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엄마는 올리브 오일 하나를 고를 때도 엑스트라버진을 살 건지 유기농오일을 살 건지 고민해요. 피클만 해도 병에 든 것, 캐닝된 것, 벌크 포장된 것 중에서 뭘 고를지 고민하죠. 엄마라면 당연히 병에 든 걸 고르겠지만요. 집밥처럼 상을 차리는 게 가장 어려워요. 가족을 생각하면 재료 하나도 허투루 살 수 없으니까요.” 요리 없는 식탁은 사먹는 음식에 지쳐 집밥이 그리운 날 들르면 마음이 담긴 정성스러운 식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주소 종로구 비봉2길 6
운영시간 수~금,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1시 30분 두 타임 (예약 필수, 문의 @nocuisinetable)

  • 흑심
    일러스트레이터의 연필가게

일러스트레이터의 연필가게
흑심

연필만 파는 작은 가게가 있다. 땅별메들리의 일러스트레이터 박지희, 백유나씨가 주인이다. 두 사람 모두 대학시절부터 연필을 수집해온, 말하자면 연필 덕후다. 구로시장 내 좁은 가게 한쪽에서 출발한 흑심은 올해 5월 연남동의 누벨바그125의 숍인숍으로 이전했다. 연필로만 채웠던 이전 가게와 달리 여러 디자이너와 넓은 공간을 공유하는 누벨바그125에서는 흑심만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할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래서 목수들의 공구 진열 작업대에서 착안해 연필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매대를 만들었다.
“처음엔 시골의 오래된 문구점에서 묵혀둔 연필을 많이 샀어요. 요새는 작은 문구점이 사라지고 있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신 여러 나라의 빈티지 연필을 구하고 있어요. 같은 모델이라도 생산연도와 국가에 따라 필기감과 디자인이 달라요. 시대의 흐름과 브랜드, 모델의 변천사 등을 공부해야 하죠.” 흑심에서는 미국, 독일, 불가리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생산된 250여 종의 연필은 물론, 연필과 짝을 이루는 물건들도 판매한다. 원래 연필을 안 쓰던 손님이 많아 연필깎이가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연필깎이도 판매한다. 지우개는 오래되면 경화가 진행돼 사용할 수 없다. 대신 잉크와 연필 모두를 지울 수 있는 특이한 지우개를 판매한다.
“우리 가게를 찾는 분들은 대부분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분들이라 마음씨가 따뜻한 것 같아요. 흑심을 열어줘서 고맙다는 편지도 받아봤고, 시를 캡처해서 보내주신 분도 있어요. 감사하죠. 타이핑이 필기를 대체하는 시대잖아요. 흑심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다시 연필을 잡고 손글씨를 써보셨으면 좋겠어요.”
주소 마포구 동교로 266 3층 누벨바그125 운영시간 오후 2~7시 (일·월요일 휴무)

  • 올라이트
    기록광을 위한 문방구

기록광을 위한 문방구
올라이트

어려서부터 다이어리에 뭔가 적는 시간을 좋아했던 이효은 대표. 프랭클린 플래너부터 몰스킨까지 다양한 다이어리를 섭렵하다가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독학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다이어리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언니한테 인쇄비 300만 원을 빌려서 처음 다이어리 500개를 만들었어요. 소량이라 인쇄소 찾기도 힘들었어요. 저한테는 엄청 큰 수치인데 말이죠. 결국 블로그를 통해 한 달만에 다 판매되었어요. 그게 신나서 다음엔 1000개를 만들었죠.” 2013년의 이 경험을 토대로 작년 여름 창전동에 작은 가게를 열었다. 짙은 푸른색의 공간은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다이어리, 플래너, 메모지로 채워져 있다. “빈티지하면서도 클래식한 올라이트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도 고민이 많죠. 하지만 기록하기 편한 인덱스를 만드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려요. 직접 제가 사용하는 경험을 통해 제품을 만들거든요. 다이어리 한 권을 1년 동안 쓰기 지겨워 6개월짜리 다이어리를 만들었고, 친구들의 부탁으로 캐시북을 만들었어요. 사용자의 기록이 주인공인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어요. 너무 튀지않으면서도 질리지 않고 매일 손이 가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이유죠.” 그럼에도 매달 3~4개의 신제품을 출시할 만큼 열심이다. “규모를 키우거나 이름을 얻는 데 연연하기보다 깊이 있는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어요. 올라이트의 다이어리에 손님들의 기록이 남듯 이 공간도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졌으면 좋겠어요.”
주소 마포구 서강로11길 28 운영시간 금~일요일 오후 1~6시

  • 오데옹
    유럽 빈티지 감성의 소품가게

유럽 빈티지 감성의 소품가게
오데옹

연희동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오데옹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럽의 작은 골동품 가게에 와 있는 것 같다. 낡은 황동 촛대와 트레이, 100년도 더 된 낡은 엽서, 희끗한 빛깔의 유리병 등 세월을 머금은 물건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느라 여행을 떠나기 쉽지 않았던 정세희 대표는 파리의 오데옹 극장 앞에서 ‘이곳에 다시 오기 어렵겠지’ 생각했고, ‘다시 갈 수 없다면 그 기억을 공간으로 표현하자’는 마음으로 오데옹을 열었다. 그녀는 유럽에서 가져온 오래된 물건과 직접 제작한 빈티지 감성의 물건들로 가게를 채웠다. 오데옹은 3개월 단위로 진화해왔다. 한 달에 20일간은 여행을 하고, 10일간은 그 여행에서 받은 영감으로 물건을 제작하거나 가게 디스플레이를 교체하고 그렇게 두 달간 운영하는 식. 특히 여행 중 찍은 사진들로 만든 포스터는 100장 한정으로 다음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판매하는 오데옹의 핫 아이템이다. 주 5일, 4시간씩만 문을 열기 때문에 오데옹은 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가게다. 그럼에도 시간 맞춰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은 최소 1~2시간씩 이 작은 가게에 머문다. “단골손님 한 분이 오데옹은 ‘상념이 사라지는 공간’이라고 평해주셨어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제 여행의 경험과 기록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주소 서대문구 연희로 52-6
운영시간 오후 3~7시 (수·목요일 휴무)

  • 오버그린 파크
    관엽식물과 책이 있는 비밀정원

관엽식물과 책이 있는 비밀정원
오버그린 파크

숲에서 책을 읽는 경험은 분명 위로와 휴식을 주지만, 도심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주택가에 숨듯 자리한 오버그린파크의 문을 여는 순간 풀내음이 코를 스친다. 식물과 책을 함께 판매하는 이 공간은 손예서 대표가 대도시의 딱딱한 생활, 풍경에 염증을 느껴 만든 작업실 겸 식물책방이다. 오버그린파크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식물 관련 서적과 시집을 큐레이션할 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관엽식물을 판매한다.
대학에서 경영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시 창작을 공부한 뒤 남성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며 트렌드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오버그린파크는 느릿한 속도감으로 새로운 영감을 준다. 그녀는 책방을 열기에 앞서 시민정원사 과정을 수료하고, 오랜 시간 식물을 기르며 식물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식물을 키울 사람의 개성이나 조건, 환경 등을 고려해 적합한 식물을 추천해주기 때문에 식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누구나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다.
“오버그린파크가 지닌 아지트 또는 비밀정원 같은 느낌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어요. 그 느낌 때문에 찾아오는 분들에게 오래도록 편안한 휴식과 여유를 드리고 싶거든요.”
주소 영등포구 당산로 20길 14-1
운영시간 월~금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토요일 오후 2~6시 (일요일 휴무)

  • 이라선
    사진하는 부부의 사진책방

사진하는 부부의 사진책방
이라선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이 서촌에서 가장 사랑해 영화마다 꼭 등장시키는 골목 한쪽에 자리한 사진책방 이라선. 사진가 남편 김현국과 사진 미학을 공부하는 아내 김진영씨가 3개월 동안 서울 전역을 다니며 책방을 열 만한 공간을 찾아 헤맨 끝에 만난 곳이다. 두 사람은 ‘이즈 라이크 어 선데이(Is Like a Sunday)’를 축약한 가게이름처럼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책방을 서재처럼 안락하게 꾸몄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서점을 다녔는데, 규모에 상관없이 알차게 채워진 공간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저희도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비단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사진집을 큐레이션하는 데도 이런 마인드가 기준이 돼요. 많이 들여놓기보다는 어떤 사진집을 어느 위치에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우선으로 생각했죠. 책방의 규모는 이 정도가 저희 두 사람이 운영하기에 딱 적당해요.” 두 사람은 좋은 사진집을 찾아내기 위해 직접 세계 곳곳을 다닌다. 마음에 드는 사진집을 만나면 출판사를 찾아가 원본을 보고 작가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아내는 사진역사에 기념비가 될 만한 사진집을, 남편은 레이아웃을 비롯해 사진집 전체의 디자인이 좋은 책과 주목할 만한 신진작가의 사진집을 주로 고른다. 부부의 취향이 확연히 다른 만큼 두 사람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의 취향도 다양하다. “어떤 손님이 저희 책방에서 사간 책들을 ‘이라선 컬렉션’이라 불러주셨어요. 앞으로도 언제 다시 펼쳐봐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만한 책을 팔고 싶어요.”
주소 종로구 효자로7길 5 운영시간 화~일요일 오후 12~8시

1,259
인기기사

GO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