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은 계속된다

전통과 혁신에 대한 고민에서 다시 출발한 두 곳의 성공적인 브랜딩 스토리.


태극당 옆 농축원
신경철 대표&노상훈 셰프

뭐든 유행의 변화가 빠른 우리나라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꾸려가는 일은 이미 만들어진 틀 안에서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하기에 쉽지만은 않다. 1946년 창업해 3대째 이어온,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은 불과 몇 해 전 하루 매출이 ‘0원’이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랜 단골인 노인과 Z세대 힙스터들이 공존하는 공간이 됐다. ‘손주놈이 말아먹었다는 얘기 안 듣기 위해 일해왔다’는 신경철 대표는 기존 태극당 간판을 활용해 개발한 서체로 브랜딩을 다지고 카카오, 수페르가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성공적인 재기를 이뤘다. 두 달 전 그는 미국 CIA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의 링컨레스토랑, 런던의 앤글로(ANGLO)를 거쳐온 절친 노상훈 셰프와 함께 또 다른 도전인 농축원을 시작했다. 태극당에서 걸어서 1분 남짓, 건물의 색만 다를 뿐 모양은 빼닮은 농축원은 어떤 곳일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신경철(이하 신) 건물에 임대해 있던 식당이 나가면서 오래 그려온 도전을 감행했다. 태극당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에는 제약이 있었고, F&B 분야에서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주관이 뚜렷한 노상훈 셰프를 영입해 서로 지지해주던 친구 사이에서 사업 동반자로 함께하게 됐다. 태극당을 운영하며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기에 개성이 강한 친구들로 팀을 꾸렸다.

‘농축원다움’도 궁금해진다. 어떤 공간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나?
카페 겸 레스토랑의 형식을 취했지만, 훗날에는 우리의 가치와 맞닿은 브랜드가 입점하거나 식품을 유통하는 등 열린 플랫폼이 되었으면 한다. 농축원이라는 이름은 과거 태극당에 식재료를 공급하던 농장인 ‘태극농축원’에서 따왔다.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신 농장 안에는 층마다 다른 콘셉트의 카페, 레스토랑 겸 연회 공간이 있어 당시 정부 행사, 셀럽들의 파티나 모임이 열리기도 했다. 농축원 또한 다채로운 스토리가 담긴 공간으로 꾸리고 싶었다.

태극당과 연결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별개의 공간으로 운영되지만 상호 작용하며 좋은 점은 공유한다. 태극당은 콘셉트가 매우 분명해서 크루아상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도 단팥빵이 많이 팔리는 곳이다. 농축원 레스토랑에서는 태극당에서 만든 빵을 쓰는데, 준비 과정에서 다양한 빵의 퀄리티를 높이는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카페를 두 개 층에 할애한 만큼 농축원의 문을 열기 전 스페셜티 커피 공부를 많이 했다. 이 과정에서 배운 부분을 태극당에도 적용 중이다.

레스토랑을 기획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노상훈(이하 노) 합리적인 가격대로 파인다이닝을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비스트로노미를 추구한다. 여러 단계의 조리 과정을 거친 우드 파이어 요리들과 이탤리언 퀴진을 맛볼 수 있는데, 내추럴 와인뿐 아니라 오메기 맑은술 같은 전통주와도 어울리는 점이 특징이다. 후식으로는 디저트와 함께 동양의 차를 낸다. 어린 시절부터 다도에 관심이 많아 쌓아온 경험을 녹여냈다.

층마다 제각각 다른 인테리어 콘셉트가 궁금하다.
지하와 1층에 자리한 카페는 인더스트리얼 무드를 메인으로 하고, 2층 레스토랑은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공간, 3층의 프라이빗 다이닝룸은 앤티크 무드의 응접실을 모토로 꾸몄다. 곳곳에 좋아하는 오브제를 배치했다. 카페에는 할아버지께서 모아오신 수석을, 3층에 자리한 두 개의 룸에는 네온 주황과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고가구에 노상훈 셰프와 내 소장품들을 두었다. 레스토랑을 기획하면서 참고한 책, 평소 모아온 피규어 등이 이질적인 듯하지만 조화롭게 놓여 있다.

장충동이라는 지역에 대한 애착도 남다를 것 같다.
족발거리로 유명한 만큼 새로운 식문화 거리가 조성되면 좋겠다. 최근 몇 개월 사이만 해도 젊은 사람들이 새롭게 오픈하는 곳이 많아졌다.
젊은 층이 주 고객인 망원동, 성수동, 한남동과 달리 아직까지 노포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장충동을 활성화시킨다면 그건 어린 시절부터 이 동네를 즐겨온 이들이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동네 상인들과 협업하는 일이 늘어나면 좋겠다.


삼일조명의 47년, 라이마스의 10년
곽계녕 대표

종로의 오래된 조명 골목 사이, 단정한 폰트의 간판이 눈길을 끈다. 곽계녕 대표는 1973년 아버지 곽세근 전 대표가 만든 삼일조명을 리브랜딩해 같은 자리에서 조명을 만드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삼일의 영문 표기인 ‘SAMIL’을 거꾸로 해 라이마스(LIMAS)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담은 이름도 붙였다. 다음커뮤니케이션 본사, 빈브라더스, 아리따움 매장 등 상공간의 성격에 맞는 빛의 형태를 제안하고 가정용, 사무용을 구분하지 않는 간결한 디자인을 선보여온 지 올해로 10년. 한때는 매달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던 라이마스를 어떻게 성장시켜왔는지 물었다.

건축을 전공하고, 유명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아버지를 따라 조명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10년 전 어머니 생신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회사를 닫겠다고 선언하셨다. 워낙 과묵하신 분이라 가족 모두 몰랐는데 매달 1000만원 이상 적자가 나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회사를 맡아서 꾸려보고 싶었다. 2년간 아버지 밑에서 조명 제작 과정을 배우며 간결한 디자인의 조명을 만들고, 패키지와 룩북을 직접 제작하며 매출을 올렸다. 그 뒤 제대로 상호명을 바꾸고, 기존과는 다른 디자인과 방식으로 라이마스라는 브랜드를 운영해오고 있다.

사업을 맡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처음 시작했을 때와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제품을 보여주고 공급하는 방식부터 환경까지 대부분을 요즘 식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과거에 국내 조명 제조 업체들은 조명이 공간에 놓인 이미지나 패키징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공간에 어떤 조명을 놓을지, 고객이 우리 제품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을지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찍은 세팅 사진과 조명을 차에 싣고 전국의 유통업체들을 찾아다녔다. 아버지 때부터 지금 건물의 3개 층을 임대해 사용해왔는데, 예전에는 지하가 사무실이고 2층이 창고였다. 하지만 직원들이 일하는 환경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건물을 보수하고 사무실을 2층으로, 창고는 지하로 옮겼다. 최근에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하는 ERP를 개발해 아이패드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직원이 열 명 남짓한 소규모 회사지만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라 생각한다. 10년 전에는 수기로 재고와 매출을 정리하는 방식에서 크게 달라진 지점이다.

홈페이지의 UI 디자인도 간결하고 명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변화에 대한 창업자인 아버지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버지는 처음에 ‘성실하게 조명만 잘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에 이렇듯 시스템을 바꾸는 데 돈을 쓰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49년생인 아버지와 83년생인 내가 보는 소비층은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유통, 판매, 관리가 디지털로 바뀐 지금은 전적으로 나에게 맡기고 믿어주신다. 다만 제작할 때 어려움이 생기면 아버지께 여쭤보면 답이 나온다. 40년의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까.

라이마스의 디자인을 정의한다면?
주거 공간의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기에 간결하면서도 동시대적인, 모던한 디자인의 조명을 만들고자 한다. 하나의 디자인이 유기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고민한다. 예를 들어 조명의 형태를 찍어내는 금형 틀은 좌우 한쌍, 암수로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뒤집어 사용하거나 대칭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피프’ 조명 역시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본체의 방향을 위아래로 바꿔 업라이트와 다운라이트 조명으로 사용할 수 있다.

건축과 조명 디자인의 연관성이나 차이점을 꼽는다면?
고객 한 사람이나 클라이언트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다수를 위한 디자인이란 점이 재미있다. 튀는 디자인 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공간에 놓였을 때의 느낌, 크기, 색감을 우선적으로 보게 된다.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도 “이건 안 어울리지 않겠어?”, “이건 어디에 쓸 거지?”다. 나는 무던하면서도 제 몫을 해내는 조명을 만들고 싶고, 조명이 공간 안에 아름다우면서도 편안하게 녹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내 리빙 시장이 커지고 있다. 도메스틱 조명 브랜드로서 이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것 같다.
디자인 조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걸 체감한다. 우리는 퀄리티 높은 조명을 합리적인 가격대로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나의 수입 조명은 우리 조명 여러 개를 살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높지만 품질은 비슷하다고 자부한다.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이 조명을 직접 쉽게 설치하고 바꿀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천장 고정용 브래킷 하나도 10년째 같은 걸 고수하고, 조명 설치 키트와 과정을 직접 찍어 영상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라이마스는 어떻게 변화할까?
국내 건축가, 디자이너와 협업해 디자인적 다양성을 확장하고 싶다. 또 해외 리빙 페어에 나가 우리 조명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 지금도 어떤 장소에 갔을 때 내가 만든 조명이 있으면 짜릿하다. 그런 장소가 늘어나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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