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라는 새로움, 뉴트로 공간 5곳

요즘 핫 플레이스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와 오래된 공간이 어우러진 ‘뉴트로’의 향연이다. 어른에게는 옛 기억을, 젊은이들에게는 전에 없던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서울 성수동과 문래동 일대를 시작으로 공장이나 창고를 재생한 카페와 복합 문화 공간이 줄이어 등장했다. 영국의 테이트모던이나 발틱현대미술센터처럼, 곳곳에 숨겨진 보물로 자리하는 근대 건물을 갈고 닦아 되살린 공간들이 등장하면서 뭐든지 싹 갈아엎던 우리 도시도 전통이란 걸 지니기 시작했다는 반가움이 앞선다. 최근 서울시는 82년 전 문래동에 문을 연 밀가루 공장 ‘대선제분’을 내년 8월까지 전시와 공연, 카페와 숍, 공유 오피스 등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데 함께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비단 서울뿐 아니라 인천, 부산, 제주 등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게 시도되는 재생 공간은 압도적인 규모에 지역색을 담아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가게 만든다. 시간을 머금은 생김새에 한 번, 과거와 현재의 묘한 조화에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뉴트로 스폿들. 공간이 지닌 옛이야기, 켜켜이 쌓인 시간의 기록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최초 방직 공장의 부활
조양방직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 강화 갑부 홍재묵이 세운 최초의 민족자본 공장, 조양방직. 1960년대까지 인조 직물을 생산하면서 강화군민들의 일터 역할을 했다. 정권이 바뀌며 많은 방직 공장이 대구, 구미 지역으로 이동하고 조양방직도 문을 닫았다. 폐허처럼 방치되던 공장을 강화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지인이 서울에서 빈티지 숍 상심상회를 운영하던 이용철 대표에게 소개해주었다. “좋은데, 안 본 걸로 하자”던 그의 답변이 무색하게 공간은 그에게 “좀 도와달라”고 말을 걸었고 작년 7월부터 1년간의 청소, 정리 끝에 카페 겸 빈티지숍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공간을 되살려야겠다고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결심하기 전부터 마음고생을 해서 지금까지도 힘들어요. 이 공간은 제게 너무 무거운 짐이에요. 이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감회가 새로울 정도죠. 진짜 손이 많이 갔어요. 또 건물을 청소, 정리하면서 겨울을 보냈기 때문에 겨울이 오는 게 무서워요. 영하 18도까지 내려갔거든요. 장사를 떠나서 식물, 연못의 물고기들이 걱정이죠.

카페 안 연못이 이색적이에요.
방직 공장의 염색조예요. 여기에 단무지 공장이 잠깐 운영됐는데, 중앙의 정원은 그때 물탱크로 사용하던 자리예요.

각각의 공간을 어떻게 다시 쓸까 고민하는 일도 쉽지 않았겠어요.
힘들었죠. 그래도 공간을 처음 봤을 때부터 큰 그림은 바로 그려졌어요. 상심상회 큰 문으로 차가 들어오는 상상을 했죠. 예쁜 차에서 남녀 주인공이 내려 연못과 그 위의 다리를 지나오죠. 그러곤 두 사람이 거니는 이 공간은 무도회도 패션쇼장도 될 수 있겠죠. 중앙은 보자마자 런웨이를 떠올렸어요. 이 공간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나길 바라요.

드라마처럼 공간을 이해하고 해석했군요.
바람이 있다면 드라마틱한, 또 화려한 세리머니가 이곳에서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시금 강화에, 또 신문리에 활기가 생겼으면 좋겠고요. 강화의 전성기가 조양방직에서 시작되었거든요. 1933년에 조양방직 때문에 전기, 전화가 들어왔으니까요. 수도권에서 경제의 중심이었죠. 당시 강화는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흥했다가 박정희 정권 때 대구, 구미 쪽으로 섬유산업이 이동하면서 몰락했어요. 쇠퇴가 아니에요. 절벽이 무너지듯 한순간에 몰락했죠. 하지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부수거나 재개발할 여력이 없으니 잘나가던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죠. 그 멈춤 자체가 강화의 자원이라 생각해요. 두 번째 전성기가 다시 조양방직으로부터 움트길 바라요. 인조견을 생산하다가 이제 문화를 생산하는 셈이죠.

80년의 세월을 넘긴 공간을 채우는 20대의 젊은 바리스타들. 이 대표는 공간의 마침표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폐허 같았던 공간치고 골조가 참 튼튼해 보여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그대로죠? 종종 오래되어서 위험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분이 있는데, 트러스 구조 자체가 엄청 튼튼한 데다가 우리나라 소나무보다 더 오래가는 일본 삼나무로 지었어요. 불만 안 나면 2000년도 끄떡없겠죠.

조양방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방직 건물 밖 변전실을 좋아해요. 공장에 전기를 공급하면 심장 같은 곳이죠. 방직 건물에서는 벽이 좋아요. 작품처럼 ‘벽 1’, ‘벽 2’로 이름도 지어줬어요. 울타리도 쳤죠. 남들 눈엔 파괴된 벽처럼 보이지만 제 눈엔 진화로 보여요. 아무도 그릴 수 없는 세월이 만든 그림, 조각이죠.

오래된 것의 매력이 무엇일까요?
무르익는 거죠. 익는다는 표현을 참 좋아해요. 그건 빈티지 숍을 운영하면서 앤티크 제품을 오래 다뤄왔는데, 특히 깨지고 망가진 물건에 관심이 갔어요. 깨진 자국 그대로 영국에서 사서 한국으로 가져온 문을 남자 화장실에 달아놨어요. 저는 이게 그림으로 보이거든요. 불에 타고 그을린 것, 깨진 것, 녹슨 것 모두 그것만의 특징이니까요. 색감, 배열까지 참으로 그림 같죠.

공장, 창고를 재생한 공간이 늘어났어요.
시류처럼 번지는 건 아닐까요. 불교의 윤회사상을 믿어요. 물건이나 공간 같은 물질도 윤회하죠. 예전에 목인박물관 관장님이 도와주셔서 ‘리사이클링’을 주제로 버려지는 물건을 활용해 설치미술 전시를 연 적이 있어요. 그때도 느꼈지만 쓸모없는 물건은 없어요. 다 쓰임새가 있죠. 서울에서 운영하던 빈티지 숍 상심상회를 여기로 옮겨왔고, 그간 모아둔 중국과 영국의 빈티지 가구, 조명 등으로 공간을 꾸몄죠. 인테리어의 마지막은 사람이잖아요. 남녀노소 참 많은 사람들이 찾는데, 젊은 사람이 오면 ‘조금’ 더 기분이 좋죠. 공간이 밝아지니까. 상심상회는 이제 조양방직을 찾아온 손님들의 포토존이 되어버렸어요. 하나도 안 팔려요. 하하. 아내가 주로 카페를 운영하기 때문에 졸지에 실직자가 되어버렸죠.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네요.

화학 공장 건물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코스모40

40년 전부터 인천 가좌동에는 2만3000평 규모의 코스모 화학 공장 단지가 자리했다. 45동가량의 공장들은 우주선, 전투기에서 타이어, 선크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이는 소재인 이산화티타늄을 생산·수출하며 산업화 시대를 이끄는 데 한몫을 해왔다. 불과 2년 전 공단이 울산으로 이전하기로 결정되면서 대부분의 공장이 철거될 즈음 커피 브랜드 ‘빈 브라더스’를 이끄는 에이블 커피 그룹이 공장 한 동을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1~2층을 전시, 공연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만들고 3층은 커피, 크래프트 맥주, 베이커리, 피자 등 로컬 브랜드와 다양한 푸드 브랜드들을 연계함으로써 문화와 예술을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건물의 호수인 ‘40동’에서 착안해 코스모40이라 이름지었다. 브랜드 디렉팅을 총괄하는 성훈식 공동 대표는 공공 예술 작가로 활동하는 양수인 건축가와 고심 끝에, 올해 10월 공장의 옛 바탕은 지켜내면서도 새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완성해냈다.

공장을 개조한 공간은 많지만 이렇게 큰 규모는 처음 봐요.
이 건물은 수직으로 열려 있는 4층짜리 공간이에요. 수평적으로 넓은 공간은 많지만, 위로 1000평 이상 뚫려 있는 규모의 공간은 찾아보기 어려워 흥미로웠죠. 공장의 설비가 다 빠져나가고 남은 광활한 공간을 꼭 살려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코스모40은 빈 브라더스의 기존 카페와 달리 사이드 프로젝트로 봐주길 바라고 만들었죠. 로컬과 연계한 프로젝트나 예술과 관련한 협업을 시도해보고 싶어 두 개 층을 전시실로 꾸렸어요.

빈 브라더스는 강남, 이태원처럼 매우 핫한 곳에 자리해왔죠. 서울이 아닌 인천, 그것도 주거 단지와 먼 공장이 밀집한 지역에 있는 점이 새롭네요.
인천은 대표적인 산업도시였고, 앞으로 산업도시 고유의 매력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근처에 저희 로스터리가 있기도 하고요. 게다가 서울에서 이 정도 규모의 공간을 전시장으로 남겨두기는 불가능하잖아요. 워낙 자본 논리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도시니까요. 인천이라는 지역이 상업적인 측면을 부각하거나, 송도나 청라처럼 살기 좋은 주거 환경을 강조하기보다는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매력을 드러내면 좋겠어요. 맨해튼과 브루클린, 베를린과 옆 도시 함부르크처럼 이 공간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활동하기 좋은 지역이 되기를 바라요.

에이블 커피 그룹의 브랜드 디렉팅을 총괄하는 성훈식 대표.

건축물 구조가 독특해요.
‘옛것은 옛것대로, 새것은 새것대로’라는 모토 아래 일단 무엇이든 살리고 보자는 상황은 피했어요. 새 건물이 옛 건물의 사이에 포개져 관통되는 구조죠. 위생을 위해 음식 만드는 일은 새 건물에서 해요.

공간을 기획하며 도시 재생 연구를 했다고 들었어요.
인천시와도 많은 회의를 거쳤고 양수인 건축가, 신경섭 건축 사진 작가와 함께 유럽의 여러 재생 공간을 방문했죠. 그곳에서 좋은 공간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누리는 모습을 보고 재생보다는 자생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흔히 도시 재생이라 하면 리모델링만을 떠올리는데 그건 하드웨어적인 측면이잖아요. 이 플랫폼을 무엇으로 채울지가 더 고민이죠.

건축 사진 작가 신경섭의 단독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전시관. 2019년 1월 31일까지.

1·2층 전시 공간에선 가오픈 당시 반스 스케이트 보드 행사, 지난달엔 마켓이 열리기도 했죠.
인천을 기반으로 한 셀러들의 마켓이었어요. 앞으로 로컬과 밀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어요. 음악 공연도 열었죠. 대형 소속사보다는 작은 레이블의 아티스트들을 모았어요. 이렇게 큰 공간에서 공연할 기회가 적을 테니까요. 콘텐츠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공간이에요.

브랜드 디렉터는 늘 새로운 걸 접하잖아요.
오래된 것의 가치를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시간이 스며들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이런 공간들은 시간이 지나 감가상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돈이나 마케팅 같은 것들로 복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제 오픈한 지 한 달.
궁극적으로 코스모40이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나요?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 성장할 기회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10년 후쯤 예술가들에게 ‘코스모40를 거쳐가면 성장한다’고 각인되기 위해 노력해야죠.

70년 된 쌀 창고가 플래그십 스토어로
노티스 1950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 혹은 고희(古稀)이라 일컫는 나이 일흔을 넘긴 공간 대교창고. 한때 쌀이나 종이를 보관하며 부산 근현대사에 큰 역할을 해냈지만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폐창고로 전락했다. 이후 2013년 편집숍 ‘안티도트’를 운영하는 부산 브랜드 포니아에 의해 복합 문화 공간 ‘비욘드 가라지’로 부활해 공연, 파티, 론칭쇼 등 핫한 행사 장소로 떠올랐다. 올해 8월 ‘월요일이 기대되는 삶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기획 브랜드 배러먼데이가 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쓰임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도시 재생이 활성화되기 훨씬 전인 2013년부터 발굴, 사용된 공간이죠.
1950년부터 70년간 창고로 쓰였어요. 부산항 앞에 자리한 창고라서 그 의미가 더 특별하죠. 부산항이 온전히 보이는 뷰도 근사하고요. 비욘드 가라지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될 당시엔 행사 기간에만 공간을 개방했죠. 그간 배러먼데이는 피트니스, 박물관, 한옥 타운 등 여러 공간을 브랜딩해왔어요. 이곳이라면 베러먼데이가 해온 일들을 집약한 플래그십 스토어로 꾸밀 수 있겠다 싶었어요. 도시와 바다가 공존하는 부산의 이미지를 알릴 공간을 찾아왔거든요. 거기에 딱 부합하는 공간이었죠.

비욘드 가라지는 정말 핫 플레이스였죠.
그 자리에 노티스를 오픈하면서 부담감도 있었겠어요. 그간 유행에 민감한 이벤트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부산의 폭넓은 문화를 즐기는 공간으로 바꿔나가려 해요. 노티스는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어요. 공간을 알리고, 사람을 알리고, 콘텐츠를 알린다는 것인데 부산에서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그래서 감히 노티스 1950을 ‘작은 부산’이라 지칭하고, 부산에 거주하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완성했죠.

공간마다 콘셉트를 정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1층 비비드 인더스트리는 기존 창고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어요.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여는 공간이죠. 일전에 영화 <심야식당>에서 영감을 얻은 메뉴를 선보이는 소셜 다이닝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좀 더 다듬어진 매무새의 2층은 부산 각지에서 생산된 로컬 푸드를 맛볼 수 있는 ‘저스트 프레시’ 카페 겸 바죠. 부산을 대표하는 로스터리 카페 모모스커피와 초량 845가 개발한 디저트, 복순도가의 술 등을 내놓고 부산에서 나는 재료와 소스를 매일 수급해요. ‘제철’을 키워드로 삼았기 때문에 계절마다 메뉴도 달리할 생각이죠. 공간의 성격, 또 노티스 1950이 자리한 중구가 부산에서 인구는 가장 적고 노인 비율은 가장 높기 때문에 지역의 원활한 흐름, 일자리 창출 등을 이유로 한국관광공사와 부산시, 그리고 중구의 협력 아래 공간을 꾸릴 수 있었어요.

공간 하나가 지역을 바꾼다는 건 엄청난 영향력이네요.
노티스 1950의 다음 행보는 무엇인가요? 재생 건축 공간 브랜딩의 중심은 기존 가치를 없애고 새롭게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콘텐츠를 재해석하는 거예요. 이런 가치를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지속적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죠. 노티스1950과 같은 공간이 많아지길 바라요.

버려진 폐선박 자재를 활용해 화려한 조명을 연출한 끄티의 내부.

전시장이 된 바닷가 옆 공장
끄티

항구도시 부산의 원형을 간직한 채 오래된 선박 공장과 조선소가 즐비한 영도. 조선업이 쇠퇴함에 따라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만 남은 이곳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바닷길 끝에 자리해 ‘끄티’라는 이름이 붙은 복합 문화 공간 때문. 지역 스타트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 콘텐츠 기획 플랫폼 알티비피(RTBP, Return to Busan Port)의 김철우 대표가 1979년에 지어진 공장을 개조한 곳이다. 한때 선박 기자재를 만들던 공장의 간판이 그대로 달려 있을 만큼 해묵어 보이지만 매일같이 전시, 공연, 메이커 활동을 위한 워크숍, 미디어 실험 등 새롭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어요.
어떻게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나요? 저는 기획자로 일하면서 선박 엔지니어링 회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점심시간마다 공장 주위를 산책했는데, 어느 날 공장이 문을 닫은 걸 알게 되었죠. 이후 매일 방문하며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지 상상해왔어요. 늘 지역과 사회, 사람을 이어주는 일을 하고 싶었던 제가 고향으로 돌아와 꿈을 구체화한 공간이에요.

해양 장비를 개발하는 일과 문화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영화연출을 전공해 미디어 아트에 친숙하기도 했고, 고향인 부산의 조선업이 침체되어 어려워진 분위기도 안타까웠죠. 사람들을 모으고 활기를 돋울 수 있는 예술 활동을 기획하고 싶어 예술가, 지역 주민들과 만나며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그 결과 영도 봉산마을 도시재생사업지의 민간 총괄 디렉터를 맡게 되었죠. 아이가 생기면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욕심과 책임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 이유도 있어요. 지속적으로 다음 세대까지 누릴 수 있는 커뮤니티와 공간이 늘었으면 했죠.

인상 깊었던 방문객이 있나요?
이 근처 공장은 다 구조가 비슷해요. 텅 빈 창고에 기기나 장비가 쌓인 형태죠. 바로 옆 공장의 사장님을 초대해서 비주얼 아트 공연을 보여드렸더니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던 어두컴컴한 공장이 작품으로 채워진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셨어요. 농담 삼아 본인 공장도 이렇게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지역이 조금 더 다양해질 수 있는 가능성처럼 느껴져서 기뻤죠.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이나 오브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낡은 기계를 보면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떠올라요. 한때는 5대양 6대주를 누비던 엔진과 기계들이거든요. 제작 오류로 버려지는 선박 자재나 기기들을 활용해 테이블을 만들기도 하죠. 이곳에서 열리는 설치미술 전시, 미디어 아트, 제작 워크숍 등 많은 프로그램이 모두 이런 과거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버려진 리조트 호텔이 베이커리 카페로
새빌

20년 전 새별오름 앞에는 국내 최초로 몽골리안 마상 쇼를 선보이는 그린리조트호텔이 들어섰다. 하지만 12년간 성황리에 운영되던 호텔은 부도라는 불행을 맞아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다. 한 서울 갑부가 지인의 소개로 땅을 낙찰받을 때만 해도 재기 불가능한 폐허에 가까웠다. 새별오름은 매년 들풀축제, 성산일출제가 열리며 사계절 내내 오름을 등반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흉물이 되어버린 호텔을 늘 안타까워하던 임종훈 대표는 이곳의 주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2년 동안 구상해 세상에 하나뿐인 오름 앞의 힐링 카페로 부활시켰다. 임 대표의 제주를 향한 마음과 세월의 흐름, 숨결을 고스란히 담은 채로.

오랜 기간 방치된 건물이라 골조를 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40여 년 전 제주도에 있는 군대에 들어갔어요. 그때 제주 대자연의 매력에 빠졌고 이후에 다시 여행을 왔다가 결국 정착하게 되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산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에 반해 평소 즐겨 찾던 새별오름 앞의 그린리조트호텔을 만나게 된 거죠.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제 눈에는 제주도의 숨결, 오름의 숨결을 고스란히 품은 호텔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게다가 지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본래 골조가 엄청 튼튼해 새로 짓는다고 한들 이보다 견고할 수 없겠다 싶었어요. 기존의 것을 최대한 그대로 남기고 최소한의 선에서 철거를 했죠.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넝쿨이나 이끼는 돈으로도 살 수도 없는 것들이잖아요.

룸 위주의 호텔을 카페로 바꾸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린리조트호텔은 룸 15개로만 이뤄져 있었어요. 건물이나 대지의 규모에 비해 방의 개수가 적었고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어요.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까 고민하다 ‘카페’로 결정했죠. 그런데 지인들이나 관광객에게 물어보면 제주도에는 이미 카페가 많고, 관광지이다 보니 물가가 비싸 밥 먹고 커피까지 마시면 외식비 지출이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가격을 낮게 책정할 게 아니라, 카페에 와서 커피만 마시다 가지 않고 오랜 시간 많은 것들을 즐기고 누릴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 마상 쇼를 했던지라 호텔 터에 말 농장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말을 15마리 사들이고 관리인도 두었습니다. 카페 내부에서도 말을 볼 수 있고, 테라스와 연결된 산책로를 조금만 걸으면 가까이에서 말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리고 공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뷰예요. 사방을 모두 통유리창으로 마감해서 새별오름, 말 목장, 핑크뮬리 같은 대자연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죠. 또 카페가 복층 구조의 2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기존 룸 15개를 모두 철거하고 오픈된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단순히 카페라고 하기엔 위치나 규모가 특별하죠.
이곳에선 고려당, 홍대 퍼블리크 출신의 유명 파티시에가 만든 베이커리와 최고의 바리스타가 만든 음료를 만날 수 있어요. 먼저 빵과 음료로 배를 채우고 나면 자연스럽게 왕복 40분의 새별오름을 산책하게 되죠. 그럼 다시 카페로 돌아와요. 그리고 넓디넓은 테이블 위에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거나 넓은 테라스에서 싱싱카도 탈 수 있죠. 부모들은 큰 유모차를 끌고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고요. 책을 읽거나 일도 하고, 또 말 목장도 구경하고요. 이렇게 하루 종일 카페에 머물러도 전혀 부담 없이 편하게 힐링하고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그러니 단순히 커피값이 아까운 베이커리 카페가 아닌 힐링 센터, 휴식 공간, 쉼터, 혹은 공원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테이블과 데스크 등이 특이한데 모두 제작했나요?
카페 통유리창 너머 풍경이 모두 자연이잖아요. 손님이 들어왔을 때 창밖 풍경으로 향하는 시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웬만한 가구를 모두 건물 벽과 하나인 듯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어요.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 거죠. 틀을 만들고 시멘트를 붓고 바닥과 벽처럼 모두 에폭시 작업을 했어요. 테이블은 사포질을 수차례 반복해 매끄럽게 다듬었고, 시멘트도 몇 트럭을 부었는지 모를 정도예요. 의자는 어느 곳으로든 이동하기 쉽도록 가벼운 고스트 체어, 접이식 스틸 체어를 매치했고요.

2층 공간은 특히 굉장히 유동적이에요. 카페 이외에 다른 계획이 있을까요?
2층은 일부러 이동이 편리한 테이블과 의자를 들였어요. 카페 건물 이외에 약 2만7000평 부지에 폐허가 된 건물 두 동이 있는데, 그곳과도 연계해서 플리마켓, 전시, 공연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복합 문화 공간이 되는 거죠. 새 건물이 아닌 세월의 숨결이 살아 있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누리며 힐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Special Place

82년 된 밀가루 공장, 서울시와 만나다
대선제분 복합 문화 공간
무엇이든 빠르게 새것으로 변하는 서울에서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공간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년 여름 영등포구 문래동에 규모 있는 재생 공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최근 민간기업 아르고스가 서울시와 문래동에 자리한 밀가루 공장 ‘대선제분’을 2019년 8월까지 대대적으로 탈바꿈시키는데 함께 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 1936년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대선제분은 5700여 평이 넘는 대지에 목재 창고에서 제분 공장, 사일로(곡물 저장 창고)에 이르기까지 23개 동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공간이다. 2016년 헤라서울패션위크가 열리기도 한 만큼 이미 주목을 받아왔던 곳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도시 재생 구상안에 따르면 8개 동으로 나누어 다채로운 공간으로 채울 예정이다. 대형 창고는 레스토랑과 갤러리 카페로, 정미 공장은 기획 전시 공간으로, 사무동은 서울의 근현대 산업 역사를 기록하는 아카이빙 전시장으로, 목재 창고에 놓인 기둥은 숲처럼 꾸밀 계획이다.
자료 제공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도시활성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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