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가구 파는 옷가게

옷 파는 가게지만 가구도 팝니다. 뭐 이상할 게 있나요.

사방의 벽면을 차지한 행거와 그 위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옷들. SPA 브랜드숍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이런 풍경들이 바뀌고 있다. 옷의 수를 줄여 여유 있게 동선을 확보하고, 의류 외에 문구와 뷰티 제품 같은 것들도 들여놓고 개성 있는 가구로 취향을 더한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는 식이다. 세계적 SPA 패션기업인 H&M그룹이 프리미엄 SPA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other Stories)를 론칭하며 선보인 매장 인테리어를 보면 이런 흐름을 알 수 있다.
글로벌한 SPA브랜드라 예로 들었지만 굳이 외국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코오롱의 캐주얼 브랜드 시리즈와 에피그램이 그것이다. 이태원의 시리즈 코너와 경리단길의 에피그램 올모스트홈2 같은 플래그십숍에는 패션포토그래퍼인 조남룡 실장이 직접 운영하는 가구 브랜드 굿핸드굿마인드(GHGM)의 가구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숍 내에서 독립적인 공간을 할당받았음에도(시리즈 코너의 경우) 이곳에서 충분한 상담을 통해 가구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제품의 주축은 역시 아직은 목기나 도마처럼 큰 고민 없이 구매 가능한 가격대의 서브 카테고리 제품들이며 라이프스타일숍이라는 이미지 구축을 위한 장치로 사용되는 듯한 느낌이 크다. 어쩌면 의류매장에서 가구를 관심 있게 보고 주문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는 아직까지 생소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널스탠다드의 저널스탠다드 퍼니처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일본에서는 의류 브랜드 숍과 가구의 매칭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는 편집매장인 저널스탠다드(Journal Standard)에서 운영하는 가구매장이다. 저널스탠다드는 베이크루즈(Bay Crew’s)사에서 1997년에 설립한 셀렉트숍이다. 저널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새로운 상품을 신문 정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아메리칸 캐주얼을 콘셉트로 캐주얼한 아이템을 주로 선보이지만 경쟁 셀렉트숍인 빔즈(Beams)나 유나이티드애로우즈(United Arrows)의 상품 구성과 비교해 색 사용이 화려하지는 않다. 남성의류는 워크웨어나 밀리터리 계열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저널스탠다드의 가구에는 의류 셀렉션에서 보이는 이런 특징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가구의 콘셉트는 기본적으로 빈티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빈티지 가구를 현재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데서 출발하되 오리지널리티를 갖춘 아이템들을 셀렉션한다. 패션 셀렉트숍으로서의 스탠스와 프로세스를 가구에도 똑같이 접목한 셈이다. 저널스탠다드의 가구 역시 어디나 쉽게 어울리는 기본 아이템이기보다는 트렌디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으로, 저널스탠다드라는 브랜드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다른 취향과 적절히 믹스할 수 있는 스타일을 제안한다.

저널스탠다드의 가구는 러프하게 마감한 목재에 철이나 알루미늄 프레임을 조합해 아메리칸 캐주얼의 느낌을 보여준다. 가격대도 합리적이어서 20~30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디보디(d-Bodhi) 제품으로,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레이몬드 데이비드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설립한 이 브랜드의 가구는 환경보호와 리사이클이란 기치 아래 사용하지 않는 침목이나 고재를 소재로 하고, 일부러 마감도 하지 않는 무도장 가구를 만든다. 고재 자체가 지닌 내추럴한 느낌에 철과 알루미늄 같은 물성이 단단함을 더해 독특한 존재감을 선보인다. 디보디를 비롯해 저널스탠다드에서 판매하는 가구는 고재의 분위기와 모던함을 잘 매치한 개성적인 가구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런 가구들은 아메리칸 빈티지나 프렌치 앤티크 그리고 모던 인테리어와도 좋은 궁합을 이루기 때문에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
저널스탠다드는 가구 외에도 러그나 론드리 아이템 등 인테리어 전반에 걸친 상품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는데다 마케팅 역시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도쿄 시내에도 시부야를 비롯해 여러 군데에 ‘저널스탠다드 퍼니처’ 단독매장이 있고 홍콩과 대만에까지 진출해 있다.

어반 리서치의 도어즈 리빙 프로덕츠
저널스탠다드가 셀렉트숍다운 콘셉트와 제품 구성을 보여준다면, 또 다른 셀렉트숍 브랜드인 어반 리서치(Urban Research)는 콘셉트는 유지하되 개성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 가구를 선보인다. 1974년 오사카에서 청바지가게로 시작한 어반 리서치는 브랜드명 그대로 세계의 도시를 리서치해서 캐주얼 테이스트를 베이스로 한 옷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그래서 숍을 설명하는 글에도 ‘라이프스타일 제안형 셀렉트숍’이라고 소개한다. 이 어반 리서치가 하위 브랜드인 도어즈(DOORS)를 통해 지난 2015년 12월부터 판매 중인 가구는 모두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어울리는 오리지널 디자인 제품. 철과 알루미늄 같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저널스탠다드 퍼니처와 달리 어반 리서치 도어즈의 가구는 목재가 지닌 개성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옹이를 그대로 살리고, 목재마다 다른 색을 특별히 골라내거나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어반 리서치 도어즈 퍼니처의 디자인 콘셉트다. 도장 역시 일반적인 경우보다 가볍게 처리해서 나무 자체의 광택과 표정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만든다. 가장 대표적인 라인은 보시(Bothy)라는 이름의 다이닝 시리즈로 산에 있는 작은 오두막을 뜻하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아웃도어 라이프 느낌을 더했다. 특히 식탁은 집 안은 물론 오픈 테라스에 내놓아도 잘 어울리고 식사뿐만 아니라 워크테이블로도 사용할 수 있다. 또 다이닝체어(Cloth chair)는 등받이와 좌판 부분에 패브릭을 사용해서 해먹에 앉은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검정색 천이나 염색하지 않은 누메 가죽을 선택해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하다.

마가렛 하우웰과 아콜
브랜드가 탄생한 영국보다는 오히려 일본에서 더욱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마가렛 하우웰(Margaret Howell)의 숍에서는 디자이너 마가렛 하우웰의 터치를 더한 아콜(Ercol)의 가구를 만날 수 있다. 아콜은 1920년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이민 온 가구 디자이너 루시안 아콜라니(Lucian Ercolani)가 설립한 가구회사다. 1950년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가공기술인 곡목제작 기술을 보유해, 목재의 치명적인 단점인 구부러지지 않는 점을 극복, 가구에 불필요한 볼륨을 없앨 수 있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모던 디자인을 좋아한 마가렛 하우웰은 아콜의 가구 가운데 1950~1960년대에 느릅나무로 만든 의자를 2004년에 다시 복각했다. 1950년대의 모더니즘 디자인이 현대 인테리어와 잘 매치된다는 것을 눈 좋은 그녀가 놓치지 않은 것이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1950년대의 모더니즘은 지금의 인테리어가 주장하는 취향에 전혀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위압하지 않는 사이즈로 다른 현대가구와도 조화를 이룬다. 수직으로 쌓아올릴 수 있도록 한 스태킹체어(1957년에 디자인), 전통적인 윈저 프레임에 느릅나무의 솔리드한 등받이와 시트를 연결한 다이닝체어(1958년 디자인) 등 5가지 아이템을 라인업했다. 마가렛 하우웰이 복각한 느릅나무 가구들은 베이식한 디자인으로 가족의 성장에 맞춰서 그 수를 늘려나가는 데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에이징을 거치면서 재료의 느낌과 색이 변하는데 그것 역시 즐거움을 주는 요소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덩달아 아콜의 빈티지 가구들도 옥션을 통해 높은 가격을 인정받게 됐다.

다양한 분야에서 영역파괴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셀렉트숍을 중심으로 패션브랜드숍들이 가구와 라이프스타일 아이템들을 적극적으로 자기화하는 시도들은 더 빨리, 더 큰 물결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 역시 이율배반적으로 여기거나 위화감, 어색함을 느낄 필요 없이 더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무인양품에서 가구와 옷을, 심지어 레토르트 카레를 함께 팔아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패션도, 가구도 결국은 자기표현의 도구로 소비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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