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아빠의 육아일기

오늘도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면서 아내를 기다린다.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이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부모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미숙하기만 한 날들. 매일 후회하고, 매일 배우면서 새롭게 느낀다. 윤슬이가 하루하루
크면서 우리도 크고 있다. 부모이자 부부로서 함께한 뼘씩 성장하고 있다.

아나운서 아빠의 육아일기
김한별

9년 차 KBS 아나운서이자 윤슬이 아빠.
자칭 딸바보이자 아내바보인 그는 10개월간 육아휴직을 내고 라테파파로 살았다. 브런치에 그가 적은 육아일기는 10만 뷰를 기록하며 <라테파파>라는 책으로 묶였다.

아나운서보다 아빠라는 역할이 더 커 보인다.
부정할 수 없다. 가정이 1위다. 원래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던 사람이다. 연애 시절에 아내와 프랑스로 여행을 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컸다. 사는 것도 여행과 비슷하다는데, 이 친구라면 좋은 파트너가 되겠다 싶었다. 아내가 임신 8개월 즈음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례적으로 CT를 찍었는데, 병원에서 뇌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뇌에 종양 같은 것이 있는 듯하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스쳤다. 성공이나 일은 중요하지 않았고 가족이란 두 글자와 ‘태어날 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전까진 결혼을 했는데도 행복하지 않았다. 일에서 행복을 찾던 사람이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게 되니까 너무 혼란스러웠던 거다. 남편으로도 미숙한데 아빠라는 타이틀을 얻는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병명은 혈관이 뭉치는 해면상혈관종이었는데, 다행히도 수술이나 약 대신 스트레스, 술을 멀리해 크기가 커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 이후로 삶의 방향이 간결하고 명확해졌다. 어떠한 상황에도 가족을 맨 앞에 두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육아휴직도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갓난아이를 둔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생방송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기 15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와 엄마를 분리하는데, 우리 부부는 모자동실에서 아이를 직접 돌보는 쪽을 선택했다. 부모가 된 첫날, 아이가 세상에 나온 첫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셋이 밤을 지새웠다. 안는 법, 설탕물을 먹이고 기저귀 가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미숙한 2박 3일을 보냈다. 부모가 되는 법을 처음부터 같이 배우니까 엄마, 아빠의 일을 나누지 않게 되었다. 아나운서실에서 육아휴직을 쓴 건 내가 처음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최동석 선배가 들어갔다. 남자 아나운서 중에는 우리 둘밖에 없다. 주위에 육아휴직을 쓴 기자, PD 선배들한테 물어봤더니 다들 아이가 예닐곱 살 때 썼다고 했다. 만으로 여덟 살까지 쓸 수 있으니 거의 마지막에 쓰는 거다. 선배들이 입을 모아 ‘보상심리’라는 단어를 썼다. 그동안 못해준 걸 보상해주는 거라고. 아이에게 미안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육아휴직의 적기라고 생각했다.

육아일기는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나?
나는 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무언가에 그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육아휴직을 하고 잔잔한 행복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너무 잔잔해서 불안했다. 아내가 출근하고 혼자 아이를 돌볼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 글감을 던지고 머릿속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워낙 기록하는 걸 좋아했다. 나는 아이를 업어서 재우는데, 등에서 아이가 한 시간 정도 잔다. 그럼 그 시간 동안 서서 블루투스 키보드로 글을 썼다. 그 글을 카카오 브런치와 블로그에 올렸고, 글들이 모여서 <라테파파>가 되었다.

라테파파가 되고 포기한 일도 많을 것 같다.
술자리가 많이 줄었다. 결혼 전엔 술을 정말 많이 마셨다. 치열하게 살다가 유일하게 나를 놓는 순간이었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육아휴직을 하고 오랜만에 술을 한잔했는데, 예전보다 적게 먹었는데도 취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부분부분 기억이 없었다. 전날에는 아내가 아이를 돌봤으니 괜찮았지만, 나 혼자 목도 못 가누는 아이와 있는 상상을 하니 무서웠다. 이후로는 “집에서 아이 돌봐야 해요”라고 거절하기 시작했다. 모두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다들 내 거절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스스로가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맞다. 한 선배가 내게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라고 말해줬다. 그 말처럼 나를 키우는 과정이라고 느낀다.

아내도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읽어보나?
읽어본다. ‘팩트 체커’다. 거짓말을 하거나 이야기를 꾸며내진 않는데, 작은 부분을 부풀려 쓰는 경우가 있다. 아내는 이야기의 전말을 다 알고 있으니까 “이번엔 MSG가 너무 많은데” 하고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 아내는 가장 정확한 독자다. 책으로 묶을 때 아내가 지적한 원고들은 더 꼼꼼히 탈고했다.

3개월 전 복직했다고 들었다. 일과는 어떤가?
KBS 파업이 끝나면서 복직했다. 아침 근무를 자원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 반에 출근한다. 공식적인 퇴근은 오후 2시다. 그럼 집에 돌아와서 아내,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이가 36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이런 일과를 유지하고 싶다. 아이의 정서, 교육 때문도 있지만 그때가 내 나이도 마흔이 넘어가는 기점이다. 마흔이 되면 뭔가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다.

어떤 일에 도전하고 싶은 건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참 재밌다. 그게 말, 글, 영상, 그 무엇이든 풀어내는 방식만 다를 뿐 큰 줄기는 같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요새는 콘텐츠를 만든다고 끝나지 않는다.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책을 내고 몇 번 북토크를 했는데 의외로 아빠들이 많이 왔다. 아빠들의 육아 참여율이 높아져가는데도 맘 카페는 활성화되어 있는 반면 아빠들을 위한 커뮤니티는 없다. <라테파파>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콘텐츠를 쌓아서 아빠들과 많이 소통하고 싶다.

윤슬이에게 또 아내에게 어떤 아빠, 남편이고 싶나?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릴 줄 아는 아빠고 싶다. 두 번째는 남자친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아빠고 싶다. 나는 그게 아빠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직장, 진로 이야기는 해도 남자친구 이야기는 참 하기 어려우니까. 아내에겐 계속 떨리는 남편이면 좋겠다. 나한테 아이는 1번이고, 0번은 아내다. 그래서 아이에게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듯 너도 너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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