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와 변호사가 말하는 요즘 이혼

단지 ‘성격 차이’라고 규정한 수만 가지 상황들. 이혼을 지켜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직접 이혼을 겪어본 심리학자, 변호사가 말하는 오늘의 이혼.

“앞으로 남은 삶 동안 당신을 알아가는 게 믿기지 않아.” 속삭이듯 읊조리면 낭만적인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대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1월 개봉을 앞둔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는 당장 이혼을 원하는 스칼렛 요한슨이 울부짖는 장면에서 나온다. 함께 잠이 들고 아침을 맞이하고,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든든한 마음. 서서히 스며들어 습관처럼 되어버린 일상을 단번에 비워내기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처럼 결혼과 이혼이라는 제도에는 양면성과 모순이 따른다. 혼자일 때보다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 게 결혼이고, 둘일 때보다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 게 이혼이라는 명제만 봐도 그렇다.
과거에는 흠결로 치부되어 숨겨오던 이혼은 이제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여겨지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이혼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두 명 중 한명은 ‘이혼은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응답했다. 날마다 뉴스와 미디어에선 셀럽들의 파경 소식이 전해지고, 과거 경험이 고백을 넘어 개그 소재로도 쓰인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결혼 이야기> 속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애덤 드라이버) 역시 이혼 과정에서 온갖 인간적 모멸감과 분노를 겪는다. 하지만 헤어진 뒤에 완전히 남남이 되는 대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기꺼이 서로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요즘 이혼은 과거와 어떤 점이 다를까? 조금 더 면밀히 이를 관찰해온 《이혼할 용기》의 저자 세 사람과 이혼의 현실적 모습을 들여다본다.

Keyword 1
보편적 인식

요즘은 미디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미디어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이혼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김민정(이하 김) 드라마에서는 돌싱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신데렐라 스토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재혼 후 새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콘텐츠가 많아졌다. 희망적인 메시지로 인해 이혼 후 삶의 행복을 되찾고 재혼을 통해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이정훈(이하 이) 대중이 이혼을 ‘충격적인 뉴스거리’에서 ‘생활 속 사건 사고’ 정도로 받아들이는 과도기인 것 같다.

Keyword 2
밀레니얼의 이혼

황혼 이혼, 졸혼도 느는 추세지만 신혼부부의 이혼율도 높다. 요즘 세대는 이혼을 어떻게 생각하나?
대학에서 일하다 보니 젊은이들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는 걸 체감한다. 시기로 치면 1986년생을 기점으로 이혼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 같달까. 밀레니얼이 이혼에 대해 좀 더 관대하다. 요즘은 이성 친구와 여행 간 사진을 거침없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시대지 않나. 그만큼 성적으로도 많이 개방되었고 동거하는 친구들도 꽤 된다. 그래서 이혼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오랜 시간 깊이 사귀었다가 헤어진’ 정도로 여기는 젊은이가 많다. 반면 일반화이긴 하지만 1986년생 이전 친구들은 성에 대해 훨씬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귀는 사람이 성 경험이 많은 것을 싫어하고, 부모님의 이혼에도 민감한 편이다.
정단별(이하 정) 세대에 따라 이혼에 대한 견해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성 관념이 보수적인 50년대생, 우리 부모님 세대는 결혼을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런 생각이 자녀들의 결혼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이혼을 무작정 반대하거나 수치스러워하기도 하고. 하지만 70년대생 이후부터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인식과 함께 외국의 사례를 통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접했다. 그로 인해 이혼을 자신의 인생에 대입해보기 쉬워졌고, 충분히 고려해볼 선택지 중 하나가 됐다. 이런 영향이 70년대생의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Keyword 3
셀럽의 이혼

셀럽들의 다양한 이혼 사례도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송혜교&송중기 커플이나 구혜선&안재현 커플은 신혼부부들의 이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 것 같다. 두 커플 모두 서로가 원하는 결혼 생활 모습이나 연애 시절과 다른 상대의 모습 때문에 이혼을 결정했으니 말이다.
송송 커플이 가장 이상적인 이혼 절차를 밟은 게 아닐까? 양육권 이슈도, 재산 분할, 위자료 갈등도 없이 속도감 있게 진행됐으니까. 보통 경제 수준이 비슷하거나 아이가 없는 부부 그리고 각자 이성적인 성향의 부부에서 이런 예가 많다. 안구 커플은 한쪽이 이혼을 더 원한다는 점에서 가장 일반적이기도 하다. 주로 감정적으로 대처하거나 한쪽이 일방적인 자기주장을 강요하는 경우 이런 양상이 나타난다.
가장 논쟁적인 사례는 홍상수&김민희 커플과 같은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관계를 누가 깨뜨렸든 간에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혼 사유에 책임 있는 사람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유책주의 때문에 재판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소송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아직 위자료로 인정되는 금액이 미미한 수준이라 파탄주의를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할리우드 배우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같은 해외 CEO들은 몇천억에서 수조원까지 위자료 액수 자체가 다르다. 위자료 제도가 바뀐다면 홍상수 감독처럼 책임 사유가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Keyword 4
이혼과 행복

직접 이혼을 겪고 나서 변화한 점은 무엇인가?
이혼 뒤 심리학 연구에서 말하는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 크다. 이건 잘 맞는 사람들을 사귈 때 커진다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 더 크게 느껴지는 개념이다. 괴롭고 힘든 요인이 사라짐으로써 오는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자존감이 확실히 높아졌다. 초반에는 상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다가 성격상 결국 마지막에는 내 탓을 하곤 했다. 상대가 바람을 피워도 ‘내가 매력적이지 않아서 그런가?’라는 고민을 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혼한 뒤에는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자 자신감과 자존감이 확실히 높아졌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내가 언제 행복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인지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인생을 살게 됐다.

Keyword 5
이혼의 미래

미래학자들은 현재의 결혼 제도는 수명이 50살인 상황에 맞춰졌으니 머지않아 한 사람이 결혼을 서너 번쯤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보는가?
요즘 우리나라도 동거, 비혼, 이혼, 재혼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추구하지 않나. 언젠가 프랑스의 한 가족이 모인 모습을 본 적 있다. 재혼한 부부, 남편의 전처와 딸까지 한자리에 모여 안부를 묻고 자연스럽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문화 충격을 받았다. 필연적으로 전 배우자와 아이들이 모두 모여 사는, 공동 양육을 위한 가족 형태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외국에서 일할 때 직장 동료가 전 배우자, 현 배우자 그리고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과 다 같이 휴가를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남편 험담(?)도 하면서 전 배우자와 현 배우자가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본 적도 있고. 남편과 마주하는 답답한 현실과 질투, 시기 같은 감정을 넘어 새 부인들과 타협하거나 양보로 승화하는 날도 올 것이다.

Keyword 6
Do it right now!

지금 막 이혼을 결심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건네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
상대방에게서 원인을 찾기가 쉽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얼 가장 원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난 무얼 참을 수 있는 사람인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정확하게 알아야 이혼 후의 삶이 달라질 테니까.
심리적으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을 많이 만날 것.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단, 너무 일찍 재혼을 결심하지는 말길! 전 배우자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사람에게 끌려 재혼을 결정할 확률이 매우 높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마음 가는 일을 해보길 추천한다. 그게 순간의 쾌락이라 할지라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즐겨보는 경험은 중요하다. 과감히 클럽으로 달려가도 좋고, 무작정 내 공간에서 게으름을 부려봐도 좋다. 자유롭게 내 욕망에 충실해볼 것!

 


 

The Interviewees are

김민정(필명) 연세대 심리학 박사이자 대학교수. 학창 시절엔 모범생, 착한 딸로 사느라 혼전 순결을 지키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 결혼과 동시에 섹스리스 시작, 신뢰를 잃게 되는 여러 사건과 함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참지 못하고 1년 만에 해외로 도피. 보수적인 부모의 반대와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몇 년 동안 이혼을 회피했으나 정신 차리고 협의이혼을 함. 현재 기업 코칭, 가정상담 전문가로 활동 중이며 전투적 육아 중.
정단별(필명) 서울대 졸업, 결혼 적령기에 누가 봐도 만족스러운 조건의 상대를 만나 결혼. 3년간 주변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지만 실제로는 쇼윈도 부부였음. 남편의 신뢰 훼손과 성격 불일치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다가 이혼을 거부하는 남편을 끈기 있게 설득한 끝에 극보수적인 부모에게는 비밀로 한 채 협의이혼을 감행함. 현재 서초동 개업 변호사(대표)로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음.
이정훈(필명)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로펌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선을 봐서 결혼했으나 1년이 지나지 않아 파탄 남. 이혼을 망설이며 질질 끌다가 갑질하는 배우자와 처가의 부당한 대우를 더는 참지 못하고 이혼소송에 돌입. 그 뒤 수년 동안 방황하다가 비록 쓰디쓴 경험이지만 비슷한 처지에서 고민하는 유부남녀에게 용기를 주고자 ‘이혼하고 행복한 사람들’ 프로젝트 참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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