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시 파켓의영역

힘을 빼고, 기회가 오면 계산 대신 재미를 발견한다. 한국 영화계에서 달시 파켓의 24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흘러왔고 지나고 있다.

과거에 제가 봐온 영화들 중에는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영화가 적었는데, 한국 영화는 달랐어요. 직접적인 에너지와 정서가 제게 강렬하게 와 닿았어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분야를 좋아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단지 좋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탐색하고 실행하는 건 ‘덕후’의 영역과는 또 다를 것이고. 한국 영화를 위해 24년간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달시 파켓이 인터뷰를 하며 가장 자주 말한 단어는 ‘재미’였다. 나직한 목소리로 단어 하나도 숙고하듯 고르면서.
그는 최근 영화 <기생충>을 번역하면서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g)’으로, 서울대를 ‘옥스퍼드’로 재치 있게 바꾸며 주목받았다. 지금까지 150편이 넘는 한국 영화를 번역, 감수해 한국 영화 마니아들에게 한국인이 아니냐는 농담까지 들을 정도다.
단지 이름 앞에 하나의 수식을 붙이기엔 그가 하는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한국 영화를 영어로 소개하는 웹사이트(koreanfilm.org)의 운영자이자 <스크린 인터내셔널> <버라이어티> 같은 영화 잡지에서 한국 영화 전문 기자로 활약했고, 한국 영화에 관한 책을 쓴 작가이자 번역가, 교수, 평론가, 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모두 지나온 시간이 선명하게 쌓인 결과이고, 어떤 선택이든 주저 없이 행동해왔기에 얻은 타이틀이다. 영화 안에서 자유롭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달시 파켓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궁금했다.

<기생충> 번역을 마친 뒤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2021년 국제 영화제에 출품할 영화들을 번역하고 있어요. 매해 6월에 열리는 칸 영화제 출품작 자막을 2월까지 끝내야 해서 계속 바빴죠. 지난달에 세 편을 끝냈어요. 한국 토속 신앙에 대한 영화를 하나 번역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이제 어려운 작품은 다 저한테 먼저 오나 싶기도 하고. 꽤 애를 먹었죠. 하하.

번역 외에도 하는 일이 정말 많아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4년째 부산아시아영화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어요. 일요일에 내려가 월요일과 화요일에 강의를 하고 올라오죠. 방학에는 고려대에서 6주간 계절학기를 맡고요. 매년 봄에는 저예산 독립영화 어워드인 ‘들꽃영화제’를 준비하고, 가을에는 부산영화제에서 특강을 하기도 해요. 격주로 KBS 라디오에서 영화 신작을 소개하고요. 그 외의 일상은 번역, 기고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데 도가 텄을 것 같아요.(웃음)
한 가지 일만 하다 보면 에너지가 빨리 닳고 쉽게 지치기 마련인데, 지칠 때쯤 다른 일로 옮겨가며 일하는 방식이 잘 맞아요. 임기응변 능력이 늘고 있죠. 일이 모두 영화로 연결되다 보니 영화를 소개하는 일도 수월하고, 썼던 글로 특강을 진행하기도 하고. 원소스 멀티유즈 개념이라고 할까요.(웃음)

얼마 전 삼일절 기념식에선 대표 연사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도 했어요.
영광이고 좋았어요. 어느덧 제가 미국에서 살았던 시간과 한국에서 살아온 시간이 비슷해졌어요. 1년에 한 번 가족이 다 같이 미국으로 휴가를 가는데, 미국 생활이 적응 안 될 때도 있죠. 저처럼 다른 나라에서 영화 관련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하지만 많은 친구가 외국에서 오래 일해도 이방인처럼 느껴진다고 해요. 한국에서는 저를 한국 사람처럼 여겨주는 사람이 많아서 참 고마워요.

한국에 온 뒤 곧장 한국 영화에 매료되어 번역 일을 시작했나요?
97년에 잠시 머물며 영어 강사 일을 하다 한국 영화를 보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감정을 느꼈어요. 미국에서 본 영화들 중에는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영화가 적었는데, 한국 영화의 직접적인 에너지와 정서가 제게 강렬하게 와 닿았죠. 무척 궁금하고 더 알고 싶었지만, 당시엔 인터넷에 영어로 올라온 한국 영화 정보나 기사가 거의 없었어요.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웹사이트를 만들어 제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와 영화를 기록했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죠. 번역 일은 영화진흥위원회의 홍보물 감수를 하면서 인연이 이어졌어요.

웹사이트를 살펴봤는데 개인 블로그라 하기엔 아카이브가 방대하더라고요. 기록과 관련해 ‘광적인 성향인가’ 싶었죠.
한국 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서편제>부터 <8월의 크리스마스>까지 리뷰를 자세히 쓰다 보니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이 폭발적으로 연락을 해왔어요. ‘아시아 영화 팬들이 이런 정보를 정말 필요로 했구나’ 싶었죠. 한국 영화의 역사, 동아시아 영화에 대한 특징 등 비슷한 질문이 많이 들어오니 Q&A도 만들고, 사이트를 계기로 영화 기자 활동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김기덕, 홍상수,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이 세계에 알려져 있지만, 당시엔 그들이 데뷔를 하거나 영화를 만들던 때였죠. 좋은 영화 감독들이 다양한 작업을 하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한국 영화에 더욱 재미를 느꼈어요.

봉준호 감독과는 첫 장편영화인 <플란다스의 개>부터 <살인의 추억> <괴물> <기생충>까지 감수와 번역을 맡았으니 관계가 특별할 수밖에 없겠어요.
봉 감독이 한 기자회견에서 달시 파켓 부부께 감사하다고 언급하기도 했죠. 아내는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이고, 달시 씨는 한국어에 능통한 미국인이라면서요. 그래서 아내가 많이 놀랐어요. <살인의 추억>이 첫 번역이었는데, 아내와 함께 장면을 보며 도움을 받았죠. 요즘은 모르는 게 있을 때만 불러 물어봐요.

감독에 따라 번역 방식이 다른가요?
봉 감독은 다들 알다시피 영어를 잘해서 여러 가지를 제시하면 신나 하며 피드백을 줘요. 주인공의 이름도 외국인에게 낯설지 않을 법한 이름을 짓고, 대사도 번역하기 좋도록 짧게 쓰고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뉘앙스가 특이하고 재미있는 표현이 많잖아요. ‘너나 잘하세요’처럼 일반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 아니다 보니 영어로 번역할 때도 만족스러운 톤을 찾기 위해 계속 애쓰게 돼요.

<기생충>은 일곱 번을 보고 번역했다고 들었어요. 일반적인 영화 번역 과정을 간단히 설명한다면요?
맨 처음에는 천천히 보면서 대사를 생각하고, 두 번째는 대사를 다 채우고, 세 번째 이후부터는 한 줄에 볼 수 있도록 대사를 짧게 줄여가며 배우의 연기, 장면의 분위기에 맞는 표현을 찾아가요. 편집 방향이 바뀌거나 개봉이 늦춰지면 감독과 계속 번역본을 주고받으며 꽤 길게 소통을 해야 해요. 1년 반 정도 걸린 작품도 있죠.

여러 단편영화를 비롯해 <강철대오> <돈의 맛> 같은 상업영화에도 출연했잖아요. 배우에는 어떻게 도전하게 되었나요?
지난해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에도 잠깐 나와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하하. 오래전부터 영화 촬영 과정이 궁금했는데, 직접 참여하고 경험해서 참 좋았죠. 처음엔 잘 모르니까 배짱 있게 연기했는데, 하면 할수록 너무 어려워요.

90년대 후반과 요즘의 영화산업 환경은 많이 바뀌었어요. 작가주의적 성향의 감독이 많던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능력과 열정 있는 감독이 여전히 많아요. 단, 젊은 감독들이 과감한 시도를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에요. 데뷔와 함께 상업적으로 성공을 해야 하고, 리스크를 감수하기가 어렵게 됐죠.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만 하더라도 상업적인 성공을 계산하지 않고 제작한 코미디 영화잖아요. 그게 아쉽죠.

매해 봄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열리는 들꽃영화상. 10억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 가운데 후보를 선정해 14개 부문의 수상작을 시상한다. 포스터는 사진작가 표기식의 사진.

저예산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들꽃영화상’을 만든 것도 그런 고민의 연장인가요?
네, 벌써 올해로 7회를 맞이했어요. 독립영화를 야생에서 풍파를 이겨내고 자라나는 들꽃에 비유해 지은 이름이죠. 한 해 동안 개봉된 영화를 반추해보는 자리예요. 한국 독립영화계의 오스카라고 할까요. 하하. 독립영화는 박스오피스를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하잖아요. 저는 늘 재밌게 봐요. 영화제가 처음 시작할 때보다 점점 많은 관심을 받아서 지난해에는 상금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투자도 받았죠. 앞으로 상영과 시상에 그치지 않고 제작을 도울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요.

한국 독립영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주 상업적인 영화에 비치는 한국은 가끔 가짜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재밌는 스토리를 만들려다 보니 늘 판타지적인 결말이 나오죠.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작가로 살아가기가 사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주인공인 작가가 갑자기 성공한다든지 하는 것 말이에요. 반면 독립영화는 더 솔직하고 유연하게 느껴져요. 2년 전 <소공녀>라는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은 수입이 없어도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려 노력하고, 한국 사회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보여줘서 참 재미있게 봤어요. ‘한국 영화도 이럴 수 있구나’ 느끼곤 하죠.
영화가 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나요? 한 사회를 압축적으로 이해하는 데 영화만 한 매개가 없잖아요. 내가 사는 곳 이외의 사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고, 차이점을 배우고. 그런 것들을 깨닫게 하는 게 영화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9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살던 달시 파켓이 다양한 아시아 영화를 관찰하고 느끼면서 많은 기회를 얻게 된 것처럼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하루하루 일상을 꽉 채울 정도로 성실해야겠어요.
기회가 오면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해보는 스타일이에요. 그게 저를 발전시켜온 것 같고요. 재밌어 보여 글을 썼고, 기자로서 또 번역가로서 일하게 됐죠. 늘 선택이 주어지면 포기하지 않고 다 하고 싶어요.

직업, 취미, 일이 연결되어 생활을 이루잖아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진 않나요?
번역 일을 집에서 해서 그나마 다행이죠. 아이들과 아내 모두 영화 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제가 라디오에서 소개할 영화를 함께 극장에 가서 봐요. 두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는데, 볼 수 있는 영화 장르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재밌어요.

최근에는 함께 무슨 영화를 봤나요?
중학생은 다양한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시기잖아요. 어른들이 보는 영화도 궁금해하고. <몬티 파이튼과 성배>라는 70년대 코미디 영화를 봤어요. 제가 어릴 때 정말 좋아했던 걸 아이들과 같이 보니 감회가 새로웠죠. 한국 영화도 봤어요. 60년대에 개봉한 김수용 감독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요. 지루해할 거라 생각했는데 끝까지 보더라고요.

아빠가 번역가인 만큼 아이들도 언어에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일반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대화할 때 의식적으로 영어를 알려주려고 하는 정도예요. 아빠가 선생님이 되는 건 어렵더라고요. 하하. 언어 공부를 강요하기보다는 책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로 가까워지게 하려고 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궁극적인 목표는 영화 제작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거예요. 올해는 번역에 관한 책을 쓸 계획이에요. 그간 자막 번역을 해오면서 느낀 경험을 나누고 싶어요. 하나씩 차근차근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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