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 뽕짝의 신들

MBC <놀면 뭐하니?>의 ‘뽕포유 프로젝트’의 진정한 승자는 바로 이들,
박현우와 정경천 그리고 이건우다. 오늘은 세 사람이 합정역 대신 을지로에 모였다.

방송 촬영 스케줄이 일주일에 4~5개씩 잡혀 있어요. 어제는 우리 셋이 편의점 광고 사진도 촬영했고요.
아니, 지지난 주에 나만 쏙 빼고 둘이 벌써 뭘 하나 찍었더라고. 내가 서운해했더니 이번에는 셋이 같이 촬영하게 된 거예요.

서울 동묘에서 50년 넘게 노래를 만들어온 작곡가 박현우는 즉석에서 멜로디언을 연주했다. 이를 들은 작사가 이건우는 자연스럽게 4분의 3박자로 리듬을 탔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작곡가 겸 편곡가 정경천은 허허 웃고 만다. MBC <놀면 뭐하니?>의 ‘뽕포유 프로젝트’는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유재석)’을 비롯해 박토벤(박현우), 정차르트(정경천), 작가의 신(이건우) 그리고
‘합정역 5번 출구’라는 또 하나의 국민 가요를 탄생시킨 최고의 캐릭터 쇼다. 저마다의 추억이 서려 있는 을지로로, 요즘 가장 바쁘다는 트로트계의 숨은 고수 3인방을 소환했다.

왠지 을지로와 관련한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만나는 장소를 을지로 쪽으로 선택했어요.
박현우(이하 ‘박’) 을지로에는 아주 예전에 자주 왔지. 낙원상가에 악기점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가 1980년대 초거든. 그전에는 음악 하는 사람들이 주로 충무로에 있는 ‘왕성당구장’에 모였어요. 많게는 하루에 수십 명씩 모여 있다가 일이 생기면 나가고, 아니면 하루 종일 거기서 시간을 보내곤 했죠.
정경천(이하 ‘정’) 누가 와서 “기타” 하면 누군가가 손들고 나가고, “색소폰” 하면 또 나가고, 이런 식이었어요. 일종의 음악인 인력시장쯤 됐지. 그러다 낙원상가가 생기면서 당구장도 없어졌어요. 아마 그때 음악 했던 사람들은 ‘충무로의 왕성당구장’ 하면 다 알걸요?
이건우(이하 ‘이’) 와, 낙원상가는 잘 아는데 왕성당구장은 처음 들어요. 그런 데가 있었어요? 재미있네. 여하튼 오랜만에 예전에 자주 다니던 동네에 오니까 재미있어요. 나이 60이 다 돼서 <주부생활> 촬영 때문에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웃음)

요즘 밀려드는 스케줄 때문에 정말 바쁘다고 들었어요.
방송 촬영 스케줄이 일주일에 4~5개씩 잡혀 있어요. 덕분에 지난주에 링거를 두 번이나 맞았지 뭐야. 그래도 버틸 만해요. 처음으로 광고도 찍어보고. 요즘 신기한 일투성이야.
건우가 제일 바쁘지. 막내 겸 매니저 역할을 담당하거든요. 쟤도 이제 나이 60인데 여기에서 막내 노릇 하느라 정신없을 거예요. 어제는 우리 셋이 편의점 광고 사진도 촬영했어요. 아니, 지지난 주에 나만 쏙 빼고 둘이 벌써 뭘 하나 찍었더라고. 내가 서운해했더니 이번에는 셋이 같이 촬영하게 된 거예요.
<놀면 뭐하니?>에서 ‘합정역 5번 출구’ 다음에 ‘인생라면’이라는 곡도 만들었는데, 그걸로 편의점 라면 광고를 찍은 거예요. 이번에는 셋이 아니면 안 하겠다고 확실하게 얘기했어요. 어휴, 아무 생각 없이 현우 형님이랑 둘이 광고를 찍었다가 서운하다는 볼멘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매니저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하.

사석에서도 방송에서의 모습 그대로네요.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투에서 정이 뚝뚝 묻어나요.
서로 불편한 감정이 있으면 방송도 못하죠. 우리는 몇십 년 동안 음악만 만들던 사람들이라 연출하고 이런 걸 잘 못해요. 형님들도 방송에 보이는 모습이 평상시 그대로고요. 형님들 둘은 만나면 맨날 티격태격하고, 나는 중재하고 뭐 그러는 거죠.
(정경천을 가리키며) 내가 형인데 툭하면 덤벼요. 젊을 때부터 내가 없었으면 자기가 곡을 훨씬 더 많이 만들었을 거라고 얼마나 들이대는지.
형님은 ‘합정역 5번 출구’ 덕에 떴고, 원래 히트곡은 내가 훨씬 많지. 나는 나훈아, 이선희, 주현미, 현철 이런 가수들이랑 작업했어요.
넌 편곡이고 난 작곡이니까 엄연히 분야가 다르지. 내가 정훈희의 ‘스잔나’, 박우철의 ‘천리먼길’을 작곡했어. 예전 <주부생활> 독자들도 다 아는 노래인데 무슨 소리야.
왜들 이러세요 또. 그렇게 따지면 나는 히트곡 제조기예요. 최근에 송가인의 ‘가인이어라’부터,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태진아 ‘사랑은 아무나 하나’, DJ DOC의 ‘미녀와 야수’ 전영록의 ‘종이학’까지 셀 수가 없어요. 히트곡은 내가 제일 많다니까. 기세로 보면 ‘가인이어라’가 1위를 해야 하는데, 예상치 못하게 ‘합정역 5번 출구’가 떠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잖아요. 그거면 됐죠.

<놀면 뭐하니?> 섭외 과정이 궁금해요.
김태호 PD가 ‘유산슬’이라는 트로트 가수를 만들겠다는 기획을 하고 나를 먼저 찾아왔어요. ‘작신(작가의 신)’을 딱 알아본 거지. 하하. 그래서 내가
‘합정역 5번 출구’ 가사를 써줬죠. 그런 다음 작곡가를 찾아야 하는데, 후보가 여러 명 있었어요. 그중 한 명이 박현우 형님이었던 거예요.
이건우가 쓴 가사를 가지고 김태호 PD가 여러 명의 작곡가를 만나서 촬영도 해보고 곡을 받아봤나 봐요. 그러다 최종적으로 나랑 촬영하겠다고 선택한 거예요. 건우가 내 곡을 듣고 “자기 가사에는 이 곡이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한 게 큰 힘이 됐지.
이것 때문에 오해도 받았어요. 사실 트로트계에 다른 동료나 선배들이 많은데, 내가 형님을 밀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다른 형님들이 살짝 서운해하는 분위기도 있고. 그런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좌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단 말이죠. 정경천 형님은 제가 추천한 게 맞아요. 편곡할 사람이 필요한데, 형님 실력이야 이 바닥에서 알아주니까 객관적으로도 충분히 이유 있는 선택이었죠.
방송 출연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방송 재미있게 봤다’는 축하 인사를 받았어요. 그런데 묘한 게, 평소 전화를 자주 하던 사람들이 연락을 안 하더라고. 내 생각엔 부럽고 질투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는 것 같아.(웃음)
예상보다 노래가 너무 떠서 그렇죠 뭐. 저는 이건우가 진두지휘했다더라 하는 오해나 좀 풀렸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방송에 나온 건 남들보다 음악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서라기보다는 그냥 우리 셋이 있는 장면이 예능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나쁘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물론 곡 만드는 거야 선수들이고(웃음). 동묘 앞에서 수십 년간 허름한 작곡 사무실을 운영하는 작곡가라니. 딱 요즘 스타일이지. 거기에 막내 나이가 60인 음악인 셋이 모여서 트로트를 만든다? 재미있잖아요!

방송에 필요한 케미도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세 분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 억지로 상황을 설정하지 않는데도 재미있어요.
현우 형과는 알고 지낸 지 벌써 40년이 넘어요. 처음에는 공부하기 싫어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정말 재미있더라고. 종이로 피아노를 그려서 독학하고 화성악을 공부했어요. 나도 원래 작곡가로 시작했는데, 우연치 않게 MBC <대학가요제>에서 이선희가 부른 ‘J에게’를 편곡하면서 대박이 난 거야. 그 이후에 편곡 의뢰가 정말 많이 들어왔어요. 종이 피아노로 독학하면서 음악을 배운 것치고는 꽤나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야.
작곡 실력도 좋은데 편곡을 워낙 잘하시니까 그 이후부터는 편곡가로 훨씬 활발하게 활동하셨죠. 사람들이 흔히 작곡가와 작사가는 아는데 편곡자는 잘 모르잖아요. 이번 기회로 사람들이 편곡가의 역할도 알게 되고, 또 정경천이라는 좋은 편곡가가 알려져서 동생으로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형님은 가수나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했어요.

박현우 선생님은 가사를 보자마자 무심한 듯 음표를 툭툭 찍어내고, 정경천 선생님의 한마디에 연주가들이 연습도 없이 바로 완벽하게 합주하는 모습에서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어요.
내가 방송에서 5분, 10분 만에 작곡한다 그러고 별명이 ‘박토벤’이라고 하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쓰는 줄 아는데, 천만에요. 나 어릴 때 우리 집이 극장 바로 뒤에 있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하루 종일 유행가를 듣고 줄줄 외우고 다녔지. 그러다 중학생 때는 바이올린에 빠져서 독학을 하고, 고등학생 때는 돈이 없어서 3개월, 6개월에 한 번씩 레슨을 받고 혼자 엄청나게 연습을 했어요. 결국 스무 살 때 부산시립교향악단에 최연소 입단을 했고. 그 시절에 수없이 많은 노래를 듣고, 장르별로 어떤 멜로디와 화성이 들어가는지 치열하게 공부한 것이 큰 자산이 됐어요. 무슨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하면 장르별로 멜로디가 줄줄 나와. 그래서 가끔 한 마디 그리고 키보드 똥똥 두드리고 하는 후배들 보면 답답해. 그게 뭐 하는 거야?(일동 웃음)

이건우 선생님은 어쩌다 작사가가 되셨어요?
어릴 때부터 글짓기를 잘했어요. 대회 나가면 무조건 장원. 원래는 시를 쓰려고 했는데 왠지 배곯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어요. 노래는 못 부르고, 악기는 힘들고, 그나마 작사는 글짓기와 비슷하니까 할 만하겠더라고.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쓴 곡이 100곡 정도 돼요. 그걸 들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우연히 가수 채은옥 씨 소개로 전영록 형님을 알게 됐어요. 어쩌다가 전영록 형님 집에서 2년 정도 같이 살았는데, 당시 집에 수영장이 있었어요. 어마어마했지. 그때 전영록 선배의 ‘종이학’을 쓰면서 지금까지 저는 꽃길만 걸은 거예요. 그래서 3월 26일은 내 마음속의 국경일이에요. 전영록 형님 생일! 하하.

당대 최고의 크리에이터인 김태호 PD, 유재석 씨와 함께 작업해보신 소감이 궁금해요.
김태호 PD는 천재야. 주변의 모든 사물, 사람, 인생에 대한 관찰력 아주 예리해요. 관심사도 광범위하고. 유재석은 영재예요. 재치 있고, 끼로 똘똘 뭉친 사람이야.
사실 <놀면 뭐하니?>를 하기 전에는 김태호 PD를 몰랐어요. 내가 방송에 출연한다고 하니까 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빠 이제 유명해지겠다. 그 PD 엄청 유명한 사람이야” 그러더라고요. 실제로 만나보니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늘 던지더라고. 앞서가는 사람은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어요. 유재석 씨는 인간성이 좋고, 성실하고, 겸손하고, 뭐든 열심히 하고. 흠잡을 데가 없지 뭐.
김태호 PD가 <놀면 뭐하니?> 1회 때인가 방송에서 했던 얘기가 있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스타로 만들고 싶다”고요. 그게 우리가 될 줄은 몰랐죠. 남이 안 하는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고 머리가 아주 비상한 친구예요. 유재석이라는 대단한 콤비를 곁에 둔 것도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 둘 사이에서 박토벤, 정차르트, 작신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사람들이 ‘합정역 5분 출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난 한마디로 정의하고 싶어요. 노래가 좋으니까. 가사가 좋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편곡도 좋고.(웃음)
흔히 한국 사람들 정서에 ‘뽕기’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 특유의 박자를 들으면 절로 흥이 나는 거지.
듣기 좋고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를 ‘유산슬’이 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무슨 짓을 해도 예쁜 유재석이라는 예능인이 트로트 가수로 데뷔해서 전 국민이 다 보는 아침 방송에 출연해 맛깔나게 노래를 부르니까 사람들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거예요. 나는 유산슬의 힘이 크다고 봐요.

박토벤, 정차르트, 작신으로서 더 큰 바람이 있다면요?
사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하죠. 나이 70이 넘어서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50대 스타는 있어도 70대 스타는 나오기 힘든데,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됐다는 게 재미있고 신나. 큰 꿈은 없고, 그냥 지금처럼 재미있게 오래 노래 만들고, 같이 좋은 추억 만들면 그게 최고지 뭐. 나는 양복 안주머니에 항상 오선지를 넣어 가지고 다녀요. 언제든 악상이 떠오르면 악보를 그릴 수 있게. 그거 하나로 평생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크게 바라는 건 없어요.
나도 형이랑 비슷해요. 예상치 못하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나니 약간의 희망도 생겨요. 언제 어떤 재미난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감을 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잖아요.
일단 저는 당분간 매니저 일에 전념할 생각이에요. 우리 형님들 건강이랑 컨디션 챙겨야죠. 여기저기 찾는 곳이 많아져서 스케줄 조율도 해야 할 것 같고요. 잡지가 나오면 오늘 찍은 사진을 보내줄 수 있어요? 형님들한테 근사한 액자로 만들어서 선물하고 싶어요.

나이 70이 넘어서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50대 스타는 있어도,
70대 스타는 나오기 힘든데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됐다는 게 재미있고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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