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아니라도 괜찮아

윌리엄과 벤틀리, 두 아이를 키우는 샘 해밍턴에게 물었다. “좋은 아빠란 뭔가요?”

카메라 앞에서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던 샘 해밍턴이 말했다. “여기가 촬영장인지 집인지 잘 모르겠어요. 저희 집 거실이 거의 매일 이 상태거든요.” KBS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3년째 대표 아빠로 활약하고 있는 샘 해밍턴이 육아서 《샘 해밍턴의 하루 5분 아빠랜드》를 출간했다. 어린 윌리엄을 바라보며 진땀을 빼던 초보 아빠 시절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샘 해밍턴이 베테랑 아빠로 거듭나는 사이 걸음마도 떼지 못했던 윌리엄은 의젓한 다섯 살 형이 됐고, 한 살 터울 동생 벤틀리는 요즘 툭하면 “안 해”를 입에 달고 사는 개구쟁이로 쑥쑥 자랐다. 책에는 연년생 두 남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 샘 해밍턴이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는지 필살의 놀이법이 유쾌하게 담겼다.

지난해 연말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어요. 외국인 방송인 중에 처음으로 국내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알고 있는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맞아요. 결국 못 참고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울었죠. 2013년 MBC에서 받은 신인상(<진짜사나이>)과 2018년 KBS에서 받은 최우수상(<슈퍼맨이 돌아왔다>)도 최초였을 거예요. 특히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3년 가까이 하면서 어쩌다 보니 저의 대표작이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다른 방송과 달리 아이들과 함께 출연해서 더 각별하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았거든요. 고마운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육아 책을 출간하게 되었나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어릴 때부터 했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릴 때부터 ‘내가 죽으면 뭐가 남을까’라는 고민을 종종 했어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지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책을 쓰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그 주제가 육아가 될 줄은 물론 몰랐지만요(웃음). 방송도 남기는 하지만 재방송을 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 찾아봐야 하잖아요. 하지만 책은 집 안 책장이든, 도서관이든 실제로 눈앞에 존재하는 게 좋더라고요.
《하루 5분 아빠랜드》도 되도록 많은 분들이 읽어봐주시면 좋겠지만, 세상에 딱 두 권, 윌리엄과 벤틀리가 한 권씩만 가지고 있어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아빠 놀이법을 주제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저도 평범한 아빠일 뿐인데, 방송에 비치는 모습 때문에 마치 육아 전문가처럼 되어버려서 실제로 “아이는 어떻게 키워요?” “지금 아이한테 뭘 해줘야 돼?” 같은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궁금해한다면 그냥 내 생각, 내 방법을 한 번 나눠볼까? 이렇게 된 거죠. 육아는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정답, 오답이 없잖아요.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과 가치관대로 키우면 되니까요. 그래서 더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지금이야 저도 육아에 조금 익숙해졌지만 윌리엄이 어릴 때는 정말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몰랐거든요. 그렇게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내 방식을 보여주고, 아이디어를 함께 나누어도 나쁘지 않겠더라고요.

두루마리 휴지, 신문, 그림책 등 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 놀이법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오히려 활용도가 높지요. 지금 당장 집에서 해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놀이들이더라고요.
윌리엄과 벤틀리를 키우면서 늘 고민해요. 요즘 아이를 키우는 환경 자체가 예전과는 많이 다르잖아요. 장난감도 넘쳐나고, 신기한 키즈 카페도 많고요. 그런데 저 어릴 때를 떠올려 보면 진짜 별것 아닌 걸로 하루 종일 놀았거든요. 이를테면 친구들과 흐르는 물에 나뭇잎 띄워놓고 누구 나뭇잎이 먼저 내려가나 내기를 한다든지, 집 앞에 물이 흘러가면 그걸 어떻게 막을까, 뭐 이런 것들요.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그 장면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웃음). 그렇다면 윌리엄과 벤틀리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책에 나온 놀이법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애걔 뭐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완전히 새로운 놀이법이나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법 같은 것들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어릴 때 하던 놀이인데 지금은 안 하는, 아니면 잠깐 잊고 있었던 놀이가 많아요. 또 무조건 책이랑 똑같이 할 필요 없이, 책에서는 힌트만 얻고 각자 좋아하는 방식으로 아이와 놀아줘도 좋을 것 같아요. 나와 아이만의 특별한 추억이 될 테니까요.

아이들과 실제 노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책에 실었던데, 촬영하는 과정도 무척 즐거웠겠어요.
아이들은 책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아예 없었어요. 그냥 아빠가 놀아주니까 너무 좋고 행복했을 뿐이죠(웃음). 그래도 어쨌든 육아서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의견이 필요했어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놀이마다 안전상 권장 연령을 표기하고, 구체적인 놀이 방법과 효과도 정리해서 내용에 넣었죠. 아마 그분들 아니었으면 책이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아주 감사해요.

윌리엄과 벤틀리가 커서 이때를 떠올리면서 아빠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만약 그렇다면 엄청 행복할 것 같아요. 제 유년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버지와의 추억이 거의 없어요.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기 때문에 크면서 항상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꼈어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어릴 때 내가 갖고 싶었던, 마음속에 그렸던 아빠의 모습을 지금의 나에게 투영한다고 해야 할까요? 좋은 아빠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더 강한 것 같아요.

그럼 스스로 ‘좋은 아빠’의 기준 또는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약속’이에요. 저희 아버지는 약속을 잘 못 지키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 혼란스러웠던 적이 많았죠. 지금도 저는 아이들한테는 물론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못 지킬 약속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사소한 약속이라도 꼭 지키려고 하고, 정말 어쩔 수 없이 지키지 못할 때는 상대에게 충분히 양해를 구해야 하고요. 저는 인생의 큰 계획은 세우지 않지만, 사소해 보이는 작은 규칙들을 책임감 있게 지키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에요. 그래서 아내가 종종 스트레스 받죠(웃음). 예를 들어 아내는 약속 시간이 12시면 그냥 그 시간에 맞춰서 준비해요. 그런데 저는 15분이라도 여유 있게 가자고 하죠. 외출 준비를 하면서 “출발 10분 전, 5분 전” 하면서 잔소리도 좀 하고요.

가장 최근에 아이들한테 한 약속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아이들과 호주에 다녀왔어요. 호주에 계신 어머니도 뵙고, 아이들과도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 윌리엄한테 “아빠에 대해 혹시 마음에 안 들거나 싫은 게 있어?” 물었더니 “아빠가 술 마시는 게 싫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겠어. 그럼 아빠 술 안 마실게” 했더니 저한테 약속을 하라더군요(웃음). 그래서 윌리엄과 술을 끊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럼 어떤 사람들은 애가 안 볼 때 한두 잔은 하라고,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하죠. 하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윌리엄한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뒤로 2주째 금주 중이에요. 재작년에 1년 동안 금주한 적이 있어서 크게 힘들지는 않아요. 좋아하지만, 안 마셔도 잘 살 수 있어요(웃음).

‘육퇴’ 후 맥주 한잔의 유혹을 견디다니, 대단한데요! 아이와 꼭 해보고 싶은 것, 로망도 있지 않나요?
어릴 때 아빠와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축구 경기 보러 가는 거였어요. 제가 운동하러 가거나 대회에 나갈 때 아빠가 응원하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아빠들을 보면서 그게 가장 부러웠고요. 나중에 윌리엄과 벤틀리가 어떤 운동을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경기장에 꼭 응원 가고 싶어요. 그날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다 제쳐두고 가려고요.

집에서 훈육은 주로 누가 담당하나요? 아이와 종일 있다 보면 항상 다정하고 상냥한 아빠 모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물론이죠. 훈육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제가 해요. 저는 아이들을 혼낼 때는 정말 무섭고 엄한 편이거든요. 웬만하면 “안 돼” “하지 마”라는 말을 안 하고 싶지만,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예의에 어긋나게 굴었을 때는 확실하게 주의를 주고 가르쳐야 한다는 주의예요. 특히 식사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요즘 가장 큰 이슈는 벤틀리가 자꾸 식탁에 올라가는 거예요(웃음). 식사를 할 때는 정해진 의자에 앉아서 잘 먹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서서 밥을 먹거나 식탁에 올라가면 무섭게 주의를 주죠. 또 아무래도 형제다 보니까 싸울 때가 있어요. 중재를 해주고 꼭 포옹과 뽀뽀, 그리고 ‘사랑해’로 마무리하게끔 해요.

요즘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은 아마 영상 노출이 아닐까 싶어요. 스마트폰이 워낙 생활화돼 있다 보니 완벽하게 차단하기도 힘들고요.
특히 외출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여줘야 할 때가 가장 고민스럽죠. 그래도 최대한 안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윌리엄과 벤틀리는 휴대폰을 사진 찍고, 찍은 사진을 보고 전화하는 용도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아직 인터넷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보여달라고 하지도 않고요. 얼마 전 호주에서 식당에 갔을 때였어요. 아이들까지 챙기려니 너무 정신이 없어서 “할머니랑 얘기하는 동안 잠깐만 봐” 하고 영상을 틀어줬는데, 습관이 안 들어서인지 몇 분 보다가 말더라고요. 저는 영상은 TV로 보여주는 편이에요. 집에서 보는 자리를 정해뒀죠. 그 자리가 아니면 영상은 못 본다는 인식을 정확히 심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휴대폰으로 보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가 뭘 보는지도 모르고 항상 옆에 붙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화면이 큰 TV로 보면 제가 잠깐 집안일을 하는 사이에도 아이들이 뭘 보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 돼요.

아이들은 요즘 주로 어떤 영상을 보나요?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만화?
아이들이 영상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할 때 “TV 보고 싶어? 그럼 아빠가 어릴 때 좋아하던 영화 한번 볼래?” 이러면서 30년 전 개봉한 <고스트 버스터즈>를 보여줬거든요. 실제로 제가 어릴 때 무척 좋아하던 영화인데,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보여줬어요. <닌자거북이> 같은 것도요. 신기하게도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윌리엄은 타요는 모르지만 <고스트 버스터즈> 캐릭터는 다 알아요(웃음). 아, 뮤직비디오도 많이 보여줬어요. 윌리엄은 특히 퀸(QUEEN) 뮤직비디오를 좋아해요. 아빠랑 함께 본 영화, 아빠가 좋아하던 밴드, 이런 것도 나중에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두 아이가 나중에 아빠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할지, 또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무척 궁금하네요.
꼭 지금을 특별하게 기억하길 바라지는 않아요. 어찌 됐든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가야 하잖아요. 적성이 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고, 취향을 찾는 일일 수도 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 찾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되도록 몸으로 놀아주고 다양한 걸 보여주려는 노력도 결국은 그런 목적 때문이죠. 부모로서 자식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아버지’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빠’는 누구나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되는 과정은 노력도 필요하고, 희생도 따라야 하고, 적당히 놓아줄 수 있는 요령도 필요하더라고요.

놓아주는 요령이라는 건 뭘까요?
아이가 스스로 놀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요.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 저는 좋은 부모가 되려면 꼭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루 24시간 내내 아이한테만 집중하는 건 좋은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아이들은 제 인생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내 인생이 곧 아이 인생이 되면 곤란해요.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자기만의 시간이에요. 아이들 재우고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시간들이요.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도 좋지만, 아내와 있으면 아무리 카페 데이트를 하고 영화관에 가도 어쩔 수 없이 아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육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더라고요. 대화 주제도 결국 아이들 얘기로 흘러가고(웃음). 그래서 저는 아내든, 남편이든 무조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추천하는 편이에요. 자식에게 대단하고 특별한 것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은 필요는 없다고 봐요. 아이들은 건강한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 그리고 부모의 넉넉한 사랑만 있어도 충분히 잘 자라니까요.

결국 내 삶을 건강하게 잘 가꿔야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뜻인가요?
체력이 달리면 아이와 놀아줄 수도 없잖아요. 괜히 짜증만 내게 되고. 제가 금주를 결심한 이유는, 윌리엄과의 약속 때문이기도 하지만 술 때문에 건강이나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는 게 싫어서예요. 하룻밤 술 마시고 나면 다음 날 스케줄도 힘들고, 아이들에게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서 미안하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사랑, 행복, 건강인데 사랑과 행복도 결국 건강한 몸에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다이어트도 할 겸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하려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필라테스예요. 속 근육을 차근차근 다듬는 운동이라 정말 좋아요. 스스로의 건강과 행복을 잘 돌볼 줄 알아야 좋은 부모도 될 수 있어요.

좋은 아빠가 되려면 노력도 필요하고, 희생도 따르고, 놓아줄 수 있는 요령도 필요해요.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의 건강과 행복을 잘 돌보는 것이죠. 그래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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