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이>비로소 깨달은 것들

삶의 방향을 멀리 내다보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고 몰두한다.
서른 후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플라워 프린트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엠에스지엠 by 한스타일닷컴 MSGM by HANSTYLE.COM 벨 에포크 시대의 화환에서 영감을 받은 화려한 리본 모티프 이어링은 쇼메 CHAUMET

아침 일찍부터 촬영 준비를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아직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그럼, 애 둘도 키우는데 이 정도는 거뜬하다(웃음). 현장 분위기도 좋았고, 작가님과 호흡이 잘 맞아서 사진이 잘 나온 것 같다. 체력만 보면 아직 몇 컷은 더 찍을 수 있는데! 내가 하는 일 중에 화보 촬영을 가장 좋아하고,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오늘 사진을 찍어준 포토그래퍼는 어시스트일 때부터 알던 사이다. 스물세 살 때 모델로 데뷔해서 한창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때, 그분도 마찬가지로 스튜디오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있었다. 무척 반가웠고, 그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져왔다는 것이 신기하고 뿌듯하다. 같은 업계에서 함께 버티고 성장해온 느낌도 든다. 나도 이제는 제법 후배가 많아졌고, 실장님도 메인 포토그래퍼가 되었으니까.

벌써 15년 차 모델이다. 그 사이 원숙한 프로가 됐다는 것 말고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모델을 시작하고 초반에는 하이패션이나 콘셉트가 강한 무대에 주로 섰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모델테이너’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모델들의 방송 진출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그 틈에 나도 프로그램 공동 진행자나 패널 등을 맡으면서 ‘방송’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는 와중에 개인 사업을 하기도 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몇 해 전에 그만뒀고, 재작년에 플랜테리어를 내세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론칭했다가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최근에 정리했다. 근래의 가장 큰 변화는 역시나 둘째 영서가 태어난 일이다. 4월이면 벌써 돌이다. 아이랑 있다 보면 하루가 무척 긴데, 돌이켜보면 또 훌쩍 시간이 흘러가 있다.

구조적인 볼륨 슬리브가 눈길을 사로잡는 실키한 톱과 화이트 와이드 팬츠는 모두 니나리치 by 한스타일닷컴 NINA RICCI by HANSTYLE.COM 얇은 버클 벨트는 휴고 보스 HUGO BOSS 메탈 소재의 후프 이어링은 앤아더스토리즈 & OTHER STORIES

둘째가 태어나면서 일상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비교적 평화롭던 집이 지금은 조용할 틈이 없다는 거다. 두 아이는 한 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말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올해 여섯 살이 된 첫째 윤서는 어릴 때부터 얌전하고 차분했다. 일찍부터 통잠을 자고, 외식하러 나가서도 아기 의자에 앉혀놓으면 휴지 같은 걸 찢으면서 혼자 조용히 두 시간씩 놀던 아이다. 비행기에 타면 정해진 좌석에 앉아서 헤드셋 끼고 영화 보다가 잠들고 그랬다. 덕분에 가족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었다. 그런 반면 영서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다.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친다. 윤서한테 길들어 있다가 영서를 키우면서 마음이 다시 겸손해졌다. 하하.

두 아이한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무엇인가?
성향이 다른 만큼 하는 말도 당연히 다르다. 윤서는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다. 북돋아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타입이다. 마음도 여려서 자칫 잘못하면 쉽게 주눅 들고 입을 닫기도 한다. 엄마로서는 아이가 씩씩하고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타고난 기질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반대로 생각하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면이 장점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윤서한테는 “윤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을 가장 자주 하는 것 같다. 멋대로, 마음대로 다 하라는 의미보다는 자유롭고 편하게 네 생각과 의사를 표현해도 된다는 지지를 전해주는 거다. 반면 영서한테 자주 하는 말은 “조심해!”, “하지 말라고~!” 정도? 하하. 내 눈엔 둘 다 사랑스럽고 예쁘다. 윤서는 가슴 깊숙이 자리한 사랑이라면, 영서는 마치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강아지를 보는 것 같다.

최근 가장 큰 변화는 역시나 둘째 영서가 태어난 일이다. 4월이면 벌써 돌이다. 아이랑 있다 보면 하루가 무척 긴데, 돌이켜보면 또 훌쩍 시간이 흘러가 있다.

러플을 과감하게 장식한 톱은 에이치앤엠 H&M 초콜릿 컬러의 하이웨이스트 레더 팬츠는 코스 COS, 로즈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후프 이어링은 티파니앤코 TIFFANY&CO.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보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새기려고 노력한다. 꼭 필요한 것이 가장 중요하고, 때로는 전부일 때도 있다. 뷰티도 다이어트도 라이프스타일도 말이다.

둘째를 키우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부모가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도 부모를 성장시킨다는 말에 요즘 공감하고 있다. 영서를 키우면서 확실히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한층 넓어졌다. 형제끼리도 태어나면서부터 이렇게 다른데, 제각기 태어나고 자란 개개인들은 얼마나 다르겠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을 봤을 때 전에는 ‘왜 저러지?’ 그랬다면 이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전보다 유연해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당황하고 미숙한 부분이 많다. 세상 통달한 듯 말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보통 둘째는 키우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하는데, 어떤 불안감을 느꼈나?
둘째는 거저 키운다는 말을 실감할 때도 많다. 내가 말하는 불안감은 일에 대한 것인데, 첫째 때는 일에 대한 욕심을 거의 내려놓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편안했다. 내 커리어가 육아로 인해 끝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아이가 최우선이었으니까. 모유 수유를 하려고 다이어트도 안 했다. 그러다 보니 되레 아이에게 집착하게 되더라.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일까지 포기하고 선택했으니까 더 잘 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책에 나온 이유식 재료로만 음식을 만들고, 그 외의 다른 음식을 먹이면 아이에게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하하. 하나부터 열까지 책에 나온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으니, 키우는 걸로만 치면 둘째가 훨씬 수월하긴 하다. 하지만 일이 끊기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은 둘째 때가 훨씬 크다. 첫째 때는 느껴보지 못한 조바심이다.

본업인 모델과 방송, 사업까지 전보다 훨씬 다방면에서 활동하지 않나?
신기하게 윤서를 낳고 나서 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끊길 줄 알았던 모델 일이 들어오고, 방송을 하게 되고, 그즈음 SNS를 중심으로 바이럴 마케팅 붐이 불면서 ‘애 엄마’라는 약점 아닌 약점이 ‘아이 키우는 모델’이라는 나만의 독특한 포지션으로 바뀌었다. 뜻하지 않은 기회라 더 기뻤고, 내려놓았던 일에 대한 욕심이 끓어오르더라. 그러던 중에 둘째가 생겼다. 일 욕심이 없을 때는 일이 막 들어오다가, 이제 좀 안정적으로 더 열심히 일을 해보려고 하니 둘째가 생긴 거다. 아이는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커리어가 끊길까봐 불안하긴 하다.

최근 유튜브 채널 ‘현이로그’를 오픈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홍빠빠TV’ 채널을 운영 중인 남편이 거의 1년 가까이 독려하고 권해줬다. 꾸준히 할 자신이 없어서 처음에는 관심도 없다가, 남편이 찍어 올린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니 너무 좋더라. 굳이 구독자 수가 많지 않더라도 나와 가족, 아이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또 막상 해보니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지금은 촬영부터 편집까지 혼자 다 하면서 그야말로 1인 크리에이터로 거듭나고 있다!

‘선배 유튜버’인 남편에게 조언을 구해도 좋을 것 같다.
남편은 ‘성실함’이 무기인 사람이다. ‘홍빠빠TV’를 시작하면서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콘텐츠를 업로드한다는 원칙을 정했는데, 시작하고 1년이 다 된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남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시험이나 목표를 정해두고 매진하는 스타일이다. 그에 반해 난 즉흥적이고 지금 당장 즐거운 걸 좇는 타입이다. 남편의 조언을 따르기엔 우리는 성향이 너무 다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튜브 콘텐츠는 예능 모음집이다. ‘구라 잡는 안영미’, ‘무한도전 레전드’ 이런 것들 말이다. 남편은 이러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오로지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만 취하는 사람이다. 이런 차이 때문에 결혼 초반에는 다투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런 차이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진주 버튼 디테일의 페미닌한 무드가 엿보이는 크롭트 재킷은 로맨시크 ROMANCHIC 화이트 스트레이트 팬츠는 자라 ZARA 옐로 골드 소재 드롭 이어링은 티파니앤코 TIFFANY&CO. 두 가지 다른 소재의 체인이 장식된 라이트 그레이 컬러의 소니아 사첼백은 조이그라이슨 JOY GRYSON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요즘 MBC <배철수 잼>에서 배철수 씨와 함께 공동 MC로도 활약 중이다. 베테랑 방송인 옆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봐주셨다면 고맙지만, 사실 방송 녹화를 할 때는 아직도 긴장되고 떨린다. 꽤 오랫동안 방송을 했는데도 온전히 나에게 맞는 옷이라는 느낌이 안 든다. 스스로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아주 잘 아니까. 방송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많이 준비하고 노력하는데도 친한 친구들은 내가 나온 방송을 보고 “넌 평소엔 재밌는데 왜 방송에서는 말을 안 해?” 이런다. 이상하게 여러 패널들과 함께 출연하면 입이 안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배철수 잼>은 비교적 편안하다. 내가 내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크게 애를 쓰지 않아도 되고, 또 배철수 선배님과 함께 방송을 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으니까. 어쩜 그렇게 편안하게 촬영을 이끌어가시는지 존경스럽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려면 체력은 필수다. 하지만 모델로서 다이어트 또한 피할 수 없는 숙명 아닌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하지는 않는다. 내 체력의 비결은 규칙적인 생활과 잘 먹는 것이다. 맛집 다니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오늘도 촬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인터뷰를 마치고 좋아하는 떡볶이 집에 갈 계획이다. 내가 정말 아끼는 곳인데 아마 ‘현이로그’를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평소의 뷰티 루틴이 궁금하다.
너무 뻔한 얘기라 시시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기초’가 중요하다. 촬영이나 방송이 없는 날이면 메이크업을 최대한 자제하고 보습에만 신경 쓴다. 또 하나 잊지 않는 것이 있다면 대부분의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할 때 아래에서 위로 바르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중력의 힘을 거슬러보려는 나름의 노력이다. 하지만 깨끗한 세안과 보습, 그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잘 먹고, 잘 자고, 잘 사는 것이다. 단순한 말 같지만 여기에 모든 삶의 진리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2년 전 <주부생활>과 인터뷰하던 당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소비지향적인 삶에도 흥미가 떨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한가?
요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보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극단적인 미니멀 라이프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마음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고. 하지만 수시로 주변을 둘러보고 내 생활에서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들은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미니멀 라이프가 꼭 ‘최소한’만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요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때로는 전부일 때도 있다. 뷰티도 다이어트도 라이프스타일도 말이다.

그럼 지금 이현이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또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맛있는 음식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잘 먹는 것, 충분히 자는 것, 그리고 가족들과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사는 것이다. 단순한 말 같지만 여기에 모든 삶의 진리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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