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아이 장난감도, 젠더 프리!

젠더 이슈가 뜨거운 시대에도 여자아이 장난감, 남자아이 장난감 구별하고 있지 않은가!

전 레고를 좋아하지만
남자 인형이 여자 인형보다 많은 게 불만이에요.
여자 인형은 집에 있거나, 해변에 가거나, 쇼핑을 할 뿐 마땅한 직업이 없어요.
더 많은 여자 레고 인형이 모험을 떠나고 재미있는 일을 하게 해주세요!

마트 장난감 코너에 들어서면 이분법 세계를 마주한다. 분홍색과 파란색, 공주 인형과 로봇, 소꿉놀이 세트와 모형 자동차. 너무 당연하게 여기던 이 상황이 사실 ‘편견’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한 영상을 보고 알게 됐다. 바로 지난해 8월 BBC 유튜브 계정에 ‘Girl Toys vs Boy Toys’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실험 영상. 내용은 일반 성인 남녀에게 다양한 종류의 장난감으로 아이들과 놀아보라는 간단한 미션을 주고 살펴본 상황이다. 참가자와 아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자 반전이 시작된다. 참가자들이 짐작했던 아이들의 성별과 반대였던 것. 대부분의 참가자가 은연중 여자아이라 생각한 남자아이에겐 아기 인형을 주고, 실제 여자아이에게는 로봇을 권했다. “저도 놀랐어요. 스스로 꽤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아이라 생각하니 자연스레 분홍 인형을 집게 되더라고요.” 이 실험은 우리가 일상에서 여자아이 장난감, 남자아이 장난감을 확연히 구분해 생각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장난감을 파는 회사와 사 주는 어른 모두가 ‘성별’이라는 틀 안에 아이의 ‘놀이 영역’을 일정 부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편견의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님이 어린 시절 사 주던 장난감과 성인이 된 내가 아이를 위해 구매하는 장난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의 콩순이 인형이나 80~90년대 미미 인형이 하는 역할은 거의 같다. 즉, 요리를 하거나 아기를 돌보는 일이 전부다. 최근 육아 커뮤니티와 SNS에서 애니메이션 <뽀로로와 친구들>을 보여주거나 장난감을 사 주기 두렵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뽀로로와 친구들>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행동에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분홍색을 좋아하는 소녀로 소개되는 여자 캐릭터 루피는 항상 요리를 도맡고, 의자가 고장 나면 직접 고치기보다 남자 캐릭터로 보이는 포비에게 부탁한다. 이에 대한 불만이 빗발치자 ‘뽀로로’를 만든 아이코닉스 최종일 대표는 남자 캐릭터들과 루피가 함께 요리하는 모습을 추가로 제작하기도 했다. <로보카 폴리>와 <꼬마버스 타요>도 상황은 마찬가지. 남자 캐릭터들이 극 중 사건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반면, 여자 캐릭터는 상냥하거나 소심한 성격이다. ‘젠더 스테레오타입’, 성 고정관념은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보고 놀고 느끼며 생겨난다. 유아기에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냐에 따라 어떤 성 관념을 지니게 될지 정해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밝혀진 바 있다. 영국 런던컬리지가 여러 문화권의 유아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한 장난감을 3개월 정도 사용하면 선호도가 생겨난다고 한다. 또한 9개월이 되면 부모가 선택해 사 주는 장난감의 영향으로 성별에 따라 특정 장난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그 선호도가 32개월이 되면 확고하게 굳어진다. 한마디로 로봇만 갖고 노는 아이들은 계속 로봇만, 바비 인형만 갖고 노는 아이들은 계속 바비 인형만 선호하게 된다는 얘기다.

성별에 따라 비슷한 종류의 장난감만 권하는 행동에 따른 진짜 문제는 아이들이 꿈을 결정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취향과 기호를 획일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차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럽연합 성평등 기구인 EIGE의 자료에 따르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따라 선호 교과목이 달라지고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어릴 때 인형과 로봇을 가지고 놀았던 추억에 그치지 않고 여자아이들은 인문학·가정학·미술을 당연히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자아이들은 자연스레 과학과 수학에 흥미를 갖게 돼요. 직업을 선택할 때쯤엔 여자아이들이 교사나 사회복지사를 선택하는 비중이 높고, 남자아이들은 이공계 직종을 고르게 되죠.” 기관 담당자 버지니아 랑백의 말이다.

여자아이들은 온순한 여성성을 필요로 하는 놀이만 해서 힘들고, 남자아이들은 문제 해결이나 활동적인 남성성을 나타내는 놀이만 해 힘들다. 스웨덴에서 청소년의 성평등 교육 교재로 쓰이기도 하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저자인 나이지리아 출신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남자, 여자로 나눠 기르는 방식 자체가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특히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강요된 남성성’ 때문에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취약한 자아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 완구 회사 시스템U와 북유럽 기반의 완구 회사 톱토이는 이런 현실에 반기를 들고 여자아이들은 드릴 공구를, 남자아이들은 유모차 인형 세트를 가지고 노는 ‘젠더프리’ 캠페인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남아용, 여아용을 명백히 구분 짓는 현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4년 전 미국에 살던 일곱 살배기 샬롯은 덴마크 브릭 회사 레고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편지를 보내 장난감업계를 뒤흔들었다. “전 레고를 좋아하지만 남자 인형이 여자 인형보다 많은 게 불만이에요. 여자 인형은 집에 있거나, 해변에 가거나, 쇼핑을 할 뿐 마땅한 직업이 없어요. 더 많은 여자 레고 인형이 모험을 떠나고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편지 내용이 알려지자 다양한 직업의 여자 레고 인형을 바라는 소비자들의 요청이 쇄도했고, 이후 레고는 여성 과학자, 탐험가 세트 등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 과학자 시리즈는 입고와 동시에 매진될 만큼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는 영국 시민단체인 ‘렛 토이스 비 토이스(Let toys be toys)’의 역할도 컸다. 장난감은 장난감인 채로 그냥 두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단체명대로 이들은 매년 장난감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여아·남아 유형을 비교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성차별적 콘텐츠가 없는 광고를 만든다. SNS에서 ‘#Lettoys betoys’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부모가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봉제 인형을 만드는 사진이나 고고학자, 천문학자 등 다양한 직업의 인형을 만드는 ‘로티’사의 인형 사진 같은 다양한 젠더프리 캐릭터를 볼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의 대형 마트들은 장난감 코너에서 남아·여아 표기를 없애기도 했다. 이와 함께 글로벌 완구업체들의 변화도 이어진다.

마텔은 DC코믹스의 여성 영웅과 악당들을 액션 피규어로 만든 DC 슈퍼히어로 걸스를 생산했으며, 제작 과정에서 페미니즘 학자들의 조언을 반영했다. 세계적 장난감 회사 하스브로의 CEO 브라이언 골드너는 장난감 카테고리와 수익 보고서에 더는 성별로 나누어 시장을 분석하지 않기로 했는데, ‘구식’이라는 간결하지만 명쾌한 이유에서였다. 스웨덴에서 ‘성평등이 가장 잘 실현된 유치원’으로 꼽히는 니콜라이 유치원의 로타 로잘린 원장은 말한다. “동그라미를 그려 인생이라고 한다면 이 안에는 희로애락과 의식주, 다양한 색깔 등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동그라미에 선을 긋고 여성의 것과 남성의 것으로 나눕니다.

당신은 자녀에게 인생의 절반만 주고 싶나요?” 많은 스웨덴 국립 유치원의 교육 방침은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을 하지 않는 데 있다. ‘소년, 소녀’로 부르지 않고 모두를 ‘친구’라 부르며 젠더프리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자아를 형성해가는 시기에 성 중립적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자연스레 다양성을 인정하는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다시 하스브로 CEO의 말로 돌아가보자. 단지 ‘구식’이어서 성별을 구분 짓지 않는다는 말처럼 공고한 관습에 변화가 필요할 땐 때때로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집권 초기 남녀 동수로 다양한 연령대와 출신의 내각을 꾸린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2015년이니까요(Because it’s 2015)!”라고 답한 것처럼. 2018년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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