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정은

누군가의 엄마, 아내를 연기한다. 배우로서 흔한 이름을 가졌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정은은 자신을 또렷하게 각인시켰다.

요새 엄청 바쁘죠? 아뇨. 지금 드라마 하나 찍고 있어요. 아, 이 마카롱 하나 먹어도 돼요? 달달한 거. 제가 이런 촬영에 익숙지 않아서.

그럼요. 영화제 때 입은 의상이 인상적이었어요. 오늘도 그렇고요. 영화,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매력이에요. 그게 다 스타일리스트와 테일러의 노력이에요. 포멀한 의상을 입어야 해서 원래 준비한 옷을 못 입게 됐어요. 그래서 급하게 제작했죠. 제가 목이 짧아서 목둘레를 좀 파고 각을 잡아서 만들었어요. 봉준호 감독님은 공화당 주지사 부인처럼 입고 왔다고. 하하.

영화제 이후로 어떻게 지냈나요? 지금은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를 찍고 있어요. 가평에 있는 세트장 지하 3층에서 촬영해요. 작품 홍보를 위해서 무대인사도 다녀야 하는데, 촬영장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은둔형인가 봐요. <기생충>이 너무 잘 되니까 부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되게 많더라고요. 촬영장에서는 그런 일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죠. 동료들과 함께 관객들한테 인사하러 다니는 것도 좋은데, 작업에 몰두해 있을 때가 제일 좋아요.

바로 원래 리듬으로 돌아간 것 같네요. 드라마, 영화,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 들어가 있을 때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평상시엔 약간 뇌를 놓아두고 사는 스타일이라. 헐렁헐렁. 하하. 여느 사람들이랑 똑같이 마트 가고, 개들과 산책을 해요. 너무 평범하게 다녀서인지 알아보고도 어느 선 이상 접근을 안 하세요.

<기생충>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땠어요?잊을 수 없죠. 시나리오를 보기도 전에 이미 저를 어떤 역할로 생각하고 있다는 멋진 프러포즈를 받았으니까. 또 배우로서 감독, 작가가 작품 안에서 살려내고자 하는 인물을 연기할 때만큼 행복한 것이 없거든요. 제가 그런 역을 맡은 거고요. 이야기 구조 안에서 그 역할이 돋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아마 여정 씨, 혜진 씨도 그 역할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하하.

모든 배우가 연기를 잘한 건 물론이고 시나리오가 참 대단했죠. 시나리오를 읽고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했어요. 또 흥행 면에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사회에 시사하는 바와 대중성 두 가지를 다 잡는 일이 쉽지 않은데 말이죠. 관객들이 영화의 중의적인 의미들을 찾으려고 하시는데, 사실 처음 봤을 때 뭐랄까, 구조 자체가 완결성 있고 심플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마스터피스, 대작일수록 이야기를 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놓치면 큰일 날 뻔했다 싶죠. 물론 그럴 일도 없었겠지만.

그렇게 좋은 작품과 캐릭터를 맡았는데 개봉 전까지, 아니 이후에도 주위에 말할 수 없었죠. 배우들은 비밀 서약을 하고 대본을 집으로 가져가서 어디에도 노출하지 않고 읽어야 했어요. 소속사 측에서도 영화 제작사의 한정된 장소에서만 대본을 볼 수 있었죠. 저희 대표님도 시나리오 보러 가서 두세 시간 동안 줄담배만 피웠대요. 모두 답답한 일 년을 보낸 셈이죠.

그러면서 설레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런 면이 있었죠. 남편으로 나온 친구(박명훈)한테 좀 더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말했어요. 명훈 씨가 가족들한테도 비밀로 했거든요. 저는 이전에 영화 <옥자>에서 옥자 목소리 연기하면서 비밀 서약을 한 적이 있었는데, 비밀을 잘 유지해서인지 결과가 좋았거든요.


“중간에서 받치는 역할을 할 때 재밌고 행복해요. 함안댁처럼요. 누군가에게 조연은 주연을 받쳐주는 역할로 보이겠지만 저한테는 하나하나가 되게 살아 있는 캐릭터로 느껴져요.”

<기생충>을 두 번 봤어요. 처음엔 ‘이 영화 뭐지?’ 싶었는데 두 번째 보니까 배우님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의 걸음걸이부터 위풍당당하던데요. 봉 감독님이나 저나 부잣집에서 일하는 느낌이 드러나지 않는, 자기 삶을 감추고 있는 가정부를 상상했어요. 첫 등장에서 사모님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그런 부촌에 사는 사람들은 직접 외제차를 운전해 출퇴근하기도 하고, 가정부들도 옷을 굉장히 품위 있게 입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강아지와 산책을 나오면 이 사람이 가정부인지, 사모님인지 모른대요. 친정 엄마 같기도 하고. 주인이 나간 뒤에는 그 집을 마음껏 즐기기도 하고, 주인이 졸고 있을 땐 도발적으로 행동하기도 하죠. 그래서 에너제틱하게 걸으려고 했어요.

남궁현자 선생님이 집을 지은 순간부터 살았으니까 집주인보다 그 집에 대해 더 잘 알기도 했고요. 아, 저밖에 몰라요. 그 예술혼은! 하하.

인터폰 장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어요. 봉 감독님도 그 장면부터 장르가 바뀐다고 했죠? 대본 리딩 때부터 술에 취한 설정이었어요. 말을 어눌하게 할까도 싶었는데, 저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예의를 계속 지키자고 해석했어요. 어쨌든 저는 대화하러 간 거니까. 다만 상대와 의논을 하려는, 계산이 서 있는 모습을 광각 렌즈로 들여다보니까 그로테스크하더라고요. 정상적이지 않은 말의 속도도 한몫했던 것 같고요.

저는 배우님이 <눈이 부시게>의 마음 아픈 며느리와 곁에 두면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생충>의 문광의 두 얼굴을 다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아마 감독님이 발견하고 개발해준 거겠죠? 제일 두려웠던 건 이 역할을 손꼽히는 배우들이 더 멋있게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자세히 보면 제가 오종종하게 생겨서. 하하. 그래도 제겐 개구진 면이 있어요. 어릴 때 심술천당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남 골리기를 좋아했거든요. 그런 저를 다른 식으로 투영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죠.

봉 감독님과는 <마더>가 첫 작품이죠? 뮤지컬 <빨래> 공연할 때 의상 디자이너 최세연 씨가 <마더> 오디션 보라고 권했어요. <빨래> 제작자이기도 하거든요. 오디션 때부터 단역한테까지 그렇게 신경 쓰는 감독은 처음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 외워서 영화 언제 만드나 싶었을 정도죠. 심지어 <기생충>에서 물난리가 났을 때 ‘나 좀 도와줘’ 외치던 단역들도 지방에서 굉장히 유명한 배우들이에요. 나중에 그런 사람들이 저처럼 어떤 역으로 부각될지 모르죠. 처음엔 워낙 유명한 감독이니까 실수하지 말아야겠다 싶었는데, <옥자>를 촬영하면서 술자리를 함께했어요. 제가 감독님이랑 나이가 같은 걸 알고 있었거든요? 술도 많이 마신 김에 ‘우리 친구야~’ 했다가 다음 날 바로 ‘감독님’으로 돌아왔죠. 하하.

봉 감독님 디테일은 엄청나죠? 별명처럼. 그렇죠. 그 디테일이 연출에서만이 아니고 배우에게 어떤 걸 끄집어낼지, 또 현장이 돌아가는 구조에까지 영향을 끼쳐요. 제 생각에는 영화에 미쳐 있기 때문에 한두 달이라는 촬영 기간에도 그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누구를 욕하자는 건 아닌데, 저는 작업할 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뺏는 사람들을 우매하다 느껴요. 봉 감독님의 디테일은 칭찬에서 나와요. 내 이름이 불리면, 칭찬받으면 더 잘하고 싶고 내가 이 현장의 주인인 것 같으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을 되게 구체적으로 애정하는 느낌을 주니까 다들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게 되죠.

반대로 배우님의 작업 스타일은 어때요? 저는 몰입파. 못 먹어도 고. 하하하. 경계심, 편견 없이 흡수하려고 하는데, 작업에 들어가면 좀 예민해지긴 해요. 많은 분이 제가 착한 줄 아시는데 집안 어른들은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하세요. 약간 왔다 갔다 해요. 하하.

현장 분위기도 많이 타겠어요. 많이 타요. 즐겁지 않은 현장은 저도 안 즐겁고. 어렸을 땐 겁도 많아서 울렁증도 겪었어요. 지금은 선배 입장에서 좋은 분위기도 만들어주려 노력하죠. 겁먹은 친구들은 눈에 보이거든요.

현장에서 선배와 후배의 딱 중간 위치잖아요. 제가 조연을 많이 했잖아요? 그게 좋아요. 너무 위 선배가 되면 책임을 많이 져야 하죠. 우리가 연기나 생활을 책에서 배우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선배, 동료, 또 후배들한테 배우고, 멘토들도 다 거기에 있고. 저는 배울 상대가 많은 셈이죠. 어떨 땐 조연 생활과 내 사회적인 어떤 갭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요.

특히 어떤 면에서요? 어떤 사람은 끌고 가야 하고, 어떤 사람은 조화를 위해 서포팅해야 해요. 저는 중간에서 받치는 역할을 할 때 재밌고 행복해요. 함안댁처럼요. 누군가에게 조연은 주연을 받쳐주는 역할로 보이겠지만, 저한테는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캐릭터로 느껴져요.

그래서인가요? 연기가 하나하나 다 살아 있다고 느껴져요.아, 글을 잘 써놔서 그래요. 하하. 어떨 때 배우가 제일 흥분하냐면, 단편적으로 한 면만 보이지 않는 배역을 만났을 때. 저랑 작업을 같이 한 연출들이나 작가님들은 캐릭터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었어요.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역할은 엄마, 며느리처럼 어느 정도 한정적이었잖아요. 근데 또 미혼 여성이시니까, 그걸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어요. 지금은 다양해져서 더 좋은데, 이전에도 사실 별로 불만은 없었어요. 왜냐면 나는 우리 엄마랑 옆집 엄마가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저번엔 숙이 엄마였다가 이번엔 돌이 엄마인 것이 좋아요. 가족도 계속 늘어가고. 게다가 캐릭터 사이에 미묘한 변화가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근데 사람들은 똑같이 보니까 그걸 바꿔주겠다고 나서는 감독과 작가가 있어 행복하죠.

이번에 김혜수, 김선영 배우와 영화 작업에 들어가죠? 근데 이번에도 누군가의 엄마지 뭐. 앞으로도 엄마, 이모, 고모 다 할 거예요. 역할보다 중요한 건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될지예요. 작품으로 무슨 교훈을 주겠다는 건 아닌데, 채널을 돌리거나 영화관을 나설 때 여운이 남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분명히 있죠. 그건 제가 작품을 하는 철학이니까. 좋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어떤 매개자로서도 우주여행을 계속하고 싶어요

플로럴 프린트 셔츠와 레이어드한 드레이프 슬리브리스 톱은 모두 자라.

이전에 했던 역할과 비슷한 캐릭터는 꺼리는 배우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저는 변덕이 심하긴 하지만 일상은 지루한 거라고 생각해요. 지루한 일상이 모여서 어떤 특별한 나를 만들잖아요? 또 아직도 연기할 때 모자란 부분이 많아서 똑같은 역할을 해도 계속 부족해 보여요.

맞아요. 지루한 보통의 날들이 모여서 내가 되죠. 그런데 이름도 평범한 편이잖아요. 엄마, 아내 역할을 많이 하다 보면 이름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예전에 뮤지컬 <빨래>를 할 때 극 중 인물인 ‘이기조’로 바꿔볼까 했어요. 너무 세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제가 인물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어머니가 매일 말하셨거든요. 그런데도 거울을 볼 때면 ‘나 참 예쁘지?’라고 말해서 어머니가 ‘또라이’라고 그랬어요. 하하. 어릴 때 같은 반에 ‘정은’이가 참 많았어요. 그런데도 저는 자신을 독특한 이정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특별한 이정은. ‘난 남들과 달라!’가 아니고 그저 각자 고유한 의미가 있는 거죠. 그게 자존감일 수도 있고요.

그 자존감으로 지난 30년간 연기를 해온 건가요? 연극배우로는 일정한 수입이 없으니까 마흔 살까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마트에서도 일했고 간장, 녹즙, 채소도 팔았죠. 근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좋은 것만 기억에 남아서인지 그 시절이 꽤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 제일 하이클래스에 해당하는 일은 대학에서 교수로 연기를 가르친 일이에요.

진짜 다양한 일을 하셨네요. 근데 내가 참 착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애들한테 ‘이렇게 해’라고 가르치는 것만큼 내가 연기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다 접고 배우만 열심히 했어요. 다시 교직에 서라고 해도 할 마음이 없어요. 좋은 스승은 인생에 방점을 딱 남기잖아요. 그건 정말 특별한 직업인데 제가 교직에 있을 땐 잘난 체하기 바빴어요. 그게 제 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어요. 오히려 지금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면, 말이 아니라 인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선배, 어른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50대면 여자는 갱년기가 오잖아요. 저는 결혼도 안 했고요. 근데 조카, 친구들 아이들만 봐도 너무 예뻐요. 앞으로 결혼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셀 수 없이 많은 어른들의 영향을 받았으니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죠. 세월호 같은 일도 다시는 안 일어나도록, 또 어떤 민주적인 풍토를 잘 세우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수명이 길어져도 지금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길게 못 사니까 뒤에 서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고민하는 거죠.


보통은 엄마가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다고 하죠. 역할 때문에 바뀌는 게 아닐까요? 그런 역할을 하게 되니까? 연기를 하다 보면 극 중 애들의 미래가 걱정돼요. 실제로. 이제 뉴스 같은 거 봐도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있나 그런 생각도 좀 들고. 내가 무슨 세계를 구할 거라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하.

남들은 각자도생, 제 몫 지키기에도 어려운 세상이라는데. 노인과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하는 나라가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힘이 있을 때는 자기가 알아서 찾아 먹지만, 힘이 없는 사람들, 약자에 대한 고민을 하는 국가가 많지 않잖아요. 환경도 마찬가지고.

배우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는 거죠. 김혜자 선생님의 책 제목이기도 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너무 와 닿잖아요. 20년 동안 유기견 네 마리를 키웠어요. 처음에는 훈육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무언가 바뀌는 건 시간의 몫이에요. 근데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는 일을 잘 선택하지 않죠. 모든 작품을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몇 작품이라도 그런 메시지를 담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긴 세월 동안 연기해온 원동력이 궁금해요. 즐거우니까. 약간 잘난 체도 있는 것 같고. 하하. 연기를 가르칠 때 제자들이 ‘이번 역할은 어디서 어디까지 저를 보여줘야 할까요?’ 물어봐요. 경계가 없어야, 그게 나인지 인물인지 몰라야 ‘이런 모습이 있었는데?’ 할 수 있어요. 사실 배우들 일상은 재미없어요. 근데 작품 하는 동안은 탐구하니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다른 환경, 인물에 처했을 때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다양한 층위를 발견하는 거겠지. 다들 약간 불완전한 인간들 같기도 하고.

일상 속 이정은은 어떤 사람이에요? 동네 아줌마예요. 별거 없어요. 근데 내 친구들은 이상하다고 하더라고. 어딘가 약간 빈 사람 같고. 그냥 동네를 헤집고 걸어 다니니까. 어렸을 때 ‘어디 사니? 아파트 사니?’ 그런 질문이 제일 싫었어요. 아파트에 사는지, 판자촌에 사는지 왜 궁금하냐고, 내 친구인데. 지금도 비슷해요. 경제적인 관념도 없고. 제가 누군가를 만날 때 단점이자 장점은 그 사람의 백그라운드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누가 증권 회사 다니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겠어요.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 편한 건 내가 배우인 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외국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노는 걸 좋아해요.


“채널을 돌리거나 영화관을 나설 때 여운이 남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분명히 있죠. 그건 제가 작품을 하는 철학이니까. 좋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어떤 매개자로서도 우주여행을 계속하고 싶어요.”

울 소재 맥시 코트는 코스, 앵클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인스타그램에서 기르는 강아지들 사진 봤어요. 13살, 8살이 되었어요. 3살 때 입양해서 꽤 오래 같이 살았죠. 나이 든 애들을 데려오면 컨트롤하기 되게 힘들어요. 우리 집에 가장 나중에 온 애가 집을 하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놔서 아예 안 치우고 살았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 안 하더라고요. 그러기까지 5년쯤 걸린 것 같아요.

저도 유기견을 입양해서 3년째 키우는데 얼굴도 물리고 아주 힘들어요. 저도 물렸잖아요. 여기 눈에 흉터 보여요? 그때 알았어요. 혼낸다고 때린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강단에 섰을 때 그냥 툭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학생들이 10년이 지난 뒤에 찾아와요. 우리는 선문답 훈련이 안 되어 있잖아요. 내 생각이 그 질문이 닿을 때 고민이 시작되죠. 전인교육. 우리 모두는 스스로 치유할 힘이 있고 스스로 공부할 여력이 있다. 아 무슨 대단한 교육자 같네. 하하.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는 거죠? 어머니가 절 그렇게 교육하셨어요. 배우고 싶다는 건 다 시켜주셨고 관둘 때도 말리지 않았거든요. 저희 어머니는 진짜 독특한 분이에요. 제가 독립해도 한번을 안 와보셨어요. 아니 어디 사는지를 모르세요. 제가 전화하는 게 유일한 연결고리죠. ‘왜 그러시냐’ 여쭤봤더니 ‘믿음이 간다’고 하셨어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점쟁이가 ‘쟤는 어디다 내놔도 지 살길 대로 살 거니까 냅두라’고 했대요. 오히려 부모님 댁 근처에 사는 요즘 더 자주 전화하시고 ‘언제 들어갔냐, 사람 함부로 믿지 말아라’ 잔소리하시죠.

사람들이 더 주목하니까 그러시는 건 아닐까요? 이제 망했어요. 주목하면 단점이 다 보일 텐데. 하하. 작품이 늘수록 몰두할 시간이 적어지니까. 최대한 정신을 바짝 차려야죠.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시간도 잘 쓰고 기대에 부응해야죠. 근데 사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왜냐면 잘된 작품도 있었지만 안될 때도 욕먹으면서 계속해온걸요. 대중의 사랑이 사라진다면 사라지는 거죠 뭐.

엄청 담담하네요.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야 하니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이잖아요. 만약 석 달이 필요한 일인데 두 달밖에 없어서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면 내 탓이지. 일단 8월 31일부터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로, 내년에 넷플릭스 <나홀로 그대>라는 작품으로 만나게 될 거예요. 영화도 준비 중이에요. 원래 하던 대로,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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