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 틈이 없는 조정치

조정치가 바쁘다. 조용한 목소리, 속삭이는 음악, 느릿한 몸짓. 한없이 여유로울 것만 같았던 이 남자, 뮤지션으로 남편으로 아빠로 그리고 연기자로 몇 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역시 아티스트가 가장 빛날 때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그것을 발표할 때가 아닐까. 콘서트장에서 자신을 보기 위해 모인 팬들에게 “누구세요? 다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천연덕스럽게 묻는 그에게 우리도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오랜만에 음반도 내고 콘서트도 했어요. 선우정아, 사비나 앤 드론즈 등 많은 뮤지션이 참여했고요.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찾아주셨어요. 음반 반응도 좋은 편이고요. 여러 뮤지션이 함께해줘서 든든했죠. 심적인 부담이 크긴 했는데, 노래를 만드는 처지에서는 노래하는 사람이 불러주는 게 좋아요. 노래 잘 못하는 제가 노래를 하게 된 것도, 제가 만든 곡을 불러줄 사람이 없어서니까요.

이번 음반은 사랑의 시작에서 끝을 한 번에 보여주는 것 같아요.
‘연애의 맛’, ‘사랑가’, ‘헤어져서 좋은 일’, ‘이혼’ 같은 제목만 봐도 그렇고요. 그런데 모두 여자 가수가 불렀어요. 같이 작업하고 싶은 남자 가수는 없나요?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주제로 기획하지는 않았어요. 노래 하나하나를 만들어서 모으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제게는 토막 난 음악들이지만, 생활이 묻어 있으니 그렇게 봐주실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남자 가수로는 김필 씨를 눈여겨보고 있어요. 목소리도 매혹적이고, 오가다 뵈면 느낌도 좋고요.

‘사랑가’ 는 정인 씨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나요? 노랫말도 사랑스럽던데요.
곡을 먼저 쓰고 노랫말을 입혔으니 그건 아니고요. 이 노래는 키가 아주 어려워요. 남자가 부르기도 여자가 부르기도 애매하죠. 연주곡 느낌으로 보면 되는데, 그러다 보니 누구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럴 때 싫어도 참고 해줄 사람이 아내밖에 더 있나요. 마지막에 녹음한 곡이에요.

두 분 다 음악 작업을 하잖아요. 일상과 작업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나요? 둘 다 예민할 때도 있을 것 같고요.
부부 생활이 어느 한쪽의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니죠. 다행히 저희는 잘 맞는 편이에요. 둘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고, 항상 재밌어요. 둘 다 극도로 예민한 인간이었으면 이미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을 텐데, 저에 비해 아내는 둥글둥글하죠. 제가 삐딱해도 아우르고 품어준다고 해야 할까요? 부정적인 면이 있는 제가 하는 대로 아내가 받아쳤다면 지금 우린 같이 있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저 역시 아이가 생기고 달라진 부분이 있고요. 더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죠.

은이는 오롯이 둘이 돌본다고요.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요.
한동안 좀비처럼 살았죠. 저희 부모님은 이미 조카 둘을 돌보고 있고, 장모님은 대전에 사셔서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아이랑 있는 시간이 귀해요. 이제 겨우 한 살인데 남의 손에 맡긴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기도 했고요. 누군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겠어요. 저희는 여건이 되어서 다행이죠. 하지만 각자의 일에 좀 더 몰입하려면 결국 도움을 받아야겠죠. 체력을 남겨놔야 본업을 할 수 있으니 에너지를 잘 분배해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아기가 주는 에너지는 최고지만, 나이가 있어서인지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아무래도 좀 더 활동이 많은 편인데, 제가 밖에 나오면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 되니 미안하죠. 정인도 자기 작업을 해야 하니까요.

은이는 어떤 아이고, 어떤 아이로 자라면 좋을까요? 온종일 붙어서 돌보다 보면 본인의 어린 시절도 떠오를 것 같아요.
일단 성향은 차분하고 조용해요. 우리 부부를 닮았어요. 극성스럽지는 않지만 고집쟁이 같은 면? 그런데 소심하고 예민하게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소심했거든요. 어린 남자애들은 다 그렇겠지만, 다치고 집에 오면 혼나잖아요. 그럼 말을 잘 못하고 숨었어요. 자기 안에 감추고 끙끙대는 타입이랄까요. 은이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떤 말이라도 다 들어주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엄마 역할 역시 중요하잖아요. 옆에서 볼 때 정인 씨는 어떤 엄마인가요?
그렇죠. 엄마의 말이나 행동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어릴 때 구구단을 5단까지 외웠다고 엄마한테 달려가 자랑했는데, 칭찬해주지 않고 왜 거기까지밖에 못 외웠냐고 하셨던 게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돌아보면 별일도 아닌데, 그때는 그런 게 크게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구구단을 때려치운 기억이…. 그래서인지 저는 좀 세심하게 아이를 살피는 경향이 있는데, 아내는 좀 달라요. 시원시원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느낌이 들어요. 저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엄마가 되면 성향이 바뀌기도 하지만, 자신의 본래 성향은 그대로 발현되잖아요. 아내는 자신만의 삶의 철학이 있고, 그걸 실천하는 편이에요. 은이에게도 계속 그렇게 할 것 같아요. 아이를 더 키워봐야 알겠지만, 정말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믿어요.

그렇다면 뮤지션으로의 정인 씨는 어떤가요?
고군분투 시기죠. 아내는 요즘 거의 음악을 내려놓고 있어요. 모든 엄마가 그렇듯이요. 아이가 엄마에게 애착이 심한 때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치열하게 음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데뷔한 지 꽤 됐고, 뮤지션으로서 생명력을 유지해나가는 데 대한 고민을 늘 하죠. 자기 곡도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자기 곡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거든요. 누구나 그렇듯 완성도 있는 작품을 내는 게 일차적 목표죠.

우리 부부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 살려고요.
부부, 가족이 서로 약정된 건 아니잖아요.

옆에서 도움을 좀 주나요?
사실 전에 정인 씨가 만든 곡이 있어요. ‘가을남자’라고. 그런데 당시에 들려줬을 때는 이게 좋은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제가 감이 없었어요. 너무 가까워서 더 날카롭게 들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편안한 가운데 다시 들어보니 굉장히 좋더라고요. 아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요. 노랫말 쓰는 재능도 뛰어나고요. 물론 음악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이 들어주어야 세상에서 빛나지만, 그 정도의 완성도면 앞으로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가 쓴 곡이 발표되길 바라며 옆에서 지원사격을 좀 하고 있어요. 결과는 아직이지만요.

은이도 음악적 재능이 있겠죠.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죠. 물론 다른 아이들보다는 음악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뭘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저 아이들은 내버려두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왜 심심한 아이가 가장 창의적으로 자란다고 하잖아요. 심심해서 무언가 찾았던 시간들이 굉장히 소중해요. 저는 공부 안 하는 아이였고,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거의 없어요. 어려서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책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으로 채워져 있어요. 지금도 그림 그리고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편이죠. 어려서 하도 많이 그려서요.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컴퓨터에 빠져서 지냈어요. 필요해서 파고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도 잘하게 됐죠. 공부만 안 시키면 하나를 깊이 들어가서 스스로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공부했으면 죽도 밥도 안 됐을걸요. 공부 안 하고 그 시간에 딴짓하다가 또 거기서 가지를 치며 성장한 것 같아요.

그럼 기타는 언제 시작했나요? 역시 심심해서 시작했나요?
네. 심심해서 기타를 잡았던 것 같아요. 중2 때였나? 너무 컴퓨터만 하니까 아버지가 치우셨어요. 그래서 뭐 하지 했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기타를 쳤고, 다들 그렇게 놀았거든요. 마침 집에 오래된 기타가 있는 거예요. 나도 그걸 만지작거렸고, 재밌더라고요. 자꾸 잘하고 싶어졌고요. 이정선 기타교실도 가고, 연습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갈 때까지 기타를 치기도 했죠. 점점 빠져서 낙원상가에 가서 일렉트릭 기타도 사고 그랬어요. 뭐가 되겠다는 생각이 그때 있었을까요? 그냥 재밌어서 놀다 보니 점점 빠져든 거예요. 저는 지금도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냥 좋아하는 일을 제가 만족할 수 있게 해보는 거죠.

연기도 그런 맥락으로 하게 되었나요?
그런 셈이에요. 엉뚱하게 시작하게 됐죠. 곡을 쓸 때도 전에 했던 방법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거든요. 연기를 하면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 건 아니지만, 어떤 배움이 있어요. 드라마에 참여해서 그 과정을 보면 뭔가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는 게 대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모양새는 거의 비슷해요. 저도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처지에서 배우는 게 있어요.

이번 앨범에 ‘이혼’이라는 곡도 수록했잖아요. 선우정아 씨가 부른 곡이요. 제목에 비해서 노래가 담담하고 예뻐요.
헤어짐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보고 싶었어요. 제목이 센 거죠. 주변의 이혼한 분들을 보면 상처가 참 크더라고요. 진저리 나는 상황을 거쳐야 이혼을 하는 거니 그렇죠. 근데 연애할 때도 그렇게 헤어지잖아요. 이별이라는 게 끝을 보는 거니까요. 다만 이혼은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또 다른 제도로 넘어가는 거라서 더 복잡한데, 저는 그냥 헤어질 사람은 빨리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우리 부부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지금은 잘 맞지만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 살려고요. 물론 긴장 풀고 늘어지고 그런 부분이야 있지만, 말로라도 마음으로라도 노력하고 긴장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 노래 만들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부부, 가족이 서로 약정된 건 아니잖아요. 결혼해버렸으니까 ‘아, 이제 다 상관없어’ 하면 예의가 아니죠.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요즘 사회 분위기에 대해 느끼는 것도 다를 것 같은데요.
완전 아수라장이죠. 그런데 이런 변화를 통해서 세상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믿고 싶어요. 전에는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약간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는 무조건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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