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디펜스 시대

어린 시절 태권도장 앞을 서성이다 끝내 피아노 학원과 미술 학원 문을 두드린 기억처럼 내 인생에서 주먹질, 발길질을 서슴지 않는 마샬 아트는 어쩐지 먼일 같았다. 호신술을 눈여겨보게 된 건 얼마 전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개그우먼 박나래가 UFC 선수 김동현에게 주짓수를 배우는 모습을 보고 나서다. 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자연스레 몸을 움직이고 테크닉을 시연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원타임 오진환, 빅뱅 승리,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허경환 등 셀럽들이 주짓수 마니아라는 소식까지 들으니 브라질에서 온 무술, 주짓수가 꽤 친숙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복싱, 태권도와 달리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테크닉을 통해 상대에 맞설 수 있는 점이 주짓수의 특징이라니 여성으로서의 제약도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호기심이 일었지만 상대와 짝을 이뤄 스파링(대련)을 하는 무술은 누군가와 격하게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 망설이던 중 또 다른 호신술에 눈길이 갔다. 바로 ‘크라브 마가’라는 이름도 생소한 자기 방어 무술이다. 자기 방어 자세와 맨손격투술로 이루어진 훈련법으로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같은 액션 영화 속 고난도 무술의 기본기가 되기도 했다.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실제 훈련 도장을 찾은 건 평소 즐겨 보던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의 난다 작가 말 때문이었다. 심란한 사건 사고 뉴스를 접하던 중 난다 작가는 몇 달간 크라브 마가를 배우며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간 폭력 상황에 노출될 때 두려움에 마냥 몸이 굳었는데, 이제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이 아니라 공포와 혼란 앞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몸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크라브 마가의 특성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 단 한 번의 수업이지만 생전 처음 나를 때리려는 누군가를 저지하고 피하고 도망가는 법까지 체계적으로 배웠고, 이 경험은 낯설지만 왠지 모를 안도감과 든든함으로 채워졌다. 뮤지션 예은 또한 어느 날 의문의 하얀 차가 다가와 “타세요” 했던 공포의 상황을 겪은 뒤 크라브 마가를 시작했다고 한다. 막연한 두려움 가운데 잔뜩 긴장한 채로 일상을 무기력하게 견뎌내기보다는 건강하게 몸을 움직이는 게 낫다. 기왕 몸을 쓰는 활동을 할 바에는 나를 지킬 수 있는 호신술을 배워보는 게 어떨까. ‘힘이 약해서’, ‘발로 차고 손을 뻗는 행동은 낯설어서’ 등 갖가지 이유로 피하기보다 주체적으로 나의 몸을 지키는 호신술을 익히는 것은 일상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자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주짓수 박준성

주짓수의 대가 그레이시 가문에서 직접 수련을 받은 ‘그레이시 주짓수’ 박준성 대표는 최근 <세바시>, 닷페이스 등에서 성폭행 예방법과 자기 몸을 지키는 무술로서의 주짓수를 전파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여성도 남성을 제압할 수 있나요?
주짓수는 상대방과의 체격과 힘의 격차를 줄이는 데 최적화된 운동이라고 볼 수 있어요. UFC 경기에서 주짓수 기술을 이용해 자기보다 덩치가 큰 선수를 이긴 사건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요. 최종 목적이 ‘살아남는 데’ 있는 무술이거든요. 상대가 나를 조르거나 올라타면 이를 방어하고 피하고 빠져나오는 동작이 발달돼 있어요. 여성도 주짓수를 계속 수련하다 보면 일반 남자 정도는 막을 수 있죠.

주로 어떤 동작을 배우나요?
싸우는 동작이나 기술도 중요하지만, 저는 주로 폭력 예방을 목적으로 교육해요. 언어적·심리적·육체적 ‘경계선’을 세우는 능력을 가르치죠. 그 선을 아예 긋지를 못하고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특히 학교 폭력 예방을 염두에 두는데, 놀림이나 폭력을 당해서 불쾌한 순간 즉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수 있게 훈련하죠. 여성의 경우는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저지하는 것이 주짓수 훈련의 목표예요.

주짓수를 시작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요즘 수강생의 반 정도가 여성이에요. 수강생 한 분이 이전에는 혼자 해외 출장을 갈 때 주위에서 많이 염려했는데, 이제 “주짓수 하는 여자예요!” 하고 말하면 다른 시선으로 본다고 하더라고요. 자신감이 생기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면 자신에게 더 많이 투자하고 싶어지죠. 아이들 역시 주짓수를 배우다 보면 자신의 의사를 이전보다 확실하게 표현하죠. 접촉하는 동작이 많아서 처음엔 어색해하기도 하지만 금세 적응할 수 있어요. 서로 도와야 동작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기고 지는 것보다 정신과 동작을 트레이닝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거든요. 누구든 막상 시작하면 주짓수의 매력에 푹 빠질 거예요.

크라브 마가 최하란

이스라엘에서 크라브 마가 글로벌 단체의 전문 과정을 마친 ‘스쿨 오브 무브먼트’ 최하란 대표는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안전하게 만드는 기술의 터득’을 목표로 국내에 크라브 마가 훈련을 널리 알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데요.
미국에서는 70년대부터 셀프디펜스 프로그램이 학교나 단체에서 상용화되기 시작했어요. 대학교에서 교양체육의 일환으로 배우기도 하고요. 저는 크라브 마가를 테크닉이 아니라 체계라고 말해요.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모든 것, 즉 언어, 테크닉, 경계 설정, 위험을 확인한 뒤 피신하는 방법까지 다 갖춘 시스템이죠.

어떤 동작으로 이루어지나요?
한 발은 앞으로, 두 손은 얼굴 앞에 들고 방어 자세를 취하는 핸드 디펜스 동작에서부터 킥, 펀치를 통해 언제든 몸을 피하고 움직이는 보디 디펜스로 이뤄져요. 뒤에서 덮칠 때 빠져나가기, 칼로 위협할 때 저지하기 등 상황에 맞춰 연습하죠. 이때 고함을 지르거나 눈을 감지 않는 훈련도 겸해요. 위험을 눈으로 확인하고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 위해서죠.

실제 상황에 맞춘 훈련이네요.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선 머리로 생각할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하거든요. 지진이 나면 머리를 보호하고, 불이 나면 불이 났다고 소리 지르는 것처럼요. 실제와 비슷한 상황을 상정하고 거기에 맞춰 연습해요. 빙빙 돌고 난 후 상대의 위협에 맞서는 과정이 있는데, 돌고 나면 머리가 어지러우니까 두려움에 정상적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과 비슷하죠.

크라브 마가를 배우면 좋은 이유를 꼽자면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샌드백을 손으로 치고, 발로 차고 때리는 동작에서 해방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죠. 전신 운동으로 코어 운동, 유산소 운동이 되는 효과는 덤이고요. 더불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자기 존중감과 자신감, 삶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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