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바라본 오사카

오사카에선 술꾼들의 로망이 실현된다. 얇은 지갑으로도 바 호핑이 가능하다.
그래서 오사카는 오늘도 기꺼이 마신다.

박찬일은 글 쓰는 요리사다. 세계 곳곳에서 먹고 마시며 경험한 맛과 식문화에 대해 글을 쓰는 그가 오사카의 술집과 밥집 700~800곳을 다니며 추린 가게 107곳의 이야기를 담은 책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를 내놓았다. 오사카는 무얼 먹고 마시기 참 좋은 도시다. 골목마다 작은 식당과 술집이 빼곡하고, 사람들은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 마치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것처럼.

일본 그중에서도 오사카, 식당이 아닌 술집에 주목한 이유가 흥미로워요.
서울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술집은 밥집이나 시장통에 있는 술집이에요. 오징어볶음 하나에 딸려 나오는 반찬 다섯 가지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죠. 인테리어가 근사하고 안주도 맛있는 가게도 많지만, 제가 영혼의 안식을 얻는 곳은 그런 곳들이에요. 그런 가게들을 일본에서 발견했어요. 조금씩 시켜도, 혼자 술을 마셔도 되는 일본의 술집 문화가 좋아요. 특히 오사카 사람들이 술을 참 좋아해요. 또 옆 사람한테 마음이 열려 있어 술집에선 누구나 친구가 되죠.

오사카에선 뭐든지 먹고 마시는 게 자연스러워 보여요.
일본에서도 오사카를 특이한 도시라 말해요. 오사카는 상인의 도시죠. 실리주의가 강해요. 공원도 별로 없고요. 좁은 도시에 300~400만 명이 몰려 사니 미어터져요. 스트레스를 술로 풀어요. 양복쟁이 회사원, 할아버지, 젊은 학생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죠. 경기 불황이 길었고 술집, 식당도 많아서 경쟁이 치열해요. 가격을 올리지도 못해요. 가게는 작아서 테이블 회전이 빨라야 하고. 그래서 타치노미야(선술집)가 많아요. 서서 마시면 테이블 수보다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어요. 또 허리가 아프니까 한자리에 오래 죽치기도 쉽지 않죠. 혼자 마시기도 좋고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가 싸기도 하죠?
180, 280엔짜리 안주 두 가지에 술 세 잔이면 돈 만원이거든요. 만원에 취할 수 있는 도시예요. 오사카에선 술집을 이동하며 마시는 게 일반적이라 조금 먹어도 눈치가 안 보여요. 술꾼의 로망이 50~60% 실현돼요. 술꾼들은 1차, 2차 차수를 늘리면서 마시는 바 호핑을 좋아하거든요. 오사카에선 5만원 내외면 5차를 할 수 있는데, 이게 한국에선 절대 불가능하죠. 또 서울은 동선이 길거든요. 망원동부터 청담동까지 술집이 길게 늘어서 있죠. 하룻밤 뛰어야 2~3차예요. 식당, 술집에 기본 매출도 해줘야 하고 안주도 비싸니까. 오사카는 우메다에서 난바까지 5km예요.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술집이 개미굴처럼 늘어서 있는 거예요. 바 호핑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죠.

그렇게 많은 술집을 모두 찾아다니며 마셨나요?
공식 취재만 일주일씩 여덟 번 갔어요. 오래 체류할 수 없으니까 매일 낮부터 밤까지 마셨죠. 휴대폰에 메모를 했는데, 세 번째 집 즈음부터는 오타투성이예요. 700~800곳을 찾아 먹고 마셨어요. 그중 인터넷에 올라온 집, 비싼 집은 뺐어요. 오사카 최고의 이자카야에 가봤지만 비싸고 무게 잡고 조용한 분위기가 저와는 안 맞았어요. 선술집,
싼 집, 한국인이 모르는 집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아저씨가 되니까 동네 아저씨들이 가는 맛있고 싼 집을 감별하는 능력이 생기더라고요.

선술집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는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심해요. 대신 친해지면 엄청 가까워지죠. 술집도 테이블마다 구획이 나뉘어 있고요. 1970년대까지는 명동, 종로에도 선술집이 꽤 있었는데 모두 사라졌죠. 지금도 시골에는 1000원에 막걸리, 소주 한 컵씩 파는 대폿집이 있긴 한데, 도시에선 편의점이 아니면 혼자 술을 마실 곳이 없어요. 오사카는 그렇지 않죠. 익명이지만 남에게 배척당하지 않아요. 같이 마셔야 하니까 옆자리를 타인에게 내어주죠. 젊은 여자가 혼자 와서 아저씨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기도 해요. 더러는 음식을 나눠주기도, 술과 안주를 시켜주기도 하고요. “아이, 먹을 줄 모르네, 이 집에선 이걸 먹어야 해”라며. 물론 제가 외국인이라서 더 그랬겠지만요.

오사카의 술은 특별한가요?
지금은 아키타·니가타·야마가타현이 술로 유명하지만, 옛날에는 일본의 좋은 술이 다 오사카 근처에서 나왔어요. 지금도 술 생산량은 오사카 옆 효고현이 1위죠. 좋은 쌀이 나오는 곳이라 양조장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에도막부 시대에는 오사카에서 술을 공급하기도 했고요.

안주는 어떤가요?
일본의 여느 도시처럼 해산물이 많죠. 굽거나 절이거나 회를 뜨는 건 다른 도시랑 비슷해요. 다만 대도시라 더 넓은 권역에서 해산물을 받다 보니 종류가 다양하죠. 오사카 식당들은 제철 감각이 뛰어나요. 어느 절기에 무얼 먹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죠. 또 일정한 음식을 계속 팔아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요. 종이에 메뉴를 써 붙이고 떼는 일을 반복하죠. 다치노미야는 안주가 80~100가지, 추천 메뉴가 20~30개예요. 또 일본에서 채소 요리로 유명한 교토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당연히 채소 요리도 맛있고요. 이런 적도 있어요. 메뉴판에 락교(파)가 있길래 시켰더니 생파랑 찍어 먹을 간장이 나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선 공짜로 줄 법한 걸 180엔이나 받았죠. 그런데 엄청 맛있는 거예요. 돈을 받고 판다는 것 자체가 퀄리티를 방증하죠. 사실 술, 음식 가격이 다 너무 싸서 돈을 안 받고 팔 수도 없지만요. 제일 흥미로운 건 ‘호루몬’, 소나 돼지 내장 요리예요. 원래 일본 사람들은 내장 부위를 먹지 않았는데 일제강점기에 건너간 조선인, 재일동포들이 오사카에 정착해서 전파한 요리죠. 요즘은 일본 전역에서 유행이에요. 오사카에는 우리나라 음식 문화가 깊숙이 녹아 있어요. 햄버거 가게에서 김치를 팔 만큼요.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박찬일, 모비딕북스
박찬일 요리사가 지난 1년간 공식 취재만 8번한 끝에 완성한 책이다. 오사카 이외에도 후쿠오카 등 여러 지역의 식문화를 연작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엄청난 애주가시잖아요?
술 먹다가 죽는 게 꿈이죠. 술을 먹으면 나르시시즘이 강해지잖아요. 깨면 허망한데 그조차도 즐겨요. 극도로 과잉되거나 침잠하는 감정들, 또 움직임. 술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 변화를 즐기는 거죠. 그게 나라는 술꾼을 해석하는 방식이에요.

가장 기억에 남는 가게가 있나요?
다 기억에 남아요. 마루신? 일본 식당엔 공짜가 없는데 마루신에서는 처음 방문한 손님에게 멸치 육수에 두부를 담은 두붓국을 공짜로 줘요. 보통 90~120ml를 주는 술도 180ml 한 홉을 주죠. 소주 반 병만큼의 양이라 한 잔에 얼큰해져요. 와스레나구사는 보물 같은 집이에요. 30대 젊은 요리사 둘이 운영하는데, 구역이 나뉘어 있어서 각자의 팬들이 좋아하는 주인 방향으로 들어가죠. 저는 너무 좋아서 두 사람 집을 번갈아 네 번이나 다녀왔어요.

오사카 다음으로 경험하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요?
중국 위구르 민족이 양고기를 굽는 것, 윈난성에서 손으로 국수를 뽑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빵 굽는 것도 배우고 싶고요. 호기심은 끝이 없어요. 하지만 세계가 유튜브, 영상으로 열려 있어서 이제 우리는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특정 가게를 찾아가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요. 글로,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그게 진짜 거기에 있을까?’ 같은.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었다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데 말이죠. 그런 호기심, 궁금증을 쌓은 게 이 책이에요. 상상했던 가게 주인의 모습과 술꾼들이, 오뎅 냄새가 현실로 다가올 때 전율을 느끼죠. 자리에 앉아 첫 잔을 들이켜며 또다시 뜨거운 무언가가 왈칵 치밀고요. 이 책을 읽는 분들이 그런 것들을 경험하길 바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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