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인생, 즐거운 조은숙

조은숙 갤러리의 조은숙 대표가 최근 흥미로운 책을 냈다. 제목은 <즐거운 부엌 나누는 밥상 맛있는 인생>. 패션 디자이너로 시작해 공간 디자이너를 거쳐 갤러리스트가 된 지 올해로 10년째인 그와 함께 음식과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조은숙 갤러리에는 아트 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부제가 붙는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를 조은숙 갤러리 대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조은숙 아트 앤 라이프스타일 대표로 칭하기도 한다. 뭐든 상관은 없다. 이름이나 자리로는 그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동안 여러 직업을 거쳐온 이력도 그렇고, 뜬금없지만 플라스틱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청담동 일대의 트렌드세터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린 것만 봐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갤러리스트가 되기까지 거친 과정인 셈이지만, 그의 센스는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임이 분명하다.
조은숙 대표가 10년간 이어온 갤러리를 무대 삼아 펴낸 책이 아트나 라이프스타일 혹은 갤러리스트로서의 삶에 관한 것이 아니고, 요리책이란 사실도 평소의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미 그는 매번 갤러리 전시 오프닝에 직접 만든 음식을 내고, 2년에 한 번씩 <도시락 전>이라는 전시를 기획해서 열고 있는 만큼 이미 요리 솜씨와 음식에 대한 센스는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리책을 만드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은 일. 대체 어떻게 이 일을 벌였는지 물었다.

 

조은숙 대표는 그 많던 호기심이 사라지고
이제는 예술품에 대한 궁금증만 남았지만
이게 오히려 기쁘다고 답한다.
단순해지고 안목은 깊어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어쩌다가 요리책을 만들게 되었나요?
항상 갤러리 오프닝 음식을 직접 만들었으니까 그때 찍은 사진 같은 걸 묶으면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즉흥적인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고 보니 10년에 걸쳐서 만든 음식이라서 콘셉트도 서로 안 맞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럼 새로 만들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준비했어요.

요리의 8할은 아이디어와 즉흥성이라고 썼던데, 일도 즉흥적으로 벌이는 편인가요?
혈액형이 B형이거든요(웃음).

디자인도 사진도 참 예쁘고 ISBN도 찍혀 있는데 팔려고 만든 책이 아닌가 했어요. 제목도 눈에 띄지 않고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네요.
뒤에 3만원이라고 가격이 있어요.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몰라서 못할 뿐이죠, 방법만 알려주면 열심히 팔아야지요(웃음).

음식을 다뤘는데 정작 직접 요리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없습니다.
멋을 내면 금방 창피해진다는 것을 터득한 나이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소박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또 힘을 뺄까가 제 모토예요.

책을 만들 때 이런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생각한 독자가 있나요?
30~40대가 봤으면 좋겠어요.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하면 좀 겁을 내는 사람들과 쉽게 음식 만드는 방법을 나누고 싶었어요.

알고 보면 대단한 요리가 아닌데도 하나하나 근사해 보입니다. 재주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손님으로 초대받아서 만족하고 기쁠 때는 배려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아닐까요. 예를 들어, ‘지난번에 보니 새우젓을 안 먹길래 오늘은 새우젓 대신 소금으로 간했어’라고 하는 거죠. 이런 게 얼마나 사랑스러워요. 그러려면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 갖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말로 하면 또 유치해지잖아요.
이 답변 뒤로 한참이나 책을 펼쳐 보이며 음식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그 내용은 “이건 끓이면 되고, 스테이크는 하면 되는 거고, 이건 <도시락 전>을 할 때 만들었는데 별거 아니잖아요. 집에서 먹는 옛날 반찬. 누룽지에다가 이런 거 얹어서 먹는 거잖아요” 등 주로 ‘그냥 하면 된다’이다. 얘기를 듣고 있으니 이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요리를 나도 그냥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조은숙표 손님상이란 것은, 손님이 왔을 때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웰컴 드링크 테이블을 마련해놓는다는 것과 복잡한 메뉴가 아니라 좀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를 써서 쉽게 낼 수 있는 요리를 궁리하는 것이다. 이른바 콘셉트를 잘 잡는 것이다.

손님 치르는 전략을 잘 세우는 것 같습니다.
손님 불러놓고 그때마다 후회막심이에요. 내가 왜 이분들을 오시라고 했지 하면서(웃음). 바쁘고 시간이 없으니까 오히려 콘셉트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가령, 바닷가재는 찌는 동안 다른 걸 할 수 있어서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좀 비싸죠. 그래도 나는 내가 더 중요하고 내 시간이 바닷가재보다 비싸니까 그걸 선택하는 거예요. 시간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테이블도 꾸며야 하는데 그 와중에도 꾸미지 않은 것처럼 하고 싶고(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바쁘잖아요. 그래서 나처럼 하면 된다 하고 책을 낸 거예요.

반응은 항상 좋은가요?
난 ‘맛 어때요?’라고 물어보지 않아요. 대신 ‘맛있죠?’ 이렇게 물어요. 내가 항상 맛있게 요리하진 않지만,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맛있나 없나 봐주세요’ 하는 태도는 싫어요. 스타일링도 과하면 안 돼요. 센터피스에 꽃 안 꽂은 지 아주 오래됐어요. 아예 밖에서 조약돌 같은 자연물을 가져와요. 좋은 공기도 가져올 수만 있다면 가져오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오버하고 힘주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아요.

책에서 요리를 늦게 배운 도둑질이자 즐거운 놀이라고 했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 다른 일들도 놀이처럼 쉽게 시작하는 것 같아요. 직업을 몇 번이나 바꾸기도 하고.
쉽지는 않아요. 누구나 걷는 걸음이지만 어린아이가 첫걸음을 떼는 것은 어렵잖아요. 결과는 쉬워 보이지만 결정이나 과정은 매번 어려워요. 그렇다고 괜히 심각한 척 하는 것도 싫어요. 나 자신이 이런 쪽에 감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은 편안해요.

일찍부터 ‘아트 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말을 갤러리 이름 앞에 쓴 것이 인상적이에요.
처음에는 공간과 관련한 스튜디오를 열었는데 나도 모르게 벽에 그림이 걸리더라고요. 그 전부터 화랑을 하라는 추천을 많이 받았지만 갤러리를 열 생각은 없었는데, 지금은 아트 앤 라이프스타일보다는 갤러리 쪽에 집중하고 있어요. 언제나 지금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해요. 제대로 할 수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대로 하고 싶어서 하는 고민이지요.

갤러리 운영 원칙이 있나요?
세계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한국적 미감을 베이스로 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어요. 가끔 우리에게 없는 감성은 수혈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로컬로 남아도 할 수 없고. 그게 내 철학이에요.

지금의 취향과 컬렉션을 완성하기까지 세 번 정도 새로고침을 했다고 하던데요.
좋아서 샀는데 와보니 안 어울리고 불편하고 생각한 그 느낌이 아닌 적이 많지요.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없이 실패해봐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최종적으로 자신의 취향으로 남은 물건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심플하고 단순해요. 제 몫을 하는 것들이지요. 소박해도 좋은 것과 블링블링하지 않은 것들을 좋아해요. 자기 존재감을 너무 드러내는 물건들은 싫어요. 다른 것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아요.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변했다거나 발전했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나요?
취향이 변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고, 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이라는 게 점점 발전해야 하니까.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왕년에 뭘 배웠고 가졌다는 자랑만 하잖아요. 취향은 가치관에 따라서도 바뀌는 것 같아요. 지금은 예술품에 대한 취향도 이전보다 넓고 관대해졌어요. 음식 같은 것도 점점 단순해져요. 나이가 드는 대신 생활이나 나 자신은 단순해지고 안목은 깊어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궁금한 게 없어요. 딱 예술품만 궁금해요. 궁금한 것이 줄어드는 게 오히려 기뻐요.

원래 호기심이 많은가요?
많죠. 호기심이라는 게 분주다사하잖아요. 내 주변 사람들은 그걸 알아요. 결과만 봐서 그렇지 나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아침 7시쯤 일어나서 8시 반쯤 갤러리로 출근해서 저녁 7시쯤 퇴근하면 음악도 듣고 책도 보다가 자요. 한 달에 한 번쯤 저녁 일정이 있지만 저녁 약속은 거의 만들지 않아요. 평범해요. 지금은 에너지를 많이 축적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꼭 필요한 것에 써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지키면 좋을 생활 원칙 같습니다.
전에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지만, 지금은 인생관과 생활 태도가 바뀌면서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단지 나를 위해서 써야 할 시간이 없어서, 오전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할애하고 있지요. 아침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공부하고 생각도 하고 보내요.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밥심이니 집밥이니 요리법이니 하는 것들은 다 뭔가 싶다. 결국 지금 보내는 우리의 생을 기쁘고 감사하게 이뤄나갈 것인가를 위한 방법이 중요한 것 아닌가. 조은숙 대표의 짧은 단발과 뱅 스타일의 앞머리, 모노톤의 패션도 여전히 젊은 감각을 보여주지만, 중요한 순간에 힘을 쏟아붓기 위해 일상에서는 힘을 빼고 준비하는 삶의 감각 또한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젊고 즐거운 인생을 보았다.

Recipe

토마토 소고기 전골
친구에게서 배운 레시피지만 조은숙 대표도 평소에 자주 해 먹던 음식.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고 맛있다. 찬 바람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봄날 함께 맛보면 좋겠다.
물 한 방울 넣지 않고 토마토와 양파 등 재료 본연의 수분만으로 조리해 맛이 깊고 진하다. 밥과 함께 먹으면 국, 찌개가 되고 빵과 함께 먹으면 수프가 되는 신통방통한 요리다.

재료 완숙 토마토 10개, 소고기(양지 또는 등심) 300g, 양파·청양고추 3개씩, 대파 1대, 마늘 12쪽, 올리브유 3큰술, 간장 2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1 토마토는 꼭지를 떼고 껍질을 벗긴 후 4등분한다. 소고기는 한입 크기로 썰어 소금과 후춧가루로 밑간한다. 양파는 반으로 갈라 다시 6등분하고, 청양고추는 잘게 썰고, 대파는 마늘 크기로 어슷하게 썬다.
2 냄비 바닥에 양파를 깔고 토마토를 올린다. 토마토 사이사이에 소고기를 끼워 넣고 냄비 가장자리에 올리브유와 간장을 두른다.
3 ②를 중간 불에서 20분 정도 끓인 후 마늘과 청양고추를 넣고 20분 정도 더 끓인다.
4 ③에 대파를 넣고 냄비를 식탁으로 옮겨 화로 위에서 한소끔 끓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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