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교와 사와디밥

차분한 목소리와 점잖은 매너. 김민교는 배우일 때 가장 자연스럽고, 사업가일 때 자못 진지하다.

흔히 배우라는 직업을 스케치북에 비유하지만 김민교는 물 같다. <SNL>에서는 무엇이든 잘 흉내 내고 웃음의 포인트를 찾을 줄 아는 희극배우라는 것도 그렇지만 다시 무대 뒤의 연출가로서, 드라마 속 배우로서 등장할 때 누구도 의아해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서 그렇다. MBC 드라마 <아이템>을 통해 다시 배우로 돌아온 그는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태국 음식을 파는 요식업 사업가이기도 하다.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라고요.
<아이템>이라는 드라마를 지금 촬영 중이고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라는 사전 제작 드라마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방송 이미지보다 차분한 느낌, 드라마 촬영 중이라 그런가요?
아니에요. 원래 그래요. 다들 <SNL>과 예능에서의 모습에 익숙해서 평상시에도 그런 줄 아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연극배우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희비극을 가리지 않고, 희극을 하게 됐을 때 그 역할에 충실할 뿐이에요. 그때그때 분위기에 맞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학에 다닐 때 연기를 가르치시던 교수님이 너희를 왜 뽑았는지 아냐고 물으신 적이 있어요. 끼 때문에 뽑았다고 하시면서, 잘 나서고 까불고 그런 게 끼가 아니라 진짜 끼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라도 거기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맞는 말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맞춰 살고 있죠. 진지해야 하는데 까부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야 할 자리면 들어주고, 이 자리는 내가 웃겨야겠다 싶으면 웃겨주고요.

그래도 정극 배우 출신으로서 <SNL>의 코믹 연기는 파격적이었어요. 이런 것까지는 하지 말걸 하고 후회한 적도 있나요?
없어요. 전에는 노가다는 해도 연기로 아르바이트하는 것만큼은 피할 정도로 정극 배우로서 일말의 자존심 같은 게 있었어요. 아동극이나 퍼레이드 같은 건 너무 과장되어 있고 진실이라기보단 연기를 파는 듯 느껴져서 그렇게 보여지는 일도 기피했을 정도로요. 그런데 그게 <SNL>을 하면서 다 깨졌어요. 온갖 사람과 동물, 텔레토비나 피카츄 같은 캐릭터까지 안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유명 배우를 흉내 낸다거나 그런 건 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는데, <SNL>에서는 남들 엄청 따라 하고 시키는 건 다 했죠. 하하.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들은 다시 진지한 배우 김민교를 보여줘야겠다는 결심인가요?
<SNL>을 할 때나 정극 연기를 할 때나 기본은 늘 같다고 생각해요. 상황과 인물이 다를 뿐. 제가 직접 연출을 하거나 학생들에게 연기를 알려줄 때 그런 얘기를 자주 해요. 연기에 정답은 없다. 대신 그 팀이 원하는 연기가 정답이다 하고요. 나한테 배웠기 때문에 다른 팀에 가서 여기서 배웠던 게 정답인데 왜 이렇게 해? 하지 말고 거기 가면 거기 맞게 원하는 걸 맞춰 일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태국 요리를 만들어 ‘사와디밥’이라는 푸드트럭을 열었죠. 이제 ‘사와디밥’은 본격적인 사업이 되었나요?
네, 고맙게도 사업이 됐어요. 제가 요즘 두 가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하나는 태국 음식인 팟카파오무쌉을 만들어 파는 ‘사와디밥’이고 다른 하나는 강아지 미용용품인 ‘펫올라잇’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사업을 하려고 아이템을 찾는데 둘 다 마치 일이 절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강아지를 좋아해 키우다 보니 지인을 통해 ‘이건 정말 알려야겠다’ 싶은 물건을 만나게 되었고, 사와디밥도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할 줄 아는 음식이 뭐 있냐고 물으셔서 음식을 하긴 하는데 이왕에 <골목식당> 나갈 거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태국 음식을 직접 가서 배워오겠다고 했거든요.

방송을 보면 백종원 대표에게 칭찬을 많이 받던데, 사와디밥 사업에도 그의 도움이 있었나요?
원래 안 그런다는데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먹어보기 전에는 혼 좀 내줘야겠다 하셨대요. 그런데 막상 맛보고는 잘했다, 정말 놀랐다고 하면서 힘이 많이 되어주셨죠. 가게 내려고 만든 거냐고 묻기도 하셨는데 그땐 진짜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요식업은 신념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내가 할 수 있겠나 싶어서요. 그럴 생각 없다고 했더니 “이거 하지 그래?” 하시면서 제가 만든 팟카파오무쌉이 일본에서는 직장인들이 점심에 먹는 도시락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꼭 해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백화점에서 직접 요리를 하며 팝업 매장을 운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요식업이 정말 힘든 작업이라 제가 공부를 많이 했어요. 사와디밥을 하기 전이 제 나름의 슬럼프였거든요. 스스로 연기를 즐기지 못하는 것 같고 ‘예전엔 80시간 넘게 잠을 못 자고 일해도 버틴 것 같은데 최근엔 하루 이틀 밤을 새워도 왜 이렇게 힘들지?’ 하는 생각을 좀 하던 시기였죠. 그런데 <골목식당> 방송으로 장사를 해보니 진짜 죽을 만큼 힘들더라고요. 방송은 끝났지만, 팝업 매장을 여는 날은 새벽에 일어나서 재료 준비에서부터 장사 마무리까지 하루를 꼬박 다 쓰고 잠만 간신히 자요. SNS에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잘하자는 얘기를 적기도 했는데, 12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와중에 규율도 아주 많더라고요. 고객 앞에서 물 마시면 안 되고, 걸터 서 있어도 안 되고, 쉬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으니 사람 없는 복도나 비상구 같은 데서 잠깐 앉아 조는 식이에요.

그렇게 힘든데도 가족까지 함께 팝업 매장을 여는 이유가 있나요?
너무 힘들지만, 그래서 원래 제가 하던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오히려 역으로 에너지를 받고 있어요. 그리고 가족들은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요. 제가 대표지만 돈을 더 받지 않고 똑같은 비율로 수익을 나누거든요. 특히 어머니는 저 공부시킨다고 식당에서 일 해보신 적도 있는데, 남의 집에서 일하는 거랑 아들이 하는 데서 일하는 건 기분이 굉장히 다르니까 신나 하세요.

사와디밥의 큰 그림은 뭔가요?
앞으로 가게도 열고 HMR(가정식 대체식품) 같은 것도 만들 예정이에요. 지금은 팟카파오무쌉이 대표 메뉴지만 팟타이나 푸팟퐁커리 같은 한국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메뉴도 해보고 싶고요. 무엇보다 태국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에 태국 음식을 즐기게 하고 싶어요. 서울의 태국 음식은 현지보다 10배는 비싸서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면 비행기표 값이 나오겠다 싶을 정도거든요.

뭐 하나에 꽂히면 깊이 빠지는 것 같아요. 다른 일을 하며 배우 김민교를 잃어버릴까 걱정되지는 않나요?
동시에 두 가지를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참 고맙게도 다른 일에 꽂혀 있다가도 연기를 해야 하면 그건 할 수 있어요. 20년 넘게 꽂혀서 정말 오랜 시간을 투자했거든요. 더 잘하고 싶고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연기에 미친 사람처럼 살았던 것 같은데, 그런 시간을 보내며 고맙게도 많이 자유로워졌고 연기할 때 스트레스나 부담이 없어요.

역시 김민교에게는 연기가 가장 익숙한 옷이네요.
다른 일이 연기에 방해가 되었다면 못했을 거예요. 이제 희극 연기 쪽으로는 톱이 되었으니(웃음), 정극 연기를 할 때 뭔가 보여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죠.

한 해를 보내며 어떤 생각을 했나요? 2019년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이 있나요?
지난해에는 고정으로 하던 <SNL>이 연초에 마무리되었고, 대신 해보지 않은 낯선 일들이 많았어요. 서툴러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그래서 더 정신없이 지나갔죠. 하지만 사와디밥도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도 다 올해를 기다리며 준비해온 일들이니까 슬슬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요. 막 다 거둬들였으면 좋겠어요. 하하. 그간 뿌린 씨앗을 열매로 거둬들이는 농부의 가을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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