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과학이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관장이 꿈꾸는 과학관

마음껏 망가뜨려도 괜찮아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관람객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시물을 망가뜨려도 괜찮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과학은 원래 그래야 하는 거라며.

엄마라면 매일 아침 볼멘소리로 아이의 아침잠을 깨우는 것이 좀 미안할 수도 있겠다. ‘나이 먹으니 아침잠이 없다’는 어르신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아이가 유독 늦잠을 자는 이유는 게으른 습관 때문이 아니라,
젊고 어릴수록 밤부터 아침까지 잠을 부르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더 많이, 오랜 시간 분비되기 때문. 이처럼 올해 초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을 펴낸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일상 속에서 과학적으로 생각해보는 태도를 가지면 지레짐작했던 것들이 더 명확하고 간결해진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문을 연 최초의 청소년 과학관인 서울시립과학관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과학 원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과학은 쉽고 재밌는 거야.” 아이에게 말하며 번번이 뜨끔했던 하얀 거짓말은 그만하라고. 이정모 관장은 과학자도 어려운 것이 과학이지만, 그 어려운 과학을 알아가면 생활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는 7년 전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이던 시절 ‘떠들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치운 이후 ‘만지지 마시오’라는 팻말까지 없앴다. 괴짜처럼 보이는 이정모 관장에게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과학을 어떻게 알아가면 되는지 물었다.

“과학도 복지라고 생각해요. 일 년에 한 번 슬쩍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시민이 필요로 하는 장비와 연구 공간이 있는
곳이어야 하죠. 도서관이나 미술관을 가듯이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관을 찾는 날을 꿈꿉니다.”

<방구석 1열>,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알아보는 사람이 꽤 있죠?
방송에서 저를 보고 과학관을 찾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해요.

서울시립관학관에 장강명 작가, 이명현 박사의 강연을 포함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많아요. 과학계의 인맥 부자인가요?
학부 때도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을 흥미로워했고, 워낙 알리고 얘기하는 걸 잘하고 좋아했어요. 과학자 중에는 좋은 콘텐츠를 알고 있지만 어떻게 대중과 만나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과학과 대중을 이어주는 일이 제 소명이죠.

하지만 오히려 초등학생들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서울시가 쉬운 과학관을 만들자고 할 때 곧바로 안 된다고 했어요. 서울시립과학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청소년을 위한 과학관이에요. 청소년이 되면 허세가 생기잖아요. 어린아이들이 오면 괜히 유치해지는 것처럼 느끼고 싫어해요. 하하. 어린이들은 과천과학관, 어린이과학관에 가서 멋지고 웅장한 전시물을 보고 흥미를 기르면 되니까, 학기 중에는 중고생과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요. 지금은 내 아이가 과학을 잘 알기 바라는 마음에 초등학생 자녀와 방문하는 부모도 많고, 학교의 요청도 많아 방학 중으로 한정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지만요.

학부모들로부터 과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나 방법을 알려달라는 질문도 많이 받죠?
수백 번 들은 질문이지만, 저는 남들이 골라주는 책 대신 직접 서점에 가서 세 권 정도 골라 읽어보라고 권해요. 여러 과학 분야 가운데 자기가 어떤 분야에 더 관심 있는지 알게 되죠.

뇌과학, 우주, 인체 순환, 운동에너지 등 청소년을 위한 기초 과학 개념을 참여형 전시물로 만나볼 수 있다.

사춘기이자 학원 다니느라 바쁜 중고생, 과학은 학생 때나 배우고 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성인이 과학관에 관심 갖기 쉽지 않죠.
‘보는 과학관’이 아니라 ‘하는 과학관’이 되면 다를 거예요. 과학 원리를 제대로 알고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곳이어야 하죠. 서울시립과학관은 ‘만지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없앤 만큼 전시물 대부분을 만질 수 있는 설치물로 구성했어요. 메이커 실험실도 만들고, 랩 연구실과 교육실도 많은 편이에요. 흔히 웅장하고 큰 과학관이 좋지 않냐고 하는데, 전시물 관리도 힘들고 관람객은 가서 훑어보기만 하지 깨닫기가 어렵죠. 런던, 파리의 과학관처럼 큰 규모에 전시물이 빼곡한 곳은 역사가 오래됐어요. 과학에 관한 자료가 흔하지 않던 과거에는 과학관이나 박물관을 찾아야만 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인터넷에 훨씬 많은 자료가 있죠. 하하.

제일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중학생들은 로봇 코딩, 고등학생들은 ‘DNA-PCR’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박테리아나 포유류에서 DNA를 추출하고 증폭하는 과정을 가장 신기해해요. 제가 생화학을 전공할 당시는 너무 비싸서 실험 장비를 충분히 마련하기가 어려웠어요. 이제는 조금 저렴해졌고, 비싼 장비라도 과학관에서 하나 구비해두면 여러 사람이 같이 쓸 수 있죠. 나이에 상관없이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해부 프로그램이에요. 두 사람당 하나씩 지급받은 돼지 심장을 해부하면서 어떤 것이 심방, 심실, 대동맥인지 직관적으로 알게 되죠. 아무리 교과서로 배우고 시험을 봐도 알 수 없는 것들을 바로 깨달을 수 있어요. 해부가 끝나면 다시 봉합을 해요. 냄새도 지독하고, 토하는 아이도 더러 있죠. 실험을 위해 생물·화학 폐기물을 처리하는 공간도 만들었어요.

물체의 운동에너지를
실험 중인 아이들.

생각보다 놀랍네요. 이런 프로그램의 운영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저희 과학관에는 지원 교사단이 있어요. 함께 회의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장비가 필요하면 구입하죠. 오랫동안 현장에서 고민해온 교사들과 함께하니 프로그램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죠. 어떤 박물관이든 시민 도슨트를 해온 분들이 그 공간에 대해 가장 잘 알아요. 운영자는 바뀔 테지만 과학관을 직접 이용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죠. 또 과학을 좋아하는 성인들이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나 같이 연구하는 모임을 꾸리기도 해요. 과학관이 시민 활동의 허브가 되는 시티즌 사이언스, 시민 과학이 이뤄졌으면 해요.

책 내용 중 ‘과학은 원래 어려운 것인데 부모는 쉽다고 해서 아이들이 배신감을 느낀다’는 구절에 공감이 됐어요.
과학 원래 어려워요. 수학을 바탕으로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다르니까요. 무작정 과학자의 주변 이야기로 흥미를 돋우고 쉽다고 하기 전에, 과학 언어를 극복하면 생활에서 알 수 있는 깨달음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해요. 그게 제가 부모가 먼저 배우는 과학,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처럼 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이기도 해요. 과학은 쉽지 않잖아요. 저는 과학자지만 DNA 나선 구조를 대학 가서 알았어요. 요즘은 초등학생도 아는 개념이죠. 과학을 지식으로 접근하면 끝도 없어요. 하지만 생각하는 방식이자 생활 태도로 생각하면 아이들도 한발 가까이 다가올 수 있죠.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에세이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우리가 과학을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고, 또 하나는 과학을 알면 세상을 좀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어서예요. 이를테면 사람들은 전자레인지 전자파를 아주 두려워하죠. 하지만 그 전자기파 에너지는 사실 리모컨을 켤 때의 에너지만큼 작아요. 리모컨 켤 때는 ‘피해라!’ 하지 않잖아요. 축구를 잘하려고 해도 처음에는 끊임없이 발차기를 연습하잖아요. 이처럼 과학도 ‘어렵지만 해보자’ 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계속 알아가야 하죠.

그래도 과학관에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어른들에게 한마디.
4차 산업혁명 시대인 현재와 다가오는 미래에 과학만큼 중요한 것이 기술이에요. 과학과 기술을 떼려야 뗄 수 없죠. 공학은 손을 쓰는 일에서 시작하는데, 부모들은 자녀가 과학자가 되기를 원하지 기술자로 만들고 싶어하진 않죠. 소프트웨어는 늘 변하니까, 가장 기본 원리를 배우는 게 중요해요. 모터 기어가 왜 돌아가는지도 알아보고, 망치질과 목공도 해보고요. 부모들이 먼저 보여주는 게 가장 좋겠죠. 엄마들을 위한 목공교실, 아빠들을 위한 자동차정비교실을 여는 과학관을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인기기사
  • 핀란드에서 온 페트리핀란드에서 온 페트리 핀란드 하면 ‘무민’부터 떠올렸던 우리에게 새로운 핀란드 친구가 생겼다.…
  • PADDING GALLERYPADDING GALLERY 패션일까, 아트일까? 패딩이 아티스트와 협업해 환골탈태하고, 새로운 레이어드 법칙까지…
  • THE FIRSTTHE FIRST 새로운 일년이 시작되었다고 알리는 건, 1월 1일이라는 태양력의 숫자와…
  • 하나 사서 같이 쓸까?하나 사서 같이 쓸까? 함께 생활하는 동물과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 서로의 삶을 좀…

MEET 더보기

@styler_mag

Instagram has returned invalid d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