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르다

조금은 불편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시선으로 장바구니를 채워보는 건 어떨까.

생협에 들러 유기농 마크가 붙은 채소와 달걀, 무항생제 닭고기를 바구니에 담는다. 고기는 플러스가 2개 이상에 마블링이 좋은 것, 과일과 채소는 흠집이 없고 꼭지가 살아 있는 것으로 고르고 생선은 눈의 선도가 살아 있는지, 달걀은 껍데기가 단단한지 확인한다. 이렇듯 먹거리를 고를 때 할머니에게서 엄마로,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대물림하듯 전해진 규칙을 따르며 살림 잘하는 주부의 모습을 갖춰간다. 하지만 유기농 마크를 향한 강박관념, 화학 첨가물을 피하는 까다로움, 편리하고 빠른 무료 배송을 이용하는 스마트함 속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마켓 레이지 헤븐

무른 과일·느린 배송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이유

고창 일대의 자연 재배 농작물을 선별해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 마켓 레이지 헤븐의 안리안. 남편과 함께 서울과 고창을 오가며 생활한 지도 2년이 흘렀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판매한 들깨가래떡이 입소문이 나면서 품절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초엔 직접 농사에 도전하기도 했다.

인터뷰에 앞서 안리안 디렉터가 자연 농법으로 기른 파프리카와 셀러리를 마트에서 구입한 것과 함께 썰어주었다. 자연 농법 채소들은 씹자마자 짠맛이 강하게 올라오더니 이내 향긋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에 비해 마트에서 사온 채소는 싱겁게 느껴질 정도다. 땅에서 스스로 자라려니 아등바등 힘을 쓰느라 섬유질 밀도가 높고 단단해지기 때문이란다.
왜 마트에선 이런 채소를 살 수 없을까.

도시 생활을 하다 보면 먹거리만은 친환경, 유기농에 혹하게 돼요.
마켓 레이지 헤븐을 운영하기 전 패션쇼 기획 일을 했어요. 점심엔 지인들과 파인다이닝에 가고 저녁이면 편의점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를 먹는 일상이었죠. 뭐랄까, 내가 먹는 것이 모여 나를 만든다는데, ‘이런 삶이 진짜가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남편과 전국을 여행하다가 고창에서 임성규 농부를 만났죠.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분이에요. 땅의 기운대로 농사를 짓고 철마다 나는 것을 먹는. 비료, 퇴비 없이 지은 농부님의 농산물을 먹어보니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이런 삶, 이런 식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었죠.

마켓 레이지 헤븐에서 파는 과일, 채소는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에요.
우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은 모두 유통 구조에 의해 결정돼요. 유통하기 쉬운 품종 위주로 기르죠. 지구 상에는 2만 5000여 종의 토마토가 있지만 국내에서 판매되는 건 30종 남짓이에요. 사람들이 무르거나 깨진 과일은 쳐다보지 않기 때문에 단단한 품종만 유통하죠.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이게 맛있는 과일’이라 학습시켜요. 반듯하게, 예쁘게 키우려면 퇴비와 농약을 피하기 어렵죠. 우리가 선택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과 같아요. 자연 농법으로 기른 과일과 채소는 옹골차지만 모양은 삐뚤빼뚤하죠.

흠 없고 반듯한 과일, 채소를 고르는 습관이 선택의 폭을 좁힌 거네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토마토는 20~30% 익은 상태에서 수확해 유통 과정에서 후숙하는데, 소비자가 겉모양에 조금만 덜 연연해하면 60% 숙성된, 더 맛있는 토마토를 맛볼 수 있어요. 저희는 80%까지 익어서 더 영양가 있는 과일을 판매해요. 일일이 검수해서 배송하는데도 과일이 물렀다고 연락하는 분들이 있죠. 잘 설명하고 환불 조치를 해드리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과일과 채소는 모양이 아니라 냄새를 맡아보고 골라야 하는데 말이죠.

마트에서 자연 농법으로 기른 채소를 찾기는 어려워요.
자연 농법은 땅에서 소출이 나길 무한정 기다리는 농사법이 아니에요. 한 땅에 계속 한 작물만 심으면 땅의 성질이 바뀌기 때문에 교대로 다른 작물을 심어야 하죠. 오히려 더 과학적이고 손이 많이 가는 농법이에요. 농부에게 농사는 생업이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이윤을 남기는 게 중요하죠. 무비료, 무퇴비, 무농약, 무경운 원칙을 지키며 1만 평의 논밭에 농사를 짓기 힘들어요. 그래서 저희에겐 소비자보다 자연 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부를 찾는 일이 더 어려워요. 그분들의 마음을 얻기는 더 어렵고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들깨가래떡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잖아요. 저희한테 떡은 장치 같은 거예요. 저희가 하는 일을 농부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한 장치. 사람들이 좋은 농작물을 이렇게나 좋아한다는 걸 단번에 보여주잖아요. 저희에게 좋은 농부는 저희의 요구를 들어주고 납품 약속을 잘 지키는 분이 아니라 툴툴거려도 고집스럽게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분들이에요. 올 초에 농사를 시작한 것도 농부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싶어서예요.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고 3시간 뒤면 집 앞에 물건이 도착하는 시대에 판매 일정을 기다리고 주문하고 도착하길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죠.
저희가 떡과 채소, 과일을 한정적으로 파는 이유는 먹기 좋을 때 팔 수 있을 만큼만 팔기 위해서예요. 제 스케줄러를 한번 보실래요? 월 옆에 과일, 채소 이름이 적혀 있죠? 작년 이맘때 수확한 품종들이에요. 하지만 올해는 한파와 무더위로 흉년이이어서 적어둔 것들이 무색하게 수확이 없었죠. 올해는 토파즈종의 포도와 마도카 백도 복숭아 등을 소개했어요. 그때그때 제철에 나는 건강한 먹거리를 먹는 건 축복이에요.

땅파는 까망돼지 네 농가 중 분천농장의 백승일 농부.

땅파는 까망돼지

유기농·무항생제 마크에 의존하는 사이 놓치고 있는 것

경상북도 봉화에서 자연 양돈으로 흙돼지를 키우는 소농들이 운영하는 정육 브랜드. 땅파는 까망돼지는 농장을 운영하는 3개 농가, 정육점과 식당을 운영하는 1개 농가가 함께 생산부터 유통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GMO, 항생제 사료를 먹이지 않고 돼지의 본성을 최대한 지켜가며 키운다.

장을 볼 때 눈뜬 장님이 되는 순간이 있다면 정육 코너 앞에서다. 목살, 등심, 삼겹살 정도를 제외하면 명칭을 들어도 어느 부위인지 모를뿐더러, 등급이나 원산지, 가격처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준 이외엔 더 이상 고민할 수 있는 요소가 없다. 도무지 어떤 고기가 맛있고 질 좋은 고기일까?

농장 크기 대비 돼지가 많지 않아요.
몇 천, 몇 만 마리를 우리에 가둬 키우는 공장식 사육에선 생산성 향상, 경영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죠. 좁은 축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어요. 그래서 꼬리와 이빨도 자르고 항상제, 호르몬제도 맞히죠. 결국 면역력이 약해져서 구제역 같은 재앙이 일어나면 사람에게까지 그 피해가 돌아오는 거예요. 소규모로 농장을 운영하면 돼지를 상품이 아닌 가축으로 기를 수 있어요. 출하량도 한 농가당 1년에 100마리 이하로 정했어요.

돼지 가족이 같이 있는 모습은 처음 봐요. 대부분 비슷한 크기끼리 가둬두곤 하죠.
돼지는 동물 중에서 네 번째로 똑똑해요. 잠자리, 대소변 자리가 다 나뉘어 있죠. 강아지, 고양이를 기르듯 이름도 불러주고 교감하면서 키워요. 도축하는 날에는 마음이 안 좋지만 어린이, 환자 등 고기의 영양소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먹거리로 키우는 거라고 마음을 다지죠. 그 대신 돼지가 살아 있는 동안 땅 뒤집고 흙도 먹는 본성을 최대한 발휘하며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요. 하지만 웹상에 새끼 돼지를 안은 사진만 올려도 ‘결국 잡아먹을 것 아니냐’며 악플이 달려요. 달리 보면 이렇게 귀한 생명을 먹는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100원, 200원 싸다고 아무거나 먹기엔 사는 사람도, 팔리는 돼지의 생명도 귀하잖아요. 가격, 마블링 같은 결과보다 어떤 항생제를 맞고 어떻게 길러졌는지 과정 전체를 눈여겨봐 주었으면 좋겠어요.

자연 농장에서 본성을 발휘하며 자란 돼지가 영양학적으로 좋은가요?
어떤 강연을 들었는데 무정란과 유정란이 영양학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더군요. 근데 먹는 사람 입장에선 이왕이면 유정란, 되도록이면 넓은 공간에서 뛰어다닌 닭을 먹고 싶잖아요. 이 돼지나 저 돼지나 5대 영양소는 같을 거예요. 공장식 축산 돼지고기가 오히려 더 부드럽겠죠. 12개월의 85kg 성돈을 도축하는 저희와 달리 6개월에 120kg으로 키워서 도축하니까요. 오래 키우는데 더디 자라고 근량도 적어서 공장식 축산을 하는 분들은 효율성, 경제성이 없는 바보노름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가치는 천지 차이라고 봐요. 예전보다 좋은 음식을 많이, 자주 먹게 되었는데도 몸이 약한 건 질소질 조직이 연한 고기, 채소를 먹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길고 곧으니 때깔은 좋겠지만요. 산에서 자란 식물만 봐도 연녹색에 조직이 치밀해서 질기죠.

농장에서 닭도 함께 키우고 있는 이혜영 농부. 마음을 들여 키워서인지 닭들이 반려동물처럼 사람을 쫓아다닌다.

유기농으로 키운 고기의 식감이 더 질기다는 선입견도 있죠.
쫄깃한 맛, 담백한 맛이 강해요. 누린내도 없고 비계도 탱탱해서 맛있죠. 결정적으로 한 달을 둬도 기름이 하얗게 굳지 않아요. 불포화지방산이 많다는 뜻이죠. 쌀겨와 비지에 미생물을 넣어 발효시킨 먹이, 제철 농사 부산물과 야생초 등을 먹인 결과예요.
온라인상에서 부위 대신 요리법에 따라 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위는 목살, 삼겹살로 한정돼요. 적체된 다릿살로 소시지, 햄을 만드니까 요즘 슈퍼마켓에 육가공품이 참 많죠. 저희에겐 모두 천금같이 귀한 살인 만큼 남은 부위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결국 특정 부위가 아니라 요리법에 따라 여러 부위의 고기를 섞어 판매할 수밖에 없었죠. 또 적체된 부위를 사달라고 고객들에게 언제까지고 칭얼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소시지를 만들고 있어요. 그런데 저희 고기는 기름이 굳지 않는 데다가 화학제품을 넣지 않아 포슬포슬하게 되기 때문에 지금도 고전 중이에요. 뒷다릿살에 대한 팁 하나 알려드릴까요? 불고기처럼 얇게 썰어서 로스구이나 육전을 만들면 맛있어요.

고기가 채소보다 쌀 만큼 흔한데, 소비자의 입장에선 인증 마크에 의존해 구입할 수밖에 없어요.
마트에서 고기를 고를 일이 아니에요. 소비자 입장에선 인증 마크 하나가 위안을 주겠지만, 그게 오히려 족쇄가 될 수도 있어요. 그 기준만 맞추면 되니까요. 저희 네 농가 중에 닭을 함께 키우는 농장이 있어요. 가족이 먹을 달걀을 충당하기 위해 키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100마리 가까이 되죠. 가족이, 또 내가 먹을 거라는 생각으로 키운 것들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농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생산자와 교류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고요. 휴가 때 생산자에게 농장 구경을 하고 싶다고 연락해볼 수도 있잖아요. 아이들에게는 자연, 환경에 대한 공부도 될 테고요. 또 요새는 생산자 정보가 열려 있어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다 알 수 있어요. 도시 생활이 너무 바쁘고 피곤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내가 무엇을 먹고 있나 좀 고민해보자는 거죠.

소스는 주로 고춧가루를 섞어 조미하는 게 원칙. 평균 1주일의 유통기한을 감안한 가장 낮은 염도인 4도를 유지한다.

덕화명란

가공식품은 무조건 해롭다는 편견

40년 역사의 부산 로컬 브랜드, 덕화명란. 대한민국 수산제조 1호 명장으로 인정받은 장석준 명장이 이끌어온 브랜드로 지금은 아들 장종수 대표가 이어받았다. 숙성 명란을 많이 소비하는 일본의 마트 브랜드로 진출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짜 먹는 명란을 출시하고 명란 요리를 만들어보는 쇼룸 ‘데어더하우스’를 오픈하는 등 젓갈 위주였던 명란을 한층 현대적인 수산물 가공식품으로 소비하게 하는 변화를 이끌고 있다.

수산물을 먹는 방식도 날로 간편해지는 세상이다. 전 세계 대양의 양식장에서 자란 참치, 연어를 밤에 주문해 다음 날 아침이면 받을 수 있다. 훈제된 굴 통조림이나 잘 발라진 게살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첨가물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다. 게다가 우리의 기억 속에는 젓갈 공장의 비위생적인 실태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남아 있다. 이렇듯 가공식품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요즘 명란이 들어간 메뉴가 식당에서 자주 보여요.
일본에서 명란을 빵, 파스타, 덮밥 등에 다양하게 활용하지만 명란은 우리 고유의 식재료이자 숙성 식품이에요. 일제강점기 시절 동해안의 명란을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우리 할머니 세대가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염장한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지니까요.
숙성 명란의 맛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소시지, 햄 같은 육가공품을 완성하는 과정과 비슷해요. 염지할 때 물 온도와 시간을 어느 정도에 맞추는지, 소금과 고춧가루, 육수 등이 섞인 조미액을 어떻게 제조하는지, 몇 도의 온도에서 얼마나 숙성하는지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죠.

한때 적색 색소가 들어간 명란이 논란이 되기도 했죠.
우리나라 시장의 제품은 90% 이상 발색제를 써요. 재래시장의 명란은 붉게 만드는 인위적인 색소를 쓰기도 하고요. 햄도 천연 햄은 색이 옅고 갈변이 되듯 명란도 상온에서 쉽게 갈색으로 변하는데, 색소나 발색제로 붉게 만들어서 이를 억제해요. 가공식품을 분별하는 기준은 역시 첨가물을 확인해보는 거예요. 타르와 같은 첨가물과 색소, 발색제로 쓰이는 화학약품 함유량이 적고 염도가 낮은 상품을 눈여겨봐야 해요. 저희는 자체 부속 연구소의 연구로 소금을 가미하지 않은 백명란을 만들었어요. 또 최근에는 발색제를 넣지 않고 유산균, 과일 발효 추출물로 변색을 막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죠.

가공식품을 만들며 고민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가공식품은 요리에서 출발하잖아요. 식재료와 고도화된 과학 기술을 접목해 대형화·간편화시키는 것인데 상업성에 치중해 맛이 변질되는 것 같아요. 개인이 식재료에 대한 이해 없이 비위생적으로 가공식품을 만드는 일도 우려되고요. 요리로서의 주체성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식재료이자 하나의 요리로서 명란의 위상을 어떻게 회복할지가 제 고민이에요. 저단가로 오래 먹으려고 하는 음식이 아니라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소비할 수 있는 음식으로요. 일본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며 오직 명란을 100년 이상 연구해온 ‘후쿠야’ 같은 브랜드가 참 부러웠어요. 쇼룸이라는 공간을 만든 것도 단순히 판매가 아닌 명란을 요리로 경험하길 바라서였죠.

수산물을 먹을 때면 해양 오염 뉴스가 떠올라 걱정되기도 해요.
하나의 식재료에는 환경, 조리법, 노하우와 연구가 반영된 영역이면서도 문화적 맥락, 사회 이슈 등이 그 맛 안에 다 녹아 있으니까요. 다행히 명란은 수산물쿼터제가 가장 잘 이뤄지는 수산물이고, 중금속 오염 면에서도 안전한 어종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참치, 연어처럼 덩치가 큰 개체일수록 중독도가 심한데, 명태는 다 자란 것도 30~40cm로 작은 편인 데다 명란은 알의 막이 오염을 막기 때문이죠. 또한 러시아, 미국 정부에서는 개체 수도 관리하고 몇 년생인지도 다 분류해 매해 조달량을 계획해요. 앞으로 어떻게 친환경적인 어업을 이루느냐도 수산업 종사자들의 공통 과제고, 다른 어종도 개체 수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환경오염은 수산업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 고민해야 할 과제죠.

plus info

육가공식품은 어때요?
최근 몇 년간 가장 인기 있는 식재료를 떠올리자면 프랑스의 사르퀴트리 같은 숙성 육가공품을 빼놓을 수 없다. 수제 육가공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국내 시장 규모도 2년 전보다 20% 이상 성장했다. 2013년 말 축산물위생관리법을 개정하면서 ‘식육즉석판매 가공업’이 신설돼 소규모 공방이 늘어났기 때문. 수제 공방과 함께 육가공이 익숙한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하는 양도 늘어 베이컨, 소시지 등 종류도 수십 가지가 생겨났다. 한때 아질산염을 포함한 발색제가 들어간 육가공품이 논란이 되었는데, 이제 합성 보존료 같은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이 앞다투어 나오는 수준에 이르렀다. 존쿡델리미트를 포함해 규모 있는 육가공품 브랜드에서는 숙성육과 육가공품을 즐기는 레스토랑 청담동 더미트퀴진을 오픈했고 연이어 살라미뮤지엄도 열 계획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소비자와 꾸준히 교류하며 종류를 하나씩 개발해온 소금집은 공방에서 더 나아가 육가공품을 다양한 요리로 활용하는 쇼룸을 최근 오픈했다. 소금집 공동 대표인 미슐랭 3스타의 캘리포니아 만레사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배운 조지 셰프는 흔한 주사식 염지와 훈연 대신 나무를 직접 태우는 것이 가공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또한 가공 과정에서 소금은 반드시 신안 천일염을 사용한다. “국내산 돼지에는 국산 소금과 재료가 가장 잘 어울려요. 산지 식재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조화죠. 대량생산 제품은 종류별로 필요한 시간을 지키지 않고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찾아 소시지, 하몽 등을 빨리 만들지만, 하몽의 경우 조금 느리더라도 3주에서 최대 1년간 숙성하며 맛을 유지해요. 소비자들도 숙성이 필요한 음식 본연의 가공 과정을 이해하고 즐기는 식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죠.”

노랗게 익기 전의 유자나무

바테

자연에서 만난 맛의 경험이 인생을 좌우한다

거제도 지세포항을 끼고 있는 나지막한 산중턱에 자리한 바테는 40년 넘게 자연 농법으로 일군 농장을 일반인에게 개방한 자연 놀이터다. 방문객에게 쉴 수 있는 오두막을 내주고, 산 곳곳에서 자라는 다양한 수종의 과실나무와 산나물을 채취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지역의 생산자들은 철마다 바테에 모여 플리마켓을 열기도 하고, 요리 연구가들은 산에서 자란 재료로 쿠킹 클래스를 열어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을 마련한다.

도시 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일상에서 나무에 달린 과일을 보는 것보다 떨어지는 혜성을 관측하는 일이 더 쉬울지 모른다. 대부분의 과일은 매끈한 모양새로 예쁘게 패키지 포장이 되어 있거나 같은 규격으로 플라스틱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큰맘 먹고 아이와 함께 근교 주말농장을 찾지만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채소와 과일이 과연 농약에서 안전할까 걱정되고, 바구니 채우기에 바빠 아이가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하는 의문도 든다. 우리는 자연의 식재료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나야 할까.

산 곳곳을 누비며 따고 캐는 경험, 도시에선 쉽게 누릴 수 없어요.
좋은 식재료에 민감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부터 직접 기른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어요. 이곳은 건강한 바람과 햇빛을 쐰 과일을 따고,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닭을 키우고, 한때는 돼지까지 길렀던 가족의 자급자족 농장이었죠. 도시 생활을 하며 맛있다는 음식들은 다 찾아 먹어봤지만 혀가 아니라 몸이 원하는 음식은 따로 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우리만 좋은 곳을 누릴 게 아니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가족이 소중히 지켜온 농장이 있는 거제도로 돌아와 뛰놀 수 있는 교육을 하는 국제학교를 짓고 ‘밭에 가자’는 뜻의 바테도 오픈했어요. 무뎌진 맛에 대한 감각을 자연 가까이에서 느끼고, 표현하고, 공유하는 게 아이들에게도 무엇보다 좋은 경험이죠. 거제도까지 거리가 꽤 먼데도 인근 지역보다 서울이나 도시에서 찾아오는 분들이 많은 편이에요.

모양은 모났지만 늘 보던 과일보다 빛깔이 훨씬 탐스러워요. 자연에서 그대로 자란 농작물은 어떻게 다른가요?
자생적으로 건강한 토질이 만들어진 덕분이에요. 농약이나 퇴비를 주지 않으니 흠집도 많고 크기도 작지만, 스스로 뿌리를 통해 에너지를 더 많이 흡수해 자라죠. 향도 진하고 과육도 단단해요. 당도도 높고요. 또 과수원에 비해 새들이 쪼아 먹은 과일이 훨씬 많은데, 새들이 쪼아놓은 부분을 도려내고 먹으면 더 달아요. 동물이 맛있는 열매를 먼저 알아본다는 자연의 섭리를 느낄 수 있죠. 시중에서 판매되는 과일이나 산지에서 직배송되는 과일도 모양이 일정치 않은 것을 고르는 게 좋아요.

산에서 직접 허브를 따고 먹어보는 방식이 프랑스의 미각 교육과 닮아 있어요.
사실 맛에 대한 감각은 말로 설명되는 게 아니잖아요. 교육 측면에서도 값비싸고 좋은 레스토랑만 가는 것보다 한 끼에 한 재료를 먹어도 직접 산에서 뛰놀고 놀이 삼아 먹어보는 게 좋아요. 숲속에 고사리, 죽순, 칡 같은 약초와 나물이 많아 가족 단위 방문자들 중 저희 부모님 세대는 보물창고 같다고 하세요. 따라온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들은 신기해하고요. 지난 쿠킹 클래스 때 어머니의 레시피로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었는데, 산초와 비슷한 열매인 초피(경상도 말로 제피)로 만든 장아찌가 20, 30대에게서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톡 쏘는 듯 알싸한 맛이 전에 접해보지 못한 낯선 맛이라며 재료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많이들 물었어요. 한번 만들어 먹어보고 싶다면서요. 이렇게 생산지에서 하나의 식재료에 대한 맛을 탐구해보는 경험을 늘려가는 게 중요해요.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껴봐야 ‘나는 이렇게 먹어보고 싶다’는 주관이 생기고, 왜 건강한 맛이 좋은지를 몸소 느낄 수 있으니까요.

박혜란 대표의 어머니 이혜영 씨. 그녀는 농장의 수확물을 혼자 먹던 때보다 나눌 수 있는 지금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삼시 세끼는 어떤 의미일까요?
어머니는 혼자 먹는 한 끼라도 정성스레 차려 드세요. 나물을 뜯어다가 데쳐서, 예쁘게 플레이팅을 해 드시죠. 반복되는 과제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끼니마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즐기고 문화 생활을 하듯 귀중한 과정이라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이 자연에서 식재료를 누리는 경험을 해야 이런 식문화를 지향하는 소비자도 늘어날 것이고,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수요가 있으니 생산 방식을 더 고민해보게 될 테니까요.

새벽 배송 시대에 오히려 고르는 시간을 더 투자하라는 거네요.
느리기는 하지만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저희는 작은 시작이지만 사람들이 일상에서 스스로 건강한 식재료을 찾아가는 데서 영감을 받았으면 해요. 좀 번거롭더라도 찾아가서 지역 생산자가 기른 재료를 직접 보고, 정 바쁘면 플리마켓이라도 가보면서요. 바테를 오픈하고 저 또한 전국 곳곳에서 방문을 신청하는 분들과 함께 본연의 맛을 추구하고 제철 음식을 먹으며 치유받고 있어요. 자연에서 느끼는 건강한 맛에 대한 경험이 일상의 감각을 길러주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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