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의 취향

새로운 것이 넘치는 도시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결국 좋은 취향으로 빚어낸 독특하고 감각적인 공간들이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으로 선별한 물건으로 가득 채운 공간, 그리고 그곳의 주인장들을 만났다.


kollekt
허수돌

한남동에 자리한 콜렉트는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셀렉트 숍이다.
딥티크와 몰스킨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던 Kollekt의 허수돌 대표는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를 통해 우리를 우아한 삶으로 안내한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도 넘은 가구들이다. 어떻게 수집했나?
예전부터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에 대한 동경과 애정이 깊었다. 눈에 띌 때마다 하나씩 모아 오다가 본격적으로 콜렉트를 오픈하면서부터는 전문 바이어의 도움도 받고 있다. 개인 판매자를 비롯해 오피스, 갤러리, 스튜디오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제품을 수집하고 선별해서 정기적으로 들여온다.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의 매력은 무엇인가?
다양한 소재, 감각적인 컬러 조합으로 어떤 공간에 두어도 확실한 포인트가 된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디자인적 아름다움이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대단한 디자이너들의 오리지널 피스를 소장한다는 기쁨이다. 1940~70년은 디자인 가구의 전성기다.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빈티지’는 단순히 ‘낡고 오래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테면 어떤 샤토에서 몇 년도에 만들었느냐에 따라 오래된 와인이 가치를 인정받는 것처럼 ‘그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희소가치가 있다. 콜렉트에서 다루는 것은 모두 이러한 디자이너 퍼니처들이다.

콜렉트를 운영하기 전 무슨 일을 했나?
계속 수입업을 했다. 시작은 1999년 ‘로모카메라’였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그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웃음). 신기한 물건, 처음 보는 물건을 워낙 좋아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물건들을 구경하고 찾아보다가 한 일본인이 소개한 70년대 필름카메라인 로모카메라에 호기심을 느껴 본사에 바로 이메일을 보내고 카메라를 구입했다. 로모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올려두기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그게 쇼핑몰 형태가 되면서 정식 수입사인 ‘로모코리아’로 발전하게 된 거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로모카메라 열풍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향초 브랜드인 딥티크와 몰스킨 다이어리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딥티크와 몰스킨 모두 지금은 대중적으로 아주 잘 알려진 제품들이다.
좋은 제품을 선도적으로 알렸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 조금은 있다(웃음).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었는데, 2012년 몰스킨을 모나미에 넘기고 나서 본격적으로 이 공간을 구상하게 됐다. 콜렉트가 문을 열고 나서 최근 몇 년 사이 빈티지 디자이너 퍼니처를 다루는 공간이 여러 곳 생겼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나름의 개성이 드러나는 컬렉션이기 때문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두루 살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제작된 디자인 가구들은 여전히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유가 뭘까?
가구 디자인으로만 보면 지금보다 그 당시가 훨씬 발전된 시기였다. 임스 부부(찰스 임스&레이 임스), 포울 헤닝센, 한스 베그네르, 마르셀 브로이어, 조지 넬슨, 에로 사리넨 등 그 당시 활약한 디자이너들의 면면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아마 지금 서울의 유명 가구 편집숍에서 가장 고가로 팔리는 제품들 중 상당수는 이 디자이너들의 제품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요즘은 이를 뛰어 넘는 제품들이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감각 있고 똑똑한 디자이너들이 가구 디자인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웃음). 디자인을 전공하는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웹이나 유저 인터페이스, 게임 같은 영역으로 넘어간다. 당시에는 디자인 좀 한다고 하면 대부분 건축 또는 가구였다.

이러한 디자인 가구들이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이미 우리는 그 제품들 속에서 살고 있다. 수많은 카피 제품을 양산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로 사리넨의 튤립 체어의 경우 중국에서 5만 원이면 만들 거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것이 그렇듯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혁신한 사람들이 있다.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이자 산업 디자이너 에로 사리넨은 1950년대에 의자 다리가 하나인 체어를 만들었다. ‘왜 의자 다리는 꼭 4개여야 하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것으로, 다리 하나만 있는 의자 자체가 그 당시에는 혁신이었다. 전쟁을 통해 금속 기술은 훨씬 발전했고,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신소재였던 파이버 글라스가 처음 개발된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제품은 미국의 놀(knoll)사에서 여전히 판매 중이지만, 당시 제작된 오리지널과는 두께나 무게감 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지금은 다리 하나짜리 의자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이는 모두 수십 년 전 디자이너들의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집가로서 나만의 안목을 키우는 노하우나 팁을 알려 달라.
안목을 높이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 찾아보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좋은 제품을 선별해놓은 편집숍이나 셀렉트숍에 방문해 직접 물건을 볼 것을 추천한다. 구매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가구의 경우 가격도 비싸거니와 어차피 한 번 보고 사는 물건들이 아니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가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두고두고 봐도 좋을 제품인지 따져보고 사야 한다.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제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리는 제품들이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취향을 뾰족하게 만들다 보면 ‘나만의 취향’이 형성된다.

mid-century modern
최근 자주 등장하는 ‘미드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은 1930~1970년에 걸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의 디자인 운동을 뜻한다. 연이어 터진 세계대전으로 인한 물자 고갈, 기존 라이프스타일의 파괴는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숙제와 디자인 환경을 안겨줬다. 가구를 만들 소재가 부족해 군수물자를 제조하다 남은 알루미늄을 활용하거나(어니스트 레이스의 BA체어), 폐목재와 버려진 군용 낙하산 끈을 직조해 의자를 만드는(젠스 리솜의 리솜 체어) 식이었다. 동시에 광고, 영화, 만화 등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은 팝아트가 시대를 지배하면서 자유롭고 파격적인 디자인도 쏟아져 나왔다.


39etc
정현지

본디 예술은 먹고 사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예술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빛깔부터 다르다.
“너저분해서 어떻게든 숨기고 싶은 전선들마저 감각적인 오브제로 만드는 것, 그게 디자인의 힘인 것 같아요.” 젊은 콜렉터 정현지 대표는 말한다.

인스타그램에 39etc를 ‘가정용 제품 상점’이라고 소개했다. 이유는?
우리 제품은 워낙 독특하다 보니 선물용으로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 돈 주고 선뜻 사기는 어렵지만 누군가가 사주면 기분 좋고 특별한 선물이 되는 것 같다(웃음). 그런 점에 착안해서 누군가에게 줄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의 취향과 만족에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가정용 제품 상점’이라는 서브타이틀을 달았다.

아트 오브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옷만 예쁘게 입고 집은 아무렇게나 하고 사는 것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옷만큼이나 공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그때부터 작은 소품, 조명, 공간을 구성하는 것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어떤 제품들인가?
얼굴 모양의 독특한 그림이 그려진 제품들은 일본의 세라미스트 마도카 린달의 작품이다. 캐릭터의 표정도 귀엽고, 독특한 매력이 있다. 우드 소재의 이 오브제는 블레스의 제품으로, 사실 멀티 콘센트다(웃음). 저것만 있으면 너저분한 콘센트 선을 숨기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블레스는 1990년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쇼의 헤어피스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독창적인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를 만드는 브랜드로 발전했다. ‘디엠파시스트’처럼 독특한 국내 디자이너 작품들과 플리마켓에서 구매한 빈티지 유리잔과 화병들도 있다. 기본적인 형태에 충실하면서도 섬세하고 위트 있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가장 아끼는 물건을 하나 고른다면?
플라워 애시트레이다. 꽃잎을 하나하나 사용할 수 있는 실내용 재털이인데,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 실내 흡연이 금지된 요즘에는 현실감 없는 아이템이지만, 1970년대에는 여럿이 모여 각자 꽃잎을 한 장씩 앞에 떼어두고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평범한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아트 오브제 활용 팁이 있다면?
당장 어떤 물건을 들이기보다는 그 공간에서 어떤 향이 풍기면 좋을까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향’이라고 생각한다. 향에 따라 공간의 이미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매장을 방문하는 분들께 인센스 스틱이나 스머지를 먼저 권하는 이유기도 하다. 스머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물을 건조한 뒤 연소시키는 방식이다. 불씨가 2~3분쯤 지속된 뒤 저절로 사그라들기 때문에 공간을 연기로 잠깐 채웠다가 환기만 해주면 된다. 난해한 아트 오브제가 부담스럽다면 이런 작은 소품으로 먼저 접근하는 방법도 추천한다.


bigsleep
김민정

어딘가 ‘수집가의 방’이 있다면 딱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으는 게 취미인 김민정 대표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있는 제품이 몇 개인지 알고 있나?
사실 나도 정확히 모른다(웃음). ‘빅슬립’을 처음 열었을 때 제품 쇼룸보다는 작업실 개념으로 생각했다. 모으는 걸 멈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어느 정도 물건이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 싶었고, 그때부터 판매도 시작했지만 그게 주목적은 아니다. 인스타그램 공지를 통해 정해진 날만 오픈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언제부터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했나?
10대 학창 시절부터 무언가를 계속 모았다. 조명은 여행 중에 우연히 본 빈티지 조명에 반해서 사모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유독 빈티지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빅슬립은 디자이너 피스만 전문으로 다루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디자이너가 불분명한 공산품들이 많다. 빅슬립을 하기 전 8년 넘게 음반제작 회사를 다녔다. 커버디자인 등을 담당하면서 크리에이터라는 명목 하에 정말 많은 디자인 제품을 찾아보고 수집했다. 그렇게 시간과 돈, 정성을 쏟다 보니 내 성향이 보이더라. 내가 특히 좋아하는 건 오래되고 동시에 독특한 히스토리가 있는 물건들이다. 디자이너 피스의 경우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어떻게든 구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내가 모은 물건들은 대부분 그때, 그곳이 아니라면 결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공산품이라도 수십 년 동안 누군가가 잘 관리해온 물건을 내가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으니까. 그래서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빅슬립’에서 가장 아끼는 조명은 무엇인가?
오시는 분들마다 가격을 물어보지만 절대 안 파는 조명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섬 무라노에서 만든 글라스 램프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여행 중에 우연히 마켓에 들렀는데, 저 구석에서 뭔가 반짝이는 거다. 멀리서도 무라노의 유리공예 작품인 걸 단박에 알아챘다. 어쩌다가 인도네시아 마켓까지 흘러들어간 걸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내가 말하는 빈티지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빈티지 제품으로 센스 있게 공간을 스타일링하는 방법은?
빈티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공간 전체를 빈티지로 꾸미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한두 개의 소품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적절하다. 빈티지 조명을 좋아하는 분들은 상당수가 오브제로 찾는다. 무엇보다 형태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워낙 오래된 제품들이다 보니 가끔 불이 안 켜지는 것도 있는데, 물건을 받고 조마조마하며 조심스럽게 버튼을 누른 순간 불이 탁 켜질 때! 그때의 짜릿함은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조명 하나만 있어도 익숙한 공간이 다르게 보일 테니 자신만의 조명을 찾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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