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처음입니다만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한 손에 큐시트를 드는 대신 곰돌이 잠옷을 입고 동화책을 읽는다. 백일이 갓 지난 딸의 아빠이자 유튜브 채널 <아빠곰TV>를 운영하는 한석준의 현재다.

전래동화 같은 고전 동화책에서 남녀차별이 너무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딸을 낳으니
전에는 생각지 않던 문제에 예민해져요.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도 몹시 민감해졌죠.

말끔한 개인주의자일 것 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유튜브에서 곰 코스튬을 입은 모습은 그래서 더 의외였죠.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면서 자연히 동화책에 관심이 갔어요. 태교에도 좋을 것 같고, 아이에게 책 읽어줄 시간이 없어 보이는 선배 아빠들을 보며 ‘바쁜 부모들을 대신해 내가 책을 읽어주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죠. 아동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서 책을 골랐어요. 책을 제 본래 목소리로 진중하게 읽기보다는 친근하게 변화를 주자 싶었죠. 확실히 전 잘 안 망가질 것 같은 이미지가 있나 봐요. 저는 별 생각이 없는데 주변 사람들, 제작진이 유독 저를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하죠.

안 망가지는 게 상대적으로 더 멋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좀 안 어울리긴 하죠. 그런데 전 망가지는 데 덤덤한 편이에요. 까탈스럽지 않고 무던한 사람이죠. 웬만한 영화나 책은 다 재밌어하고 음식도 뭐든 맛있게 먹는 편이에요. 그래서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제가 재미없다고 하는 영화는 진짜 재미없는 영화라고 할 정도였죠. 밖에서는 늘 슈트를 차려입는 걸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입어요. 스웨터를 참 좋아하는데 이젠 아기 때문에 면 티셔츠만 입어요. 어제도 할인하는 면 티셔츠를 여러 장 샀어요.

유튜브 채널을 연 연예인이 많지만, TV라는 가장 전통적인 매체로 시작한 아나운서가 뉴미디어를 시작했다는 점이 신선했어요.
다양한 영상 보기를 좋아해요. 친한 제작사 피디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하고 도움도 받고 있죠. 크리에이터인 도티나 대도서관에게 어떤 채널이 재미있는지 물어보기도 했고요.

1년에 책을 100권도 넘게 읽는 다독가라 들었어요. 동화책도 좋아했나요?
예전만큼 책을 많이 읽진 못해요. 전엔 동화책에 관심이 없었죠. 다들 모르시겠지만, 몇 년 전 《삼국지》에 나오는 전쟁터와 도시를 돌며 쓴 여행기를 출판하기도 했어요. 하하. 책을 주로 구매하는 여성분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해 3000부만 인쇄하고 말았지만요. 워낙 세상의 이야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드라마, 영화의 시나리오와 각본을 출판하는 출판사도 운영하고 있어요. 사실 집안의 영향도 있죠. 아버지께서 단테의 《신곡》을 국내에 최초로 번역해 들여오신 분이니까요.

아이들을 상대로 책을 읽어주며 변화된 점이 있나요?
전래동화 같은 고전 동화책부터 시작했는데 내용에서 남녀차별이 너무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여자아이들은 시집가면 끝이고. 그래서 요즘 작가들의 책 위주로 읽어볼 생각이에요. 딸을 낳으니 전에는 생각지 않던 문제에도 예민해져요.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몹시 민감해지고 분노 수치도 올라갔어요. 더 강력히 처벌했으면 좋겠고요.

최근 아이와의 일상도 업로드하기 시작했죠?
가장 기본적인 목욕법, 분유 타는 법에서부터 고속버스터미널 화훼 시장에서 백일상 준비하기 등을 올렸죠. 방송인은 사생활이 알려질 수밖에 없는 직업이지만, 지난 20년간은 되도록 노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아기가 태어난 뒤로 확 변했어요. 이전에는 SNS에 같은 사진이 반복되는 걸 보기가 싫어 음식 사진이나 아기 사진을 많이 올리는 친구 계정을 끊기도 했죠. 그런데 요즘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저 자신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걸 인정합니다.

육아에 많이 참여하는 편인가 봐요.
아내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바깥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본격적으로 육아가 시작되죠. 저희 아이는 배고픈 걸 특히 못 참아서 마치 나라 잃은 사람처럼 울거든요.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대령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처음엔 분유 타는 일이 손에 익지 않아 온도가 제각각이었는데, 어느 온도에서 어떻게 섞어야 최적으로 잘 섞이는지도 연구해봤어요. 그걸 찍어 업로드하기도 했고요. 전 기저귀도 정말 빨리 갈아요. 조만간 이 비법도 공유할 생각이에요.

아이와의 일상을 공유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다른 아빠들도 비슷한 마음일 텐데,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아빠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이유가 가장 커요. 또 후배 아빠들과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육아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들었어도 막상 아기가 태어나면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에 당황하곤 하죠. 저도 매 순간 처음이라 당황스러웠고, 그래서 아기 낳기 전에 아내를 대신해 뭘 준비해야 하는지, 낳고 나서는 뭘 대비해야 하는지 아빠의 시선을 담아 알려주고 싶었어요.

마흔다섯, 늦깎이 아빠가 된 기분은 어떤가요?
아주 큰 기쁨을 얻었고, 아주 큰 걸 잃었죠. 잃은 건 내 시간에 대한 자율 결정. 살면서 처음으로 쉬는 날이나 내일 뭐 할지를 계획하는 게 무의미해지기도 했고요. 그래도 아이가 웃을 땐 힘든 걸 다 잊어요. 누가 날 보고 웃어주는 게 이렇게까지 좋을 줄 몰랐어요.

요즘은 육아 대디들이 참 많아졌어요.
육아휴직을 쓴 친구들도 점점 늘어나고, 여가 시간이 생기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아빠도 많아요. 예전에는 아빠들이 육아를 별로 책임지지 않아 아빠 카페가 필요 없었지만, 요즘은 필수죠. 아빠들의 연대가 필요하고, 정보 공유처도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내가 포토그래퍼라고 하는데, 일상이 인생사진으로 남나요?
어마어마하죠. 큰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하. 둘이 데이트를 하다가 갑자기 ‘저기 서봐’ 할 때는 무조건 빨리 뛰어가야 해요. 정말 멋있는 사진이 나오거든요. 같은 공간에서도 제 눈에는 안 보이는 것들, ‘저기 저런 게 있었어?’ 하는 것들을 아내는 본다는 게 재미있어요.

요즘엔 둘만의 데이트를 하기 어렵겠어요.
결혼하기 전부터 일주일에 하루는 둘이 놀자고 정했어요. 장모님 찬스를 쓸 때도 있어 감사하죠. 회, 간장게장, 훠거 등 아내가 임신 기간 동안 먹지 못하고 적어놓았던 음식을 함께 하나하나 먹으러 다녀요. 결혼 생활은 마치 정원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에 공감해요. 정원은 자꾸 가꿔야지 안 가꾸면 황폐해지고, 정글이 되겠죠. 계속 아름다운 정원으로 남고 싶으니 제가 더 노력해야죠.

한때 <라디오스타>에서 비혼주의자를 표방하며 싱글의 삶이 편하고 잘 맞는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정말 달라졌네요.
결혼 기사가 났을 때 수십 명의 친구가 난리였죠. 상진이도 ‘미친 형’이라고. 하하. 저라는 인간이 달라졌대요. 방송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는데, 당시 전 매사에 냉소적이거나 비관적인 편이었어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극한으로 몸을 혹사하는 운동도 했고요. 그런데 아내를 만나고 나서 아주 밝아졌대요. 친구 말이 <스타워즈>의 악당 다스베이더가 영웅 제다이로 변한 수준이라더군요.

오래 프로그램을 함께 해온 전현무, 오상진 씨는 <아빠곰TV>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응원해주죠. 곧 제가 직접 써본 제품도 추천하고, 리뷰를 해볼 생각이에요. 최근 현무가 유모차를, 상진이가 유아 의자를 선물해주었는데 써보고 좋으면 추천해야죠.
아이 교육에 대한 생각도 남다를 것 같아요. 아나운서 아빠이니 어학 교육에도 관심이 많을 테고요.
아버지가 8개 국어를 하신 덕에 전 다른 사람들보다는 언어를 빨리 배우는 편이에요. 하지만 딸 사빈이가 굳이 어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본인이 즐길 수 있을 만큼 배웠으면 좋겠어요. 과거엔 운전도 어렵게 배워야 했지만 요즘은 누구나 운전을 할 수 있고, 자율주행차 시대가 코앞이잖아요. 미래엔 언어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곧 기술이 더 발전해서 실시간 통역이 가능한 시대가 올 거라고 믿거든요. 저는 언어 대신 예체능을 많이 시켰으면 해요. 신체적인 능력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으니까요. 유연성, 근력, 체력을 기를 수 있게 돕고 싶어요. 또 예술을 향유해서 인생을 풍요롭게 누리고, 예술을 향유할 만한 체력을 갖춘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요.

아이가 자라면 아무래도 기록을 남기기 힘들어질 텐데요.
기록하는 아빠들이라면 공감할 텐데, 아이가 자라면 얼굴을 공개하는 일이 조심스러워지겠죠. 일곱 살이 되면 얼굴도 많이 달라지니까, 그때쯤 되면 아이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줄 생각이에요. 일부러 의젓하게 행동하고 주변을 의식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는 않거든요. 다만 계속 둘만의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겠죠.

육아하는 아빠들에게 한마디!
동지들, 이 시기를 잘 이겨냅시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봤자 엄마보다야 힘들겠습니까?

인기기사

MEET 더보기

@styler_mag

Instagram has returned invalid d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