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게 체질

한때 유명 영어 강사였던 문단열이 뒤늦게 영상 제작에 도전장을 내밀고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의 딸 문에스더는 ‘츄더’라는 닉네임으로 100만 가까운 구독자를 거느린 핫한 유튜버다. 도전은 취미, 뜨는 건 체질인 부녀를 만났다.


1990년~200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 ‘문단열’이라는 이름 석 자는 꽤 익숙하다. 모르긴 몰라도 집에 문단열이 쓴 영어 교재 한 권쯤은 다 갖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영어 공부는 재밌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여러 패널들과 상황극을 하거나 밴드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단어와 문법을 랩 하듯 가르친 건 당시로서는 신선한 발상이었다. 그렇게 ‘영어 강사 문단열’은 30·40대에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런 그가 지금의 10대에게는 영어 강사보다 ‘츄더 아빠’로 더 유명하다. 문단열의 딸 문에스더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츄더’의 구독자 수는 88만 명이며, 최고 조회수는 무려 1222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유명 가수의 창법을 분석하거나 원곡을 그대로 모창하는 콘텐츠가 특히 인기가 높은데, 가창력과 춤 실력이 웬만한 가수보다 뛰어나 구독자들에게 “귀찮아서 가수를 안 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이 쉰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아빠와 주체할 수 없는 끼로 백만 구독자를 사로잡은 딸. 두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에스더 님은 예상외로 쑥스러움을 많이 타네요?
문단열(이하 ‘문’) 카메라 앞에서 표정 연기를 하고 말하는 건 제가 훨씬 많이 해봤죠. 에스더는 남 앞에서 말을 잘 못해요. 문에스더(이하 ‘츄’) 유튜브만 보고 제가 넉살도 좋고 굉장히 외향적일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실제로는 낯가림도 심하고 부끄럼도 많이 타는 편이에요.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혼자 떠들고 노래하는 건 안 부끄러워요. 그냥 혼자 노는 느낌이랄까? 앞에 사람이 아니라 기계(카메라)가 있으니 부담이 덜해서 그런가 봐요. 지금도 인터뷰니까 최대한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웃음).

아버지는 잘나가는 TV 강사로, 딸은 핫한 유튜버로 시간 차이는 있지만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어릴 때부터 집에서 혼자 놀고 까부는 모습을 보면서 보통은 아니다 싶었는데, 워낙 낯가림이 심하고 말수가 적으니까 이쪽 계통으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첫째는 더 재미있어요. 원래는 순수미술을 전공했는데, 갑자기 메이크업을 공부하겠다며 캐나다로 가더라고요. 그러더니 캐나다에서 학교를 졸업하고는 요식업에 종사하더니 최근엔 DJ로 활동 중이에요. 타고난 기질인지 에스더랑 비슷하게 결국 돌고 돌아 이쪽으로 오더라고요. 사실 ‘츄더’ 채널이 이렇게 주목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원래는 자기계발 때문에 시작했거든요. 노래 연습은 계속하고 싶은데 작심삼일로만 끝나니 안 되겠더라고요.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차원에서 채널을 개설하고 혼자 조용히 연습 영상이나 올려야지 했는데, 하다 보니 은근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웃음). 잘한다, 재미있다는 댓글이 달리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그렇게 구독자가 조금씩 느니까 용돈도 조금씩 들어오고…. 지금은 콘텐츠 만들고 업로드하는 게 주요 일과가 됐지만, 중간에 구독자 수가 안 늘 때는 흥미가 떨어져서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두 번이나 그만둔다고 하는 걸 제가 말렸죠. 내가? 두 번이나? 구독자가 5만 명쯤 됐을 때인가 한 번 그러고, 그 이후 또 한 번 그랬어! 원래는 아이들한테 이래라저래라 절대 간섭을 안 하거든요. 하고 싶으면 “그래, 해!” 하고, 하기 싫다고 하면 “그래? 하지 마 그럼” 하는 게 제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이대로 가만 두고 보면 안 되겠더라고요. 원래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중3 때인가? 하도 춤만 추고 다니길래 조금 걱정되는 마음에서 “너 그래도 공부는 좀 하면서 춤춰야 하지 않겠니?” 한마디 했더니, 글쎄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춤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가더라고요. 기억나요(웃음). 춤추는 게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빠 말대로 공부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방법이 없었죠 뭐. 잠을 줄이는 수밖에! 문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아니까 그만두는 게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조금만 더 해보라고, 분명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좋아해줄 거라고 말해줬어요. 결국 제 예상대로 몇몇 영상이 이른바 ‘조회수 대박’이 나면서 구독자 수가 쭉쭉 올랐죠.

‘츄더’ 채널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 탄생한 건 아니군요?
아빠는 ‘츄더’의 가장 열렬한 구독자예요. 집에서는 늘 제 채널을 보고 계시죠(웃음). 보통은 “그 영상 재밌더라” 정도의 반응만 보이지만 가끔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을 해주기도 해요. 저는 주로 내가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 위주로 아이디어를 고민하는데, 아빠가 전략적인 조언이나 가이드를 해줄 때가 많아요. 굳이 구분하자면 에스더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타입이고, 저는 철저히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만드는 타입이에요. 구독자 수가 베트남에서 늘었다고 하면 “자막에 베트남어를 넣어” 이런 식으로 말이죠. 또 어느 나라에서 조회수가 올라서 어디로 번졌다거나, 구독자 수가 갑자기 확 늘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키워드 때문인지 분석해서 알려주는 식이에요. 그럼 에스더가 듣고 판단해서 참고하는 거죠.

그 기준에서 분석한 ‘츄더’의 성공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4년 전 영상 제작사를 설립하면서 유튜브 컨설팅 일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공부해본 결과, 몇 가지 법칙이 있더라고요. 많은 요소가 있는데,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츄더’의 ‘선한 4차원의 매력’이랄까요(웃음). 시쳇말로 ‘똘기’라고 하면 재미는 있지만 좀 자극적이거나 불편할 수 있는데, 에스더의 경우 똘기는 충만한데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걸 즐겁게 할 뿐이죠. 노래와 춤이라는 소재도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는 요소이고요. 게다가 흉내를 너무 잘 내요(웃음)! 모창하는 가수의 목소리와 표정, 특유의 창법을 세심하게 포착해서 자신만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도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물고구마 창법’ 같은 에스더의 외계어 같은 말을 외국인들이 댓글에서 그대로 따라 하거든요. 유튜버와 구독자 사이에 그들만의 생태계가 만들어진 거예요. 아빠가 이런 얘기를 하면 너무 쑥스럽고 민망해요. 지금도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웃음). 분명한 건 내성적이고 스스로를 좀 낮추는 경향이 있는 저한테 아빠의 칭찬이나 지지가 힘이 된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아니었으면 저는 그냥 방 안에서 혼자 소심하게 있었을 거예요. 혼자 노래 부르면서요.

에스더 님이 기억하는 어릴 적 아버지는 어떤 모습인가요?
흠… 유명한 사람(웃음)?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는 이미 유명 인사였거든요. 가끔은 아빠가 유명하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친구들한테 자랑도 했어요. “우리 아빠 텔레비전 나온다~” 이러면서요. 아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칭찬해주시는 모습이에요. 저나 언니가 뭐만 했다 하면 “천재네~”, “대단한데?!” 이러셨거든요(웃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어떤 면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어요. 노래나 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능력은 타고난 것 같아요. 아내가 눈썰미가 정말 좋은 편인데, 아마 그걸 물려받았나 봐요. 관찰력과 그걸 표현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영역인데, 에스더는 그 두 가지에 다 소질을 보였어요. 춤을 따로 배운 적도 없어요. 그냥 자기가 좋아서 따라 추는 거지.

조기교육, 사교육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저는 공부뿐 아니라 그 무엇도 아이들에게 강요한 적이 전혀 없어요. 에스더가 다섯 살 때 온 가족이 미국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어린 꼬마애가 자기가 쓰는 말과 외국인이 쓰는 말이 다르다는 걸 알고는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보통 그 나이면 영어를 못 하더라도 크게 거부감을 나타내지는 않거든요. 어찌나 자의식이 강한지(웃음). 사교육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그걸 보면서 더욱더 확신했어요. 알파가 아니라면 베타로 키우자, 그러면서요. 완벽한 방목이었죠.

어느 정도였죠?
중학교 때 갑자기 현대무용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빠한테 “아빠, 나 현대무용 하고 싶어” 그랬더니 “왜?” 이런 말도 없이 “그래? 알았어. 해.” 하시더라고요(웃음). 곧바로 학원에 등록했는데, 결국 사흘 만에 그만뒀지만요. 물론 그만둘 때도 전혀 이유를 묻지 않았어요. 영어 공부도 집에서 간간이 영어 방송 틀어놓는 정도 말고는 고등학교 올라갈 때까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고등학생이 되니까 왠지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렸거든요. 그때부터 다른 과목은 하나도 안 하고 아빠랑 세 달 내내 영어 공부만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영어가 재밌어졌고요. 다른 건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영어 공부만 하고 싶을 정도로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그래, 그렇게 영어가 하고 싶으면 그만둬.” 하셨죠. 그 길로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대학 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 엄마 두 분 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자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이셨군요.
교육자다 보니 현장에서 정말 많은 아이를 봐왔잖아요. 사람은 원래 다 특이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제도에서는 각자 독특한 사람들을 벽돌처럼 똑같은 모양으로 끼워 맞춰요. 저는 아이들이 그렇게만 안 자란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리저리 부딪치다가 궁극적으로는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고 믿었거든요. 더 정확히는 뭔가를 간절히 하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린 거죠.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만큼 강력한 동기와 에너지는 없으니까요. 영어도 마찬가지고요. 큰애도 고2 때 시작했는데, 지금은 거의 원어민 수준이에요.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어요. 간절히 최선을 다하기만 한다면요. 그건 아빠 말이 맞아요. 제가 경험했거든요. 회화는 실수를 겁내지 않아야 빨리 느는데, 저는 실수하고 틀리는 것에 대해 공포감이 있어요. 절대 회화를 잘할 수 없는 성격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되더라고요. 제 방법은 무조건 외우는 거였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 훈련이랄까요(웃음). 무조건 문장이 입에 배게 달달 외웠어요.

안정적이던 영어 강사를 그만두고 영상 제작사를 시작한 이유는요?
그 시작도 재미있어요(웃음). 남들은 제가 영어 강사를 하면서 강남에 빌딩 한 채는 샀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업이 망하면서 20년 가까이 버는 족족 빚 갚는 데 다 썼어요. 그렇게 빚을 다 갚고 나니 어느새 나이 50이더라고요. 그즈음에 때마침 심한 독감이 걸려서 집에서 한동안 쉬고 있었는데, ‘노느니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영상 편집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해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영어 강의를 직접 찍어서 만들어도 되겠다 싶었죠. 그렇게 교육 영상을 만들다가 상업 영상도 도전하게 됐어요. 제 아빠지만 이런 모습은 정말 존경스러워요. 잘 모르는 분야에서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아빠는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전혀 다른 영역에 도전한 거니까. 아빠 좀 멋있네?(웃음) 멋이라기보다는 생존 본능이었죠. 빚 다 갚고 이제 겨우 평범해졌다 싶었던 때가 쉰이에요. 돌아보니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었어요. 까딱하다가는 백 살까지 살아야 하는데, 단순히 ‘잘나갔던 영어 강사’ 말고 나를 뾰족하게 만들어줄 경쟁력 하나가 필요했어요. 제가 처음 찍은 상업 영상이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동창 모임이었는데, 촬영 나갔다가 전현무 씨를 만났어요. 저한테 오더니 “선생님, 여기서 뭐 하세요?” 하더라고요. 그냥 대충 “그런 게 있어” 하고 둘러댔는데, 솔직히 좀 민망했죠. 그러다가 동문 중에 광고 회사 중역이 있다기에 수소문해서 찾아가 일 좀 달라고 얘기했어요. 그 말을 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뭔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뿌듯함이 올라오더라고요. 다시 청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심장이 막 뛰고. 지금은 그 친구랑 많이 친해요.

그렇게 시작한 회사가 이제는 제법 규모가 커졌다면서요?
네. ‘사다리필름’은 SNS나 교육 영상 쪽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회사가 됐어요.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경력을 살려서 지식 기반 영상을 중점적으로 만들고 있죠. 주로 대기업에서 직원 대상의 교육용 영상을 의뢰하는데, 요즘은 옛날처럼 딱딱한 방식이 아니라 “썰전 스타일로 만들어주세요”라거나 “연애의 참견처럼 해주세요” 하는 요청이 많아요. 저희는 그런 쪽으로 특화돼 있고, SNS에서도 반응이 꽤 좋아요. 이렇게 자세한 얘기는 오늘 처음 들어요. 제가 잘 몰랐던 아빠의 스토리가 참 많네요. 말하는 게 쑥스럽고 어려워서 인터뷰를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하기를 잘한 것 같아요!

앞으로 각자의 꿈이 있다면요?
실패하거나 좌절한 중년의 귀감이 되고 싶어요. 계급장 떼고 시작하니 전혀 새로운 길이 열리더라고요.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기회가 주어지면 ‘내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아이돌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꿈이 아니라 노래를 만들고 직접 부를 수 있는 음악인이 되면 좋겠어요. 솔깃한 제안도 여러 번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위해 요즘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딸이 좋아하는 일을 잘 찾아서 좋은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네요. 이대로만 쭉 가는 거야,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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