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희서의 왼쪽 얼굴

마주 앉은 그녀는 다음 할 말을 고르느라 종종 뜸을 들였다. 카메라에 자신이 좋아하는
왼쪽 얼굴을 서슴없이 내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과하지 않지만 선명한 태도,
조심스러우면서도 명석한 생각으로 가득한 표정이야말로 그녀의 진짜 얼굴이다.

몸은 정직하다. 정직만큼 사람을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배우 최희서는 2년 전 영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를 통해 테크닉컬한 연기의 정수를 보여줬다. 그녀는 그해 대종상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안았고 이후 TV 드라마 <미스트리스>와 <빅 포레스트> 출연, 그리고 최근에는 두 번째 주연작이자 독립영화인 <아워 바디>를 선보였다. 자신에게 쏠린 기대에 찬 시선에 여지없이 완벽한 연기로 화답한 그녀는 개인 블로그에 ‘희서의 書, 86년생 배우 최희서입니다’로 자신의 결혼 소식을 직접 알렸다.
최근 두 번째 스크린 주연작인 영화 <아워 바디>가 개봉했다. 덕분에 신혼여행도 미뤘다고 들었다.
개봉한 다음 인터뷰, 무대 인사, GV(관객과의 대화) 같은 영화 홍보 일정이 빠듯하게 이어졌다.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야 해서 다소 피곤하긴 하다. 게다가 공교롭게 영화가 개봉한 주말에 결혼식까지 겹쳐 더 정신없었다. 생애 한 번뿐인 결혼이지만, 그렇다고 개봉작 홍보를 미룰 수는 없었다. <아워 바디>
만 놓고 보면 영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 또한 마지막이니까. 특히 독립영화 홍보는 배우들이 큰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고, 흔쾌히 이해해줬다. 이준익 감독님과 <동주>, <박열>을 연이어 찍으면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감독님은 영화를 개봉하고 나면 홍삼이나 한약으로 체력을 보충해가면서 닷새 동안 기자와 일대일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게 당연한 책임이고 의무라고 생각하신다. 그런 모습을 봐와서인지, 이렇게 하는 것이 나한테는 훨씬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카메라 밖에서도 배우의 역할, 또는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편인가?
초등 시절 학예회에서 우연히 연극 무대에 선 뒤로 늘 배우를 꿈꿨다. 모두가 나를 바라볼 때의 두근거림과 짜릿함을 잊지 못하겠다. 이상하게도 연기하는 것 외의 삶을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다. 나처럼 어떤 일이 너무 좋아서 그걸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일과 생활을 완벽하게 분리하기 어려운 것 같다. 연기는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인데, 카메라가 꺼졌다고 생각이 안 날 수가 있나! 그래서 집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영화나 전시 등을 보면서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 것, 또 나를 채울 수 있는 것들을 찾는 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불편하다. 직무유기를 하는 기분이랄까.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야지’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습관처럼 일상의 많은 것을 연기적으로 해석하고 바라보게 된다. 정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차라리 여행을 간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둘러싸이면 아무래도 평소에 늘상 이어오던 고민을 덜 하게 되니까. 서울에서는 그게 안 된다. 박순천 선배님이 “일 자체가 삶이고 삶 자체가 일이라고 생각하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 크게 와 닿았다.

그렇게 연기에 대한 꿈이 큰데 왜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나?(그녀는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할 정도로 순진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 간 뒤에 너 하고 싶은 것 다 하라”는 엄마 말만 듣고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하하. 특히 언어 공부를 좋아했고 잘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연기(Acting)’ 수업을 받으며 조금씩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워갈 때도 공부를 놓지는 않았다. 가끔 부모님과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는 단 몇 시간의 즐거움이 굉장히 컸다.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공부에 집중했고, 원하는 대학에 가자마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주재원 발령으로 초등학교는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다녔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까지 능통한 건 이러한 성장 배경 덕분인가?
물론 큰 영향을 받았다. 살아가려면 현지 언어를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다. 하지만 비슷한 기간 머물렀다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에 비해 좀 더 유창하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건 나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충 의사소통만 하면 됐지’ 하고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일본어로 된 소설은 꼭 일본어 버전으로 읽는다거나 영시와 셰익스피어를 원문으로 읽기 위해 일본어와 영어 공부를 했다. 그 언어만의 미묘한 뉘앙스, 문화적 배경 등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단순히 단어나 문법 외에도 그들의 문화에 완전히 빠져서 말과 소리에 동화돼야 한다. 누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외국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는 게 참 좋았다.

크든 작든 삶의 기술을 하나씩 익히고 쌓아가는 과정은 ‘성장하는 인간’의 필수조건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아워 바디> 속 ‘자영’도 달리기를 하면서 몸과 내면의 변화와 성장을 겪는다.
내가 연기한 ‘자영’은 8년 차 행정고시생으로, 31살이 될 때까지 머리만 써온 인물이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다가 우연히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리는 ‘현주’를 만나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달리기를 하면서 몸과 삶에 대한 태도가 변하는 것이다. 한 번도 자신의 꿈이나 욕망에 대해 고민해본 적 없던 자영이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이러한 변화가 몸, 신체라는 실체적 변화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실제로 촬영을 준비하고 연기하는 과정에서 내 몸의 변화와 성취감도 크게 느꼈다. <아워 바디>는 여러모로 내게 의미 있는 작품이다.

슬리브리스 원피스는 코스, 더블 칼라가 포인트인 벨티드 롱 트렌치코트는 로우클래식, 진주 장식 드롭 이어링은 미네타니.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나?
달리기에 매료된 자영이 몸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자신의 복근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위해 영화 촬영 전부터 한 달 반 동안 운동을 했다. 매일 조깅 40분, 빨리 걷기 1시간, PT 1시간 30분씩을 하다 보니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내 몸의 근육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없던 근육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지방을 걷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는데, 내 몸에 그런 근육이 숨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그 과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내 몸, 나의 생김에 대해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다이어트는 포기했어’가 아니라 활력 넘치는 몸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랄까. 영화에 “몸은 정직하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말에 굉장히 공감했다. 정직만큼 사람을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없는 듯하다.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편인가?
안 받았다면 거짓말이다. 학창 시절을 외국에서 보내고 난 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놀랐던 것이 타인에 대해 평가하는 문화가 너무도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위 ‘연예계’라고 하는 이곳은 더 심했다. 타고난 외모도 재능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보니
“살 좀 빼라”는 기본이고, “연기를 정말 잘하셔야겠어요”, “얼굴 어디는 고치는 게 어때요?”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는 이 사회에서 말하는 ‘예쁘고 여성스러운 배우’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점 때문에 연기를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나?
다행인 건, 타고난 기질인지 아니면 성장 환경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한 번도 믿지 못한 적은 없다. ‘오디션은 떨어지려고 보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천 명 중에 한 명 뽑는 게 오디션인데 당연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고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디션에 번번이 낙방하면서도 내 연기나 외모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나에 대한 크고 작은 긍정적인 반응들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떨어진 오디션에서도 아예 아니라거나, 나쁜 반응보다는 “어? 좀 괜찮은데?” 이런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덕분에 스스로 ‘내가 재능이 없지는 않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연극 동아리에 갓 들어간 나에게 한 선배가 “넌 배우로서 재능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연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긴다는 의미로 한 칭찬인데, 그게 굉장히 오랫동안 내게 힘이 됐다. 원래 혼날 때보다는 칭찬받았을 때 더 열심히, 더 잘하는 타입이다. 누군가 “너 왜 이렇게 연기 못해?”라고 했으면 아예 마음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대학의 그 선배처럼 당신의 인생에 용기를 북돋아준 사람은 또 누구인가?
배우로서는 이준익 감독님을 빼놓을 수 없다. 서른이 다 되어갈 즈음 <동주>를 통해 감독님을 만나고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감독님은 “있는 그대로의 네가 멋있어”, “너의 연기도 있는 그대로가 훌륭해”라고 얘기해주셨다. 예쁘지 않은 내가 연예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창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감독님의 말이 큰 힘이 됐다. 결국은 ‘나다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나 그냥 이대로도 괜찮구나, 살 안 빼도 되는구나, 메이크업 진하게 안 해도 되는구나 같은 생각이 실제로 들었다. 내 삶에 전면적으로 영향을 준 분이다. 또 한 사람은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은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녔다. 내가 뚜렷하게 보이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타입이라면 남편은 “네가 행복한 걸 보는 것이 내 기쁨이야”라고 말하는 지극히 이타적인 사람이다. 가장 나다운 모습일 때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다.

남편과의 만남과 연애 과정을 최근 개인 블로그(브런치)에 연재 형식의 글로 공개했다.
‘86년생 배우 최희서입니다’라는 첫 편의 제목처럼 배우로서 민감할 수 있는 나이와 결혼 얘기까지 다 끄집어냈다는 점이 다소 놀라웠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한국어 수업의 과제가 일기 쓰기였다. 그렇게 꼬박 6년 동안 쓴 일기가 무려 24권이더라. “오늘은 아빠랑 재미있게 놀았다. 즐거웠다”로 시작한 글들이 나중에는 단편소설처럼 이야기가 확장되는 것을 보니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더라. 이후로도 줄곧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시나리오도 틈틈이 쓰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초 한 출판사와 에세이 출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출판사에서는 내년 출간을 목표로 쓰고 싶은 것을 아무거나 다 써보라고 했지만 막상 내 얘기를 쓰자니 막막했다. 한동안 진도가 안 나갔는데 그 즈음이 마침 결혼 준비를 하던 차였다. 차츰 주변에 내 결혼이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고 예상치 못하게 걱정과 우려의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결혼을 앞두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이걸 풀 수 있는 방법이 글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속에서 뭔가가 쑥 올라오는 기분이 들어서 앉은 자리에서 쭉 쓴 것이 그 첫 번째 글이다. 결혼부터 나이까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거의 쏟아내듯 썼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무엇이 가장 기쁘고, 또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나는 “결혼한다”는 단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왜 벌써 해?”부터 시작해서 “결혼하고 일은 어떻게 하려고”까지 축하보다는 걱정의 말들이 실타래처럼 달려 나왔다. 나는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다가 그런 말들을 들으니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장 기쁜 순간을 앞에 두고 내가 왜 이런 고민들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 특히 여배우에게 요구되는 많은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이 얘기도 그렇게 나오게 됐다. 그 당시 드는 감정과 생각을 바로 동시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바로 연재를 시작한 것이다. 글로 쓰면서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됐고, 묵혔던 감정도 조금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 말고는 대체로 즐겁게 결혼 준비를 했다. 연애 때부터 줄곧 내 사진을 찍어오던 남편이 웨딩 사진을 직접 찍어줬다. 웨딩 케이크도 단골 빵집에 주문했다. 결혼식도 나를 정말 잘 알고 좋아해주는 동료들, 친구들과 모여서 파티처럼 즐겼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샴페인 병을 들고 다니는 사진은 그래서 나온 거다. 하하.

허리 부분에 길게 주름이 잡힌 빈티지한 분위기의 롱 원피스는 르비에르, 블랙 앵클부츠는 프로엔자스쿨러, 구조적인 실루엣의 이어링은 포트레이트 리포트.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
대학교 4학년 때 교양 수업에서 처음 만나서 몇 년간 친구로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됐다.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사진도, 음악에도 나보다 훨씬 조예가 깊어서 내게 많은 영감을 준다. 피아노도 잘 친다. 고맙게도 나만큼이나 내 일을 소중히 생각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글에도 쓴 적이 있는데, 그의 관대함과 이타심이 한때는 쉽게 이해가 안 됐다.
“당신은 욕심이나 야망이 없어?”라고 대놓고 물은 적도 있다.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 편히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더라. 다른 사람의 꿈과 행복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을 통해 배웠다. “넌 네 꿈을 충실히 지켜”라는 남편의 말 덕분에 내 꿈은 더욱 견고해졌다.

최근에 미국에서 오디션을 봤다고 들었다.
오디션은 아마도 평생 보지 않을까. 배우가 되고 나서 6~7년 동안은 직접 프로필을 만들어 제작사에 돌리고, 매니저가 아닌 스태프의 차를 타고 움직였다. 오디션은 물론 혼자 움직이는 일에도 아주 익숙하다. 지금은 매니지먼트 회사에 들어가 매니저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하니까 무척이나 편하지만, 대본을 읽고 오디션을 보는 건 결국 내 일이다. 앤 해서웨이 같은 배우도 오디션을 보고 <레 미제라블>에 캐스팅 될 만큼 미국에서는 오디션이 일상화돼 있다. 얼마 전에 오디션 동영상을 미국의 프로덕션에 보냈는데 일주일 후에 또 다른 디렉션을 주면서 추가 동영상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차 동영상을 보내고 나니 아예 미국으로 직접 와줄 수 없느냐는 연락이 왔다. 곧장 뉴욕 브로드웨이로 갔다. 브로드웨이는 뮤지컬로 유명하지만 제작사와 캐스팅 프로덕션도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종종 공연을 보러 가본 적은 있지만 내가 직접 오디션 보는 배우로 가다니, 그 자체가 굉장히 비현실적이었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지만 출연을 확정했다. 캐스팅이 완료되면 촬영을 시작하는데 그 전에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곧 연말인데 어떤 일상을 보내게 될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영화를 촬영 중인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극 중 사건 발단의 계기가 되는 인물을 맡아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황정민 선배, 홍원창 감독님, 홍경표 촬영감독님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분들과 함께 작업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무척 만족스럽다. 또 아직 신혼집 꾸미기를 못했다. 결혼의 즐거움 중 절반은 내 집, 내 공간을 꾸미는 일이라고 들었는데, 빨리 하고 싶다. 하하. 요즘 특별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잠들기 전까지 수다 떨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포근한 사람과 하루 있었던 일, 사소한 감상을 나눌 수 있어 참 좋다. 결혼 전부터 서로 많은 시간을 나눴음에도 우리는 늘 그렇게 할 얘기가 많다. 누가 먼저 “이제 잘 시간이네” 할 때까지 계속 얘기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의 내면이 좀 더 확장되고 커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 충만한 감정을 연기로든, 글로든 계속 표현하고 싶다.

결혼 후 내면이 확장되고 커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 충만한 감정을 연기로든, 글로든 계속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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