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먹는다, 서서 마신다

그동안 앉아서 먹고 마셨다면, 이젠 일어설 차례.
서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 많다.

 

좌식 문화가 기본인 한국에서는 많은 걸 앉아서 행한다. 앉아서 세 끼를 먹고, 대부분 앉아서 일한다. 최근 라이프스타일에 떠오르는 이슈 하나를 꼽자면 ‘스탠딩(standing)’이다. 서서 먹고, 서서 마시고, 서서 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스탠딩 오피스의 경우 국내외 모두 시작 단계다. 하지만 서서 먹고 마시는 행위는 적어도 국외에선 아주 일상적이다. 영국 펍을 지나치다 보면 가게 앞에 서서 맥주를 홀짝이는 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바 또한 마찬가지. 스탠딩 레스토랑·바 문화가 가장 발전된 나라를 꼽자면 일본이다. 서서 마신다는 의미의 ‘다치노미(たちのみ)’형 가게는 인기가 점점 치솟고 있다고. 서서 마신다고 하여 허름한 인테리어와 저퀄리티의 음식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오히려 다 같이 서서 먹는 풍경이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고급스러운 공간도 많다. 그런 걸 보면 서서 먹고 마시는 건 하나의 방식일 뿐, 무언가의 퀄리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닐 테다.

스탠딩 레스토랑·바의 유행은 자연스럽게 서울로 넘어왔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처음’은 아니다. 과거 을지로, 충무로 일대엔 목판 위에 술을 두고 서서 마시는 선술집이 즐비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경제 성장과 함께 하나둘 자취를 감춰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
지난봄 을지로에 오픈한 스탠딩 바 ‘전기’는 국내 선술집 문화를 잇고자 탄생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다. 주방을 둘러싼 스탠딩 바가 전부.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안주들은 1만원대에 판매된다. 모두 1인분 기준으로 혼술족을 배려했다. 일인당 1메뉴와 1주류의 주문을 원칙으로 삼아 손님과 오너 모두 만족하는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전기를 찾는 이들이 비단 혼술족뿐만은 아니다. 뉴트로 트렌드에 반응하는 20대부터 서서 먹는 것이 낯설지 않은 60대 이상의 고객도 많다. “오히려 30~40대 손님이 의자가 없는 걸 확인하곤 발길을 돌립니다. 하지만 선술집 문화를 경험해본 고령의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주문을 하죠.” 전기의 김현기 대표가 말했다. 서서 먹는 것이 체력적으로 버거워 오래 머물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면 그 반대다. 많게는 두세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는 이들도 있다고. 서서 먹기에 ‘철퍼덕 앉아 먹는’ 분위기보다 쾌적하고, 너무 취하면 서 있기 어려워 묘한 긴장감 속에서 음주를 즐긴다. 어떤 이는 자유롭게 움직이며 마시는 행위에서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낀다고 말한다. 마치 공연장의 스탠딩석처럼 스탠딩 바 또한 나름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국내 스탠딩 레스토랑·바의 전망은 어떨까? 김현기 대표는 ‘시간과 속도의 문제’라 답했다. “손님의 절반은 가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돌아가죠. 용기를 가지고 편견 없이 경험해보시길 권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시간을 앉아서 보낸다. 그 시간이 쌓여 하루 또 일 년으로 이어진다면? 더더욱 서서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감각적인 공간에서의 내추럴 와인 한잔
디태치먼트

신비로운 동굴을 연상시키는 디태치먼트. 이색적인 공간을 찾는 이라면 SNS 채널을 통해 한번쯤 봤을 풍경이다. 내추럴 와인과 그에 어울리는 요리를 선보이는 이곳은 감각적인 분위기는 물론, 아름다운 가구들이 눈길을 끈다. 여러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지만, 스탠딩도 가능하다. 입구 쪽 높고 기다란 테이블과 라이브 키친이 한눈에 보이는 대리석 바는 오직 스탠딩족을 위한 공간이다. 캐주얼한 펍에서의 혼술은 초보자에게도 거뜬하다. 하지만 이렇게 근사한 공간에서, 더군다나 서서 술을 마시는 건 누군가에겐 다소 어려운 일. 망설이는 이들을 위해 디태치먼트는 특별한 베네핏을 준비했다. 보관 특성상 글라스 단위로 제공하기 어려운 내추럴 와인을 스탠딩족에겐 잔으로 판매하는 것. 용기를 낸 자들만이 쟁취할 수 있는 보상이랄까. 여기에 수준 높은 스몰 디시까지 곁들이면 근사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메뉴 브란지노 파피요트 2만6천원, 비프 타르트 1만6천원, 내추럴 와인 가격 상이
주소 서울 강남구 논현로151길 18
운영 시간 월~토 18:00~24:00(일 휴무)
문의 511-8782
POINT 100여 종이 준비된 와인 리스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치우침이 없다. 익숙한 맛부터 점점 펑키한 맛까지 다양한 와인을 즐겨보자. 1인을 위한 스몰 디시 메뉴도 다양하니 눈여겨볼 것.


혼술 부르는 스탠딩 바
전기

1980년대 이후 끊어진 국내 선술집 문화를 이어가고자 오픈한 스탠딩 바. 초기엔 스탠딩이란 사실에 10명 중 일곱이 발길을 돌렸지만, 지금은 강북 일대 혼술족을 꽉 잡은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모든 음식은 1인 기준으로 제공되고, 주종에 관계없이 잔술로 마실 수 있다. 홀로 방문하는 이들이 모여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메뉴 각종 하이볼 8천원대, 일본 소주(잔파블랙, 무기시루 등) 8천원대, 아페리티프(식전주) 8천원대, 내추럴 와인(병) 13만원대
인스타그램 @standingbar_denki

주소 서울 중구 수표로 42-19 운영 시간 화~토 18:00~24:00(일·월 휴무) 문의 070-8840-8000
POINT 도착 10분 전 전화 문의 시 좌석 홀딩이 가능하다. 공간 특성상 4인 이상의 손님은 정중히 거절한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즐기는 고퀄리티 참치
이춘복 참치 바

지역 명물부터 최고급 디저트까지 다양한 미식의 요소가 응축된 롯데백화점 본점 식품관. 역동적인 F&B 시장을 대변하는 이곳에서 단순히 ‘유명 브랜드’의 입점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여름 오픈한 ‘스탠딩 바’는 팝업 운영되는 곳으로, 다양한 식음료 브랜드를 ‘서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육가공 브랜드 ‘오뗄’과 협업해 소시지 바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후, 최근 이춘복 참치와 함께 스탠딩 참치 바를 선보이고 있다. “고객들은 신선한 경험에 관심을 보이며 혼자 먹는 시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스탠딩 바를 기획한 임형빈 바이어의 말처럼, 이곳에선 서서 하는 혼밥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이춘복 참치 바의 매력은 다양하다. 1개 단위로 초밥을 판매해 소량 구매자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음식에 간단한 주류를 곁들일 수 있다는 것도 ‘백화점’이란 공간 속에선 꽤 이색적인 일. 또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방문할 경우 혼잡함을 줄이기 위해 출입구를 일원화했다. 친절한 직원이 직접 자리까지 안내해준다.

메뉴 참치 속살 초밥(1개) 2천원, 참치 초밥 세트(10개) 1만6천원, 참치 대뱃살 초밥 세트 3만4천원
주소 서울 중구 남대문로 81 운영 시간 월~목 10:30~20:00, 금~일 10:30~20:30 문의 771-2500
POINT 참치와 각종 해산물이 올라간 이춘복 미니덮밥은 이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 메뉴. 맥주 주문 시 함께 서빙되는 황동잔은 냉기를 완벽히 보존해 맥주 본연의 맛이 유지된다.


10초 내에 서빙되는 신선한 에스프레소
리사르 커피

약수역 주택단지 빌라 1층에 자리한 리사르 커피.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로, 오픈 1년 반 만에 동네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작은 실내에는 커피머신과 높은 스탠딩 바가 전부. 커피를 내리고 서빙하는 이도 주인장 하나다. 그렇기에 테이크아웃이나, 자리에 앉아서 마시는 등의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이탈리아 현지와 동일한 저렴한 가격, 주문과 동시에 갓 뽑은 에스프레소를 건네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고품질의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더 많은 사람이 에스프레소의 매력을 느껴보면 합니다.” 이탈리아 현지 에스프레소가 꾸덕한 질감의 ‘디저트’ 스타일이라면, 리사르 커피는 한국인 입맛에 친숙한 ‘마시기 편한 쪽’으로 개량됐다. 맛 또한 느끼함 없이 깔끔한 편. 커피는 무조건 벤티 사이즈를 외치는 이들이라도, 남다른 퀄리티의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셔본다면 분명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메뉴 카페 에스프레소 1천5백원, 카페 피에노 2천원, 카페 아포가토 2천5백원
주소 서울 중구 다산로8길 16-7
운영 시간 월~금 12:00~18:00, 토 12:00~16:00(일·공휴일 휴무)
문의 010-9646-5538
POINT 에스프레소 바 옆에는 직접 운영하는 원두 공장이 있다. 그날 볶은 원두를 패킹해 판매하고, 원하면 갈아준다. 200g당 1만3천원. 공간 특성상 1~2인 방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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