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라이프, 행복한 삶을 위해 탄생한 작은 정원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서은영은 요즘 공간 기획과 브랜드 컨설팅 일을 하는 기획자의 길을 걷고 있다. 논현동에 문을 연 ‘모스가든’은 그래픽 제작사 ‘꽃피는 봄이 오면’ 김혜진 디자이너와 서은영이 좋은 음식과 물건, 삶에 대해 나눈 고민이 담긴 복합 공간이다.

아름다움은 행복의 예감이라고 했던가.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리한 풀과 나무, 빛이 환히 들어오는 모스가든의 테라스를 마주하고 나니 알랭 드 보통의 문장처럼 미소가 살며시 피어오른다. 모스가든 안에는 설탕과 밀가루,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맛 좋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레스토랑 ‘굿사마리안레시피’와 마찬가지로 농장에서 재배한 건강한 재료로 음료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판매하는 카페 ‘세인트루크마리’가 있다. 맛있고 예쁜 음식을 맛본 뒤에는 파인애플 나무, 청송에서 키운 사과, 고운 색감의 둥근 접시 등을 구경하면 좋다. 물건과 식료품, 농산물 판매를 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을 그려낸 이는 패션 디자이너, 잡지 에디터, 패션 스타일리스트에서 공간 기획자, 브랜드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서은영 대표다. 패션모델 장윤주와 함께 쓴 《스타일 북》 등 취향에 대한 책을 다섯 권이나 낸 작가이기도 한 그녀가 이번에는 ‘꽃피는 봄이 오면’ 김혜진 디자이너와 함께 일을 벌인 것이다. 모스가든은 한눈에 봐도 근사한 공간이지만, 슬로라이프와 행복한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그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느린 산책을 권한다.

스타일리스트가 연 레스토랑은 화려하고 힙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4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고심하던 중에 패션에만 한정하지 않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만들고 그걸 많은 사람과 같이 즐기고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꽃피는 봄이 오면 김혜진 대표와 함께 이곳을 연 계기가 있나요?
어느 날 우연히 김혜진 대표가 만든 요리를 봤어요. 아들에게 주려고 만든 건강한 요리였는데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데다 맛까지 좋았어요. 이런 요리를 소개하면 어떨까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식 공간을 마련해 보자고 시작한 일이 구체화되면서 복합적인 공간으로 발전했죠.

시그너처 메뉴인 베트남식 그릴 치킨과 페스카토레 쌀국수, 산마르코 치킨 요리.

두 분이 함께 공간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김혜진 대표와는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포스터 촬영 때 처음 만났으니 어느새 15년 정도 된 사이인데, 언제나 한결같이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에요.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멋있고 예뻐도 곧 사라지는 브랜드나 사람이 많았거든요. 재능이 있어도 지속성이 관건인데 말이죠. 김혜진 대표와 모스가든을 준비하면서 서로 좋은 시너지를 주고받았어요. 제가 이름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또 다른 아이디어를 더해 로고를 만들어주는 식으로 일이 금방 진행돼 8개월 만에 문을 열었죠. 다른 사람과 했으면 적어도 1년 반은 걸렸을 일인데, 선수들이 모인 덕분이라고 자주 이야기해요.

감각 좋은 두 분의 협업이라서인지 로고 하나부터 눈길을 사로잡네요.
모스가든의 로고에는 코끼리가 그려져 있어요. 초식동물이지만 위엄이 있고 많은 것을 품는 모습이 이 공간과 닮았죠. 레스토랑인 굿사마리안레시피의 경우에는 너무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캘리그래피 로고를 사용해요. 친근하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질 수 있게요. 카페 세인트루크마리는 건강을 생각하는 곳이지만 클래식한 느낌의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싶었어요. 디자인은 김혜진 대표의 영역이긴 한데 저희 모두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에요.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사람에 대한 것이고, 브랜딩에서는 디자인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제품을 먹어보거나 써보지 않아도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포장이나 로고 등의 디자인이니까요.

레스토랑, 카페, 꽃집과 리빙숍에 더해 농산물도 판매해요.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저희는 이곳을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먹을 것인지, 즐길 것인지를 기획해서 보여주는 동시에 재능 있는 이들에게 플랫폼 역할을 하는 거죠. 모스가든이라는 공간에 레스토랑 굿사마리안레시피와 카페 세인트루크마리가 있지만, 두 장소는 장사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플랫폼이 되기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하는 곳이에요. 진짜 이야기는 이곳에서 소개하는 물건과 사람에 담겨 있죠. 모스가든은 ‘각각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던 사람들의 집합체예요.

세상에 말을 거는 공간이네요.
그래서 쌀이며 채소며 이곳에서 소개하는 물건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요. 메뉴에 있는 둥근마 수프와 선식은 화순에 있는 농장에서 아버지와 딸이 함께 만들어요. 연예인 지망생이었던 딸이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하다가 스스로 안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대요. 그러고 나서 그녀는 현명하게도 아버지에게 돌아가 아버지가 재배한 둥근마를 선식으로 만들고 젊은 감각에 맞게 패키징을 디자인하고 함께 비즈니스를 하죠. 또 굿사마리안레시피의 메인 셰프님도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던 분이 아니라 저와 가깝게 지내던 가방 디자이너셨어요.

가든 뷰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석. 햇빛이 쏟아지는 시간에 명당이 된다.

전직 디자이너가 메인 셰프인 레스토랑이라니, 모험처럼 들려요.
처음엔 다들 불안해했어요.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과연 음식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했죠. 그런데 저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도 F&B를 해온 사람이 아닌데도 F&B 컨설팅을 하고 방송, 영화 같은 것도 기획하고 싶거든요. 아무리 오래 배웠다고 해도 즐겁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건 별로 가치가 없는 것 같아요. 배은영 셰프는 오며 가며 만날 때마다 저에게 ‘은영아 이것 좀 먹어봐’ 하며 요리를 권했어요. 그때마다 저는 언젠가 기회가 오면 함께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메인 셰프가 되어달라고 몇 개월을 설득했죠.

굿사마리안레시피라는 레스토랑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법률 용어에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있잖아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같은 동족이 모두 외면할 때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는 성경 속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인데, 미국 출장 중에 우연히 굿사마리안병원을 봤어요. 그곳이 어떤 병원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나를 참 잘 보살펴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굿사마리안레시피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됐죠. 그리고 식재료가 비싸니 예산에 맞춰 만들면서 ‘수지가 안 맞으니까 이 정도만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음식을 만들겠다’는 의미도 있고요.

가든 한쪽에 자리한 쉼터. 작은 공간도 멋스럽다.

굿사마리안레시피에서는 어떤 음식을 맛볼 수 있나요?
밀가루, 설탕, 조미료를 쓰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요. 요리에는 밀가루를 넣지 않고 만든 피타 브레드를 함께 내고, 디저트인 아이스크림도 원유와 꿀만 사용해서 만들죠. 그래서 항암 치료를 받는 분들도 많이 오세요. 메인 요리는 닭 요리와 새우, 조개 등의 해산물 요리인데 페스카토레 쌀국수나 산마르코 치킨 같은 메뉴 이름에 아이디어의 원천을 그대로 담았어요. 산마르코에 있는 유명한 크림치즈 파스타에서 영감을 얻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직접 레시피를 짜거나 음식을 만들지는 않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소스예요. 먹는 소스가 아니라 원천이 되는 것과 저의 경험이 만나 플러스 알파가 되는 거죠.

굿사마리안레시피의 주방을 책임지는 이들과 배은영 셰프.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좋은 안목을 가꾸는 비결인가요?
네, 연습해봐야 해요. 계속 해보는 거예요. 입어도 보고 걸쳐도 보고 먹어도 봐요.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야지, 시간이 생기면 운동해야지 하며 돈과 시간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하지만 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시간이 없으면 없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거든요. 그러니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하세요.

앞으로 모스가든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집에서도 혼자 해 먹을 수 있는 식품이나 소스 같은 제품을 만들 수도 있고 온라인 비즈니스, F&B 컨설팅, 협업으로 재미있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모스가든은 혼자 다 하지 않아도 되는 상생의 틀을 짜놓은 곳이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경험의 시대잖아요. 옛날에 저희 할머니는 기술 하나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먹고살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기술만큼 중요한 건 경험이죠. 내가 기술이 없어도 그 경험치를 살려서 사람을 구성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이곳에 그런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좋은 시너지가 일어나면 좋겠어요.

모스가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은영.

옛날에 저희 할머니는 기술 하나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먹고살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기술만큼 중요한 건 경험이죠.
내가 기술이 없어도 그 경험치를 살려서 사람을 구성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이곳에 그런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좋은 시너지가 일어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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