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방의 진화

베스트셀러와 유명 전집이 빼곡한 대형 서점이나 연령별 필독서로 서가를 채운
도서관에 지친 우리에게 찾아온 어린이 서점들.

디퍼런트 북숍

원서는 영어 학습보다 그림과 이야기의 세상

석촌호수 옆, 이제 오픈 한 달 차를 맞이한 신상 어린이 서점이 있다. 통유리창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따뜻한 원목 가구가 정겹게 발길을 이끄는 서점, 디퍼런트북숍은 영화 <유브 갓 메일>의 어린이 서점을 모티프로 완성된 공간이다. 쥬니어네이버에서 8년간 아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기획해온 양혜진 씨는 아홉 살, 열한 살 두 아들의 엄마로 책을 골라온 경험을 토대로 오랜 꿈이던 공간을 오픈했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 머물던 시절 세계적 동화작가 에릭 칼 뮤지엄을 방문해 좋은 그림책을 자주 접하고 하나둘 모으며 관심을 쏟아왔다. “해외와 달리 국내 대형 서점의 어린이 코너는 학습만화 위주로 진열되어 있고, 그림책 코너도 애니메이션 관련 책이나 사운드 북 같은 액티비티 책이 주를 이루고 있어 아쉬웠어요. 반면 도서관은 너무 많은 출판사의 전집들이 즐비해 오히려 아이들이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몰라 금세 흥미를 잃고 뛰놀기 바쁘더라고요.” 작가 한 명에 꽂히면 그 작가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을 만큼 책을 좋아하는 성향 덕분에 소개하고픈 책이 점점 늘어났고, 결국 남다른 큐레이션을 갖춘 서점을 완성했다.
서점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과학에 대한 관심과 생물을 전공한 경험을 담은 ‘사이언스&네이처’ 책장, 미국에 살며 다양한 그림책을 접해온 안목으로 꾸린 ‘클래식 그림책’, 그리고 두 아들이 재미있어하는 모험담을 모은 책장인 ‘페이버릿 북 포 보이스’다. 책과 함께 곳곳에 자리한 아날로그의 매력이 담긴 과학 장난감들과 그림책의 주인공이 튀어나온 듯한 소품들에서 공간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국내 그림책도 있지만 80%가 원서여서 영어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에겐 어렵지 않을까도 싶지만, 그녀는 경험상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첫아이가 한글을 또래 아이들보다는 늦게, 일곱 살이 지나서 뗐어요. 그전에는 그림책을 같이 보는 시간이 많았죠. 그런데 아이가 한글을 떼자 그림보다 글자에 집중하더라고요. 활자를 익히는 순간 읽기에 급급해 그림을 안 보게 되어서, 그전에 많은 그림책을 읽어서 다행이다 싶었죠. 많은 부모가 원서를 읽을 때 영어 학습을 목적으로 접근하는데, 다양한 이야기를 접한다는 데 의의를 두면 좋겠어요. 그림을 보면서 편안하게 즐기면 좋을 것 같아요.”
기획자로 일해온 만큼 오픈 한 달째지만 벌써 개성 있는 추천 컬렉션과 이벤트가 눈길을 끈다. 가령 새해를 맞이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읽어주면 좋을 책들을 소개하는 컬렉션을 선보이는 식이다. 또한 아이들끼리 책을 통해 교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누나와 형이 동생들에게 영어 책을 읽어주는 스토리 타임, 영어 스튜디오 베스푸치와 함께 책 내용과 연관된 공작 워크숍을 열기도 한다. “내 취향의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것 같아요. 평생 심심하지 않고 힘들 때 위로가 되죠.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재미있게 스스로 책을 고르고, 탐색하고, 시행착오도 겪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주소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49길 52
잠실석촌나인파크 A동 2층
오픈 시간 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4시

Unique Book

LAST STOP ON MARKET STREET
매트 드 라 페냐 그림 크리스천 로빈슨
뉴베리상,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한 책으로 할머니와 손자 씨제이(CJ)가 버스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왜 시각장애인은 앞을 못 봐요?” “왜 우리 집엔 차가 없어요?”처럼 아이의 천진한 질문에 대한 할머니의 현명한 답변이 돋보이는 책으로 명절에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

 

 


 

 

책방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지트

사춘기의 말랑말랑하고 섬세한 감성. 그 시절 우리가 좋아하던 이야기를 가득 담은 서점이 있다. 책방 사춘기는 스토리텔링 위주의 픽션부터 동화, 청소년 소설까지 어린이·청소년 문학 위주의 책방이다. 문학을 전공하고 <독서신문>에서 일한 이력을 지닌 유지현 씨는 문학 비평을 공부하던 중 아동문학이 유치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매력을 느껴 2년 전 서점을 오픈하게 됐다. 처음에는 연령대에 관계없이 사춘기를 겪거나 동화책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열었지만, 곧 근처 초등학생들의 열띤 반응이 이어졌다. 어른들의 손을 잡고 오지 않아도 되는 동네 서점인 덕에 초등학생들이 아지트로 삼고 방과후면 몰려와서 지금의 책방 사춘기 큐레이션이 완성됐다. “공부방도 아니고 도서관도 아닌 공간. ‘어른들이 카페에 간다면, 여긴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공간이구나’ 하고 아이들이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자유롭게 서가에 꽂힌 책을 골라 책 속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요. 학교 끝나면 오는 아이들에게 종이와 색연필을 무조건 나눠주곤 했죠.” 대형 서점에서 볼 수 없는 독립 출판 서적을 볼 수 있는 점도 사춘기만의 매력. 이제는 온라인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운영하지만, 서점 한편에 어린이 작가를 위한 문구점인 ‘처음문구’를 숍인숍 형태로 마련했다. 아이들이 직접 써보고 좋아한 색연필, 필기도구만을 엄선해 구경하는 재미를 더한다.
책방 사춘기가 오픈 2년 만에 국내 출판·편집인과 그림책 작가들에게도 보물 같은 아지트가 된 것은 아동문학과 관련한 이벤트를 위해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기 때문이다. 대가의 작품이나 수상작 위주로 들어와 많은 주목을 받는 외국 동화책에 비해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국내 창작 동화를 서가에 더 많이 들이기 위해 고민한다고. 책방 사춘기에서는 다채로운 소모임이 자주 열리는데, 작가의 북토크를 포함해 낭독회, 에세이나 그림을 쓰고 그려보는 워크숍을 마련하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은 편지에 익숙지 않잖아요. SNS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니까요. 편지와 관련한 동화책을 모아 낭독해보며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감성을 공유할지 토론하기도 하죠.” 현재 모임은 주로 아동문학에 관심이 있는 어른을 대상으로 해서 종종 교사나 학습 지도자들이 참여하기도 하는데, 올해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할 예정이다.
“처음 책방을 오픈할 때는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막상 요즘 친구들은 자기 주관도 확고하고 시크하더라고요. 스스로 재미있는 책을 찾을 줄도 알고 생각이나 쓰는 단어도 성숙하고요. 지식 전달이나 의미에 사로잡히기보다 직접 소통하면서 친구들이 재미있어하는 책과 제 재미있는 책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죠.”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9길 30
오픈 시간 화~토요일 오후 1시~8시

Unique Book

브래드씨의 이야기
글·그림 다랑
전 세계 빵의 종류와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그림책.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독립 출판물로 한 손에 쏙 잡히는 크기와 친숙한 그림체가 재미있어 아이들이 방문하면 꼭 한 번씩 열어보는 책이다.

 


 

 

북스터

재기 발랄한 브랜드 마케터의 상상

경기 남부권에 새로 들어선 신도시, 오산세교 지역에 두 달 전 엄마들과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점이 문을 열었다. 벽면 한편에 쓰인 ‘책 속에 풍덩’이라는 글귀처럼 수영장을 떠올리게 하는 인테리어가 눈길을 끄는 북스터다. 건축 시행사 북앤마켓에서 엄마와 아이들을 위한 문화 콘텐츠 공간을 꾸리기 위해 처음으로 탄생시킨 공간. 서점 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국내 북 페어를 돌며 국내 소규모 출판사와 접촉해온 브랜드 마케터 김지선 과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북스터’라는 이름은 책이라는 지식의 숲에 사는 거인(몬스터) 모티프에서 따왔는데, 이름처럼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은 책들로 서가를 구성했다. 예를 들면 움직이는 홀로그램이라 불리는 포티큘러법을 적용한 생물책과 철학 그림책을 함께 놓아두는 방식이다. 그녀는 책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을 꾸리고자 팀원들과 함께 갖가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들이 사용한 책이나 물건을 아이들이 직접 파는 플리마켓을 열어 동탄, 수원 등 인근 경기도 맘들의 방문이 줄을 잇기도 했다. 서점 바로 옆 카페 ‘에그풀’에서는 자연 방사 달걀로 만든 브런치를 맛볼 수 있다. 아이들은 북스터에서 책과 시간을 보내고, 엄마들은 카페에서 자유 시간을 만끽하면 된다. 기저귀를 갈 수 있는 파우더룸도 마련돼 노키즈존에 시달리는 엄마들의 반가움을 더한다.
“도서관과 서점은 확실히 다른 성격의 공간이죠. ‘한 권만 골라야 해’라는 엄마의 말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신중히 고르고 구입하는 건 무엇보다 독서 취향을 기를 수 있는 귀한 경험이라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책을 사고 싶게 만들까?’ 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텀블러, 오가닉 백, 종이 포장 패키지도 다 제작했죠. 앞으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다채로운 모임도 열어볼 생각이에요.”

주소 경기 오산시 내삼미로79번길 31 1층
오픈 시간 평일 오전 11시~오후 8시(주말 오전 10시 오픈)

Unique Book

나는 나야 그렇지?
독일 바이에른 아동철학아카데미 그림 소냐 가겔
죽음과 자유, 정체성과 개성 등 15가지 철학 주제를 일상에서 아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책. 뮌헨 철학대학 출신들이 쓰고 독일의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수업할 때 사용하는 책으로 국내 소규모 출판사인 시금치에서 들여와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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