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희스러움

한때 ‘서정희가 사는 집’은 모두의 로망이었다. 608㎡(184평)에 달하는 광활한 펜트하우스는 가구를 비롯해 사소한 집기 하나까지 죄다 최상의 것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다. 하지만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성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것도 더없이 가혹하고 처참하게. 세상이 모두 알도록 떠들썩하게 치른 이혼 그리고 제 발로 그 높은 곳에서 걸어 내려온 서정희는 이제 62.8㎡(19평)짜리 원룸에 혼자 산다. 페미니즘의 고전이 된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서는 오직 자기 자신이 되는 것만 생각할 수 있는 독립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홀로서기 후 6년, 서정희의 방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그러고 보니 책을 일곱 권이나 낸 베스트셀러 작가다. 《혼자 사니 좋다》 역시 반응이 나쁘지 않다던데.
방금 전에 출판사로부터 4쇄를 찍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웃음). 정말 기분이 좋다. 지금껏 책을 일곱 권이나 출간했는데, 고맙게도 다 잘됐다. 그중에는 살림이나 인테리어 노하우를 담은 책도 있고 내 종교 생활과 관련된 책도 있다. 이혼 직후 출간한 《정희》는 절망적이었던 결혼 생활을 되짚어본 자기 고백과도 같은 책이다. 이번에 쓴 《혼자 사니 좋다》에는 삶에 충실한 현재의 내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진짜 ‘서정희스러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생각을 활자로 기록해 남긴다는 건 무척이나 의미 있지만 그만큼 부담도 큰 작업이다. 꾸준히 책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혼 후 극심한 무기력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트라우마 치료도 꽤 오랫동안 받았다. 그때 어떤 상처든 아물고 회복하는 데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보다 더 글쓰기에 매달렸다. 무엇보다 나는 글을 쓸 때 행복하다.
무언가를 수시로 적는 건 오랜 습관이다. 메모하는 것이 내 일상의 한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음악을 듣다가도 문득, 영화 한 편을 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감상을 적는다. 꿈에서 어렴풋이 했던 생각들을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기록하기도 한다. 나의 오랜 꿈 중 하나가 바로 ‘작가 서정희’로 인정받는 것이다. 책에 실린 모든 글은 내가 직접 썼다. 토씨 하나까지 내 말투, 내 의도와 맞지 않으면 절대 싣지 않는다. 훗날 소설과 시를 쓰는 ‘작가’ 서정희를 상상하면서 혼자 흐뭇해한다.

메모의 영감이 마구 떠오르는 순간은 언제인가?
영화를 볼 때다. 영화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배경이 되는 나라와 도시의 풍경, 그곳의 건축물, 음악, 시대를 반영하는 패션과 헤어, 인테리어, 주인공들의 세련된 애티튜드, 라이프스타일까지. 영화만큼 내게 많은 영감을 주는 매체도 드물다. 영화를 볼 여유조차 없이 40년을 살았는데, 이혼 후 저녁 시간이 한결 여유로워지면서 요즘은 일주일에 네다섯 편을 본다. 휑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이제 나의 가장 큰 소확행이 됐다.

지금은 용기를 내서 나와 똑바로 마주 섰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비싸고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어디서나 위축되었는데,
이제는 어디서나 자유롭다.
나를 당당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이 큰 줄 그전에는 몰랐다.

카메라 앞에서 자유분방하게 포즈를 취할 때 내재된 표현 욕구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혼 전에는 내가 어떤 성향인지, 내 안에 어떤 욕망이 있는지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다.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온전히 내 것, 나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집조차 버거웠다. 그때 내 안에 응축된 에너지가 이혼을 하면서 폭발한 것 같다. 자유로움이야말로 이혼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이렇게 얘기를 술술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딸 동주가 그러더라. “엄마, 원래 이렇게 말을 잘했어?”(웃음). 예전에는 말을 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면 약점과 치부를 다 들킬 것 같았다. 조금만 긴장이 풀려도 내 부족함이 티가 날까 봐 아침부터 밤까지 경직돼 있었다. ‘서정희’ 하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살림의 여왕인데, 그 타이틀이 아니면 나는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암울했던 결혼 생활을 어떡하든 감추고 싶었다.

더 완벽히 감출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더 커지고, 그만큼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도중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나?
당연히 힘들었지만 스스로 무너뜨릴 생각은 없었다. 아마 너절한 부부 관계를 만천하에 드러낸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지금도 이혼하지 않고 스스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화가 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내 인생의 기회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결혼 생활의 불안감을 완벽한 살림으로 해소하려고 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잡지에 나온 그대로였다. 누가 언제 열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서랍 안은 늘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침구와 테이블 세팅을 바꿨다. 재미있는 건, 그런 나의 오랜 집착과 노력이 결국 ‘서정희스러움’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렇게 얻은 ‘살림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반대로 불완전한 삶을 대변하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나?
이혼 후 도망치듯 미국에 있는 딸 동주에게 갔다. 그때 눈에 보이는 물방울무늬 치마를 집어 입었는데, 누군가가 그 사진을 보고는 “저 여자는 이 상황에서도 멋을 낸다”고 악플을 달았더라(웃음). 철저하게 만들어진 캐릭터였으니 누군가는 그 타이틀이 뭐 그렇게 자랑스럽냐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무수한 시간과 연습 끝에 얻은 나만의 스타일과 안목이 결혼 생활의 수확임은 틀림없다. 단순히 요리 잘 만들고 청소 잘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그 집의 무드와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 스타일링, 세팅, 향까지 그날그날의 콘셉트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연출하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나는 고속터미널에서 파는 1000원짜리 리본이라도 순식간에 가장 고급스러운 것을 골라 근사하게 장식할 수 있다.

그 재능을 살려 대학에서 공간 인테리어 강의를 하기도 했다.
고립무원 속에서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갈고닦으며 이끌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평택에 있는 국제대학교에 외래교수로 초빙되어 3년 정도 강의를 했다. 내가 직접 인테리어와 공간 스타일링을 하면서 알아낸 모든 노하우를 정리해 가르쳤다. 마치 내 자식을 돌보듯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굉장히 힘이 됐다. 지금은 거리도 멀고 일정상 하지 못해 많이 아쉽다.

SNS에 간간이 올라오는 집 사진은 여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혼 전 살았던 집은 드레스룸이 굉장히 넓었다. 그런데 내 옷가지는 플라스틱 정리함에 계절별로 들어 있던 옷이 전부였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옷들로 드레스룸을 가득 채웠다. 아침 빛처럼 투명하고 맑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걸 깨닫고 집의 콘셉트도 투명하고 밝고 빛나는 것으로 잡았다. 욕실 벽까지 전부 유리로 교체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당황하지만 뭐 어떤가. 나 혼자 사는 집인데. 펜트하우스에 살 때보다 내 공간은 훨씬 넓어졌다.

그렇게 속 시원히 다 털어놓고 난 뒤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이제야 비로소 ‘서정희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큰 집에 갇혀 ‘서정희스러움’을 가꾸느라 아등바등 살 때는 정작 내가 누구인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몰랐다. 남들이 하는 칭찬도 다 거짓말 같았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동안’과 ‘말랐다’일 정도로 속이 꼬였달까(웃음). 내가 보기엔 생기 하나 없는 얼굴인데 왜 사람들은 나한테 동안이라고 하지? 예쁘다고 하지? 하며 믿지 못했던 거다. 먹성이 그렇게 좋은데 어떻게 날씬하냐고? 나랑 반나절만 같이 있어 보면 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런 말 하면 얄밉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살이 찌고 싶어서 일부러 하루 종일 간식을 입에 달고 산다.

아침 빛처럼 투명하고 맑게 살고 싶은 마음을 투영해 새로 둥지를 튼 집의 인테리어에는 유리 소재를 많이 활용했다. 혼자 사니 샤워부스를 굳이 막을 필요가 없어 더 특별한 공간이 완성됐다.SNS에도 하루에 한 번씩 소식이 올라온다. 사람들의 응원과 반응이 이제는 삶의 큰 동력이 된 것 같다.
힘든 순간에도 ‘서정희스러움’을 응원하고 지지해준 팬들이 있다. 아마 그분들 덕분에 더 열심히 살림을 가꾸고 책도 내고 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불쑥 “서정희 씨, 그거 어디서 샀어요?” “그거는 어떻게 한 거예요?” 하고 물으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관심도 감사하게 느낀다. 나만의 스타일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의미니까. 실시간검색어 1위를 하는 것도 좋다(웃음). 특히 SNS를 하고 나서 젊은 층 팬이 많이 늘었다. 요즘 세대에도 내 스타일과 감각이 통한다는 걸 실시간 반응으로 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서정희스러움’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실천하는 루틴이 있다면?
몸에 밴 가장 오랜 습관은 역시나 청소와 정리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 침구에 밴 온기와 냄새를 빼기 위해 창문을 열고 이불을 걷어 정리한다. 나만의 청소 순서가 있는데, 그걸 일일이 다 열거하면 열에 아홉은 기겁을 한다(웃음). 침실을 정리하고 나오면서 전날 모아둔 빨래를 세탁하고, 그날그날 날씨와 기분에 어울리는 잔과 접시를 꺼내 테이블 세팅을 하는 것까지가 아침의 루틴이다. 엄청난 일 같지만 습관이 되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매일 새벽 기도와 팩을 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종교와 두 아이는 지금까지 날 버티게 해준 가장 큰 버팀목이다. 그 사람과의 결혼 생활이 행복했던 적은 없지만, 덕분에 두 아이를 얻었으니 원망은 하지 않는다.

요즘 관심 갖고 몰두하는 게 있다면?
내 취미가 ‘배우기’고, 특기는 ‘그만두기’다(웃음). 결핍이 동력이 된 건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항상 뭔가를 배웠다. 스타일링, 꽃꽂이, 정리법은 물론이고 보기에 좋고 근사한 것들은 무조건 따라 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시시한 할머니로 늙지 않기 위해 호기심을 끄는 게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드는 것도 내 장점 중 하나다. 남들이 ‘할 수 있을까?’ ‘이 나이에 무슨…’ 하면서 우물쭈물할 때 난 서점에 가서 바로 책을 사고, 유튜브를 찾아보고, 그걸 배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바로 서치한다. 덕분에 성악, 골프, 자이브, 스윙댄스, 발레 같은 것들을 어렴풋이 흉내 낼 수 있게 됐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대부분 금세 그만두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할 때마다 ‘잘한다’ ‘타고났다’는 말을 듣는다. 그중 발레는 계속 애정을 갖고 하고 싶은 운동 중 하나다. 얼마 전 책을 내고 오디오 북을 녹음할 기회가 있었는데, 초보치고는 아주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날 돌아와서 바로 스마트폰에 책 읽는 목소리를 녹음하고 성우 흉내를 내봤다.

혼자 산 지 벌써 6년이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가?
완벽한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확실한 건, 용기를 내서 나와 똑바로 마주 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비싸고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어디서나 위축되었는데, 지금은 소나타를 타고도 청담동 어디서나 대접을 받는다. 나를 당당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이 큰 줄 그전에는 몰랐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현재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또 하나 바라는 건, 나를 나만큼 아끼고 사랑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혼자 잘 사는 사람이 함께도 잘 사는 것 같더라. 그런 면에서 난 지금 충분히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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