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타이거JK

타이거JK는 한결같다. 꾸밈없고 단단하며 모든 일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드렁큰 타이거의 마침표, 결과물은 만족스러운가요?
고되지만 즐겁게 준비했어요. 물론 잘못 생각한 부분도 있었죠. 바뀐 힙합 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거든요. 젊은 친구들의 코드에 맞추고 그들의 소리, 감성을 공부하라는 조언을 무시한 채 팬들을 위해 제 색깔대로 만든 앨범이에요. 수많은 노이즈 속에서도 팬들은 저를 바라봐줄 거라는 자뻑(?) 같은 게 있었거든요. 하하. 팬들이 반가워하면서도 많이 쑥스러워하더라고요. 어린 팬이 많은 공연장은 물론이고 CD 가게에 가는 것마저 어려웠다고요. 그래서 이번 <주부생활> 인터뷰가 제게 중요했어요.

힙합 대부의 답변치곤 의외예요.
힙합이라는 저주? 발라드, 록 같은 다른 장르라면 안 그럴 텐데. 몇 년 사이 힙합이 정말 인기인 데다가 제게는 ‘힙합 대부’, ‘레전드’ 같은 수식어가 붙으니까요. 그런 수식어로 인해 제 팬들과 더 멀어진 기분이죠. 좋아하는 가수라기보다 핫한 음악 장르의 기념비 같은 존재가 된 거예요. 이젠 좋아하‘던’ 타이거JK가 나왔다고 말하니까. 앨범 나온 지 이제 한 달 지났는데 요 며칠 사이 활동 방향을 다 틀었어요. 유튜브나 아프리카 방송같이 많은 사람이 안 보더라도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를 찾기 시작했어요. 유튜버 감스트와의 방송도 제 이야기를 했을 때 바로 피드백이 오는 미디어를 고민하다 찾은 선택이죠.

굳이 드렁큰 타이거로서 마지막이라고 말하지 않고도 타이거JK로 활동할 수 있잖아요. 자연스러운 이별 같은 것 말이에요.
제게 오는 팬레터나 DM의 내용은 참 특별해요. 예를 들면 이번에 공연장에서 만난 팬은 저를 아빠라고 부르더라고요. 고아로 자라면서 나쁜 길로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제 음악을 들으면서 힘든 시간을 싸워냈고 지금은 사업가로 성공했대요. 팬들 중에 그런 스토리를 가진 친구가 참 많아요. 다들 그 시절을 소중하게 생각하죠. 그래서 드렁큰 타이거를 멋있게 닫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나 이제 50이에요.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둔 아빠로서 요새는 이런 음악을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드렁큰 타이거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타임캡슐에 1집부터 10집까지의 멋있는 드렁큰 타이거를 넣고 싶었어요.

마지막 앨범까지 정공법으로 드렁큰 타이거 스타일의 음악을 타이틀곡으로 선택했죠.
롤링스톤스 믹 재거의 음악을 올드하다고 말하기 어렵잖아요. 요새 다시 퀸의 음악이 인기를 끌고 있고요. TV 미디어 속에서 자란 문화를 따라가지 않는 순간 ‘올드하다’는 말을 듣죠.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특히 중요한 장르가 힙합인데도 말이에요.

CD 두 장에 서른 곡이나 담았어요.
제 안에는 계속해서 변하는 타이거JK와 드렁큰 타이거의 색깔을 좋아하는 타이거JK가 함께 있어요. 지금은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평가받는 세상이에요. 두 가지를 다 가지고 가기 어렵죠. 하지만 마지막 앨범이니 끝까지 밀어붙여보고 싶었어요. CD 1은 기존의 드렁큰 타이거 스타일, CD 2는 진화하는 타이거JK를 담았죠. 아, 요새는 CD 플레이어를 가진 사람도 별로 없잖아요. 대신 아이돌 앨범에는 포토카드처럼 소장하고 싶은 장치가 있죠. 그래서 가사만 읽어도 되는 책 같은 앨범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표지도 김정기 드로잉 작가께 부탁했고요.

앨범 재킷 사진 하나하나에 내러티브가 담긴 듯 보여요. 특히 암 투병 중인 아버지 손을 잡고 있는 마지막 페이지 사진은 더더욱.
이번 앨범은 시간 여행에 대해서 담았어요.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시간은 영원하다’는 주제예요. 아버지는 깨끗한 정신으로 가족들과 대화하고 싶다며 투병하는 동안 진통제를 안 드셨어요. 그때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간을 어제, 내일, 오늘로 나누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어제에 대한 후회, 내일에 대한 불안, 오늘의 열심 같은 게 늘 스트레스잖아요. 시간은 나뉘지 않고 영원하다 말씀하셨죠. 열심히 노래하고 랩을 하는 시간은 영원하다고요. 이 앨범은 지난 시간의 회고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미래에서 온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예요. ‘Forever Young’이죠!

타이거JK에게 드렁큰 타이거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러고 보니 한번도 생각을 안 해봤네요. 음, 이번 앨범에 수록된 ‘맨발’ 같아요. 유행하는 멋진 신발을 신은 사람이 맨발로 몸에 좋은 토양 위를 걷는 사람을 비웃죠. 하지만 그 맨발을 이해해준 사람들이 제 팬들이에요. 문희준이 진행하는 라디오 <뮤직쇼>에 갔는데, 담당 PD가 제 팬클럽 ‘타이거 밤’의 부회장을 했더라고요. 제 팬들 중에 작가, 기자, PD가 참 많아요.

저도요. 성공한 덕후죠. 하하.
저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제 팬들은 멋을, 글의 중요성을 아는 분들이 아닐까 싶어요.

타이거JK의 음악, 가사는 참 문학적이에요. 하지만 요새는 스트리밍 서비스, 차트같이 음악산업 자체가 긴 호흡을 원하지 않죠.
아내인 미래도 소속사 필굿뮤직 아티스트들도 그런 것에 대해서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에요. 엄청난 힘을 지닌 유통사와 그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필굿뮤직 아티스트 사이에 제가 있어요. 요새는 유통사에서 돈이 될 것, 안 될 것을 말해줘요. 예전에 기획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일부러 돈이 안 되는 것만 선택했어요. 타이틀곡도 꼭 반대로 골랐죠.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마저 히트곡이 아니었거든요. 솔리드, H.O.T 같은 가수가 100~300만 장 팔았을 때 15만 장 팔았으니까요. 지금도 붐뱁이 하드코어하다고 말하는데 그 시절엔 더 마니악한 음악이었죠. 예전엔 저희만의 길을 갈 때 마니아들이 박수를 쳐줬어요. 그분들 앞에서 공연을 하며 저희만의 색깔을 키웠죠. 요새는 차트아웃되면 발매 이틀 만에 “아, 이 음반 끝났네”라는 말을 듣게 돼요. 대중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만든 음반인데 소통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렇게 말하니까 갈등이 있죠. 끝난 게 아닌데 끝났다고 하니까. 그런 앨범으로 활동하려면 신보가 아니라고 TV 섭외도 안돼요. 그럼 또 앨범을 만들어야 하죠. 그런 방황 때문에 고집이 더 자리 잡았어요.

그런 고집 때문인지 많은 후배 래퍼들이 존경하잖아요.
제가 리더, 선배라 생각해본 적 없어요. 지켜보는 스타일이죠. 그저 제가 겪은 일 중 싫었던 것을 후배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에요. 의식적으로 후배들과 편하게 지내려 했죠. 저는 비비, 주노플로 등 필굿뮤직 친구들의 어시스턴트예요. 그게 정말 좋아요. 그 친구들이 제 음악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으니까요. “표현은 멋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거나 “요새는 이런 단어가 더 쉽게 다가와요”라고 조언해주죠. 선배라고 무조건 따라오는 시대가 아니에요. 오히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많으면 선배죠. 그만큼 파급력을 지녔으니까요. 또 차트 상위권에 있는 사람이 선배예요. 거기에 말려들면 속된 말로 구려지겠죠.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해요. 이번 앨범을 내고 기분이 좋았던 건 후배들에게서 ‘라임이 정말 좋다’, ‘가사가 좋다’는 DM을 받은 거예요. 겉치레 인사가 아니라 진짜 제 앨범에 귀 기울여준 거니 고맙죠.

아내에게는 어떤 남편인가요?
미래한테는 ‘베프’예요. 제가 말이 많아서 가끔 피곤해하죠. 미래는 빨리 요점을 말하는 스타일이고 저는 가사를 쓰듯이 넓고 모호하게 말하는 편이죠. 사실 제 음악이 항상 심의에 걸렸거든요. 어떻게 하면 심의에 안 걸릴까 궁리하느라 생긴 말버릇 같아요. 성병, 권력을 무기로 여자를 성추행하는 남자, 배고픔에 무언가를 훔치는 가난한 사람 같은 이야기를 썼죠. 제겐 중요한 이야기들이었거든요. 영화에서는 모두 가능한 이야기잖아요. 메시지가 좋으면 모두 들려줄 수 있다는 어린 마음에 썼죠. 반발심으로 심의에 대해 소속사랑 방송사에 따져 묻다가 미움을 받기도 했죠.

요새는 그런 가사의 힙합곡이 거의 사라졌죠.
사회문제나 내면에 대해 고민하지만 가끔은 저 역시 취해 놀고 싶어요.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할 수 없어요. 미디어의 힘이 참 크죠. 제가 어느 쪽으로 가든 마니아들은 따라올 거라 제가 미디어보다 힘이 더 크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요. 미디어가 어떤 걸 비추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져요.

<쇼 미 더 머니 6>에서 심사 공정성 등의 문제로 악플에 시달렸죠.
하루에 ‘죽어라’는 메시지가 담긴 악성 DM이 5000개씩 왔어요. 사람들이 <쇼 미 더 머니>를 보는 건 두 달이지만 촬영은 6~7개월간 해요. 밤을 새워서 2만 명을 심사하고, 사흘 밤을 지샌 후 인터뷰를 시작하죠. 힙합 씬에는 오래 있었지만 방송 경험이 적은 제게는 적절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죠. 경험이 많은 심사위원들은 몇 마디만 듣고 탈락을 외쳤지만 저희는 5000명의 랩을 다 들었거든요. 심사를 하면서 모두 굉장히 잘해서 놀랐어요. 하지만 스타일이 다 똑같죠. 옷, 손짓, 펀치라인까지요. 원재(우원재)가 세 번이나 틀렸는데도 뽑은 건 남들과 달랐기 때문이에요. 남들과 다른 목소리를 지닌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로 나갔으니까요. 제가 참여한 이유와 제작진의 프로그램 제작 목적이 분명하게 달랐던 것 같아요. 또 초 단위로 편집되는 방송에 이렇게 말이 많은 제가 들어갔으니. 하하. 혼란의 시기였죠.

그간 한길을 너무 곧게 걸어왔나 봐요.
바보예요. 멍청이. 하하. <쇼 미 더 머니 6> 출연 당시에도 10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는 핑계 대려는, 독해지려는 가사만 썼어요. 내용이 다 비슷했죠. 어느 순간 마지막 앨범에 들어갈 내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업도 공연도 다 멈춰버렸어요. 비지도 저도 삼재였어요. 하하.

다시 음반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함께 오래 작업해온 프로듀서 랍티미스트와 뭉쳐서 프로듀싱에만 몰두했어요. 랍티미스트가 300곡이나 만들었죠. 켄드릭 라마의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To Pimp a Butterfly)>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즈 레코딩 엔지니어상을 탄 영인(David Kim)이 때마침 신혼여행으로 한국에 왔는데 아내분이 미래의 팬이었어요. 신혼여행 기간 동안 저희 부부랑 의정부에 머물면서 음악 작업을 했죠. 그들과 좋은 기운을 나누며 음악을 만들다 보니 저도 모르게 ‘와! 아직도 내가 이렇게 좋은 가사를 쓸 수 있네’ 싶었어요. 그게 ‘뷰티풀(Beautiful)’이란 곡이에요. 다시 이야기가 술술 만들어지더라고요.

결국 우원재도 좋은 아티스트로 성장했고, 드렁큰 타이거의 멋진 마지막 앨범도 만날 수 있게 되었네요.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제게 음악은 생계예요. 벼랑 끝까지 투쟁해야 하는 배고픈 래퍼니까요. 또 하나는 약간의 찌질함? 아직도 팬들한테 처음 앨범을 낼 때처럼 ‘나 잘했지?’ 하며 칭찬받고 싶어요.

처음 무대에 오르던 날 기억하나요?
광주의 억새풀이라는 카페였어요. 관객이 15명 정도 있었는데, 힙합 팬이 아니라 특이한 음악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어요. 헤비메탈, 재즈 같은 걸 좋아하고 옷도 특이하게 입은. 힙합이란 장르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라 어떻게 음악에 호응하는지까지 설명했던 기억이 나요.

그 20년 사이 힙합의 입지가 엄청나게 변했죠. 드렁큰 타이거는 어떻게 변했나요?
그대로인 것 같아요. 꼭 고생을 해야 멋진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닌데, 저는 아픈 경험이 있어야만 곡이 나와요. 그런 기운이 팔자가 된 것 같아요. 무대는 커지고 관객도 많아졌지만 드렁큰 타이거로 마지막 활동을 하는 지금마저 신인 시절의 기분, 마음이 들거든요. 최근엔 일부러 TV 대신 라디오 위주로 출연했는데 작가들이랑 PD들이 라이브 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해요. 1집 때 억새풀에 모여 있던 관객들이 놀랐던 것처럼요.

히트곡이 많죠.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나요?
모르겠어요. ‘편의점’은 깊은 메시지는 없지만 음악의 스토리텔링을 처음으로 깨달은 곡이에요. ‘8:45 헤븐(Heaven)’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울던 목소리 그대로 녹음한 곡인데, 가장 솔직한 모습을 담은 것 같아서 좋아요. 제작자들의 반대로 사진관을 직접 빌려서 셀프 카메라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는데 팬들이 좋아해줬어요.

20년간 반대와 싸워왔네요.
하하. 그러게요. 이제 좀 편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래도 BTS의 RM이 피처링한 ‘타임리스’는 유통사가 좋아했겠어요. 아이튠즈에서도 3개 부문이나 1위를 차지했잖아요.
그래서 마지막까지 비밀로 했어요. 은지원, 하하가 피처링한 ‘손뼉’, 세븐틴 버논이 같이한 ‘범바예’도 마지막에 말했죠. 안 그래도 ‘타임리스’를 타이틀곡으로 하자고 했는데 ‘끄덕이는 노래’를 골랐죠. 가장 드렁큰 타이거다운 노래니까요. 주위에서 타이틀곡으로 꼽는 노래랑 제가 고르는 곡이 항상 달랐어요.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든 곳이 단번에 인기를 끌진 못했죠. ‘몬스터’조차 나온 직후엔 음악 방송을 못 했으니까요. 저는 장거리 주자예요. 이번 앨범 활동도 길게 보고 있어요. 마치 책을 홍보하듯 공연, 팬 사인회를 돌 생각이에요. 그 일련의 과정을 촬영해서 팬들에게 보여주려고요. 1월부터는 음악 방송에 출연할 계획이죠. 이 방법이 실패하면 저는 진짜 바보인 거겠죠?

아버지께서 시간을 어제, 내일, 오늘로 나누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어제에 대한 후회, 내일에 대한 불안, 오늘의 열심 같은 게
늘 스트레스잖아요. 열심히 노래하고 랩을 하는 시간은 영원하다고요.

조단은 몇 살인가요?
초등학교 4학년, 열 살이에요. 응원을 많이 해줘요. 아이디어를 주려고도 하고요. 엄마, 아빠의 일에 관심 없는 척하는 게 멋이라서 무심한 척하지만. 괜히 음악을 크게 틀 때가 있는데 그건 이런 음악, 영상을 만들어보라는 뜻이에요. 요즘 아이들이 어떤 소리나 영상에 반응하는지 알려주죠. “이제 붐뱁은 올드하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열 살짜리 꼬마보다는 올드하잖아요. 곧 조단 또래의 아이들이 문화를 이끌어가겠죠. 이 친구들은 장르가 없어요. 인터넷으로 모든 장르와 세상이 연결되어 있죠. 이 친구들은 어떤 ‘밈’을 발견할 뿐이지 유행이나 올드 앤 뉴가 없어요. 어떨 땐 예전 뉴욕의 붐뱁 음악에, 또 어떨 땐 다프트 펑크의 음악에 빠져요. 조단이랑 음악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조단에게 어떤 아빠일지 궁금해요.
부모로서의 실력은 없어요. 아직도 부모가 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아이와 같이 실험하고 도전하는 스타일이죠. 미래가 무서운 역할, 저는 바보 역할이에요.

래퍼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티스트에게 결혼은 좋을 수도, 힘들 수도 있는 일 같아요. 파트너가 생기니까 표현의 범위가 줄어들기도 하죠. 제가 하는 표현, 발언이 미래와 조단에게도 영향을 주니까요. 어디가 선인지는 밟아봐야 아는데 그걸 밟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반대로 아티스트에게 사랑과 전쟁은 좋은 자극, 재료예요. 미래랑 아직도 신혼 같아요. 음악 하면서 친구로 만나 지금까지 함께 활동하니 신혼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없었거든요. 시간 여행을 하면서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기분이에요. 서로 여자친구, 남자친구 같아요.

아직도 의정부에 살죠?
홍보대사죠. 하하. 미래의 가족이 의정부 토박이예요. 어딜 가든 미래 어머님의 친구, 친척분들이 있어요. 의정부가 서울에서 가깝지만 사람들에게 멀게 느껴지는 것도 좋아요. 도시와 자연이 함께 있죠. 외국인이 많이 살아서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고요. 저와 미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홈타운 같아요. 저희를 연예인이 아니라 지역의 아티스트로 바라보시죠. 앨범이 나오면 카페에 진열도 해주시고요.

주노플로도 의정부로 이사했다고 들었어요.
미국에서 와 처음에는 홍대 앞에서 지냈어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남들과 음악색이 비슷해지는 게 독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오지 말라고 했는데 이사했어요. 마샬, 주노플로, 비비, 프로듀서, 피아니스트까지 필굿 밴드가 다 의정부에 살아요. 재밌는 커뮤니티예요. 영화 속 괴짜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 같아요. 매일 파티를 하는 느낌이죠. 음악이 항상 만들어져요. 기운이 정말 좋아요.

앞으로 우리는 어떤 모습의 타이거JK를 만나게 될까요?
BTS가 세계에 케이팝을 알린 것처럼 저는 케이합(K-hop, 코리언 힙합)을 알리고 싶어요. 제가 유명해지겠다는 말이 아니라 케이합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개인적인 욕심으론 주노플로와 미래가 그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요. 하하. 또 하나는 1집 억새풀 공연 때처럼, 또 책 세일즈맨처럼 구석구석 다니면서 팬들을 다 만나고 싶어요. 제게 드렁큰 타이거는 추억의 의미가 커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요.
팬 사인회에 아이와 함께 오신 분이 정말 많아요. 팬들이 이젠 엄마가 되었더라고요. 힙합이 어린 친구들의 문화가 되었다며 즐기기 부끄럽다는데, 사실 힙합은 그분들이 시작했죠. 제가 힙합 대부라고 불리는 것도, 여기까지 온 것도 다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음악을 즐기는 건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잖아요. 누군가가 “요새 어떤 음악 즐기세요?” 하고 물을 때 “드렁큰 타이거요”라고 답하는 것, 얼마나 멋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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