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납력

그릇장을 꽉 채운 물건 하나하나에 시간과 마음이 깃들어 있다.

요리 연구가 정주연 @Cookjung

“유행이 지나도 나에게 꼭 맞는 옷이 있잖아요. 그릇도 마찬가지예요. 오래된 것들에 자주 손이 가요. 어머니께 물려받은 노리다케 그릇은 40년도 더 된 것들이지만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의 깊이를 지니고 있어요. 줄리스카, 화소반, 세덱, 로얄코펜하겐 같은 다양한 브랜드의 믹스매치를 좋아해요. 양식 그릇에 한식을 담고, 한식 그릇에 양식을 담는 시도도 즐길 줄 알게 됐죠. 로얄코펜하겐의 그릇에 유기그릇을 매칭하는 시도는 테이블에 색다른 품격을 더해줘 특별한 날에 세팅해요. 다양한 종류의 그릇을 수집하며 자연스럽게 수납의 노하우도 익혔어요. 켜켜이 쌓는 정리방법은 그릇을 꺼낼 때 곤혹스럽잖아요. 한눈에 보이길 원했지만 지저분해보이지는 않았으면 했어요. 5월에 이사하면서 새로 들인 자작나무 그릇장에는 이런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벽처럼 보이길 원했지만 답답해 보이는 것도 피하고 싶었거든요. 수납력과 개방감을 모두 만족하기 위해 선반간의 폭과 너비의 황금비율을 찾기 위해 디자이너와 참 많은 이야길 나눴던 게 기억에 남네요.”


나무는 나무끼리, 구리는 구리끼리. 큰 그릇은 앞에 작은 것은 뒤로.

베이킹 연구가 딸공샘 @401recipe

“30년 가까이 그릇을 모으고 있어요. 그릇은 워낙 유행을 타니까 자주 정리하는데 결국 남는 건 오래된 그릇이에요. 수업 때 어디서 샀냐고 묻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옛날에 산 것,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것들이 많아서 답변을 못할 때가 많아요. 특히 나무 식기를 좋아해서 1990년부터 모으기 시작했어요. 비슷할 수는 있어도 같은 건 없으니까. 목기에 관심이 깊어져서 3년 전부터는 아예 목공을 시작했어요. 이제 도마, 볼, 나이프 같은 것들을 직접 깎아서 쓸 수 있는 실력이 됐죠. 내가 원하는 수종, 형태, 그립감에 맞출 수 있으니까 취향이 깊어지네요. 최근에 스튜디오를 정리했어요.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새 주인을 찾아주었죠. 그릇장 위치도 바꿨어요. 쿠킹 스튜디오와 목공 작업 공간을 나누었고, 작은 집기들을 뒤로 수납하고, 큰 것들을 앞에 두었어요. 작은 건 틈 사이로도 꺼낼 수 있으니까요. 구리, 무쇠 소재에 애착이 있어요. 베이킹을 할 때는 열전도율이 높은 구리 냄비는 유용하기도 하고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릇을 모을 수 있다면 구리 냄비를 많이 살 것 같아요. 나날이 구리 가격이 올라 이제는 2.5mm 두께 제품은 찾기 어렵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이 그릇들을 물려주고 싶어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푸드 스타일리스트 조주연 @vanilla.spoon

“파리바게트나 할리스커피, 피코크 등 브랜드의 광고 푸드 스타일링을 15년째 하고 있어요. 저는 귀고리도 하나밖에 없어요. 가방, 구두도 거의 없고요. 저한테는 그릇들이 보석이에요. 여러 브랜드와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릇이 많아졌어요. 그런데도 그릇마다 어디서 사고 어느 촬영에 사용했는지 다 기억해요. 빨간 컵은 로고가 레드 컬러인 브랜드 때문에, 나무 숟가락은 곡물이나 요거트 촬영에 사용하니까 보일 때마다 사들였어요. 브랜드마다 선호하는 컵의 모양도 달라요. 베이커리 분야를 주로 작업하다 빈티지 그릇들도 많이 모았어요. 일본 , 홍콩,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공수했죠. 아버지가 오랫동안 모으신 소품, 그릇을 많이 물려받은 건 특별한 행운이죠.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옷을 입는 방법, 물건을 대하는 자세, 세월이 깃든 것의 가치를 일러주곤 하셨어요. 지금은 함께 할 수 없는 먼 곳으로 가셨지만 작업할 때마다 함께 계신 것처럼 느껴져요. 빈티지 물건들은 낱개가 모여 조화롭게 어울리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저에겐 보물과도 같아요.”


완벽한 수납은 없어요. 계속 매만지면서 제자리를 찾아가죠.

빈티지 숍 디렉터 박지연 @Analog_gadget

“이곳은 카페이자 빈티지 숍이고, 푸드 스타일링을 하는 제 작업실이기도 해요. 너무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려 했어요. 빈티지 그릇들은 하나하나가 오브제예요. 그래서 사용하지 않더라도 창가나 테이블 위에 얹어두었죠. 소재별로 모아놓는데 특히 유리는 창가에 두려고 해요. 유리에 빛이 투과되는 모습이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중학생 때부터 빈티지 물건에 관심이 많았어요. 미국에서 7~8년간 체류하면서도 정말 많은 물건을 수집했어요. 주부가 되고 나서부터는 그릇 위주로 모았고요. 미국의 빈티지 물건들은 색이나 폰트가 통통 튀면서 발랄해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죠. 미국에서 이 많은 물건을 가져올 때 정말 힘들었어요. 이삿짐을 여덟 명이 3일이나 쌌어요. 이삿짐센터에서 이렇게 많은 짐을 싸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죠. 보통 귀국할 때는 자잘한 살림살이들을 파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것들을 애지중지했으니까요. 후추, 소금 통이 유난히 많아요. 미국엔 소금, 후추 통을 테이블에 두는 문화가 있기도 하고 오랜 시간 두 물건이 같이 다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 모으기 시작했어요. 오벌 플레이트도 좋아하는데, 원형 그릇의 너무 힘주어 차린 듯한 분위기와 다른 매력을 지녔죠. 타원형 접시에 흐르게 담아내면 어릴 때 엄마가 해준 음식처럼 소박한 편안함이 더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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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r_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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