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헬리엉 <우리가 모르는 프랑스>

우리는 어쩌면 프랑스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 프랑스 남자 오헬리엉 루베르가 ‘프랑스에 대한 환상’에 입을 열었다.


프랑스 북부 도시 릴(Lille)에서 나고 자란 오헬리엉 루베르는 3년 전 JTBC <비정상회담>의 프랑스 대표로 출연하며 거침없는 언변으로 유명세를 탔다. “세계 최장의 휴가를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천국, 파리지앵의 낭만만 남은 프랑스의 이미지는 허상”이라고 일갈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생소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최근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를 가감 없이 기록한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를 펴냈다. 프랑스에 대한 날 선 비판은 이 책에서도 쉬지 않고 이어진다.

<비정상회담>이 끝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대학에서 계속 강의를 했어요. 주로 회화 수업 위주로 진행하고, 학기에 따라 문화와 관련한 수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그사이 한국어도 조금 늘었죠. 한국에 완전히 적응했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아직 모르는 분야가 많아요. 서른 살이 다 되어서 왔기 때문에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여전히 알아가는 재미가 있죠. 새로운 걸 공부하는 일은 늘 즐거워요.

대화하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답군요.
대화하면서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을 나누는 건 프랑스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프랑스 사람들의 관계 맺기는 많은 대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나누면서 시작되거든요. ‘미국인은 칭찬, 비판, 칭찬 순서대로 말하고 프랑스인은 비판, 칭찬, 비판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어요. 하하. 칭찬보다는 비판에 익숙한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번에 쓴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도 온통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깰 만한 얘기로 가득해요.
10년 넘게 타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발 떨어져서 내 나라를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프랑스에 대해 복지 천국, 완벽한 교육제도, 자유분방한 연애, 미식과 명품의 나라처럼 부풀려진 이미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요.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비효율적인 행정, 계층 차별, 교육 편차, 극심한 빈부 격차 등 프랑스 내부의 문제도 심각하거든요. 계층의 사다리가 무너졌다고도 말하죠. 하지만 굳이 이런 부분을 극대화하거나 비판하려고 쓴 건 아니에요. 사실 비판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썼다는 표현이 더 맞아요. 그렇다고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도 조심스럽고요. 순전히 제 경험과 시선, 기준에서 바라본 모습이니까요. 제가 바라본 프랑스의 역사, 현재의 문제점 등을 기록처럼 써보고 싶었어요.

프랑스 부모의 자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생각보다 커서 조금 놀랐어요.
가정의 경제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요.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일찍 독립하죠. 하지만 부모가 여력이 되는 한 자녀를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편이에요. 직업이 없는 자녀를 데리고 사는 부모도 많고, 독립했더라도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편이에요. 그것을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경제성장이 더디고 윗세대보다 일자리 찾기도 더 어려우니까 일정 부분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는 분위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도 있고요.

최근 한국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남녀평등’이에요. 여성이 상대적으로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이 크다 보니 사회생활 제약 등 여러 문제로 이어지죠. 프랑스는 어떤가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프랑스의 여성 인권은 늦게 향상된 편이에요. 1968년 있었던 ‘68혁명(학생과 근로자들이 중심이 된 사회변혁운동)’을 거치고 나서야 제한됐던 여성 권리가 상당수 보장되기 시작했어요. 요즘 프랑스에서는 전업주부가 정말 흔치 않아요. 결혼해도 각자 번 돈은 각자 관리하는 편이고요. 물론 집이 부유하면 전업주부로 있는 경우도 있지만, 평범한 중산층 부부는 대부분 맞벌이를 해요.

가사 노동이나 육아도 공평하게 나누는 편인가요?
프랑스 가정은 성차별 없이 평등하게 역할을 분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세대 차이가 있어요. 지난 연말에 고향에 다녀왔는데, 그때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형과 아버지, 형수, 형수의 어머니까지 모인 자리였죠. 컨설팅 일을 하는 작은형은 재택근무를 해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형이 더 많이 하고요. 그걸 보고 형수의 어머님이 형수에게 ‘남편이 많이 도와줘서 좋겠다’는 취지로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형수가 정색을 하면서 “‘도와주는’ 게 아니지. 가사 노동에 똑같이 책임이 있는데 왜 ‘도와준다’는 거야?” 하는 거예요. 이런 인식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해요. 이처럼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여성이 더 많은 ‘마음의 부담’을 가지는 편이에요. 하지만 가부장적인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있어요. 사회적인 화두, 기술 발달에 따라 미래 가정의 모습은 지금과는 또 많이 달라지겠죠.

외국인의 시선에서 한국인과 프랑스인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거였어요.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잠자기요” “맛있는 음식 먹는 거요” 이렇게 대답하는데, 그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잖아요. 프랑스인은 상상도 못할 대답이에요. 제가 초등학생 때는 저녁 8시 30분이 되면 무조건 각자 방에 들어가는 것이 저희 집 규칙이었어요. 잠을 자든 책을 읽든 무조건 들어가야 했죠. 그때는 거실에 있는 콘솔 게임을 끄고 방에 들어가기가 너무 싫었어요. 하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방에서 숙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만화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에 나만의 취미나 취향을 만들어갔던 것 같아요. 프랑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10대 시절을 ‘자신만의 취향을 찾는 시기’로 보내요.

요즘 프랑스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최근에 가서 느낀 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점이에요. 가급적 ‘Made in France’ 제품을 사용하자는 움직임들이 있는데, 그게 프랑스에 대한 자부심이나 내수경제를 위한다기보다는 환경을 위해 지역 소비를 지향하는 성격이 짙어요. 간단한 예로 해외 직구를 하게 되면 운송에 필요한 포장재, 기름, 각종 처리물 등 물자가 훨씬 많이 드니까요. 환경을 위해서 약간의 비용, 소비 절제를 감수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봐요.

프랑스가 그리울 때도 있을 텐데, 언제인가요?
생각보다 프랑스가 너무 그립다, 이런 느낌은 없어요. 역동적이고 뭐든 빠르게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가 재미있거든요. 그래도 가끔 고향에 있는 멋지고 오래된 건축물들이 그립긴 해요. 그리고 봄, 여름에 보이는 구름이 정말 예뻐요. 프랑스에 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뒀다가 틈날 때마다 봐요. 저는 지금 상수동에 사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작고 개성 있는 카페가 많아서 산책이 즐거웠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많을 것 같은 카페들만 잔뜩 들어와서 일상의 소소한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게 좀 아쉬워요.

다음에는 프랑스인의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 ‘지극히 사적인 한국’을 써보면 어떨까요?
그러려면 한국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알아야겠네요. 흥미로울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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