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주인공이 된 임신과 육아

당사자가 아니라면 평생 경험하지 못할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한다.
10대들은 그 어떤 성교육에서도 배우지 못한 임신에 대한 의문을 웹툰으로 푼다.
아이를 만나는 이야기가 콘텐츠의 주류가 되어 조금씩 인식을 바꾸고 있다.

아이를 만나 기르기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면 그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기록해보면 어떨까. 그 기록을 통해
일상이 치유되는 경험을 느껴보길 바란다. 엄마로, 엄마가 될 이로서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많으니까.

‘이건 내 얘기’라는 생각이 먼저 들 만큼 마치 내 생활을 지켜보고 만든 듯한 생활 밀착형 이야기가 빠르게 공유되는 시대다. 창작자들은 웹드라마, 웹툰, 한 줄 글귀 같은 세대를 초월한 콘텐츠 방식에 개별적인 경험을 녹여낸다. 솔직한 시선이 담긴 콘텐츠는 자연스레 보는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든 단지 궁금해하던 사람이든 공감을 부르는 콘텐츠는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고 서로를 이어준다. 신체 일부를 아이에게 내어주는 임신과 출산의 영역은 가장 공감받는 소재 중 하나다. 인간은 모두 자궁을 통해 태어난다는 공통 분모 아래 출산 과정을 겪은 이들은 알알이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겪지 못한 이들에겐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로 유명한 작가 ‘난다’를 필두로 작가 몇몇이 자신의 임신 과정과 육아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려내기 시작한 이후 지금은 더 많은 작가들이 다채로운 시선으로 임신과 육아 경험을 전한다. 부모로서 아이를 만나 기르는 기쁨과 보람뿐만 아니라 임신하기까지의 과정과 출산 그 자체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고유한 정서에 주목한다.


“왜 아무도 애 낳는 일이 이렇게 힘든지 말 안 해줬어?” 이런 억울함에 웹툰 <아기 낳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쇼쇼는 인공수정의 경험을 돼지가 되어 교배당하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한국인 남편 휴권과 함께 <마이 코리안 허즈번드>를 연재한 호주 여자 니콜라권 역시 불임 판정을 받고 출산하기까지 남편과의 관계와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자궁내막증 수술을 받고 아이를 낳는 과정을 웹툰 <이더 웨이(Either Way)>에 그려낸다. 하지만 경험의 기록이 사실과 개인적 감정의 공유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쇼쇼 작가는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자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등 임신부와 임신에 대한 직장 내 편견과 같은 논쟁적 주제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난임 극복 웹툰 <우리 집에 아이가 산다>를 그린 전민정 작가는 난임을 겪는 독자에게 위로를 건넬 뿐만 아니라, 산모의 잘못이 아닌 난임을 잘못처럼 느끼게 하는 사회의 시선과 부담의 굴레를 줄어들게 했다는 평을 받는다.


모성애는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을 거치며 성숙해진다. 그동안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슬픔, 짜증, 분노는 금기시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치유의 글쓰기》를 쓴 셰퍼드 코미나스는 일상을 포착하고 놓치고 살던 내 감정을 기록함으로써 가슴속에 있던 찌꺼기를 털어내고 활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를 만나 기르기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면 그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기록해보면 어떨까. 그 기록을 통해 일상이 치유되는 경험을 느껴보길 바란다. 엄마로, 엄마가 될 이로서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많으니까.

 

《우리 집에 아이가 산다》 전민정 작가 결혼 5년 차에 두 번의 인공수정과 세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아이 지유를 만난 저자는 난임이라는 긴 터널에서 나와 정신없이 육아를 하다 문득 아이가 9개월 되던 달 ‘이 과정을 기록해야겠다’ 싶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육퇴(육아 퇴근) 후 한컷 한컷 이미지를 넘겨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에피소드를 하나씩 올리며 연재하기 시작한 웹툰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mini interview

힘들었던 과정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이유가 뭐였을까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하하. 아기를 갖기 위해 13년간 해오던 디자인 일도 그만두었기 때문에 오롯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에 임신 과정과 경험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반에는 #임신 같은 해시태그로 그림일기를 올렸는데, 구독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책에도 나와 있듯 쌍둥이를 임신했다가 잃은 가슴 아픈 경험을 올린 이후 쉽지 않은 임신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어요. ‘아이를 낳았는데 울지 않았다’는 분, 38주에 사산이 되었다는 분 등 댓글이나 메일로 각자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늘면서 같이 얘기하고 슬퍼하고 그랬어요. 저는 이전에 남의 글에 댓글을 단 적도, 세상에 나선 적도 없는 사람인데 제 만화를 보고 공감하고, 희망을 얻었다며 고맙다고 하는 반응이 신기했죠. 제게 지유가 왔듯이 임신이 간절한 사람들에게 아기가 찾아오길 함께 바라고 빌었어요.

맘 커뮤니티에서 서로 추천해주는 책이라고 들었어요.
이전에 제가 정보를 찾아보던 맘 카페나 시험관 시술 관련 커뮤니티에서 가끔 제 만화를 이야기하는 분들을 보면 기분이 새롭죠. 아무래도 엄마들끼리는 서로 공감하는 이야기를 추천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한번은 친구가 난임을 겪는 다른 친구에게 제 만화를 추천했는데 이미 봤다며 사인해달라고 한 적도 있어 신기했어요.

‘흑염소를 먹으며 내 자식 가지려고 남의 자식 먹네’ 같은 웃기면서도 슬픈 에피소드가 많아요.
흑염소뿐 아니라 시어머니께서 고아주신 장어곰탕, 친정엄마가 직접 짠 포도즙까지 안 먹어본 것이 없어요. 저는 그림을 절망적이고 어둡게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아기는 포기하면 생긴다는 말이 있잖아요. 반대로 난임 카페에서는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야 생긴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고통스러웠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내려 했어요. 사실 제 성격이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어서 가족들이 만화를 보고 많이 놀랐어요. 시댁 식구들도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더라고요. 내색하지 않아 몰랐나 봐요.

연재하길 잘했다 싶을 때는 언제인가요?
연재 시작 당시에 제 만화를 보고 시험관 시술, 난임에 대해 물어온 분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분이 ‘좋아요’를 눌렀기에 어떻게 지내는지 싶어 계정을 찾아보니 출산을 하신 거예요. 정말 축하한다는 댓글을 바로 달았죠. 누군가에게 ‘어떻게 하라’고 조언하기보다는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엔 행복해질 거라고 위로해주는 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1,823
인기기사

GET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