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윤혜진

윤혜진은 행복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동경했던 꿈을 찾아 하나씩 하나씩 꺼내는 중이다.

오롯이 스스로에게만 기댄 채 무대의 주인공으로 섰던 오랜 습관 덕일까. 윤혜진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도통 주저함이 없다. 보기 드물게 물음표가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톱티어 발레리나로 무대 위에서 대체 불가의 오라를 발산하다가 돌연 결혼을 발표하고, 따뜻하고 포근한 아내와 엄마로서의 숨겨진 면모를 과시하더니, 어느 날은 자신의 이름을 건 옷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What see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열고 당당히 유튜버 대열에도 합류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보다. 그래도 단 하나,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명제가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내게 주어진 삶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나다움을 잃지 말 것’. 카메라 앞에서 스스럼없는 당당한 몸짓으로 감탄을 자아낸 그녀와 마주 앉았다.

무대 위에서 정해진 연기를 할 때와 카메라 앞에서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 어느 쪽이 더 편한가? 흠… 내게는 두 가지가 너무 다른 쾌감이라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준비한 연기를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해냈을 때의 짜릿함은 내가 30년 넘게 발레를 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다. 반면 카메라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마음속 깊이 동경했던 오랜 꿈이다. 굳이 따지자면 전자는 내 인생의 전반부를 규정하는 아이덴티티였고, 후자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래도 둘 중에 하나를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아직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발레에 마음이 더 간다. 워낙 오랫동안 해왔고 발레를 빼고는 나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건 타고난 에너지인가? 어릴 때부터 남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좋았다. 관객들이 내 춤과 연기를 보고 감동하고, 환호하고, 박수 쳐주는 것을 즐겼고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줄곧 그게 좋은 것이든 아니든 늘 관심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시쳇말로 ‘관종’이라고 하지 않나?(웃음) 우스개지만 스스로 그 끼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관심을 받기 위해 억지로 날 포장하거나 꾸미는 건 안 한다. 허세나 거짓도 싫다. 그건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 단지 누군가 나에게 주목하고 관심 가져주는 것을 좋아하는 게 ‘관종’이라면 기꺼이 그렇다는 말이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으니 이런 기질을 타고났다고 할 수밖에는.

SNS를 통해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선가? 인스타그램은 아주 오래전에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스타가 뭔지도 잘 모를 때였는데, 외국인 친구가 얘기해줘서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개인의 일상을 기록하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용자가 많지 않았으니 부담 없이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들을 올렸다. 그러다 발레리나 윤혜진에 관심 있는 분들이 차츰 팔로우하기 시작하더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면서 확 늘었다.

소위 ‘인스타 라방(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계의 스타다. 동시에 1만 명 이상 접속하는데도 프로 못지않게 방송을 리드한다. 그게 나도 신기하다. 오히려 친한 친구들과 얘기할 때보다 말이 더 쉽게 나올 때가 있다. 워낙 느끼고 생각하는 걸 계산해서 내뱉는 스타일도 아닌데다 방송도 그렇고, 옷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그냥 다 재미있다. 라이브 방송에서는 너무 꾸밈없는 모습으로 나가서 끝나고 ‘이불킥’을 할 때가 진짜 많다. 그래서 라이브 방송은 절대 저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옷을 소개하는 정보 전달 용도의 영상만 짧게 저장하는 정도다. 그 외에 편하게 하는 라이브 방송은 절대, 결코 다시 보고 싶지 않다!

흔히 SNS는 양날의 검이라고 한다. 상처받을 때도 있지 않나? 그럼, 당연히 있다. 몇 년 사이 팔로워가 급격하게 늘면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지 않나. 소소하게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다 갑자기 안 하거나, 또는 모두가 좋아할 만한 사진과 글만 올리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한동안은 시시콜콜한 일상까지도 전부 기사화되는 것이 좀 부담스러워서 아예 포스팅에 ‘이 사진은 기사 내지 말아 주세요’라고 쓰기도 했는데, 사실 쓰면서도 이게 뭐 하는 거지 싶을 때가 있다. ‘네가 뭔데 기사를 쓰라 마라’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아주 심플하게 결론을 냈다. 그냥 시작했을 때처럼 똑같이 하자고. 누가 등 떠밀어서 한 게 아니라 순수하게 내가 즐겁고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니까 계속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상처보다는 위안을 훨씬 많이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안정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도전했고, 다행히 지금까지의 결과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내 인생이 언제, 어떻게 변화를 맞이할지는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또 나름의 해답과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

 

이를테면 어떤 식으로 말인가.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분들한테 정말 많은 힘을 얻었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SNS를 통해 내 일상을 봐온 분들이 메시지로 응원의 말들, 감사한 말들을 정말 많이 보내주셨다.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나한테는 매우 큰 힘이 됐다. 처음에는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그것조차 일종의 배려였던 것 같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메시지들을 하나씩 읽었는데, 굉장히 큰 위안을 받았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솔직하게 다 드러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한테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그리고 부정적인 얘기나 댓글들은 원래부터 신경을 잘 안 쓰는 편이다.

유튜브도 시작했다. ‘윤혜진의 What see TV’는 구독자가 벌써 2만 명을 훌쩍 넘었다. 그것도 시작이 참 재미있다. 사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달라는 요청은 1~2년 전부터 꾸준히 받았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면서 사람들이 내가 먹고 입고 쓰는 것에 관심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늘 ‘언니, 뭐 발라요?’ ‘언니, 오늘 입은 옷 어디서 샀어요?’ 이런 댓글들이 달린다. 그런 얘기들은 주로 라이브 방송에서 하는데, 라이브 방송은 때를 놓치면 볼 수가 없다. 또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영상은 한계가 있으니까 팔로워들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나한테 영상이나 유튜브는 너무 생소하다. 말했다시피 인스타그램도 초창기에 시작했기 때문에 익숙할 뿐, 내가 트렌드에 민감해서 선택한 매체가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후배를 만나서 계정만 하나 만들었는데, 라이브 방송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 곧바로 채널 구독자 수가 1000명이 넘은 거다. 라이브 방송 중에 말이다! 콘텐츠도 없는 텅 빈 계정이었는데 미리 구독 신청을 하겠다고 ‘인친’들이 몰려간 거지(웃음). 아차 싶었다. 인사 영상이라도 하나 올려놔야 할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 중에 급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남편한테 부탁해서 첫 영상을 찍었다.

그래서 그렇게 날것의 느낌이 났나 보다. 편집이나 자막 효과 하나도 없는 영상이 오히려 신선했다. 서로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하면서 찍은 영상이다. 영상 편집이랑 업로드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결국 남편의 지인에게 부탁했다. 그 지인이 바로 CF 감독으로 유명한 용이 감독이다. 지금도 고맙고 미안하다. 그 뒤로는 친한 방송작가에게 소개받은 분께 편집만 따로 부탁드리고 있다. 얼떨결에 시작하긴 했는데, 이렇게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줄 미리 알았다면 지레 겁먹고 안 했을 수도 있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고 업로드하기는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자체 제작한 옷도 팔고 있다.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직접 다 한다고 들었다. 옷도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것 중 하나다. 예쁜 옷을 입고 나를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이건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그녀의 아버지는 원로 영화배우 윤일봉 씨다). 지금도 내가 만든 재킷이 마음에 들면 ‘그 옷 멋있네’ 하며 관심을 보이신다. 디자인은 물론 단추 하나까지 내가 직접 고르고 택배 포장까지 집에서 직접 한다. 가내수공업이 따로 없다. 옷을 만든 지 3년 정도 됐는데, 대부분 샀던 분들이 다시 찾기 때문에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굉장히 크다.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는 날은 밤에 잠을 설칠 정도다. 다행히 반응이 굉장히 좋다. 성격상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다 하다 보니 대량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히려 사는 분들은 희소성이 있다고 더 좋아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한 달에 2~3벌 정도는 새 디자인을 선보이려고 노력한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 스케줄이다. 그러게나 말이다. 하루하루 100%를 사는 기분이다. 마냥 책임감이나 일로만 느꼈으면 절대 못했을 것이다. 방송과 옷 모두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온 일이니까 가능한 것 같다. 어릴 때 아버지의 동료나 후배 배우들을 보면서 막연히 동경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발레를 너무 사랑했고, 발레리나가 아닌 미래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지만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같다는 건 굉장한 축복 아닌가. 사랑하는 발레를 하면서 인정받았고, 지금은 내가 오랫동안 동경했던 사람들처럼 방송도 하고 멋진 옷을 입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말이다. 매 순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바쁜 와중에도 꼭 지키는 일상의 루틴이 있다면? 운동과 식사, 그리고 딸 지온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요즘도 하루 한 끼만 먹고, 시간을 쪼개서라도 운동은 빼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발레단에 있을 때는 연습량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오히려 탄수화물 같은 것도 안 가리고 마음껏 먹었는데, 지금은 더 절제하는 편이다. 무대에 서지 않는다고 방심했다가는 금세 몸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마흔이 되고 나니 그런 면에서 더 긴장된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푸짐한 집밥은 모두 지온이와 남편이 먹는 음식이다. 발레단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일정량의 운동과 연습을 놓지 않고 있다.

단순히 자기 관리를 위해서인가? 나는 발레리나로서 여전히 좋은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의 나한테 좋은 무대란 <백조의 호수>도, 화려한 테크닉을 뽐낼 수 있는 작품도 아니다. 노련하게 손 하나만 움직여도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다. 물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언제 갑자기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를 위해 일정량의 근육량과 연습량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한테 부끄럽지 않다. 반드시 무대에 서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요즘 가장 가깝게 지내는 ‘절친’은 누구인가? 당연히 지온이다. 벌써 일곱 살이라 내년이면 학부형이 된다. 함께 여행 가고, 수다 떠는 게 정말 즐겁고 재밌다. 아주 가끔 더 어릴 때의 지온이가 그립기도 하다. 3~4살쯤 되는 아이를 보면 ‘저 때가 예쁘지’ 싶은 생각도 들고.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제법 커서 고집도 세고 자기주장도 강하다.

일곱 살이라면 엄마 못지않게 지온이의 스케줄도 바쁠 것 같다. 별로 그렇지는 않다. 영어 유치원 말고는 따로 학원은 안 다닌다. 사실 영어 유치원에 보낼 계획도 없었는데, 인원이 좀 적고 세심하게 돌봐줄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마땅한 대안이 없더라. 다른 건 몰라도 국어는 잘했으면 해서 하루에 15분씩 학습지를 한다. 아, 최근에 교구로 하는 수학 학습도 하나 시작했다. 주변 엄마들이 그건 꼭 하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늘하늘한 깃털 장식이 돋보이는 레이스 소재 셔츠는 넘버투애니원 N°21 하이웨이스트 A라인 스커트는 니나리치 NINA RICCI 세라믹에 화이트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한 ‘디아이콘’ 이어링, 뱅글, 반지는 모두 다미아니 DAMIANI

 

아무리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어도 아이 교육만큼은 흔들리게 마련인데 불안하지는 않나? 가끔 ‘나도 뭘 좀 해야 하나’ 싶긴 하다. 그런데 크게 불안할 정도는 아니다. 나중에 할 때가 되면 알아서 잘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영어 유치원은 확실히 노출의 효과는 있는 것 같다. 한글 노출도 또래 친구들에 비해 늦은 편이고, 하루 15~20분 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다른 유치원 친구들에 비해 책을 더 잘 읽는다. 시간이 많으니 충분히 여유롭게 흡수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건 뭐가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일단 아이를 믿어보려고 한다.

지온이는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더 닮았나? 지온이를 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다른 아이 같으면 진작 울거나 놀랐을 것 같은 상황에 놀랄 만큼 덤덤하고 쿨하다. 주변에 크게 휘둘리거나 개의치 않는 성격은 나를 닮은 것 같다. 동시에 감수성이 풍부해서 조금이라도 슬픈 장면에서는 금세 눈물을 글썽거린다. TV를 보다가 감동적이거나 슬픈 장면이 나왔을 때 지온이를 보면 벌써 눈이 그렁그렁하다. 그건 남편을 닮았다. 그리고 재능이나 관심사 면에서는 글쎄, 아직은 뚜렷하게 누구를 닮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친정 아버지는 굉장히 엄했다. 가끔 아버지 후배나 가까운 지인분들을 따로 만나면 아버지가 굉장히 유머 있는 분이라고 하는데, 자식들한테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사소하게라도 예의에 어긋나거나 거짓말을 하면 바로 숟가락부터 날아오는 그런 분위기였다(웃음). 그러다 내가 잠이 들면 몰래 방에 들어와 쓰다듬어 주시곤 했다. 그래서인지 지온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으면 좋겠다. 언제든 자기의 속내를 터놓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 지금까지는 잘해오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세계관에 큰 변화를 겪는다. 뚜렷한 자아를 지닌 사람으로서 그런 변화가 혼란스럽지는 않았나? 어떤 말인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지온에게는 한없이 마음이 열린다. 지온이가 내 인생이나 자아에 침범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가 생긴 것뿐이다. 지금도 나에게 ‘너의 정체성이 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발레리나다. 아마 마지막까지도 그걸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결혼과 출산을 갑자기, 동시에 겪게 되면서 인생의 방향이 급격히 달라졌다. 그래서 아쉬운 것이 있냐고 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덕분에 내가 꿈꿨던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얻는 성취감과 행복도 크다. 이건 결혼을 하고 지온이를 낳으면서 얻은 기회이기도 하다. 새로운 무대에 선 기분이다.


윤혜진의 What see TV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맞다. 그런데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때가 종종 있다. 나이에 그다지 연연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한다’는 말이 조금은 실감이 난다. 지금이 내가 아슬아슬하게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인 것 같다. 그래도 가족과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있어서 힘이 난다. 지난겨울에 어쩌다가 티셔츠 1000벌을 주문받았는데, 그때 집에 옷과 박스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미쳤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다 하다 안 돼서 지쳐 잠이 들었는데, 남편이 밤새 그 많은 택배를 다 포장해놨더라. 늘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최근의 고민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안주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좋은 선택을 하고 싶다. 10대, 20대에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무언가에 꽂히면 몸부터 움직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해외로 가서 발레를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오디션을 보기 위해 곧바로 뉴욕으로 갔다. 아버지가 협심증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결단력과 추진력 하나만큼은 엄청났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안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내 몫만 고민하고 책임지면 됐지만, 지금은 지온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로서의 책임이 있지 않나. 그게 경제적인 것이든 뭐든,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당연히 있다. 반면에 나를 표현하고 옷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도 내게는 소중하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맞다. 그런데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때가 종종 있다. 나이에 그다지 연연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한다’는 말이 조금은 실감이 난다. 지금이 내가 아슬아슬하게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인 것 같다. 그래도 가족과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있어서 힘이 난다. 지난겨울에 어쩌다가 티셔츠 1000벌을 주문받았는데, 그때 집에 옷과 박스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미쳤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다 하다 안 돼서 지쳐 잠이 들었는데, 남편이 밤새 그 많은 택배를 다 포장해놨더라. 늘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최근의 고민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안주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좋은 선택을 하고 싶다. 10대, 20대에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다. 무언가에 꽂히면 몸부터 움직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해외로 가서 발레를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오디션을 보기 위해 곧바로 뉴욕으로 갔다. 아버지가 협심증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결단력과 추진력 하나만큼은 엄청났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안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내 몫만 고민하고 책임지면 됐지만, 지금은 지온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로서의 책임이 있지 않나. 그게 경제적인 것이든 뭐든,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당연히 있다. 반면에 나를 표현하고 옷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도 내게는 소중하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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