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을 좋아하세요?

레드냐 화이트냐 색을 먼저 논하는 적백 논리의 시대를 넘어 천변만화하는 내추럴 와인의 세계로!

지금은 내추럴 와인을 마실 때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내추럴 와인 바와 시음회 얘기가 들려온다. 대체 내추럴 와인은 무엇인가? 이제까지 우리는 내추럴하지 않은 와인을 마셔왔단 말인가? 일명 컨벤셔널 와인으로 불리는 일반적인 와인은 맛의 균형과 장기 보관을 위해 산화 방지제, 방부제 역할을 하는 이산화황을 넣어 만들었다면 내추럴 와인은 마치 태초의 와인처럼 기계나 약품이 발명되기 전의 방법을 사용한다. 포도가 자라는 토양부터 따지는 오가닉 와인, 제조 과정에서 동물성 물질을 배제하는 비건 와인, 해와 달과 별의 주기를 반영하는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처럼 말이다. 대부분 2~3년 안에 마셔야 하고, 품종으로 맛을 가늠할 수 없는 특성상 라벨에도 산지나 품종, 생산연도를 구구절절 넣지 않는다. 그저 맛과 개성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디자인할 뿐. 아주 소량만 생산되고 지금 이 맛을 다음에 다시 맛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한 계절, 특정 지역에서만 잠깐 맛볼 수 있는 제철 요리를 찾아 먹는 것과 같은 미식이랄까. 마치 해리 포터가 귀지 맛 사탕에 손을 뻗을 때처럼 우연한 즐거움을 기대하며 마시는 와인. 말장난이나 장삿속 같다고? 내추럴 와인을 사랑하는 전문가가 있는 핫 스폿에서 그 매력을 물었다.

재미있게 시작하는 내추럴 와인
슬록(Slok) 이윤경

지난여름, 서울 곳곳에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문을 열었다. 그중에서도 카페처럼 산뜻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던 ‘슬록’은 내추럴 와인만을 소개하는 곳이라고 했다. SNS를 통해 리스트업 되는 내추럴 와인 피드는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맛본다면 그곳은 꼭 ‘슬록’이어야 할 것처럼. 각각 패션 스타일리스트와 익선동 카페 ‘식물’의 주인장이었던 이윤경, 진일환 부부가 이곳 슬록을 운영한다. 이들은 와인의 고장이라 여겨지는 유럽이 아니라 일본에서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맛봤다고 한다.

“일본 기치조지에 갔을 때 마파두부덮밥과 함께 와인을 한잔 주문해 마셨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음식의 향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풍미를 돋워주는 내추럴 와인이었죠. 일본에는 음식 장르를 불문하고 혼자 방문해도 좋은 스탠딩 바 형태의 가게가 많아요. 내추럴 와인을 전문으로 하는 작지만 편안한 공간을 찾아다니다가 서울에도 하나 있었으면 싶어서 슬록을 열게 되었어요.” 편안함을 주된 콘셉트로 하는 슬록 곳곳에는 그녀의 혼술 경험이 녹아 있다. “혼자 와인을 마시고 싶을 때면 술을 잔으로 파는 곳이 반갑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주방과 마주하는 바 자리도 만들고, 그날 유독 맛이 좋고 개성이 다른 와인 세 종류를 골라 잔으로 마실 수 있게 한 메뉴도 있죠.” 그 밖에 내추럴 와인 60여 종을 판매하는데, 메뉴판에는 포도 품종과 산지 대신 그녀가 직접 작성한 테이스팅 노트가 적혀 있다. “내추럴 와인은 품종보다는 토양 관리 방법이나 생산 방식에 따라 맛이 결정되기 때문에 와인의 이름과 가격, 설명만 적어두었어요. 맛을 알고 좋아하는 품종의 와인이라도 산화된 느낌의 소비뇽 블랑이나 밋밋하고 짠 피노누아가 나타나기도 하니 기대했던 그 맛이 아닐 확률이 높거든요. 내추럴 와인은 완벽하게 균형 잡힌 맛보다는 의외성을 즐기는 술이라고 생각해요.” ‘낑깡을 입에 넣고 와락 깨물었을 때 겉껍질의 달콤함과 과육의 톡 쏘는 상큼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그녀 식의 생동감 있는 표현을 읽다 보면 내추럴 와인의 풍미가 그려져 얼른 한잔 맛보고 싶어진다. 그녀가 추천하는 내추럴 와인을 즐기는 법도 일단 마시는 것이다. “일본에 갔을 때 주인장에게 어떻게 내추럴 와인에 대해 이렇게 잘 아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많이 마셔보는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옷도 와인도 많이 입어보고 자주 마셔봐야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내추럴 와인이 가득한 보물 창고
라망시크레(L’Amant Secret) 최은혜

요즘 호텔은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회현동에 있는 레스케이프 호텔 역시 긴 비행시간을 견디지 않아도 충분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 19세기 프랑스 귀족의 궁전으로 시간 여행을 온 듯 화려한 꾸밈새의 이곳을 미식가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도 팬임을 자처할 만큼 다채로운 미식 경험을 전했던 블로거, 일명 ‘펫투바하’로 통하는 김범수 총지배인이 이곳의 모든 식음료 업장을 꾸렸기 때문이다. 서울의 미식가들이 내추럴 와인의 매력을 말하기 시작한 요즘, 이미 150여 종이 넘는 내추럴 와인 리스트를 갖춰 보물 창고와 다름없는, 레스케이프 호텔 최상층에 자리한 컨템포러리 레스토랑 ‘라망시크레’를 찾았다. “내추럴 와인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오는 분도 많지만 모르고 찾는 분도 있어요. 그럴 때는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황이나 보존제, 살균제 등을 넣지 않고 기후, 토양과 같은 자연, 손의 역할만을 거쳤다는 등의 설명을 충분히 한 뒤 기존에 좋아하던 와인 맛을 여쭤봐요.” 최은혜 소믈리에는 와인 리스트의 90% 이상이 내추럴 와인으로 채워져 있는 이곳에서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준다. “일단 요리에 잘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 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대부분의 내추럴 와인은 아무리 진한 품종의 포도를 사용해도 컨벤셔널 와인보다 가볍다고 느낄 수 있는데, 향은 진해도 입안에서는 산미나 미네랄리티라고 하는 톡 쏘는 느낌이 도드라지거든요. 그래서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마시는 분들께는 화이트 와인을 먼저 권해요. 풀 보디의 레드 와인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내추럴 레드 와인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거든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경험한 손종원 총괄셰프는 달콤하게 절인 복숭아와 무화과, 푸아그라를 바삭한 셸 안에 담거나 아스파라거스에 게살을 올리는 식의 제철 재료로 만들어 산뜻한 매력을 풍기는 요리를 주로 낸다. 런치 코스는 6만5000원, 글라스 와인은 2만원, 병 와인은 8만원대부터 선보여 호텔 레스토랑치고는 꽤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요리와 술을 즐길 수 있지만, 내추럴 와인이라고 해서 컨벤셔널 와인보다 저렴하지는 않다. “컨벤셔널 와인은 빈티지가 오래될수록 가격이 오르기도 하지만, 내추럴 와인은 숙성을 계획하고 만든 일부를 빼고는 생산자조차 빈티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그보다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프랑스 쥐라 지역의 갸느바, 보졸레 지역의 필립 장봉 등 그 지역을 이끄는 생산자들의 와인은 값이 더 나가는 편이에요. 또 워낙 소량으로 생산되기도 하고요.” 분기마다 그 시기에 가장 맛이 좋은 와인을 리스트에 올린다는 그녀는 내추럴 와인이 선사하는 퍼포먼스를 좋아한다. “라벨 디자인, 오픈했을 때의 향, 첫 잔을 따랐을 때 보이는 색과 퍼지는 풍미, 시간이 지나면서 맛과 향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내추럴 와인은 오래 숙성시키지 않아도 근사해서 흥미로운 술이에요. 게다가 입안에서는 무척 깔끔하고 음식과도 잘 어울리니 금상첨화죠.”

와인 애호가의 내추럴 와인 고르기
위키드 와이프(Wicked Wife) 이영지

만화영화 <빨간 머리 앤>에서 다이애나가 마시고 취했던 새콤달콤한 포도 주스는 무슨 맛일까? 호주에서 어학연수 중이었던 스물네 살의 그녀는 수백 종의 와인이 진열된 리큐르 숍 앞에서 다시금 와인이 궁금해졌다. 서울로 돌아와 영국 공인 와인인증기관 WSET를 수료하고 와인 전문 매거진에서 일을 시작했다. 출근하자마자 샴페인을 마실 수 있는 신의 직장이었다고. 그 후 와인 수입 유통 회사에서도 일했고, 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신사동에 와인 스튜디오와 가게를 겸하는 공간 ‘위키드 와이프’를 열었다. “퇴사하던 날 즉흥적으로 블로그에 올린 와인 수업이 의외로 반응이 좋고 재미있어서 2년째 계속해오고 있어요. 와인을 잘 알고 싶어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공부하고 마셔보기를 권해요. 많이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신 와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모두의 괴로움이거든요. 머릿속에 와인을 만드는 나라, 특정 생산 지역, 그 지역에 특화된 품종을 10가지 정도씩만 외워두어도 와인 라이프가 훨씬 풍요로워지고 앞으로 살면서 마시게 될 수만 가지 와인을 정리하고 기억할 수 있어요.

” 한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그녀는 내추럴 와인과 컨벤셔널 와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10년 전쯤 와인 매거진에서 일할 때 국내 첫 내추럴 와인 수입사를 운영하던 곽동영 대표가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해요. 내추럴 와인도 그 나라의 지역과 품종을 정확히 반영하는데 그저 인위적이지 않게, 순수하게 만들 뿐이라는 이야기였죠. 저도 지난해부터 파리, 런던, 홍콩, 교토, 오슬로 등지로 여행을 갈 때마다 작정하고 내추럴 와인 바를 순회하며 공부하듯 마셨는데, 결국 와인은 맛있는 와인과 맛없는 와인, 다시 말해 ‘내가 좋아하는 와인’과 ‘좋아하지 않는 와인’으로 구분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별다를 것 없다는 듯 고상한 태도로 내추럴 와인을 즐기는 파리지앵, 과장된 몸짓으로 컨벤셔널 와인을 험담하는 오슬로의 소믈리에까지 그녀가 만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내추럴 와인을 맛봤다. “처음에는 내추럴 와인은 모두 퀘퀘하고 펑키하거나 산화된 톡 쏘는 맛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와인은 생산자가 말해주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제된 것도 있었어요. 저는 후자를 좋아해요.” 좋은 와인은 누가 골라준 와인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고른 와인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가게에서 내추럴 와인도 판매하지만 따로 수업을 열지는 않는다. 맛의 좌표를 정해줄 만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내추럴 와인은 같은 나라와 지역, 품종이라고 해도 각각 독립적으로 느껴져요. 그런데다 맛을 가늠할 수 없는 미스터리하고 자유분방한 라벨 디자인이 특징이죠. 나라, 지역, 품종 상관없이 ‘그거 한 잔’이라고 주문해도 좋을 가벼움, 경쾌함이 인기의 비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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