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걷고 싶은 골목, 황리단길

영화 <경주>의 장률 감독은 대릉원을 품고 있는 경주를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 무덤과 삶이 자연스럽다”고 했고, 주연배우 박해일은 “육체와 정신이 모두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창문을 열면 능이 보이는 대릉원 옆 황리단길에 떠났던 토박이들이 돌아오고 외지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는 이유인지 모른다.

카페 오하이 3층에서 내려다본 황리단길의 풍경. 오래된 간판과 한옥 기와지붕의 조화가 독특하다.

경주 황리단길은 봉황로를 마주한 황남동 대릉원 주변의 내남사거리부터 황남관사거리까지 이어진 길을 통칭한다. 천마총이 자리한 대릉원과 담을 마주하고 있지만 이곳은 황남동 일대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다. 빼곡하게 동네를 점령했던 유흥업소가 사라지고 난 후 특색 있는 카페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이제는 껑충 뛰어버린 임대료 탓에 점집은 겨우 한두 곳만 유지 중이다. 황리단길 초입의 가게에 들어서면 창가에 앉아 대릉원을 마주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유려하게 빠진 능선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계획적으로 조성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다는 점은 불편하지만, 10분 정도 내리 걷다 보면 황리단길의 끝과 시작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게다가 천마총이 자리한 대릉원은 물론 첨성대가 있는 경주역사문화지구와 가까워 건축물의 고도 제한이 있다. 그 덕에 어딜 둘러봐도 높은 건물이 걸리지 않아 시야가 시원스럽게 뻥 뚫린다. 황리단길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건물이 사거리의 3층 카페 오하이일 정도. 4월이면 준성수기로 분류될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한창이니 서둘러 예약하자. 간 김에 기와지붕 사이로 넘어가는 불국사의 일몰과 동궁과 월지의 야경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좋은 건 보고 또 봐도 늘 좋으니까.

가는 법
서울에서 출발하면 신경주역까지 KTX과 SRT 모두 2시간 정도 소요되며, 부산에서 출발하면 신경주역까지 KTX과 SRT 모두 40분이 채 안 걸린다.
경주 황리단길 신경주역 버스 탑승 → 서라벌네거리 정류장 하차 후 약 600m 도보 이동, 택시로는 25분 소요

계약 한 달 전까지 사람이 살던 40년 된 주택을 개조했다.

어디까지 가봤니?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 여중생들을 하품하게 했던 그 경주가 아니다. 지금 경주에서 가장 핫한 황리단길의 변화.

시즈닝
대구에서 살던 윤준필, 동상엽 대표는 여행차 찾은 경주의 매력에 반했고, 지난해 40년 된 주택을 계약하고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담장은 허물고 문은 살렸으며, 노란색 장판이 깔려 있던 바닥에는 나무를 깔았다. 시즈닝은 경주의 사계절은 계속된다는 의미와 양념이라는 두 가지 뜻을 담아 지은 이름. 한옥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커튼과 페인트칠까지 모두 직접 했는데 의외로 잘 어울려 최근 배우 공유 화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시즈닝에서는 양식을 베이스로 한 일식부터 동남아식까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한옥에서 먹는 파스타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표 메뉴 시즈닝 파스타·프라운 라이스 각각 1만2천원.
주소 경주시 첨성로99번길 25-2 문의 054-774-7477 인스타그램 @__seasoning

어서어서
어서어서는 먹을 것, 마실 것이 대부분인 황리단길의 빛과 같은 독립 서점. 경주 토박이 양상규 대표가 작년 7월에 오픈했다. 그는 시간이 멈춘 도시라는 느낌이 강해 경주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서점은 모두 양 대표가 읽은 책으로만 꾸렸다. 그래야 손님들에게 진심을 다해 추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책 한 권, 벽에 붙은 엽서 한 장까지 그의 취향이 담겨 있다. 어서어서는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책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기념품이 되는 약봉지 디자인의 책봉투에는 책이 마음을 위로하는 약이 됐으면 하는 양 대표의 바람이 담겼다. 공사 전 주인집 아주머니가 준 테이블, 고물상 아저씨에게서 산 의자까지 모두 그의 취향이다.

주소 경주시 포석로 1083
인스타그램 @eoseoeoseo

노워즈
분명 불편해 보이는 의자와 꾸밈새인데 앉는 순간 편안함이 느껴지는 이중적 공간. 다른 설명보다 우선 커피가 맛있는 집이다. 경주에 전혀 연고가 없는 남매가 오픈한 노워즈는 경주 하면 생각나는 기와지붕의 한옥이 아니라 더 매력적이다. 서까래 형태의 천장을 살리고, 큰 공사 없이 오래된 건물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 문을 열었다. 노래 제목에서 따온 ‘노워즈’라는 카페 이름이 공간과 정말 딱 떨어지게 잘 어울린다.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곳이다. 메뉴도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테, 플랫화이트와 핸드드립까지 커피로만 구성돼있다.

좋은 파트너인 정주은, 정우재 남매.

대표 메뉴 아메리카노 등 모든 메뉴 4천500원.
주소 경주시 포석로 1085
인스타그램 @no_words_coffeestop

로스터리 동경
골목에 숨어 있는 로스터리 동경. 북적한 메인 거리에서 살짝 방향을 틀어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확실히 조용하다. 대표 메뉴는 아인슈페너. 크림의 점도가 높아 커피와 섞이기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그 점이 동경 아인슈페너의 매력이다. 볕이 좋은 날에는 야외 테이블에서 조그만 소반을 앞에 두고 바람을 만끽해도 좋을 듯. 커피를 내어주는 스틸 쟁반까지 공간과 잘 어우러진다. 한쪽 공간에서 대표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커피 메뉴가 제공된다. 경주의 다른 지역에서 오래 카페를 운영하다 이곳으로 옮긴 지 8개월째. 늦게 가면 차지하기 힘든 2층 옥상 공간도 동경을 꼭 찾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표 메뉴 아인슈페너 5천원, 녹차파운드케이크 4천500원.
주소 경주시 사정로57번길 11 문의 054-774-7477 인스타그램 @hyungme_you

페트커피
대릉원이 가장 잘 보이는 카페. 2년 전 인적 뜸하고 가로등도 없던 길에 브런치 카페 노르딕의 문을 열었고, 지금은 바로 옆에 페트커피까지 오픈했다. 부모님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 모두 말리던 자리를 오롯이 뷰 하나만 보고 선택했는데, 그 선택이 황리단길 조성에 큰 역할을 했다.
주인 할머니를 1년 넘게 졸라 오픈한 페트커피의 큰 창 너머로는 대릉원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매장을 채운 디자인 가구들과 곳곳의 디자인 서적들에서 주인장의 센스를 엿볼 수 있다. 대표 메뉴는 달콤한 커피 위에 차가운 크림을 올린 엉페트. 적당히 단 크림 덕분에 끝 맛이 개운하다.

페트커피의 시그너처 엉페트. 적당히

대표 메뉴 엉페트 5천원. 주소 경주시 포석로 1097 문의 054-777-1097 인스타그램 @fetecoffee

홍앤리식탁
2014년 1월, 30년 된 목욕탕 자리에 문을 연 홍앤리식탁. 그동안 자리 이동은 있었지만 황리단길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 중 하나다. 식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주일에 한 번씩 메뉴를 바꿔 가정식을 선보인다. 집에서 매번 같은 음식만 먹지 않는 것처럼 갈 때마다 메뉴가 다른 가게를 지향한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홍’과 ‘이’씨 성을 가진 사촌 자매가 운영하는 홍앤리식탁은 황리단길에서 가장 손님이 많은 곳. 꽤 넓은 공간임에도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 휑한 느낌이 들 정도인데, 그 빈 공간은 식물로 채웠다.

사이 좋은 사촌 자매가 운영하는 홍앤리식탁.

대표 메뉴 가정식 메뉴 1만2천~1만3천원대.
주소 경주시 포석로 1091-2 문의 054-624-2281 인스타그램 @hongnlee22

배리삼릉공원
결혼 후 남편과 함께 경주로 내려왔다. 초를 좋아하던 이현정 대표는 첨성대 모양의 초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실측 비례를 맞춰 첨성대를 구현한 초를 만들었는데 운 좋게도 박물관에 입점하게 됐다. 청년 창업 지원을 받아 시작한 초 만들기는 성과도 거뒀지만 마땅한 판매처가 없어 작업실로 쓰던 공간에 배리삼릉공원을 오픈했다. 대표적인 관광지지만 여행객은 살 만한 기념품이 없고 경주의 디자이너들에게는 판매처가 없다는 양쪽의 니즈가 맞아떨어져 순항 중이다. 첨성대, 석굴암 모양의 배지부터 경주에서 찍은 사진으로 제작한 엽서까지 소소한 기념품이 가득하다.

인기 상품 첨성대 초(小) 2만5천원, 첨성대·석굴암·선덕여왕 성냥 각각 3천500원.
주소 경주시 포석로 1083 문의 054-774-7477 인스타그램 @baeri3park

소설재
한옥만 건축이 가능한 황남동에 2016년 4월 신축한 한옥 스테이다. ‘작은 이야기가 있는 집’이라는 뜻의 소설재는 한옥이라는 형태에 집중하면서도 한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의 연결성에도 주목했다. 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손명문 건축가가 중정과 뒷마당 등 어디에서나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밭이 딸린 집을 허물고 213.30m2(약 65평) 규모의 2층 한옥을 건축했다. 스테이는 1층 10개, 2층은 1개의 총 11개 방으로 구성됐다.

가격 4인 가족 평일 1박 기준 12만원.
주소 경주시 포석로 1050번길 48
인스타그램 @soseoljae

한옥 마루에 앉아 광합성을 하다 보면 비타민D가 자동 충전되는 기분이다.

빛꾸리
골목 안쪽 조용한 분위기의 빛꾸리. 단언컨대 황리단길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들어오는 카페다. 자리마다 놓인 소반과 마루로 쏟아지는 햇빛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편안한 공간이다. 1인 1메뉴 주문이 원칙이며 노키즈 존. 유기농 황설탕으로 시럽을 만들어 모든 음료에 사용하며 떡과 함께 제공하는 조청까지 직접 만든다. 전반적으로 메뉴의 가격대가 높은 편이고 음료보다는 쫀득한 인절미구이가 꽤 맛있다.

대표 메뉴 매실이 8천500원,
색동인절미구이 8천500원.
주소 경북 경주시 손효자길 16-1
문의 054-777-4421

경주의 상징인 문화재를 수제 맥주에 녹여냈다.

경주피자
2017년 8월 오픈한 피맥 전문점. 1970년에 지어진 방앗간 건물에서 수제 맥주와 화덕 피자를 판매한다. 박물관에서 일하던 대표는 퇴사 후 맥주 박물관 건립을 꿈꾸며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다 경주로 내려왔다.맥주 이름은 선덕여왕, 불국사, 첨성대, 김유신 등 경주를 상징하는 네 가지 키워드로 정했다. 선덕여왕 에일은 상큼한 과일 향, 불국사 위트에일은 밀맥주 특유의 달달한 맛, 첨성대 에일은 초콜릿과 커피 향, 김유신 페일에일은 캐러멜 향이 더해진 깔끔한 맛이니 취향에 맞게 골라 마시면 된다.

대표 메뉴 애플피자와 크림스푼파스타,
선덕여왕 에일 세트 3만5천900원.
주소 경주시 포석로 1071 문의 054-741-8200

고도커피바
오픈 3개월 차 고도커피바. 대릉원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이 한옥 카페는 작년 11월, 서울에서 처음 경주에 여행 온 정용 대표가 이나영, 박진우 두 친구와 함께 오픈한 카페다.
직접 제작한 원목 테이블과 바 형식의 의자에 앉아 한복 입고 담장 옆을 지나가는 관광객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일주일에 한 번씩 컨디션을 바꿔가며 판매한다. 여름에는 청량감 있게, 겨울에는 조금 무겁게 계절에 맞는 세팅으로 커피를 제공할 예정이다.

고도커피바의 로고에는 한글 고도와 천마총의 하늘천이 담겨 있다.

대표 메뉴 아메리카노·플랫화이트
각각 4천500원.
주소 경주시 손효자길 22
문의 054-777-7776
인스타그램 @kodocoffee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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