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그리는 사람들

하루 동안 맡는 향은 수십 가지. 생활 반경이 줄어든 요즘에는 후각이 더욱 예민해진다.
무수한 향기 중 자기만의 감각으로 고유한 향을 그려내는 브랜드 오너들을 만나봤다.


향의 본고장에서 체화한 일상적인 향
르네랩 정나나 대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그라스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배경이자 수대를 이어온 장인들이 전통을 고수하며 향료를 만드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에르메스, 디올 등 유명 브랜드의 향수 제조업체인 프라고나르, 몰리나르 등의 공장과 조향 전문 교육기관이 포진해 있기도 하다.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이곳에서 조향 과정을 밟은 정나나 조향사는 향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브랜드 ‘르네랩’을 전개 중이다. 그간 코스메틱 브랜드 ‘활명’, 향기 브랜드 ‘그랑핸드’, 의류 브랜드 ‘한섬’등과 협업해 전문적인 조향의 중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조향을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프랑스에서 건축을 전공하며 공간 고유의 느낌을 증폭시키는 요소가 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프랑스는 향수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화인 덕에 다양한 향을 접할 수 있었고,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지낼 때는 스파이시하고 진한 향을 많이 경험하면서 향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혔죠. 한국에서는 향수를 진하게 뿌리면 예의에 어긋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문화적 차이가 흥미로웠고, 한국의 문화와 일상 속에서 향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르네랩의 쇼룸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이 ‘머리가 맑아지는 향’이라 표현하죠.

향수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그라스에서 공부한 경험이 궁금해요.
향료의 원산지인 만큼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에서 쓰는 수많은 향료를 접하고 사용해본 것이 큰 자양분이 됐어요. 그라스에서만 재배되는 허브와 꽃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장미의 일종인 ‘로즈 드 그라스’죠. 글로벌 브랜드들이 장미밭을 사서 독점 사용하기도 해요. 1kg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지만 구하기가 힘든 재료지요. 추출도 어렵고, 향료를 만드는 공정만 해도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에요. 또 하나는 조향사의 작업실에서 심도 있게 향의 공식을 터득한 것인데, 전통적인 개념의 조향은 도제식으로 배우는 문화를 이어왔어요.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방대한 방식을 화학·수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고, 감성적이거나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후자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어떤 과정을 거쳐 르네랩만의 향을 완성했나요?
작업할 때는 모든 경험을 동원해 갖은 상상을 발휘하죠. 르네랩에는 총 7가지 향이 있는데, 시그너처 향인 ‘딥포레’에만도 무려 42가지 향료가 들어가요. 깊은 숲속을 산책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만든 향으로 주재료는 그린티이고 로즈메리, 블랙커런트, 그린 애플 등을 배합하죠. 더하고 덜어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하나의 향이 탄생해요. 1800년대에는 향료를 300여 가지 사용했다고 해요. 최근에는 점점 심플해지는 추세죠.

요즘 우리나라의 향 문화는 어떠하다고 생각하나요?
향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만 아직 선택의 기준이 브랜드로 한정되어서 아쉬워요. 나의 이미지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향에 대한 분명한 취향을 탐구해 찾기를 바라요. 사실 우리나라는 조향사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아틀리에 퍼퓸 브랜드가 적고, 대기업 위주로 향을 만들거나 수입 브랜드에 의존하기에 다양한 향을 경험하기가 어렵죠. 저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향을 찾길 돕고 싶고, 그것이 제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에요.

향이 스민 집을 만드는 조언
“향을 내는 방식은 디퓨저, 스프레이, 캔들 등 다양하지만, 저는 특히 향낭(Sachet)을 추천해요. 프래그런스 오일을 흡수해 숙성시킨 천연 스톤을 면 주머니에 담아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에요. 디퓨저와 달리 은은하게 발산되고 현관 문고리, 화장실, 창가에 걸어두면 늘 자연스럽게 향이 퍼져나가 일상을 기분 좋게 환기할 수 있을 거예요.”


생활의 면면을 환기하는 향
페파민트 김미선 대표

2005년부터 스튜디오 ‘페파민트’를 운영하는 김미선 대표는 ‘자급자족 라이프’를 표방하며 조향 수업부터 비누, 향초, 수제 화장품 등 향이 개개인의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클래스를 이어오고 있다. 서촌 작업실은 한편을 채운 유리창과 곳곳에 놓인 식물, 싱그러운 풀잎 향이 어우러져 마음이 편안해진다. 때때로 그녀는 수강생들과 함께 귤꽃을 따러 제주로, 라벤더를 채취하러 농장으로 떠나곤 한다. 이는 사계절의 향을 온 감각으로 누리는 즐거움을 나누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이 사치품으로 여기는 향을 실용적인 관점으로 보는 점이 흥미로워요.
여유가 있어야 향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옛말이에요. 향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심신의 밸런스를 맞추고 위로해주는 도구로서도 훌륭해요.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에 향을 녹여 내게 어울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거죠. 예를 들어 질 좋은 민트잎을 갈아 가글을 만들고, 에센셜 오일을 더한 손 소독제나 스프레이를 직접 만들어 쓰면서 향을 가까이 들이는 방식이죠.

향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는데, 냉이를 캐러 다니거나 풀을 빻으며 놀았어요. 여행지에서 맡은 향이 집에 돌아와서도 잊히지 않듯, 향은 시공간을 넘나든다는 점이 특징이잖아요. 도시에서 생활하면서도 내가 좋아했던 향을 기억하고 유지하고 싶었죠. 처음에는 에센셜 오일 같은 내추럴한 향을 선호했지만, 조향 자격증을 취득해 케미컬한 방식도 공부해왔어요. 조향을 배우며 향에 대한 지평이 넓어졌죠.

가장 좋아하는 에센셜 오일은 무엇인가요?
페퍼민트도 좋아하지만 라벤더는 상비약처럼 언제나 함께하는 향이에요. 캔들 작업을 하며 화상을 두 번 입었는데, 효과를 톡톡히 봤죠. 아로마테라피의 선구자인 프랑스의 화학자 가테포셰 역시 이 점을 주목했고요.

수많은 사람에게 16년 동안 향을 알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5월에는 아이리스밭에 가고, 6월에는 라벤더꽃을 따러 가요.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원물을 경험하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한번 경험해보면 삶의 새로운 가치를 알게 되고, 일상을 향과 함께 여행처럼 즐길 수 있어요.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향과 경험을 이을 수 있도록 돕고 싶고요. 마다가스카의 바닐라 향을 직접 맡아보는 게 꿈이에요.

곧이어 브랜드를 전개할 예정이라고요.
클래스에서 소개한 향과 더불어 반려동물을 위한 향도 제안할 예정이에요. 동물들은 향에 더욱 민감하기에 함께 생활하려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거든요. 또한 신진 작가들과 향이나 오브제를 결합하는 협업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향이 스민 집을 만드는 조언
“소취 효과가 좋은 캔들이나 인센스는 주방의 음식 냄새를 빠르게 제거해주죠. 과하게 태우면 해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불을 이용해 연기를 피우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냄새를 없애는 방법이에요. 끝나면 꼭 환기시키길 권해요. 정반대로 침실에서는 산소를 없애는 캔들이나 인센스보다는 오일을 사용하길 추천합니다. 우리의 코는 샴푸, 비누, 세제 등 많은 향에 노출되기에 잠들기 전에는 향을 최소한으로 써서 후각이 편안해지도록 만드는 거죠. 저는 따뜻한 물에 아로마 오일 몇 방울을 떨어뜨리거나, 장미 같은 식물을 말려서 아로마 오일을 입히는 방식으로 향을 은은하게 즐기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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