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엘 아빠, 이기진 교수의 즐겁게 사는 법

거침없이 자유롭게, 무모하더라도 열정을 다해!
씨엘과 이기진 교수의 부전여전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저는 30대에 한국에 없었어요. 20대 때는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30대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40대에 들어왔는데,
교수가 돼서 또 일만 하고 살았죠. 그래서 지금은 좀 놀 권리가 있어요.

씨엘(CL)의 아버지이자 물리학자 이기진 교수는 딴짓의 고수다. 학교에서는 마이크로파를 연구하는 학자이지만 서촌의 창성동 작업실에선 사람 만나 노는 일에 바쁘고 열심히 그림도 그리고 책도 쓰고 벼룩시장 돌아다니며 옛 물건들도 수집한다. 인생 뭐 있나?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고 사는 것이 제일이라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빠는 말한다. 무모하게 도전해라, 안 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또 나아가라, 내가 선택한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일 자체에 열중하라!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보편적 삶 아니던가. 한 남자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고, 파리의 다락방에서 양파 수프 냄새를 맡고 일본의 다다미방에서 퀸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아이는 세상을 무대 삼아 노래하고 있다.

창성동 실험실을 작업실 겸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2007년에 낡은 한옥을 구입해 사용하다가 4년 전쯤 ‘실험실’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여기서 놀기도 하고 전시도 하고 학생들에게 대관도 해주고 바자회나 강연 등 다양한 일을 벌이고 있는데, 일반 갤러리에서 할 수 없는 걸 하고 있다고 보면 돼요. 부엌이 작지만 다 할 수 있어요. 오븐도 있어서 요리도 해 먹고. 이 공간이 어떻게 보면 핵심이죠.

여기서 잠도 자나요?
어떻게 알았어요? 하하. 예전엔 여기서 캠핑을 하기도 했어요. 뒤쪽에 작은 마당 같은 곳이 있는데 거기서 놀다가 안에 들어와 잠을 잤거든요. 구들처럼 바닥이 따뜻하니까 슬리핑 백 깔고 따뜻하게. 일종의 도심 캠프였죠. 사실 친구들끼리 캠핑하러 가려면 차도 막히고 번거롭잖아요. 멀리 가는 대신 여기서 밤새 놀고 캠핑하고 아침에 지하철 타고 가는 거예요.

반응이 좋았겠어요.
엄청 좋죠. 여기가 종로, 어떻게 보면 서울의 핵심이지만 문 열고 나가면 작게나마 고추도 심어놓고 한적하니 시골 같거든요.
작업실에 걸린 그림은 모두 직접 그린 거죠? 그림 작업도 이곳에서 하나요? 네 지금 걸린 건 다 제 작업이에요. 그림 그리는 게 또 다른 일이거든요. 예전엔 여기서 그림도 그리곤 했는데 지금은 주로 집에서 작업하고 여기선 사람 만나고 가끔 글 쓰고 그래요.

이기진 교수가 운영하고 있는 ‘창성동 실험실’에는 그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걸려 있다.

학교 방학하고 곧 파리로 떠난다고 들었어요. 겨울이면 항상 파리로 가나요?
꼭 그렇진 않아요. 이번처럼 연구차 갈 때도 있는데, 파리만 가는 건 아니고 아르메니아로 갈 때도 있어요. 거기도 같이 연구하는 제자가 있거든요.
일정도 열흘 혹은 한 달? 정해진 건 없어요.
연구는 어떤 것을 하세요?
연구 주제는 항상 정해져 있어요. 그림 그리고 이것저것 모으고 책 쓰고 딴짓도 많이 하지만, 제가 물리학과 교수잖아요. 물리학 중에서도 마이크로파를 연구해요.

책 <꼴라쥬 파리>를 보면 딸 채린(씨엘)과 함께 떠난 파리 여행 이야기가 나와요.
가족과 함께 파리의 다락방에서 살았던 기억도 등장하고. 유학 초창기였어요. 먼저 도착해서 다락방을 구해놓고 공항으로 가족들을 마중 나갔죠. 그때 채린이는 고작 두 살이었어요. <꼴라쥬 파리>는 제가 안식년 때 1년 동안 파리에서 머물던 이야기예요. 근 20년 전의 일이죠. 여행 초반에 채린이가 함께 했어요.

딸과의 파리 여행은 어땠나요?
채린이가 데뷔하고 잠시 쉴 때였어요.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다가 잠시나마 자기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기였죠. 아빠랑 딸, 둘이서 동그마니 파리라는 곳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참 좋았어요. 성인이 된 딸과의 여행, 그런 경험이 누구한테나 쉽게 오는 건 아니잖아요.

채린 씨 고민 상담도 해주었겠네요?
아뇨. 그냥 들어주기만 했어요. 산책도 하고 카페에 들러 차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들어주는 것밖에 안 했어요. 제가 무슨 얘길 따로 하겠어요. 밥해 먹고 미술관 가고 쇼핑도 하다가 피곤하면 들어가 쉬고, 그냥 함께 있는 걸 즐겼을 뿐이에요.

그 뒤로 같이 여행할 기회가 또 있었나요?
못했어요. 채린이가 이후로 너무 바빴잖아요. 지금은 또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고. 대신 둘째 하린이랑 파리 여행을 할 기회는 있었어요. 하린이가 대학생일 때였는데 “아빠 같이 파리 가자” 하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한 달 동안 같이 있었어요.

유학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이방인 생활을 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거 같아요.
당연히 어렵죠.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고. 타국에서 가족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가난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재미있기도 했어요.

어떤 점이 재미있었나요?
무모하잖아요. 사실 한국에서 직장도 얻을 수 있고 편하게 살 수도 있었죠. 하지만 파리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도 생각했어요. 뭐가 될지 모르지만, 어찌 보면 용감하게 가서 생활하면서 추억도 만들고.

그때가 20대였나요?
30대 초반이었어요. 저는 30대 시기에 한국에 없었어요. 파리에 있다가 일본에 있다가, 어떻게 보면 제 30대는 세상을 돌아다니는 시간이었어요. 20대 때는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30대는 외국에 있었고, 40대에 들어왔는데 교수가 돼서 또 일만 하고 살았죠. 그래서 지금은 좀 놀 권리가 있어요. 하하.
그러고 보면 연구를 위해 내전 중인 아르메니아를 다녀온 전력도 있죠.
그때가 결혼 전이었나요?
아뇨. 아내가 채린이를 임신했을 때예요.

임신이요? 다들 말렸겠는데요.
네. “니가 지금 거기 갈 때냐?”부터 시작해 난리가 났죠. 하지만 전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 주의예요. 어쩌겠어요. 위험해서 안 가고, 이래서 안 하고 저래서 안 하고. 그럼 뭘 해요? 젊을 땐 그런 무모한 일도 좀 해야 해요. 전쟁 때라 구호품 받아 생활하고 통신도 불안해서 집사람이랑도 어렵게 통화하고 그랬지만,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에요. 하하.

그래도 애가 있잖아요.
내가 간다고 애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안 가면 애가 좋아진다거나 가면 어떻게 된다면 안 갔겠죠. 그런 식이면 할 게 없어요. 애들한테 위험하니까 밖에 나가 놀지 마! 게임 하지 마! TV 보지 마! 그러는데, 그럼 가만히만 있어요? 그건 아니잖아요. 인생은 정말 즐겁고 할 일도 많고.

선택의 순간 나름의 기준이 있나요?

내가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그 생각이 들면 해야죠.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려야 해요. 미룬다고 해결되나요? 그러면 인생은 계속 그 자리예요.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말하지만 무모하면 또 어때요.

가족과 함께한 일본 생활은 어땠나요?
일본에서 반은 쓰쿠바대학에 있었고 반은 도쿄공대에 있었는데 연구원 신분이라 경제적으로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진짜 열심히 일했어요. 그때는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어요. 24시간 일만 했어요. 가정과 일뿐이었죠. 밤새 일하고 가족들과는 주말을 같이 알차게 보내는 식이었어요.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어요.

가족과 함께한 주말에는 주로 뭘 하면서 보냈나요?
여행 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거창하게는 아니고 가까운 온천을 찾는다거나 친구 집을 간다거나. 또 채린이, 하린이와 같이 산책을 한다거나, 채린이가 바이올린 레슨을 가면 거기 따라가고. 한 10년간 행복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불안하기도 한 때였지만 오롯이 가족이 함께 지낸 시간이었으니까요.

기억나는 가족 여행이 있나요?
파리에 살 때요. 파리의 겨울은 굉장히 춥잖아요. 그래서 따뜻한 스페인 쪽으로 여행을 가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아비뇽에서 렌터카를 빌려 스페인 끝까지 갔다 온 기억이 있어요. 채린이가 유모차 타고 다닐 때였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 있어요. 아비뇽 성당에서 찍었는데, 그 사진을 보면 좋은 추억이 절로 떠오르며 기분이 좋아져요. 둘의 캐릭터가 확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고.

캐릭터요?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30대의 저와 아직 어린 아기인 채린이요. 저는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며 무모하게 타지로 날아왔고, 채린이는 채린이대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건강한 모습이거든요. 아빠와 딸의 그런 상징이 느껴져요. 아비뇽에 간다면 그 자리에서 다시 사진을 찍고 싶어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딸과 함께 즐겨 먹은 음식이 있나요?
제가요? 그냥 맛있게 만들어 먹는 정도예요. 한 번은 채린이가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이거 아빠한테 배운 거야” 하면서 주는데 되게 맛이 없었어요. 하하. 일본에서 제가 만들어 주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렇게 안 만들었던 것 같더라고요. 하하.

특별히 잘하는 요리가 있나요?
비장의 레시피가 있으면 공개해주세요. 파스타는 진짜 어마어마하게 하죠. 하하. 오리지널 볼로네즈. 카레도 잘해요. 비법이라면 물을 쓰지 않는 것? 양파를 갈아서 볶다가 거기에 와인을 넣으면 에멀션처럼 살랑살랑하게 되는데 그걸 베이스로 사용해요. 볼로네즈는 거기에 토마토소스랑 고기 넣고, 카레엔 인도에나 있을 법한 향신료와 어묵 같은 거 넣고 만들어요. 온 가족이 모이는 주말이면 제가 요리해서 같이 먹곤 했죠.

주말에 요리를 해 주는 자상한 아버지시군요.
스스로 어떤 아버지인지 자평한다면요? 제가 저를 평가할 순 없지만, 같이 있을 때는 절대 행복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어요. 같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함께할 때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재미있게 지내는 거죠.

온전히 함께 말이죠?

그렇죠. 몰입해야 해요. 게임이나 문자 같은 건 절대 안 해요. 그 시간엔 아이들한테 온전히 몰입하는 거, 그게 중요해요. 살다 보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 가족은 외국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오롯이 함께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키워본 선배로서 부모들이 이것만은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있나요?
일단 아이를 어른처럼 키워야 해요. 직장 동료를 대하듯 똑같이 대하는 거죠. 야단만 치고 권위를 세워선 안 돼요. 이건 안 돼. 저거 하지 마! 그렇게 부모 마음대로 해서 아이가 훌륭하게 된다면야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이도 생각을 하고 필요해서 뭔가를 원하는 거잖아요. 무조건 안 돼는 아니에요. 아이가 어릴 땐 권위만 내세우다가 나중에 사춘기 되고 커서 “우리 이제 친하게 지내보자. 소통을 해야 하지 않겠니”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어릴 때부터 꾸준히 관계를 유지해야지 어떻게 하루아침에 친해져요. 어려서부터 어른처럼 존중하고 객관적으로 대하면서 관계를 쭉 이어가야 해요.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할 땐 대체로 들어주는 편이었겠어요.
그렇죠. 왜 안 들어줘요? 못 하게 하고 내 취향대로 하면 아이로서는 재미가 없죠. 자기 하고 싶은 걸 선택하고 하게 해야 해요.
여자아이는 사춘기 때 더 예민해지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했나요? 그럴 땐 근처에 안 가면 되죠. 하하. 어떻게 해요. 예민한 아이한테. 필요한 순간에 손 뻗을 수 있게 근처에 있어주면 돼요. 저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땐 옆에 누가 와서 말 시키고 그러면 싫어요. 똑 같은 거죠. 자식도 어른처럼 생각하고 대해야 해요.

자유로운 분위기만큼 책임지는 것도 중요할 듯해요.

당연해요. 누가 책임지겠어요. 본인이 알아서 해야죠. 그러면서 치열하게 사는 거예요. 도전하고 무모하게, 그러면서 자기 꿈을 실현해가는 거고. 저는 채린이가 잘나가고 성공하는 것이 인생 끝까지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모두 과정이에요. 그게 사는 일의 자연스러움이죠. 치열하게 노력하고 고생하고 실패도 하고, 그런 과정을 겪는 게 재미있는 인생이에요.

그래서인지 데뷔 후부터 돈 관리도 직접 하게 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왜 해요? 제 거 하기도 힘든데. 하하. 본인의 문제잖아요.

그래도 10대가 관리하기엔 액수가 크지 않았나요?
아휴, 쓸데없어요. 제가 간섭하고 좌지우지한다고 해서 좋게 될 일이 아니에요. 저는 아버지지만 어떻게 보면 일부분이에요. 채린이 나름의 사회생활 영역이 있거든요. 거기서 배우고 얻는 거죠.

채린 씨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나요?

일본에 살 때 옆 동네에 바이올린 선생님이 있었어요. 거기서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선생님이 채린이가 잘한다고 자기가 한 번 키워보겠다고도 한 적은 있었어요. 근데 뭐 이것저것 해보면서 자기 취향을 찾아나가는 거죠.

교수님도 음악을 좋아했나요?
제 20대는 음악이었죠. 팝송을 참 좋아했는데 밤새워 들었어요. 20대 시기에 음악 안 들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요? 인생을 치유해주는 유일한 친구인 음악을 안 좋아하면 안 되죠. 20대는 음악 듣고 친구 만나고 책 읽고, 그런 생활을 해야 해요.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채린 씨도 음악을 듣는 환경에서 자랐겠네요.
그러니까 채린인 70, 80년대 팝송을 그냥 들으며 자란 셈이죠. 맨날 들으니까 좋건 싫건 영향을 받았겠죠. 어쩔 수 없이. 하하.

채린 씨가 부른 노래 중에서 좋아하는 곡이 있나요?
‘내가 제일 잘나가’ ‘론니’? 노래가 다 좋아요. 일부러 듣진 않지만.

찾아서 듣지는 않나요?
저도 취향이 있거든요. 하하. 일부러 사서 듣진 않지만 어쩌다 라디오 같은 데서 나오면 좋더라고요.

채린 씨가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어땠나요?
아이의 선택이고 그걸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자신감 가지고 할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잖아요. 뭐가 최선이겠어요. 흔히 반대 안 했냐고들 물어보는데 반대를 왜 해요? 음악 안 하고 다른 걸 하면 더 좋나요? 그렇지 않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제일 좋고 제일 재밌는 거예요. 고생을 하더라도 말이죠. 그게 채린이가 저한테 배운 중요한 레슨인 것 같아요.

채린 씨의 미국 활동에 대해서도 성공하기 힘들다, 시간 낭비다 같은 말이 많았지만 꾸준히 한 동력이 아버지의 레슨 덕분인 것 같네요.

방송을 안 보니까 어떤 말들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이 개성이잖아요. 그게 왜 나빠요? 그럼 한국에서만 있어야 하나요? 채린이 같은 아이도 하나 있으면 괜찮잖아요? 20대의 진취적인 도전 같은 건 당연히 권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모하고 안 될 것 같아도 도전하는 모습이 멋지지 않나요?

그렇다면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열심히 사는 것이죠. 재미있게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해요. 제가 뭐 채린이를 위해서 쫓아다닐 것도 아니고 서로 지켜보는 거죠. 가끔 만나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우린 서로 그렇게 지켜보는 관계에요.

노래하는 가수의 삶도 있지만 여자로서 채린 씨의 삶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뭘까요?
본인이 원한다는 전제가 있긴 한데,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봤으면 좋겠어요. 일본의 아무로 나미에를 보면 참 행복하게 사는 것 같거든요. 두려울 게 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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