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훈, 너란 남자

서른다섯 살 적지 않은 나이에 연말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그가 여유만만해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성훈은 열여덟 소년 같다. 섹시하고 도도할 거란 예상은 그가 촬영장에 도착한 순간 바로 깨졌다. 서울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꽤 오랜만에 24시간 잠만 잤다는 그는 부스스한 머리에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등장했다. 두꺼운 오리털파카에 한여름 샌들을 신고서. 깨끗한 피부에 조막만 한 얼굴, 잘 정돈된 이목구비를 가진 그는 누가 보든 말든 훌렁 윗옷을 벗었고, 스태프들에게 스스럼없이 장난을 걸고, 차가운 바닥을 맨발로 잘도 돌아다녔다.

도도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장난기가 많네요 
현장에서는 일부러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이에요. 어색함이 없어져야 일하기 편하거든요.
원래 성격은 어떤가요
낯도 많이 가리고, 사람들과는 거리를 좀 두는 편이죠.
낯가리는 성격이니 친해지기까진 좀 어렵겠네요
쉽게 친해지진 않죠. 이 일이 그렇잖아요. 만남과 헤어짐이 일상인. 자연스레 이런 성격이 됐어요.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솔직한 사람이라고 얘기하던데요
꾸며서 뭐 해요.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들통날 텐데.
너무 솔직해서 손해 본 일도 많지 않나요 맞아요. 뇌를 안 거치고 바로 말하는 편이거든요. 남들에게 오해를 많이 사지만 속 편하게 생각해요. ‘나는 솔직하게 표현한 거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린 안 맞다’고 생각해버리죠. 특히 작품을 할 때는 아주 예민하게 변하거든요. 그럴 때도 주변 사람들은 진짜 제 속마음을 알아요. 일부러 성질부리는 게 아니라, 잠을 못 자서 까칠해졌으려니 하고 이해해주죠. 저를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들만 곁에 있어도 인생은 살 만하다 생각해요. 굳이 많은 인맥을 만들기보단 옆에 있는 사람을 잘 챙기고 싶어요. 그래서 절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도 크게 신경을 안 쓰죠.
아침에 눈이 엄청 많이 왔는데 누가 가장 먼저 생각났나요
대한민국 상가 주인들. 하하하. ‘눈이 내리면 예전 그녀가 생각나요’ 하는 말을 기대했을지 모르겠지만 전 진짜 가게 운영하시는 분들 생각이 먼저 나요. 눈 쌓이면 치워야 하니까.
감수성 풍부한 남자인 줄 알았더니 또 현실적이네요
좀 의외인가요.
몸이 좋아서인지 드라마에서도 탈의신이 안 빠지죠. 오늘도 불가피하게 노출을 했네요
이제 살짝 부담돼요. 어찌 보면 외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의 끝이 노출이잖아요. 너무 많이 노출하다보면 그런 이미지로 소모되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도 되죠. 노출 이미지가 굳어질까봐요. 이젠 좀 자제해야지 하면서도 꾸준하게 벗고 있어요.
요즘도 운동하나요
운동 싫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수영 선수생활을 해서 이젠 별로예요. 사실 수영이 좋았다기보다 공부가 하기 싫어서 시작했어요.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이 맞았어요. 그때 경험이 아주 끔찍해서, 운동 그만둔 이후로는 취미로도 안 하죠.
공부에는 통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나봐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가만있질 못했어요. 좀이 쑤셔서 책상 앞에 10분 이상 앉아 있질 못했죠. 어렸을 때 제가 너무 가만있질 못하니까 같이 살던 고모가 저를 가둬놨어요. 그랬더니 열이 펄펄 끓고 몸살이 났어요. 그 일 이후로 부모님도 공부를 시키면 안 되겠다 생각하셨죠. 수능 일주일 남겨놓고 책 좀 읽어보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아무 이유 없이 코피가 나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다신 공부하지 말라던데요. 하하하.
그래도 체대 들어가려면 기본 커트라인은 넘겨야 할 텐데, 머리는 좋았나봐요 저희 때 체육 특기생 커트라인이 4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었는데, 전 200점 맞았어요. 언어영역은 거의 만점이었죠. 공부 좀 했으면 꽤 성적이 좋았을 거예요.


저를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들만 곁에 있어도 인생은 살 만하다 생각해요. 굳이 많은 인맥을 만들기보단 옆에 있는 사람을 잘 챙기고 싶어요.
그래서 절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도 크게 신경을 안 쓰죠.

 

그는 14년간 수영선수 방성훈으로 살았다. 어릴 때부터 해온 수영이 그가 할 줄 아는 전부였다. 하지만 부상과 수술, 재활을 반복하다 이십대 후반, 수영을 그만뒀다. 또래들이 대부분 안정된 직장에서 자리를 잡을 때였다. 뭘 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지금의 소속사에 들어갔고 수차례 오디션을 봤다. 그러다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신기생뎐>의 아다모로 얼굴을 알리게 된다.

한때 신기록까지 세운 유망한 선수였는데, 미련은 없나요
깔끔하게 접었어요. 당시 전 실업팀에 있었는데 중학생이던 (박)태환씨 보는 순간 결심했죠. 잘한다는 선수가 나오면 ‘몇달 열심히 하면 저 정도는 따라잡겠다’ 싶은 감이 있거든요. 하지만 태환씨는 차원이 달랐어요. 전 지하계, 그는 이미 천상계였죠. 사과와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하잖아요. 빨리 포기하길 잘한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운동만 했잖아요. 단번에 손을 놓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약간 우울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안쓰러워하니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더 우울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더 힘들어보일 테니까. 그랬더니 진짜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운동 그만둔 건 아무것도 아녜요. 인생의 숱한 선택 중 한 가지였을 뿐이죠.
수영과 연기, 너무 다른 분야 아닌가요. 갑자기 배우를 하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해요
계기라 할 만한 것이 딱히 없어요. 그저 막연하게 연기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 어릴 때부터 영화와 드라마는 좋아했어요. 드라마 <해피투게더>를 정말 재밌게 봤고, <그저 바라보다가>, <시티홀>도 좋아했어요. 연기자가 되고 나서, 왜 갑자기 연기가 하고 싶었을까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병헌 선배님의 신적인 연기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운동만 하다 연기를 시작했는데 막막하진 않았나요
아마 뭘 하든 그랬을 거예요. 저희 때 운동한 사람들은 선수생활을 그만두면 거의 전공을 살려 코치를 하거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센터에서 강사 생활하면서 밥먹고 살아요. 저도 처음엔 운동을 그만두고 수영강사 생활을 했는데, 중간중간 공허함이 찾아오더군요. 이건 내 길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과감히 다른 길을 찾았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신기생뎐> 오디션에 덜컥 합격했으니 운이 좋은 케이스인가요
어릴 때부터 제 팔자에 운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생짜 신인이었던 제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발탁되고 나니 지지리도 없던 운을 어느 정도 보상받은 느낌이더라고요.
요즘엔 아예 어릴 때부터 연기를 공부해 기본기를 다진 배우들이 많죠
그래서 첫 드라마 끝나고 소속사 대표님께 대학에 가서 연기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가 엄청 욕 먹었죠. 이제 시작이니 현장에서 많이 배우라면서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첫 작품 이후 큰 공백 없이 활동하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아참, 신인상 수상 축하드려요
제 주변에선 축하해주는 사람 반, 놀리는 사람 반이에요. 그 나이에 신인상 받기 쉽지 않다며.
배우 성훈에게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50점 못 넘죠.
뭐가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나요
촬영할 땐 열심히, 즐겁게 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일정이 너무 빠듯하다보니 잠을 좀 못 자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놓치는 게 많아요. 찍고 나서 모니터하면 후회되죠. 제 자신에게 많이 엄격한 편이에요. 자학하는 타입이거든요. 현장에서 NG를 내잖아요. 그럼 엄청 큰소리로 저 자신을 막 욕해요. 감독님이 혼을 내려다가 말도 못 꺼내죠.
인간 방성훈은 몇 점인가요
50점. 이제야 철이 좀 드는 것 같아요. 나이 먹어가며 조금 성숙해지니까 연기도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같고요. 어릴 때 철없고 생각이 왔다갔다 할 땐 연기도 오락가락했다면 요즘엔 남자로서 중심이 섰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 그리고 동료 배우들에게 인정받는 배우. 이병헌, 조진웅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이죠. 얼마 전 이병헌 선배님 동생 역을 구하는 오디션 공고를 봤어요. 진짜 도전하고 싶지만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제 연기력이 조금 더 늘어서 멋진 케미를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선후배가 아닌 당당히 연기자 대 연기자로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물론 제의가 오면 당장이라도 하겠지만요.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한데요
연기의 기본기를 잊지 않고 연습하되, 저를 최대한 내려놓으려고 애써요. 자연인처럼요. 지금까지 전 늘 긴장하고 채찍질하며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그런 일상이 연기엔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저를 최대한 내려놓으려고 애써요. 자연인처럼요.
연날리기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하늘, 별, 구름 보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하늘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강에 나가 연을 날렸죠. 한참이나 하늘을 쳐다볼 수 있어 참 좋았어요.

 

다 내려놓은 성훈의 모습이 궁금하네요
연날리기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하늘, 별, 구름 보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하늘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강에 나가 연을 날렸죠. 한참이나 하늘을 쳐다볼 수 있어 참 좋았어요. 그래서 연 장비도 꽤 모았어요. 게임도 자주 해요. 그렇다고 욕하면서 게임하진 않는답니다.
아참, 취미가 디제이라던데요.
‘DJ ROI’란 이름으로 활동 중이란 기사도 봤어요 음악을 좋아해요. 집에서 심심하면 디제잉 연습해요. 얼마 전에 올인원 장비를 싸게 구입했거든요.
클럽도 다니겠네요
못 간 지 꽤 오래됐어요. 덜 바쁠 땐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갔는데, 요즘엔 도통 시간을 낼 수 없어 아쉬워요. 사실 클럽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들으러 가요. 그래서 어떤 디제이가 나오는지 스케줄표를 보고 맞춰서 가는 편이죠. 요즘엔 술도 거의 안 마시고, 그냥 서서 잠깐 음악만 듣다가 나와요. 말 나온 김에 오랜만에 클럽이나 가봐야겠네요.
좋아하는 장르는
EDM과 프로그레시브. 굳이 따지자면 록 성향이긴 하지만 딱히 장르를 가리지도 않아요. 클래식도 좋아해요.
디제이로 등장하면 사람들이 재밌어하겠는데요
아직 큰 무대에 오른 적은 없어요. 이젠 모자 쓰고 가볼까 싶어요. 제 주변에 디제이 형이나 동생들에게 미리 얘기만 하면 골든타임을 피해 잠깐 설 수는 있을 테니까요.
디제이 인맥들은 어떻게 쌓은 건가요
놀다보니까. 하하하. 클럽에서 여자는 안 꼬시고, 디제이들 꼬셨어요.

 


여자친구랑 있을 땐 강아지과예요. 귀찮다 싶을 정도로 찰싹 붙어 있거든요. 일단 연애하면 다이어트가 안 돼요.
계속 뭔가 먹잖아요. 또 여자들은 많이 안 먹으니까 제가 더 많이 먹게 되고.
일할 땐 하루 한 시간이라도 운동을 가는데, 여자친구가 있으면 운동을 포기하고라도 같이 있으려고 하는 편이죠. 완전 푹 빠져버려요.

 

예체능엔 타고났네요 맞아요.
영어 수학은 너무 어려워요.
관심분야가 참 다양해요. 또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여행이요. 이번 작품 끝내면 USB랑 헤드셋만 챙겨서 태국 갈래요. 방콕의 디제이 문화가 꽤 수준이 높다네요.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비자도 가고 싶어요. 이젠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도 UMF 같은 세계적 록페스티벌도 열리잖아요. 하지만 아직 투모로우랜드(벨기에에서 열리는 일렉트로닉 뮤직 페스티벌)는 가본 적이 없어서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이제 서른 중반인데, 결혼 생각은 없나요
단언컨대 없어요. 사실 1년 전만 해도 결혼은 해야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 없겠단 생각이 들어요. 일이 너무 바쁘다보니 옆에 있는 사람을 잘 못 챙겨줄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연애는 하고 싶어요.
연애할 땐 어떤 타입인가요
일할 땐 고양이과, 여자친구랑 있을 땐 강아지과예요.
강아지의 연애는 어떤가요
귀찮다 싶을 정도로 찰싹 붙어 있거든요. 일단 연애하면 다이어트가 안 돼요. 계속 뭔가 먹잖아요. 또 여자들은 많이 안 먹으니까 제가 더 많이 먹게 되고. 일할 땐 하루 한 시간이라도 운동을 가는데, 여자친구가 있으면 운동을 포기하고라도 같이 있으려고 하는 편이죠. 완전 푹 빠져버려요.
어떤 여자에게 그리 푹 빠지나요
귀여운 스타일이 제일 좋아요. 뭐, 지금 당장 결혼계획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내일 할지도 모른다고 정정해주세요.
2017년 새해 소원은 뭔가요
연기에서 스스로 70점 이상 매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미친 연기로 인정받고 싶어요. 요즘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서현진씨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속으로 ‘저 여자 정말 미쳤구나’ 했어요. 얼마 전에 영화 <돌아와요 부산항애>는 촬영을 마쳤고, 드라마 <애타는 로맨스>도 마무리했고, 요즘 <아이돌마스터> 촬영 중이에요. 올해는 작년보다 더 바빠서 한번 쓰러져보고 싶어요. 작년 한 해 정말 죽을 만큼 바빴는데 코피 한 번 안 났거든요. 한 번 쓰러지면 좀 쉬게 해줄 텐데….
책상에 앉아 공부 한번 해보세요. 그럼 코피 날지도
아, 그런 좋은 방법이!

 

Editor 이영민 Photographer 목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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