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학교

건축이라는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유현준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다양성과 학교 건축이다.

신간 ≪어디서 살 것인가≫와 여러 강연에서 변하지 않는 학교 건축에 회의감을 표현해왔어요.
예나 지금이나 큰 운동장에 교사 한 동으로 구성된 모습은 똑같아요. 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건물 층수가 높아진 정도? 제가 다니던 학교와 30년이 지난 지금 제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모습이 거의 같아요. 아이들이 사용하는 공간은 늘어나고 풍요로워졌지만 교육하는 방식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학교를 지을 때 실내 면적을 비롯한 모든 설비, 규격 등을 교육부가 정해두었어요. 그 기준에 맞추면 지금과 같은 박스 형태의 디자인밖에 운영할 수 없는 게 문제예요. 아이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쉬운 지금의 형태에서 벗어나기 힘들죠.
세종시 행복도시 내 6-4생활권 복합 커뮤니티 단지 MA(Master Architect)를 맡으면서 지역 내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를 아우르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어요. 중·고등학생 아들 둘을 키우며 느낀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불만을 적극 반영하게 되었는데, 저와 교육 관계자들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저는 다양화를 주장하지만 그들은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표준화된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표준화와 다양화의 대립이 결국 공간에서도 부딪혔죠. 교육부는 제주부터 서울까지 똑같은 디자인의 공립학교를 세우고자 해요. 저는 되도록 낮은 건물을 짓고 담장을 허물어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말해요. 어떤 제안이든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표준화될수록 수직적으로 평가, 분류하기가 쉽죠. 특히 입시를 위해서라도요.
그렇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성적, 외모가 전부여서 자존감을 채울 길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짱 먹는’ 애들은 축구 잘하거나 공부 잘하는 아이예요. 축구를 하는 운동장과 공부하는 교실밖에 없기 때문이죠. 제가 볼 때 우리나라 아이들 대부분이 행복하지 않아요. 공부를 못해도 학교에 가면 나무 밑에서 친구들이랑 쉬거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요. 하물며 둘이서 배드민턴 칠 수 있는 공간도 변변치 않으니 다양한 형태의 우정이 자라지도 못하죠. 정상적인 교우 관계와 인격을 형성하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교육 공간은 결국 학부모의 교육관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공감해요. 저와 제 아내는 교육관이 다른데, 제 아내와 교육관이 같은 학부모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교육관의 학부모를 위한 기존의 교육 공간은 그대로 두되 저와 같은 교육관, 성향을 지닌 학부모, 학생에게 다양화된 교육 공간의 선택권을 달라는 거예요. 지금의 학교 디자인은 마치 국민들에게 ‘중산층은 똑같은 구조의 30평형대 아파트에 살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에요.

그렇다고 학교를 계속해서 새로 짓긴 어렵겠죠.
학생 수가 줄면서 생겨난 빈 교실을 불필요하게 특별활동실로 리모델링하는 대신 테라스로 사용하는 거예요. 혹 그게 어렵다면 옥상에 CCTV나 2m가량의 유리 펜스를 설치하고 개방하는 것도 좋죠. 그것도 싫다면 교무실을 꼭대기 층으로 옮겨서 교실이 최대한 운동장과 가깝게 바꾸어야 해요. 그럼 또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안 들어온다고 걱정하겠지만요. 참 불합리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생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너무 과하게 아이들을 관리해요. 텔레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해서 아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부모가 다 알아요. 카드 결제 문자 한 통이면 어디서 누구랑 뭘 먹고 놀고 있구나 짐작할 수 있죠. 학원에 10분만 늦어도 전화가 오고요. 아이들에겐 모든 세상이 감옥과도 같아요. 부모가 ≪1984≫의 빅브라더죠. 자녀에게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요? 5~6학년만 되어도 사춘기에 접어드는데 자아가 다 큰 아이에게 관여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죠. 중2병이 별게 아니에요. 중2의 DNA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다만 20년 전보다 지금 아이들을 훨씬 세게 압박하기 때문에 튀어 오르는 거죠. 중2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문제인 거예요.

어떤 학부모, 아빠인가요?
그저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대학을 안 가고 싶다면 안 가도 돼요. 저희 아버지는 가정 형편 때문에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 사장까지 지내셨어요. 학벌에 대한 아버지의 어려움을 직접 보면서 자란 저는 제 스스로가 가혹할 만큼 학벌에 집착했어요. 물론 저도 학벌의 혜택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학벌이 사회적 직위를 보장해주는 시절은 끝났어요. 제 아들이 사는 시대는 4차 산업혁명과 세계화가 키워드죠. 아이가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해 명퇴하는 삶을 바라는 건가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 아이들이 학원가를 배회하며 선행 학습에 끌려다니면 안될 것 같아요. 오히려 마음의 병을 얻게 되겠죠. 좋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걸 어려서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혹은 좋은 대학 나온 10%가 성공한 삶을 살더라도, 나머지 90%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어야 해요.

세종시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른 작품이 당선되었어요. 그럼에도 설계사무소와 의논해 아이들이 자연을 접할 수 있도록 8개의 빌딩을 20개 정도의 작은 빌딩으로 쪼개는 등의 수정을 거쳤어요. 하지만 아직 교육부 심사가 남았죠. 예산을 핑계 삼아 통과시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교육부의 기준을 만족시키기가 쉽진 않을 것 같아요.
또 예산이 넉넉한 편인데도 입찰 방식의 문제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적어요. 평당 900만원으로 지어도 평당 600만원어치의 퀄리티밖에 안 나오죠.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질 정도로 문제가 많아요.

학부모들이 이런 이야기를 아는 게 중요하겠네요.
맞아요.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어야 요구도 생기겠죠. 지금은 모르니까 교육부에 요구조차 하지 않아요. 체육관 하나를 지어 외관에 곡선을 하나 더하고 아름답다며 생색내는 일이 생겨나는 거예요. 또 교육부 입장에선 작은 사고라도 났을 때 책임지기 싫으니 빈 교실을 특별활동실로 개조하는 공사만 계속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열린 공간을 이용하다가 사고가 났을 때 학부모도 수용,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시스템 탓을 하는 문화가 만연하니까요.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참 크죠.
엄청나죠. 저는 모든 세상을 건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봐요. 건축은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위해 만들었는지 유추할 수 있어요. 주거 공간의 예로 아파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아파트가 부정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아파트가 있었기 때문에 고밀화된 도시, 발전한 대한민국에 살 수 있게 되었죠. 절대적인 주택 부족을 빠르게 탈출시켜줬고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서 밥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영양가 있게, 또 건강하게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야 하는 때가 되었죠. 아파트의 단점은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하는 구조라는 거예요. 한옥은 안방에서 창을 열면 사랑방의 사람을 바라볼 수 있어요.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내 방에서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 구조죠. 그래서 거실 쪽으로 창을 뚫는 아파트 평면도를 제안하고 특허를 냈어요. 안방에서 창을 열면 거실, 아들 방까지 바라볼 수 있는 거죠.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할 땐 창을 닫으면 되고요. 훨씬 다양한 공간 구조도 나오고 소통도 늘겠죠. 또 하나 아파트에 없는 것이 마당이에요. 변화하는 자연을 사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게 문제죠. 옛날엔 속옷 바람으로 마당에 나가서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연을 접하려면 옷을 차려입고 나가야 해요. 그런데 정형화된 아파트 디자인이 바뀌려면 우선 건축 법규가 바뀌어야 하죠. 부동산 자산을 실내 면적으로만 계산하기 때문에 천장고는 최소한으로 낮추게 돼요. 최적으로 계산을 바꾼다면 25평에 4m짜리 천장, 40평에 2.5m짜리 천장 디자인도 나오죠. 또 하나는 발코니 면적도 계산해야 해요. 현재는 발코니 면적이 계산되지 않기 때문에 다들 확장 시공하는데, 저는 하늘이 보이는 테라스 면적은 실내 면적에 1.2배 정도로 부동산 자산에 포함해서 계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부동산 개발자들이 그런 공간을 만들 거예요.

체계가 없더라도 수요가 많으면 결국 공급이 좇아오지 않을까요?
자연을 가까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은 매우 커요. 옛날에는 몰이 핫 플레이스였지만 최근에는 익선동, 경리단길처럼 골목길이 인기잖아요. 실내에서 실외로 외출 장소를 옮겨 온 것 자체가 열망의 방증이에요. 또 인기 있는 많은 카페들이 로프트 형태의 높은 천장으로 설계됐죠. 복층 오피스텔도 인기고요.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지 않는, 높은 천장의 사적인 공간을 갖고 싶어 해요. 수요는 많지만 자산 가치를 명확하게 계산해주지 않기 때문에 공급이 많지 않은 거예요. 그 가치를 계산해줄 때 능동적인 개발이 일어나고 공급이 가속화되죠. 결국 여러 가지 폼의 아파트가 개발되면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삶도 윤택해지겠죠.

결국 생김생김이 다른 집과 도시를 지향하는 거네요.
획일화된 성장의 시대는 끝났어요. 표준화된 공간의 생산 과잉으로 인해 모든 국민이 똑같은 형태의 공간에 살아요. 다양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격밖에 차이가 없죠.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을 구분 짓는 기준이 성적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표준화 작업을 할수록 개개인의 가치관은 사라지고 돈만이 기준인 세상이 돼요. 그게 우리나라 사회의 발목을 잡아서 위기로 끌고 가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 작업을 멈춰야 해요. 가치 평가의 시스템이 잘못된 거죠.

사적인 공간이 적다는 점도 문제죠. 학교, 사무실 어디에도 혼자일 수 있는 공간이 참 없어요.
학교, 사무실 모두가 큐비클로 이루어져 있죠. 인간이 수렵, 채집하던 시절에는 10km2의 땅이,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는 500m2의 땅이 필요했어요. 점점 줄어서 지금은 반 평짜리 책상에 앉아서 일하죠. 점점 먹고살기 위해서 좁은 공간을 사용해요. 밀도가 높아지면서 옆 사람과 스트레스를 주고받아요. 수렵, 채집 시기에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페로몬을 분비했어요. 고밀화된 사회인 지금은 원치 않게 사람들과 페로몬을 지하철에서 주고받아요. 그래서 향수를 뿌려서 차단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세상의 모든 일과 디자인이 고밀화된 사회에서의 생물학적인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데에 집중돼 있어요.

반대로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도 하잖아요.
맞아요. 익명성을 필두로 사적인 공간에 숨는 거예요. 중·고등학생은 편의점, 대학생은 카페, 직장인은 차로 숨죠. 노래방, PC방, 게임방, 찜질방, 각종 ‘방’자 붙는 공간은 다 그런 개념이에요. 아쉬운 점은 그런 공간이 모두 실내에 있다는 것과 또 돈을 지불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공원이나 하다못해 벤치라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벤치가 너무 없어요. 아주 사소하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 삶을 매우 피로하게 만드는 거예요. 상어는 부레가 없어서 가라앉지 않으려면 계속 헤엄을 쳐야만 한대요. 현대인은 마치 상어처럼 도로 위를 계속 움직이죠. 심지어 산에 가서도 앉아서 쉬려면 돈 내고 백숙집을 가야 해요. 우리나라는 공간적으로 볼 때 매우 피로도가 높아요. 쉬는 것도 자본주의화되었죠. 놀이터까지 점점 없어지는 추세니 아이들마저 돈 없이는 쉴 곳이 없어요.

미세먼지, 오존 등 환경문제 때문에 의도치 않게 실내 생활이 늘기도 했어요.
모든 건축의 첫 번째 단추는 기후예요.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자본, 기술, 철학을 총동원한 것이 건축이에요. 1000년 전, 500년 전과 기후가 같기 때문에 건축 양식이 이어지는 거예요. 온난화나 미세먼지 문제로 야외 활동을 할 수 없다면 건축의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해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DNA는 1만 년 전과 같아서 실외 활동을 할 수 없다면 유전적으로 문제가 생길 거예요. VR, 컴퓨터 게임에 열광하는 건 결국 다른 공간으로 자꾸 도망치고 싶은 심리의 반영인데, 자연을 미디어로 대체하는 거죠. 진짜 피를 수혈할 수 없을 때 식염수를 주는 것처럼요.

다음 세대의 건축은 어떤 얼굴일까요?
배달, 택배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거리의 가게들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들끼리는 소통이 줄겠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SNS를 할 텐데, SNS는 현실처럼 다양한 사람이 뒤섞이지 않잖아요. 자신과 비슷한 취향, 성향의 사람하고만 소통하게 되죠. 현실에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친구와 다음 날 또 만나야 하기 때문에 내 생각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데 SNS는 그럴 여지가 없죠. 지금 웹상의 극좌와 극우처럼요. 그게 제가 우려하는 모습이에요. 그나마 여러 사람이 뒤섞이는 공간이 몰인데 그마저도 돈을 내야만 갈 수 있으니 최선의 공간은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새로운 모델의 공간을 만드는 게 저희 건축가의 책임이에요. 그러려면 건축 법규가 바뀌어야 해요. 건축 법규는 건축의 DNA 코드와 같거든요. 그 코드에 따라 다양한 얼굴의 도시가 등장하죠.

새로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요?
DMZ에 평화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DMZ는 남한도 북한도 아니기 때문에 남한의 건축법도 북한의 건축법도 적용되지 않으니까요. 새로운 도시의 툴을 짜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완전히 제3의 돌연변이 같은 제안을 해보고 그걸 또 남한에 적용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 여기선 무얼 해보고 싶어도 제약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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