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이러는 거에요?

곶감 쌌던 보자기를 안감으로 사용한 디자이너, 대놓고 카메라를 거부하는 듯한 광고, 사람 머리와 공룡을 들고
기괴한 수술실에서 캣워킹을 하는 모델들. 왜 이러는 거예요?

지난 2월 영국 런던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한글 가방’이 큰 화제를 모았다. 영국 패션 브랜드 프린(Preen by Thornton Bregazzi)의 2018 F/W 쇼에 ‘긴장하라’는 메시지를 새긴 빅 클러치가 등장한 것. 그뿐 아니라 제주 해녀들이 자맥질할 때 사용하는 태왁을 꼭 닮은 가방도 선보였다. 한 인터뷰에서 제주 해녀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는 프린의 부부 디자이너 저스틴 손튼, 테아 브레가지는 제주 해녀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힌트를 얻어 이번 컬렉션을 준비했다. 2017년 영국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제주 해녀를 소재로 한 <해녀: 바다의 여인(Haenyeo: Women of the sea)>을 인상 깊게 본 덕분이라고 한다. “해녀들이 사용하는 물건에서 착안해 모던한 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머리를 쫀쫀하게 감싸는 모자, 실루엣을 드러내는 펜슬 스커트, 해초 줄기를 닮은 슈즈 등으로 강인한 제주 해녀의 모습에 우리의 감성을 더하고 싶었다.” 이들은 제주 해녀의 강인함과 자연 친화적 생활 방식에서 에코페미니즘 정신을 느꼈다고 한다. 하기야 제주 해녀는 과연 아마존의 여전사 못지않은 아시아의 여전사라고 할 만하다. 남자를 제치고 바다에 뛰어들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니까.

사실 이보다 앞서 우리를 놀라게 한 디자이너는 따로 있다. 바로 라프 시몬스. 그는 작년에 선보인 2018 S/S 컬렉션에서 ‘자연이 빚은 명품, 상주곶감’이라고 적힌 보자기를 사용한 모자를 모델들에게 씌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농부들을 연상시키는 선캡과 장화도 등장시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이스트팩과 협업해 한글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했다. 백팩 내부에 ‘자연이 빚은 상주곶감’, ‘수잔음료영농조합’이라 적힌 보자기를 활용한 것. 또한 ‘아메리카’라고 새긴 화이트 티셔츠를 합리적 가격대에 공개해 국내 팬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라프 시몬스가 어떤 계기로 한글에 꽂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일본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도 같은 시즌에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새긴 넥타이를 선보인 것을 보면 해외 디자이너들이 한글을 캘리그래피로서의 가치를 의미있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예사롭지 않은 패션계의 흐름은 거리 위의 셀러브리티를 파파라치한 듯한 연출법으로 화제를 모은 발렌시아가 2018 S/S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캠페인이 발렌시아가 공식 SNS 계정에 공개되며 거리 위의 셀러브리티를 즉흥적으로 촬영했는지, 의도가 있는 연출이었는지 패션 피플 사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알고 보니 발렌시아가의 수장 뎀나 바잘리아가 실제 파파라치 포토그래퍼와 패션 모델 스텔라 테넌트, 케나 라우, 마르지타 니시넨, 엘리자 더글라스 등을 기용해 연출한 장면이었다(이 쟁쟁한 모델을 섭외해놓고 정작 얼굴은 하나도 안 보인다니!). 캠페인을 접한 이들의 반응은 가지각색. 현실과 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패션 씬을 함축했다고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급변하는 패션 트렌드와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 소비 플랫폼을 비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심도 있게 해석하는 이도 있다.

한편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쇼킹한 비주얼로 찾아온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2018 F/W 구찌 컬렉션은 파격적인 런웨이 연출로 단연 화제였다. 올해 초 밀라노에서 진행한 컬렉션 무대 중앙에는 으스스한 수술대가 설치돼 호러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키며 긴장감을 자아냈고, 모델들은 한결같이 핏기 없는 얼굴로 워킹을 했다. 하지만 관람객들을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다. 런웨이 위 모델의 허리 부근, 가방이 있어야 할 자리에 모델의 얼굴과 똑같은 물체(?)가 있었던 것.

추후에 이는 3D로 프린팅한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밝혀졌지만 꺼림칙한 여운은 길었다. 그런가 하면 베이비 드래곤을 품에 안고 런웨이를 걷는 모델도 등장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작가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불리우는 이 책은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가치관이 수용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담은 내용의 에세이다. 컬렉션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머릿속 한 켠에 자리한 복잡한 생각들이 마치 수술실에서 집도하는 의사들의 고민을 닮은 것 같아 이런 무대 연출을 한 것이라 밝혔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 메이오병원의 실제 수술실을 그대로 구현했다는 설도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정신세계를 늘어놓은 초현실적 컬렉션마저도 업계를 호령하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현을 했기 때문에 호평을 받는 게 아닐까. 이것이 패션이냐, 예술이냐, 혹은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이 옳으냐 등 분분한 의견과 화두를 촉발했다는 것만으로도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막강한 패션 파워를 증명한다. 이는 컬렉션 직후 SNS상에 숱하게 양산된 패러디만 봐도 알 수 있다. 직접 확인하고 싶은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guccichallenge를 검색해볼 것. 단, 컬렉션보다 더 충격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심약자들은 주의해서 보라!

Tim walker

2018 S/S 캠페인은 사진가 팀 워커가 1999년에 촬영한 <보그 이탈리아>의 ‘Don’t shoot’ 화보를 연상시킨다. 거리 위에서 모델이 생수병이나 가방, 우산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황급히 자리를 뜨고는 모습을 파파라치 식으로 촬영한 것.

BALENCIAGA

프랑스 베스트 이미지 에이전시(@bestimage_agency) 프랑스 파파라치 포토그래퍼가 촬영한 발렌시아가 광고. ‘빌(ville)’ 백을 돋보이게 한 장치다.

GUCCI

구찌 모델의 얼굴과 똑같은 머리 모형들은 로마의 특수 효과 회사 마키나리움(Makinarium)이
3개월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닮은꼴 고전 명화도 있으니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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