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강남역 9시

상대보다 더 빛나려고 애쓰거나 서로 비교하며 주눅 드는 일과는 거리가 먼 모임이 있다. 에세이집 《다시, 시작합니다》의 저자인 엄마 8인이 보낸 1년.

(왼쪽부터) 이주영, 김지혜, 오현정, 조민정, 유해주, 양혜영, 김여나, 이지영

해가 지날수록 마음에 꼭 맞는 모임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또래 자녀를 키우는 모임에서는 아이 얘기 늘어놓기 바쁘고, 사는 곳이 먼 친구들은 점차 연락이 뜸해지기 마련.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아침 9시에 강남역에서 만나는 이들이 있다. 30대부터 40대까지 서로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워킹맘부터 전업주부, 이제 막 일을 그만둔 엄마, 프리랜서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최근 에세이 《다시, 시작합니다》를 출간한 엄마 여덟 명은 지난 1년간 각자 개인의 변화를 응원하며 이를 기록해 세상에 내어놓았다.
다국적 기업에서 수년간 일한 뒤 육아와 일상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며 5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김여나 씨는 매일을 덧없이 흘려보내지 않고 1년 동안 매달 계획을 세우고 인생의 목표와 결과를 기록하기로 했다. “일이나 육아가 아니라도 나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남기고자 했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도전하고 싶었죠.” (김여나) 모임 멤버를 모집하는 글을 올리자 수십 명이 지원을 했다. 1년 동안 책임감 있게 참여할 멤버를 뽑기 위해 꽤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다. 회비 5만원, 모임 시간 토요일 아침 9시 강남역. 금요일 저녁 약속도 망설여지고, 달콤한 늦잠이 유혹하는 토요일 오전 모임이다. 회비 5만원은 아이의 실비보험 2달 치를 낼 수 있는 돈이지만 엄마들은 어떤 이끌림에 모임 장소로 향했다.
첫 모임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타인 앞에서 20분간 키워드를 말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한 사람이 투명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자 고백이 이어졌다. 오히려 가족이나 지인 앞에서보다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해방감을 맛봤다. “처음에는 쑥스럽기도 했지만 과거에 경험한 역경, 앞으로의 꿈을 얘기하며 집단 심리 상담 같은 치유 효과를 얻지 않았나 싶어요. 강의에서 정량적인 정보를 얻는 것과는 또 다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죠.” (양혜영) “직장에선 일만 하고 집에서는 아이 셋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돌봐야 하니까 늘 나를 표현하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간절했죠. 남편에게 젤리 세 봉지와 TV 리모컨을 쥐어주고 아침 7시에 집을 나서곤 했어요.”

《다시, 시작합니다》와 1년 살기를 도와주는 다이어리 . 더블:엔 출판.

그렇게 달마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얼마나 지켰는지 얘기하고, 함께 읽은 책의 소감을 나누고, 각자의 재능을 공유했다. 출산 뒤 디스크를 앓던 유해주 씨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매일 30분씩 재활 운동을 했고, 김지혜 씨는 경제신문을 읽고, 오현정 씨는 ‘테드’를 통해 영어 스크립트를 공부했다. 소소해 보이지만 미루기 쉬운 일, 학생이나 싱글일 때는 쉽게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멀어진 일들을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재테크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앞장서서 재테크 강의를 하고, 출판·외국어 등 특별한 분야에 능통한 사람은 자신이 아는 바를 발표하면서 관심사와 지식의 폭도 늘어났다. 또한 각자의 인맥을 적극 활용해 자극을 줄 수 있는 작가와 지인을 초청하는 살롱 문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가정에만 머무르던 관심사가 공동체로, 사회로 확장하는 경험을 한 것. “‘내 인생의 왜(why)’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첫 모임에 참석했을 때와 지금은 달라요. 처음에는 아이에게만 관심이 쏠려 있었지만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됐죠.” (이주영)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목표지만 달성하면 모두에게 진심으로 축하받고 인정받는 분위기기 장점이에요.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15년간의 직장 생활을 그만둔 뒤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모임을 하면서 돈을 벌거나 생산적인 활동만이 사회적인 활동이 아니고 작은 행동도 누군가에게는 열심히 사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이를 알리고 싶어요.” (오현정)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했던가.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편안하게 서로를 위로해줄 존재가 필요하다. 일상을 유지하는 사소한 성공에 무관심한 지금의 사회에서는 더욱이. ‘1년 살기’ 모임처럼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온전히 상대의 능력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여자들의 모임은 함께 나아가는 분명한 원동력이 된다. “책 준비 또한 일사천리였어요. 디자이너, 개발자 출신 엄마들은 실무를 담당하고 다른 엄마들은 기획 담당, 정리 담당 등을 맡았어요. 서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능력을 믿어주니 일이 수월하게 진행됐죠.” (조민정) 출간 뒤 북 콘서트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 여덟 엄마들은 자신의 목표 달성 비결을 담은 다이어리를 함께 제작하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임에 참여하길 권유하며 어느 곳에서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엄마들의 모임이 더욱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1년이 지나도 모임을 계속 유지하는 이들은 이제 또 다른 재미난 프로젝트를 구상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했던가.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편안하게 서로를 위로해줄 존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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