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커피

지금 신당역 일대는 70년 된 양곡 가게와 새로 생긴 카페가 서로 타협하며 시대를 교차하는 중이다.

최근 신당역 일대가 붐빈다. 즉석 떡볶이 골목 말곤 떠오르는 것이 없던 곳에 멋진 카페들이 들어섰다. 빈티지 옷과 오브제로 가득한 동묘,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신당 창작 아케이드, 동대문 패션 상가와도 가깝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만 오가던 거리를 젊은 예술가들이 거닌다.
어느 순간 신당역 일대는 카페 투어의 성지, 핫플이 되었다.
흥인동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카페로 향하는 길목을 둘러보면 오래된 쌀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신당역 일대의 황학동은 조선시대부터 땔감과 채소를 거래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공설 시장이 들어섰고 많은 양곡 가게가 자리하며 싸전거리라 불렸다.
1939년에는 고 정주영 회장이 이곳에서 쌀가게를 시작해 훗날 현대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에는 동대문, 남대문 시장보다 많은 가게가 들어서며 서울에서 가장 큰 중앙시장이 되었다. 시장의 영향으로 서울 사람들이 소비하는 양곡의 80% 이상이 이곳 싸전거리에서 거래됐고 매점매석으로 전국의 곡물 가격을 좌지우지하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바밤바, 비비빅 같은 곡물로 만드는 빙과와 과자의 원자재를 이 싸전거리에서 수급했다. 이렇듯 1980년대까지 활황이었던 거리는 국민 쌀 소비량의 변화, 대형 마트, 온라인 쇼핑의 등장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싸전거리 1세대를 지나 2, 3세대 자녀들이 지금 이 거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800여 곳이 넘었던 양곡 가게가 현재는 13곳밖에 남지 않았다. 쌀가게가 즐비하던 거리는 외식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중고 주방 집기, 가구 가게로 바뀌었고 곡식이 쌓여 있던 창고는 카페로 탈바꿈했다.

 


 

 

아포테케리

낮에는 카페, 밤에는 맥주와 와인을 파는 펍이다. 공간은 시간마다 형형색색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1968년에 일본인 밑에서 연마한 한국 목수가 일본 목재를 수입해서 지은 양곡 창고였다. 이후에는 도예가들의 작업실로 쓰이기도 했다. 패션업계에 종사했던 박남철 대표는 우연히 싸전거리를 지나다가 이 공간과 골목을 발견하고 한눈에 매료됐다. 당시만 해도 이 거리엔 어르신들이 운영하던 쌀가게와 중고 가구점만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제사, 약사를 뜻하는 공간의 이름처럼 자신만의 공방에서 음료를 만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의 상상처럼 아포테케리는 싸전거리 골목 깊숙이 숨어 있다.) 또 동대문과 가까운 이곳이 패션업계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길 바랐다. 그는 7개월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손수 공간을 매만졌다. 60년간의 찌든 때를 닦아내는 것은 물론, 직접 공장과 공단을 돌며 산업용 거푸집, 기계의 부품이나 스위치 등 공장에서 쓰던 물건들을 수집해 인테리어 요소로 사용했다. 또 일본의 건축 방식으로 올린 목재 트러스트를 깨끗이 다듬고 그 주변을 제재소에서 구한 나뭇조각들로 마감했다. 폐공장 같았던 창고를 다듬은 만큼 기성품이나 일반적인 마감재로 공간을 채우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며 각각의 맥락, 스타일에 맞는 소재, 옷을 매치하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배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금속 소재로 마감해 차가운 물성이 느껴지는 공간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건 노란색 조명들이다. 베르판의 ‘판텔라 1972년 퍼스트 에디션’ 조명도 놓여 있다. 또 작년까진 신진 작가들의 전시도 진행했다. “대학생들이 공간을 자주 찾는 만큼 예술을 그들의 일상 가까이에 두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박 대표는 공간의 디테일뿐 아니라 커피부터 피자까지 꼼꼼히 공부하고 익혔다. 피자 맛을 위해 이탈리아 나폴리에 한 달간 체류하기도 했다. 자신이 모르는 커피, 음식, 공간을 사람들에게 내어놓는다는 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주변 쌀가게 어르신들과도 가까이 지낸다.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시대가 저무는 것이 아쉬워서. 아포테케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공간과 거리가 품은 시간을 소개할 수 있는 이벤트나 방법도 늘 고민 중이다. 이곳엔 거친 과거와 현재의 생동감, 미래적인 아름다움이 함께 담겨 있다.

아포테케리를 운영하는 박남철 대표.

info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 409-9
문의 02-2236-8987, @apothecary_owner
영업시간 월~토요일 낮 12시 ~ 오후 11시,
일요일 낮 12시 ~ 오후 10시

처음에는 지역 어르신들께서 카페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셨어요.
버려졌던 창고가 멋있게 변하고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도 잦아져서 좋아하세요.
이 거리가 미국의 브루클린처럼 되길 바라요.

 


 

심세정

1959년 지어진 미곡 창고를 리모델링한 베이커리 카페 심세정.

1959년 흥인동 싸전거리에 지어진 커다란 미곡 창고가 베이커리 카페로 변신했다. 심세정은 ‘마음을 씻고 편히 머물다 가는 정자’라는 뜻으로, 중국의 시인 두보의 시에 나오는 단어다. 17년간 제과제빵사로 일한 서동석 대표는 심세정이 사람들에게 쉬어 가는 공간이길 바랐다. 카페는 단순히 차와 간단한 식사를 파는 공간을 넘어, 바쁜 일상에서 다음 일정을 위해 호흡을 고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공간으로 확장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심세정에 머무는, 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쉼이 내리길 바란다. 그런 마음은 공간에서 전해진다. 옛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콘셉트로 한 심세정은 옛 창고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창고 내부의 트러스트 골조를 그대로 살려 공간을 만진 것은 물론, 골목 앞이라는 카페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외부 테라스를 동네 어르신들에게 개방했다. 또 양쪽에 만든 문의 한쪽은 예스럽게, 한쪽은 모던하게 디자인해 두 시대를 관통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메뉴도 이러한 철학과 걸맞다. 처음에는 유럽식 베이커리를 추구했지만 카페를 찾는 주위 어르신들을 배려해 메뉴에 변화를 주었다. 앙금버터프레즐, 카스텔라 등이 심세정의 시그너처 메뉴다. 또한 베이커리 카페의 특성을 살려 티라미수 크림을 얹은 아인슈페너 등의 메뉴도 개발했다. 커피는 빵과의 조화를 고려해 산미와 고소한 맛을 모두 지닌 원두를 골랐다.

info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 409-11
문의 070-8823-7577, @cafe.simsejeong
영업시간 오전  9시 ~ 오후 10시 (베이커리 오전 10시 30분부터)

 


 

피터커피

피터커피는 말 그대로 멋있다. 한 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곱 명의 주인과 건물로 쪼개진 외관부터 범상치 않다. 이 카페가 진짜 멋있다고 생각이 든 건 계단 아래 투박하게 놓인 각기 다른 물성의 돌들이 조화롭게 맞물린 것을 본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스타그램엔 피터커피 곳곳을 촬영한 방문 인증샷이 빼곡하다. 파티시에 남편과 패션 디자이너 아내가 운영하는 피터커피는 모든 공간이 감각적이다. “어떤 무드, 콘셉트보다는 그냥 멋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은 한국적인 것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경주처럼 한옥으로 꾸미기엔 올드하고 모던하게 풀면 일본의 카페 같을 것 같았죠.” 오픈을 준비하면서 피터커피의 대표 부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일본의 교토 등으로 여러 번 출장을 갔다. 일본의 느낌을 빼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한국적인 멋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소재, 소품, 형태를 통해 그 답을 풀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직접 조경, 고재상을 찾아 다니며 선박에 쓰인 나무, 커다란 석재들을 구입했다. 이렇게 마련한 소재들로 공간을 마감하고 가구를 만들었다.
마치 옛 사찰이나 성곽을 지금에 만든다면 이런 모양새일 것만 같다.
그렇다고 사진 찍기 좋은, 그저 아름답기 만한 카페는 아니다. 시간마다 고소한 빵 냄새가 카페를 메운다. 파티시에는 기본에 충실한 빵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프랑스 밀가루와 버터로 만든 페이스트리 생지를 기반으로 빵을 구워 판매한다. 또 빵과 어울리는 커피와 차 메뉴를 구성하고 직접 찻잎을 소분해 준비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꽃나무로 예쁘게 플레이팅해 내어준다. 피터커피에는 정성이 깃들지 않은 것이 없다.

info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 411
문의 @the_pter_coffee
영업시간 월~토요일 오전 11시~ 오후 10시(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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