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식사에 대하여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을 말한다. 채식주의자의 식탁에서 발견한 창의적인 요리와 이국의 식재료 이야기.

허브 버터에 구운 템페스테이크에 작두콩, 호랑이콩, 시금치를 올려 순식물성 버터 밀크를 부어 먹는다. 요리 이름은 ‘콩의 복잡성’.


샐러드보다 우아한 채식 요리

‘소식’ 안백린

채식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는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채식 요리에 샐러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곳으로 손꼽히는 코펜하겐 레스토랑 ‘노마’의 아름다운 요리에서도 주인공은 고기가 아닌 채소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해방촌의 동물해방연대 사무소 옆에 문을 연 레스토랑 ‘소식’에서 한국의 사찰 음식과 접목한 파인다이닝 채식 디너를 선보이는 안백린 셰프를 만났다.

 

레스토랑 소식에서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안백린 셰프.

얼마 전 출연한 JTBC <요즘애들>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어요.누군가의 식탁을 보고 그 사람에게 맞는 채식 요리를 추천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채식과 사찰 음식의 철학을 친근하게 소개할 수 있었으면 해서 출연했어요. 채식을 재미있게 알리고 싶어서 평소 예능 프로그램을 정말 많이 봐왔거든요.

대학에서는 의료생물학을 전공했는데 채식 셰프가 되었어요. 의료생물학을 공부하며 음식과 정신 건강의 연관성을 깊게 파다 보니 채식을 시작하게 됐어요. 우리는 왜 많이 먹게 될까, 어떻게 먹어야 건강에 좋을까 같은 고민을 했는데, 결국 문제는 소비적인 식습관이더라고요. 소비적인 식습관이라는 건 그냥 먹고 끝난다는 뜻이에요. 이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어 어디로 가는지, 이후에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지 못한 채 식사를 끝내는 것이 많은 문제를 가져오는 거죠. 그걸 알고 채식을 시작했어요. 음식의 전후 과정을 알면 사실 그렇게 먹지 못해요. 그 과정을 알고 무엇을 먹을지 고려할 시간이 충분하다면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우리는 바쁘잖아요.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도 있는 거죠.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 알리는 채식 운동가, 좋은 음식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채식 셰프가 됐어요.

채식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나요?

과학적으로 논쟁이 많지만 동물성 지방과 정제된 곡물 섭취를 줄이고 채소를 많이 먹다 보면 확실히 몸이 산뜻해지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게 돼요. 그러니 자연히 마음도 편안해지고요. 변비가 있을 때 우울증이 심해지고 우울한 사람 대부분이 변비가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환경적인 면에서 보면 우리의 방귀도 달라져요.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은 온실가스가 많은 방귀를 뀌고 비건 지향인은 온실가스가 적은 방귀를 뀌거든요.

작은 소반에 상을 차리는 식사 공간

동물성 음식을 피하려다 보면 오히려 밀가루 같은 정제 탄수화물 섭취가 늘어나기도 하잖아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건강한 비건 식사는 고구마나 오이 같은 채소를 소금, 설탕 같은 별도의 간을 하지 않고 먹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런 식사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자신만의 채식 식단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같은 튀김 요리지만 닭을 튀기느냐 버섯을 튀기느냐, 설탕이 엄청 들어간 사과 주스와 케일을 함께 갈아서 만든 사과 주스를 마시느냐는 다르잖아요.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조금씩 건강한 방향으로 바꿔가는 거죠. 금욕적인 채식은 오래가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채식을 오래 지속하려면 요리를 배우거나 채식 요리가 흔한 곳에서 살면 돼요.

채식 셰프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어려서부터 요리를 즐겼어요. 달걀을 먹어도 한 번에 열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볼 정도로 호기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소비적인 식습관에 대한 강연을 다녀보니 강연도 좋지만 오히려 요리를 통해 경험을 전달하는 게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후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미국에서 순식물성 요리 과정을 수료하고 밀라노와 파리의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에서 무보수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고요.

코스로 차리는 파인다이닝 채식 요리라니 호기심이 생겨요. 어떤 요리를 하나요? 채소의 다양한 매력을 즐길 수 있도록 사람들이 평소에 먹지 않는 방법으로 만들거나 들어본 적 없는 재료를 사용해 요리해요. 예를 들어 보통 차로 마시는 작두콩을 직접 만든 식물성 버터에 바삭하게 구워내고, 식전빵으로는 버터를 발라 구운 뻥튀기를 내는 식으로요. 수박을 잘 말려 참치회 같은 식감을 즐길 수 있는 요리로 만들기도 해요. 특히 요즘 관심이 있는 자연산 버섯은 정말 신기하고 예쁜 것이 많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채소가 많은데 우리가 왜 삼겹살에만 열광해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요.

토끼의 사찰, 속세의 유혹, 콩의 복잡성 등 요리 이름도 재미있어요. 한국 사찰 음식의 철학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요리를 해요.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데, 버섯이나 콩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소중히 여기는 시선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요리할 때 파 뿌리, 배추 꼭지 같은 부분도 버리지 않고 육수에 사용하고, 육수를 낸 버섯이나 다시마는 저희가 먹어요. 음식을 낼 때도 적은 양을 아름답게 담기 위해 신경 써요. 그 음식에서 자연의 한 부분이 연상되었으면 하며 담고요. 그리고 조금 담긴 음식은 소중히 여겨져 감사히 먹게 되잖아요. 조금씩 나온 코스를 다 드시고는 굉장히 배가 부르다는 손님이 많죠.

 

호기심을 자극하는 레스토랑의 외관.

 

채식과 채식 요리에 도전해보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무리하지 않기. 채식을 실천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신을 너무 채찍질하면 채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모순을 보지 않으려 애쓰기보다는 그대로 바라보면 바꾸기가 쉬워져요. 다양한 방법이 보이고요. 채식 요리도 아주 쉬워요. 마트에 가서 이제까지 사지 않았던 재료를 구입해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요리해보는 거예요. 망했다고 생각하면 못해요. 망했다는 건 어떤 기준이 있다는 건데 그런 기준은 없어도 돼요. 입맛에 맞게 간하면서 다양한 레시피를 시도해보세요.

비건계의 백종원을 꿈꾼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하하. 저는 여자고 채식을 하는 사람이고 음식과 정신 건강을 공부한 셰프로 알려지고 싶어요. 단, 쉽고 즐겁게요. 제가 전하려는 이야기는 사실 굉장히 무겁거든요. 그래서 더 즐겁고 맛있게 하려 하죠. 물론 백종원 대표의 가격 경쟁력은 따라가기 어렵겠지만 요즘은 가심비라는 게 있으니까요!


비건 식당을 달군 이국의 발효 음식

‘파아프 템페’ 장홍석

우리가 콩으로 된장, 간장, 두부 등을 만드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는 콩을 발효해 템페를 만들어 먹는다. 템페는 두부처럼 네모난 모양에 치즈처럼 흰 곰팡이 더께를 입었다. 단단한 템페는 그대로 팬에 굽거나 얇게 썰어 튀기는 등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다. 요즘 서울의 채식 레스토랑에서도 셰프의 창의력이 발휘된 템페 요리 한 접시를 쉽게 맛볼 수 있다. 마침내 한국에도 신선한 템페를 만드는 곳이 생긴 덕분이다. 발효에 대한 관심이 깊다는 ‘파아프 템페’ 장홍석 대표를 만나 이제 막 한국에 찾아온 발효 음식, 템페에 대해 물었다.

템페를 길쭉하게 잘라 구우면 맛있는 김밥 속재료가 된다.

 

우리가 콩으로 된장, 간장, 두부 등을 만드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는 콩을 발효해 템페를 만들어 먹는다. 템페는 두부처럼 네모난 모양에 치즈처럼 흰 곰팡이 더께를 입었다. 단단한 템페는 그대로 팬에 굽거나 얇게 썰어 튀기는 등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다. 요즘 서울의 채식 레스토랑에서도 셰프의 창의력이 발휘된 템페 요리 한 접시를 쉽게 맛볼 수 있다. 마침내 한국에도 신선한 템페를 만드는 곳이 생긴 덕분이다. 발효에 대한 관심이 깊다는 ‘파아프 템페’ 장홍석 대표를 만나 이제 막 한국에 찾아온 발효 음식, 템페에 대해 물었다.

SNS에 #템페를 검색하니 900개 정도의 게시물이 떠요. #tempeh라고 검색하면 223k나 되는데 말이에요. 이제 막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음식인가 봐요.네 우리 식탁에 김치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템페를 즐겨 먹어요. 어떤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템페가 뭐냐고 물으니 정신(spirit)이라고 답할 정도로 국민 음식이죠. 네덜란드에 식민 지배를 당했던 역사가 있어서 네덜란드나 미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음식이에요.

템페를 언제 처음 알게 되었나요? 현대무용을 전공한 저는 안무가 및 무용수로 여러 작업을 했어요. 당시 해외 공연 일정이 많았는데 우연히 인도네시아로 공연을 갔다가 템페를 처음 맛봤죠. 전처럼 보이는 튀긴 템페였는데 삼발 소스에 찍어 맥주 안주로 먹으니 굉장히 맛있었어요. 머무는 내내 튀기거나 굽거나 수프에 넣는 등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만든 템페 요리를 맛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찾아봤어요. 인터넷을 뒤져 이태원의 수입 상가에서 파는 제품을 사봤는데 제가 알던 템페의 생김새가 아니었어요. 제품 뒷면을 읽어보니 GMO 콩이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적혀 있는 데다 유통기한이 거의 2년이나 지났고요. 집에 와서 포장을 뜯어보니 맛도 없고 신선하지 않은 템페에 실망했죠. 그래서인지 다시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는 만드는 방법이 궁금해지고 한 번 배워보고 싶어졌어요.

해방촌의 비건스페이스에서도 템페를 판매 중.

맛있는 템페가 먹고 싶어 직접 만들 생각까지 하다니요. 그런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어요. 미국이나 네덜란드에 있는 공장식 생산 라인을 갖춘 브랜드에 메일을 보내 견학 문의도 해봤지만 인연이 닿지 않더라고요. 수소문 끝에 일본에 있는 ‘루스토노 템페’와 연락이 됐어요. 일본 여성과 결혼한 인도네시아의 템페 장인이 일본에서 템페를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었어요. 처음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는 이미 다섯 곳 정도의 템페 공장이 있었대요. 그런데 이분이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가 모두 문을 닫았어요. 전통 방식으로 만든 템페가 아니라 맛 차이가 컸던 거죠. 그래서 지금은 일본에서 혼자 판매를 하고 있는데, 저는 거기서 6개월 정도 머물며 배우고 돌아왔어요. 그리고 집에 작게 발효실을 만들어 계속 실험을 했죠.


 

템페는 어떻게 만드나요? 발효 음식이라 과정이 복잡할 것 같아요. 사실 템페를 만드는 방법은 유튜브에도 나와요. 묵은 콩을 삶아 껍질을 벗긴 뒤 덩어리를 나눠 납작하게 모양을 잡고 개별 포장해 사흘 정도 발효시켜요. 전통 방식과 공장식 생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식초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죠. 식초가 들어가면 발효에 필요한 시간이 하루 더 당겨져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발효가 약하고 풍미가 떨어지죠. 그래서 저희는 콩, 균 두 가지만 사용해 자연적으로 나오는 콩물로 1차 발효를, 균을 접종해서 2차 발효를 해요. 일본에서 방법을 배워왔어도 환경이 다르니 실험을 계속하다 마침내 알맞은 발효 지점을 찾아냈고, 사업으로 확장하려니 혼자는 힘들 것 같아 아버지와 함께 충청도 태안에서 생산하고 있어요.

유독 채식 식당에서 반응이 좋아요. 파아프 템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지난해 7월에 혜화 마르쉐에서 처음으로 판매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해방촌의 비건스페이스나 온라인상으로도 판로를 넓혔어요. 특히 채식하는 분들이 많이 응원하고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고기만큼 단백질이 풍부하고 소화도 잘되어 항암 치료를 받느라 동물성 음식에 민감해진 분들도 찾으시고요. 그렇지만 템페를 콩고기 같은 채식 대체 음식으로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두부가 그렇듯 고기를 먹는 사람도 맛있게 먹는 또 하나의 음식일 뿐이니까요.

템페는 어떻게 먹어야 맛있나요? 가장 근사하고 쉬운 방법은 팬에 굽는 거예요.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웠을 때도 진짜 잘 구웠다 싶으면 기분 좋게 먹게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구워서 소스에 찍어 먹거나 샐러드 드레싱을 곁들여 먹어보세요. 너무 센 불에 구우면 콩 특유의 쓴맛이 나올 수 있으니 중불에 겉만 노릇하게 익혀야 해요. 한번 익히고 발효시키기 때문에 안까지 굽지 않아도 되거든요. 속까지 바삭한 식감이 좋다면 얇게 썰어 오븐에 구워보세요. 비건 베이컨이라 불리는 맛있는 템페 요리가 만들어져요. 저는 가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에 넣어 끓이기도 하고 카레에도 넣어요.


파아프 템페라는 이름에 담긴 뜻이 궁금합니다. 부분과 전체라는 뜻이에요. 영어로는 ‘Part All, All Part’ 앞 글자만 따서 파아프(PaAp)고요. 부분에서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하고, 또 전체에서 부분을 바라볼 수 있는 윤리적인 시선으로 사업을 해나가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어요. 조금 어렵나요? 하하. 제가 좋아하는 책 《부분과 전체》에는 과학자들이 핵을 발명할 때와 전쟁의 무기가 되어버린 오늘날을 예로 들며 화학자가 지녀야 할 윤리적인 사고를 말하는데, 그 태도가 저에게도 와 닿았어요. 살면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제가 기준으로 삼는 가치관과 같거든요. 템페와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이름이지만 템페가 여러 균이 섞여 만들어지는 발효 음식임을 생각해보면 유사성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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