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삽니다

콜롬비아 작가 남편이 쓰고 한국인 아내가 번역한 ‘한국이라는 흔들리는 외줄에서의 균형 잡기 기록’.

종종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궁금해진다. 그런 마음을 안고 서점에서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의 《한국에 삽니다》를 집어 들었다. 한국인 아내와 이태원에서의 1년을 일기처럼 담았다. K-팝, 한식, 한옥에 대한 칭찬 일색의 글과는 분명 다르다. 정규직이 된 계약직 직원이 회사 사람들에게 정성스럽게 포장한 떡을 돌리고, 택시 기사들이 잠깐 휴식 시간에 자신의 밥벌이 수단인 택시를 도구 삼아 스트레칭을 하며, 세계에 문화유산처럼 물려줄 배달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 그는 건달 영화를 보며 ‘X발!’이라는 욕설을 배운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자신을 적는다. 그리고 그런 그의 글을 아내 이수정이 다시 번역했다.

칠레에서 먼저 출간돼 콜롬비아 도서관 소설문학상을 받았어요. 에세이인가요, 소설인가요?
(안드레스) 다른 후보작들이 문학 작품이라서 소설문학상이라 표현했는데 내러티브 문학상이에요. 에세이지만 소설적인 내러티브, 묘사가 강해서 경계가 모호한 작품이라는 것이 총평이었어요. 모두 한국에 와서 제가 경험한 이야기예요.

아내가 남편의 작품을 번역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수정) 전문 번역가가 아닌 제가 번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고 중간에 모르는 부분은 남편에게 바로 물어 더 좋은 표현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게 글을 만질 자유가 있었다고 할까요?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쓴 글을 제게 맡겨서 고마웠죠.
(안드레스)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썼기 때문에 처음엔 무슨 말을 쏟아냈는지도 몰랐어요. 또 이전에 쓴 원고를 조각내 재배치했거든요. 그래서 일기처럼 몇 월 며칠을 기재하지 않았죠. 편집본을 읽으며 수정이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신경 쓰진 않았어요.

안드레스는 원래 기자로 일했다고요.
(안드레스) 문학 전공을 하고 문학 교사, 교수를 제외하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죠. 졸업 후 8년여간 콜롬비아의 <크로모스(Cromos)>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어요. <주부생활>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을 때 한국에서 역사가 오래된 잡지라 옛날 표지까지 찾아보면서 좋아했죠. <크로모스>도 100년 가까이 된 주간지였거든요.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때는 현장 취재를 하면서 르포 형태의 기사를 많이 썼어요. 복싱 선수부터 투우사, 범죄에 연루된 미스 콜롬비아까지 인터뷰했죠. 문화, 예술, 사회 전반을 다뤘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07년에 처음 잡지사 배경의 소설을 쓰게 되었어요. 《한국에 삽니다》를 쓰는 동안에도 콜롬비아, 스페인, 남미 언론사와 미국 <뉴욕 타임스> 등에 기고를 했어요. 지금은 ‘소설가인데 기고도 하죠’ 또는 ‘잡지에 글 쓰는데 소설도 출간했죠’라고 말해요. 규정짓지 않고 여러 갈래의 글을 쓰는 게 좋아요.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콜롬비아, 스페인 등에서 살았다고 들었어요. 두 사람 모두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했군요.
(안드레스) 다른 나라에 산다는 건 편견을 하나씩 깨는 일, 혹은 편견과의 싸움이라 생각해요.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외로움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죠. 그게 낯선 나라에서 사는 방법인 것 같아요. 제게 한국은 글 쓰는 곳이에요. 콜롬비아에선 비즈니스 미팅도 잦고 친구나 가족도 계속 만나야 하니까요. 한국은 긴장감과 불안감이 강하지만 제게는 굉장히 고요한 나라예요. 여기선 일요일 밤에 월요일을 떠올리며 불안해하지 않죠. 월요일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수업을 하지만 괜찮아요. 콜롬비아에선 일요일마다 죽을 듯 불안했는데 말이죠. 하하.
(수정) 콜롬비아에서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었지만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빈부 격차가 심한 탓에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계급이 있죠. 중간이 없다는 게 참 힘들었어요. 3000원짜리 식당과 3만원짜리 식당만 있죠. 중간의 선택지가 없어요. 결국 지인들 때문에 또 분위기, 안전 등을 이유로 3만원짜리 밥을 먹어야 해요. 그렇다고 3만원짜리 밥이 엄청 그럴싸하지도 않아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출신, 학교, 집안, 경제력 등으로 구분 지어 바라보죠. 문화, 예술을 포함해 사회 전반이 닫혀 있는 분위기예요.
(안드레스) 어떠한 특정 그룹에 속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죠. 한국에 와서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래서 더 관찰자 시점으로 한국을 바라볼 수 있었겠죠?
(안드레스) 맞아요. 거기다가 한국어를 못하니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죠. 오늘 아침에 발견한 건데 한국 어르신들은 자신의 발보다 한 사이즈 큰 운동화를 신는 것 같아요. 빨리 신고 벗기 위함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사소한 것들을 늘 발견하죠.

그럼에도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했겠죠.
(수정) 1년간 스페인에서 살 당시엔 저는 대학원생이라 수입이 없었어요. 세계 어디에서나 글을 쓸 수 있는 남편이 생계를 담당했죠. 그간 제가 모아둔 돈을 다 썼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부산의 저희 부모님 집에서 잠깐 머물게 되었어요. 하지만 6개월이 넘어가면서 불안감이 증폭되었죠. 어찌 되었든 서울로 가자는 마음으로 올라왔어요.
(안드레스) 서울에 왔을 때 불안감이 만만치 않았죠. 하지만 작가로 살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 제가 싸워야 할 문제였어요.

일상을 글감으로 삼는 건 쉬우면서도 참 어려운 일이죠. 솔직한 내 마음을 써야 하니까 말이에요.
(안드레스) 습관적으로 메모를 해요. 《한국에 삽니다》의 원제목은 《흔들리는 외줄 위에서 쓴 메모들》이거든요. 항상 메모를 했고 단락이 짧아서 쓰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어요.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에는 눈뜨자마자 ‘오늘 뭐 쓰지?’라는 생각이 기분 좋은 아드레날린처럼 맴돌았어요.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하죠. 외국인의 한국 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도 계속 나오고요.
(안드레스) 당연한 일이죠.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콜롬비아 사람들도 비슷해요. 역사적인 맥락이 닮았거든요.

한국과 콜롬비아가 닮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나요?
(안드레스)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국가 대 국가로 생각하기보다 개인을 관찰하거나 제가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니까요. 정치적인 사회현상은 참 닮았어요. 재미있게도 콜롬비아가 전체 남미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진보 진영의 대통령이 없는 나라예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편을 이뤄 싸웠는데 전쟁에 패배하면서 친미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게 되었어요. UN에 들어가 한국전쟁에도 참전했고요. 동시에 내전으로 게릴라가 생겼고 지금까지도 보수 진영에서는 게릴라 집단을 공산당, 좌파로 적대시하면서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한국 문학도 많이 읽죠?
(안드레스) 번역원에서 감수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꽤 많이 읽어요. 완벽한 번역본은 아니기 때문에 코멘트를 하긴 어렵지만 제일 재미있게 읽은 건 박민규, 오정희 작가의 작품,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이에요. 천명관 작가의 《고래》는 너무 많이 들어서 꼭 읽고 싶은데 번역서가 없어서 아직 읽지 못했어요. 건조한 번역체의 문제인지 몰라도 제가 읽은 대다수의 작품이 가족·부부 관계도, 삶의 의욕도 무너진 중산층의 이야기예요.

그래서일까요. 책에 ‘한국 문학은 사실주의에 허덕인다’고 적기도 했죠.
(안드레스) 한국에서 작가가 되거나 책을 내려면 등단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 문제인 것 같아요. 심사위원이 좋아하는 작품을 쓰기 마련이니까요. 심사위원이 좋아하는 글을 또 평단, 대중이 좋아하죠. 처음부터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없는 구조가 아닐까 싶어요. 최근에 서유미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데 이런 흐름과는 다른 스타일이라 인상적이었어요.

소설가와 번역가를 한자리에서 만났으니 한국 문학 작품 번역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한강 작가의 작품이 논란을 빚기도 했죠.
(안드레스) 한강 작가의 작품은 스페인에서도 상을 탔어요. 큰 문제가 될 정도로 의역은 아니었다고 봐요.
(수정) 남편의 책을 번역하면서 저희도 번역에 대해서 참 많은 이야길 나눴어요. 어쨌든 잘 읽히는 책으로 번역해야 하니까요. 문체와 디테일을 살려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책이 전체적으로 가져가는 스타일, 주제를 표현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안드레스) 오히려 ‘해외에서 인정받으려면 한강 작가처럼 써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 젊은 작가들이 있을까 봐 걱정돼요.

부부가 하나의 작품을 쓰고 번역하는 건 어떤 작업일까요?
(수정) 사실 함께 작업을 하면서 엄청 자주 싸웠어요. 하하.
(안드레스) 사람들은 흔히 책을 쓰는 게 작가 혼자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게는 쓰고 난 이후에 편집자, 번역가의 의견을 받아서 매만지는 일도 중요하거든요. 영국에서는 편집자가 작품에 개입하는 게 흔한 일인데, 남미에서는 작품은 작가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건드리지 않아요. 이 책은 칠레 출판사에서 아르헨티나 편집자와 많은 소통을 하면서 만들었어요. 아내와의 작업이 좋았던 건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같이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거예요. 물론 이야기 곳곳에 아내가 담겨 있고요. 모두와 완전한 협력 상태에서 만들었다는 게 의미 있죠.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안드레스) 서로가 하는 일을 존경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수정) 서로 참 많이 이야기해요. 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죠. 지금 저는 공연 기획자로 일하고 있어요. 적어도 5년은 일에 좀 더 몰두해야 하죠. 남편의 외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작가의 ‘주부생활’이네요.
(안드레스) 집에서 글 쓰고 청소하고 밥하는 일이 좋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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