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궁금해?

두려움을 걷어내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북한에 대한 의외의 발견들.

네덜란드 포토그래퍼 에도 하르트만이 4년간 네 차례 평양에 방문해 촬영한 사진들.

피사체가 된 북한과 평양 사람들
포토그래퍼 에도 하르트만

북한은 남한 사람들에게도, 외국인에게도 미지의 나라죠.
네덜란드 사람인 제게 한국은 낯선 나라인 동시에 늘 궁금증의 대상이었어요.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냉전 시기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북한은 냉전의 여파를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북한에 대해 듣는 내용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알고 있는 건 거의 없잖아요. 미스터리한 나라죠. 사실 북한을 찍기 직전에 저는 ‘My House Lives Here’라는 이름으로 매우 개인적인 작업을 했어요. 어머니와 형, 제가 20년 전에 아버지를 피해 도망친 집을 촬영했거든요. 가구도 벽지도 모두 그대로인데 아버지만 늙어 있었죠. 그 작업으로 이름도 알려지고 광고 작업도 많이 했지만 내 인생, 내면의 세계에서 멀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오로지 새로운 곳을 찾아서 북한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한편으로는 포토그래퍼로서 공간, 장소, 풍경의 사진을 통해 이야기를 해석하는 작업을 좋아하니 주저하지 않고 떠났어요. 2014년부터 작년까지 모두 네 차례 평양을 방문했어요.

에도 하르트만.

북한을 여행할 수는 있어도 촬영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 아닌가요?
저 역시 관광 형태로 북한을 방문했어요. 북한에 도착해서도 선뜻 작업을 할 수 없었어요. 관광이 좀 길어지던 찰나에 북한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촬영 노하우를 많이 일러주었어요. 결국엔 북한 정부의 승인을 받은 중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고려스튜디오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촬영을 할 수 있었죠. 그래도 촬영을 할 때면 북한, 서양인 가이드 2명이 1~2m 간격으로 제 곁에 있었어요. 또 디지털 작업만 허용하고 작업 결과물을 수시로 확인했어요.

평양 건물의 사진을 참 많이 찍었어요.
제가 처음 북한에 대해 흥미를 드러냈을 때,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했던 건 도시의 얼굴이에요. 북한을 생각하면 모두들 추상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남한 사람들은 아닌가요? 하하. 유럽 사람들은 특히 그래요. 제가 찾아본 북한의 사진들은 마치 다른 시대의 사진처럼 보였거든요. 특히 건축물 사진에 몰두한 건 건물 하나하나 정치적 이유를 담아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학교부터 작업장까지 모든 건물이 정부의 소유이거나 정부를 위해서 운영되죠. 도시 여기저기 놓인 스피커에선 정치사상 선전 메시지가 흘러나오고요. 사람들이 매일 드나드는 건물 자체가 사회와의 단절을 어렵게 만드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공간에 머무는 한 어떠한 형태로든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니까요. 또 반대로 사람들이 그 장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네덜란드 포토그래퍼 에도 하르트만이 4년간 네 차례 평양에 방문해 촬영한 사진들.

북한 사람들도 많이 찍었죠.
하지만 북한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제가 관광객이 아닌 포토그래퍼로서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는 더욱 그렇죠. 자유롭게 웃고 떠들던 사람도 촬영을 시작하면, 제가 요구한 것 이외에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거든요. 정제되지 않은 일상의 모습을 담아내는 걸 꺼려하는 듯 보였죠. 역으로 저는 삼각대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촬영했어요. 순간을 포착하는 데에 더딜 순 있지만, 공개적으로 기록할 때 보이는 북한 사람들의 반응을 담을 수 있었거든요. 카메라나 외국인에 대한 어색함,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이런 것들 말이에요.

네덜란드 포토그래퍼 에도 하르트만이 4년간 네 차례 평양에 방문해 촬영한 사진들.

고프로 360도 카메라를 가져가서 사진을 찍기도 했죠.
다양한 스타일의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어요. 전통적인 인물 사진도 찍어보고 싶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평양을 찍어보고 싶기도 했죠. 360도 카메라로 전철역이나 광장 등을 촬영했어요. 물론 가이드의 허락 없이 몰래 한 일이지만요. 북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또 평양은 가난하고 답답하며 통제로 가득한 곳만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거든요. 아무리 북한을 여행하더라도 공식 투어 루트 이외의 지역을 가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제 사진을 통해 평양의 삶을 느끼고 상상하길 바랐어요.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로 사진전에서 상을 받고 암스테르담에서 전시도 했죠.
기쁜 일이죠. 하지만 저는 그저 관람객들이 제 사진(평양)과 친해지길 바랄 뿐이에요. 전시장 맨 꼭대기 층에 평양 지하철역을 360도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VR 안경과 헤드폰을 설치했어요.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영감을 받은 역인데, 마치 북한 사람들과 함께 출근 열차를 타는 기분이 들게 했죠. 이 공간을 체험한 관람객 중 한 분이 제게 ‘이제서야 북한 사람들이 사람처럼 보인다’고 말해줬어요.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에 2500만 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거예요. 그들은 괴물도 좀비도 아니죠. 사랑에 빠져 결혼도 하고,
오후면 하교하는 아이들을 집에 데려올 걱정도 해요.
북한에 대해 이렇게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사실 제약이 많아요. 고려스튜디오와 다음 작업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실행이 가능할지 여부도 아직 모르고요. 또 제가 다음 작업에서 평양, 그리고 평양 사람들의 어떤 면을 찾아낼지도 모르죠. 그게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져요.

연구실에서 만난 박영자 통일연구위원.

우리가 잘 모르는 북한 여성의 삶
통일연구위원 박영자

북한, 그중에서도 여성에 대해 연구하신다고요.
새터민 여성들을 만날 때면 강한 자기주장과 억척같은 생활력을 지닌 동시에 가정에서는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에 놀라곤 했어요. 이런 역설적인 태도는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죠. 북한의 여성은 ‘수령제’라는 정권과 정책, 경제활동
그 중에서도 물건을 사고파는 장마당에서 영향을 받아요.

합법적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종합 시장부터, 작은 메뚜기 시장까지 전역에서 장사를 하는 북한 여성들.

남녀가 모두 국가에 소속되어 일하지 않나요?
1970년대부터 북한의 공장 생산율이 떨어지면서부터 아내를 부양가족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근로자가 700g의 쌀을 받는다면 부양가족은 400g의 쌀을 받는 거죠. 집에서 아이도 키울 수 있으니 부양가족으로 등록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여성들이 전업주부가 됐어요. 쉽게 말해 구조조정이죠. 그러다가 1984년에 김정일이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원단 조각을 비롯해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로 생활용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내작업반’ 활동을 독려했어요. 수세미, 도마 같은 생활용품이나 옷처럼 꼭 필요하지만 배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들을 만들어 팔며 쌓은 장사 수완이, 1990년대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 시스템 붕괴와 북한의 배급이 불안정해지는 것과 맞물리면서 장마당 위주로 경제가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었죠. 재봉 기술이 뛰어나거나 사람을 모아서 물건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여성들이 만든 물건을 암시장에 팔면서 ‘돈주’라고 하는 신흥 부유층이 생겨났어요. 장마당에서 돈이 될 만한 건 다 팔아요. 밀수를 해서라도요. 랍스터도 팔 정도니까요. 단속에 걸릴 만한 건 알음알음으로 팔죠. 남한 화장품도 인기인데, 상표 떼고 방문판매식으로 몰래 팔아요. 남자들은 군대에 가 있거나 세대주로 공장 등에 소속돼 출퇴근 도장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점점 무력화되어왔죠.

여성이 ‘돈맛’을 알게 된 거네요.
맞아요. ‘돈이 있으면 출신 성분이 안 좋아도, 남편이 없어도 인정받는구나’, ‘돈이 곧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구나’ 알게 되었죠. 왜냐면 간부들한테 뇌물만 바치면 아쉬울 게 없거든요. 또 하나, 배급제에서는 내가 무엇을 입을지, 먹을지 선택할 수 없죠. 하지만 시장에서는 ‘내가 가진 돈으로 무엇을 살까?’라는 기호의 고민이 생겨요. 남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 즉 유행에 따라서 판매 물품도 바뀌어요. 이설주가 입은 옷을,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하는 밥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이렇듯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권력이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걸 소비의 정치라고도 하죠.

합법적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종합 시장부터, 작은 메뚜기 시장까지 전역에서 장사를 하는 북한 여성들.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화도 늘어났겠네요.
‘야매’로 하는 성형수술이 유행이에요. 그래서 탈북자들 얼굴이 많이 달라졌어요. 2000년대 초만 해도 어렵게 탈북해서 새터민 표가 많이 났는데, 지금은 북한이나 중국에서 성형수술을 한 사람들이 넘어오는 경우가 많아서 남한 사람들이랑 구분이 안돼요. 장마당에서 USB에 담아 파는 남한, 중국 드라마를 봐서인지 화장도 진하게 안 해요.

북한에도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있겠죠.
북한은 학제를 11년제로 운영했는데 김정은 정권이 12년으로 개편했어요. 6~7세에 국립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기 때문에 17살이면 교육을 마치죠. 그럼 남녀 구분 없이 군대에 입대(여성은 7년, 남성은 10년 복무)하거나, 돌격대(청년노동)로 국가나 건축 현장에서 2~3년 일해요. 그러고 나면 여자는 24살쯤 돼죠. 결혼 생각을 하지만 비슷한 연령대 남자가 없어요. 남자는 군복무를 마치면 27살이 넘고 사회에 자리 잡는 시간을 감안하면 결혼 연령은 더 늦어지죠. 그래서 북한의 부부들은 나이 차이가 나요. 또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낳으면 억세게 고생한다는 인식이 강해서 결혼을 미루거나 동거를 선호해요. ‘이 사회에선 희망이 없다’ 싶어서 탈북하는 여성도 많죠. 그래서 탈북자의 70% 이상이 여성이에요.

5월 6일 열린 노동당대회 준비를 위해 빗속에서 교통 안내를 하고 있는 북한 여성.

그럼 장마당에선 억척스러운 여성이 집에선 가정적인 아내가 되는 건가요?
저발전 국가에서는 특히 가정 폭력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북한도 그랬어요. 하지만 여성들이 일하면서 바빠지고 목소리가 커지니까 남자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죠. 남자들이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보는 1순위가 여자의 경제력이에요. 소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하하. 군대 다녀와서 자리도 못 잡은 남자에게 여자의 경제력은 크게 다가오죠. 대략 2005년 이전 탈북 여성들은 당연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이후에 고난의 행군을 겪고 탈북한 여성들은 그저 남자는 맞춰줘야 편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가사 노동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북한에서는 가사 노동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생겨나서 잘사는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가사 노동에 대한 가치 개념이 없어서 쌀이나 음식으로 대가를 지불하죠. 또 저발전 국가는 가사 노동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요. 고난의 행군 이후로 절약이 몸에 배어서 먹는 것도 간소하고, 살림도 많지 않으니까 가사 노동에 쓰는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아요. 국수 한 다발이면 삼시 세끼를 먹거든요. 푸성귀에 보리밥, 옥수수 등을 주식으로 해서 배급받은 간장, 된장을 먹죠.

김정숙평양제사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엘리트 사회의 사교육 붐은 북한도 비슷한가요?
북한은 생산이 적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그렇게 세지 않아요. 그 사이에서 빠릿빠릿하게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이 돈을 버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 중에 자신이 엘리트의 삶을 살 수 없거나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북한을 떠나려고 해요. 그래서 보통 중산층은 사교육을 2~3개씩 시키고, 상류층은 5~6개씩 시켜요. 좋은 대학에 가야 간부가 될 수 있으니 학교 공부는 당연하죠. 영어, 중국어는 기본, 예술 재능이 있어야 군대나 돌격대 가서 다치지 않으니깐 예체능도 시키고요. 잘사는 사람들은 거의 엄마가 아이한테 붙어서 생활해요.
또 중국으로 유학도 많이 보내요. 엘리트 자제들을 제외하고는 합법적으로 유학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행방불명 처리해서 남한이나 중국으로 보내요.

며느라기, 시월드는 북한이라고 예외가 없겠죠.
남한은 가족 이기주의가 굉장히 강하잖아요. 북한에서 가족은 국가의 세포예요. 국가는 어버이 수령과 어머니 당 아래의 대가족이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의 삶에 크게 관여하는 문화가 없어요. 부모가 자식을 독점하려 들지 않죠. 또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같은 동네에 살지 않으면 부딪힐 일이 거의 없어요. 일요일이 없는 북한에서는 설날, 김일성·김정일 탄생일, 국가 탄생일 정도 쉬어요. 어디 이동을 하려면 인민반장부터 당에서까지 도장을 받아야 하니까 가족 간의 교류가 많지 않죠. 하지만 국가의 개입이 약해지고 시장경제가 퍼져나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대표적으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탁아소가 줄어드는 탓에 친척, 시어머니 등에게 육아를 부탁하면서 새로운 갈등이 생기고 있어요. 아이들에 대한 교육, 유학, 이민 욕구도 강해지면서 자식에 대한 소유욕도 생겨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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